My New Life, 남도여행, 우주로 가는 길
내 어린 시절 꿈은 과학자였다.
두툼한 과학 잡지에 실린 독일의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푹 빠져들었다.
논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 실질을 전혀 모르면서도, ‘상대성이론’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 하나를 입에 달고 다녔다.
역시 독일 과학자로 2차 세계대전 당시 V2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 박사, 핵개발의 선구자인 이태리 출신의 과학자 페르미, 방사선 원소인 라듐을 발견한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퀴리 부인에게도 심취했다.
그들과 같은 과학자의 길을 가고자, 과학과 관련된 책들은 이것저것 안 가리고 무조건 사서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사서 읽었는지 벽 한 쪽에 세워놓은 내 키보다 팔 하나 정도 더 높은 책장을 빼곡하게 채울 정도였다.
그때 내 친구들은 책으로 가득 찬 그 책장을 보고 우리 집을 ‘도서관’에 비유하기도 했었다.
책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다.
과학적 상식을 실제로 실험해보기도 했다.
맏이 공부 잘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엄마를 어떻게든 꼬드겨서,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가지가지로 장만해서, 현미경을 만들어 채집한 곤충이나 식물의 세밀한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었고, 망원경을 만들어 밤하늘의 달과 별을 관측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꿈꾸기를, 빛의 속도로 달려 별과 별 사이로 여행할 수 있는 광자로켓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었다.
팔영대교를 건너 고흥땅으로 들어섰다.
그 땅으로 들어선 최고의 목적은 나로도 우주센터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내처 달렸다.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았다.
우리 고향땅 문경의 명산인 해발 1,076m의 백두대간 주흘산을 꼭 빼닮은 해발 608m의 암봉이 연이은 팔영산도 그냥 스쳐 지나쳤다.
나로대교와 나로2대교해서, 큰 다리 2개를 건넜다.
우주로 가는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주센터는 고흥반도의 끝 섬인 외나로도 동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크고 작은 3개의 모형 로켓이 그 뜰에 우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