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믿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오늘 나는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를 보고 놀랐다.
-*- “대학 새내기 5명 중 한 명은 한자로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르고, 10명 중 8명가량은 부모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이다.
(成大學生處 제공) 이 내용을 보고
우리나라 한자교육이 문제로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갑자기 옛날 어린 시절이 회상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네 명의 형제 중 막내였는데 내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27세의 어머니와 세 살 된 여동생과 함께
충남 아산에서 성환으로 이주하여
조부모님과 큰아버지가 계신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다정하신 할아버지와 자상하신 큰 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된 나는 그 당시 대가족제도가
어머니와 우리 남매를 보호하는 우리(fold)가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천자문(千字文)과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할아버지의 교육방침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당신 자신도 한문에 조예가 있었지만
손자들 교육을 위해서 아예 나이 많은 한문 선생 한 분을
사랑채에다 모셔다 놓고 숙식을 제공하고
손자들과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사례금은 가을 농사가 끝나면 쌀로 드렸다.
충남 천안군 성환면 우신리 83번지가 그 때의 주소인데
할아버지의 집은 그 마을(80호 가량의)에서 가장 컸다.
집 구조는 사랑채와 안채가 있었고, 안마당 바깥마당,
방도 여러 개가 있어서 조부모님, 큰 집 식구 여섯 명,
우리 식구 세 명, 농사일을 하는 일꾼, 그리고 한문 선생
이렇게 함께 살아도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집 뒤쪽 복숭아밭에는 가족들을 위해서
50그루 정도의 복숭아나무가 심겨져 있었는데
봄이 되어 복숭아꽃이 피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온 나는
할아버지의 교육방침에 따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문부터 배우게 되었다.
먹을 갈아서 나무서판에 붓글씨를 쓰고 지우고 하는 것이
재미있기는 해도 근엄한 한문 선생 밑에서
한문을 배우는 것은 고역이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즐거웠기 때문에
나는 가끔 선생님이 화장실을 간 새에 살짝 빠져나와
친구들이 노는 곳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어느새 내가 놀고 있는 곳에 찾아오셨다.
그리고 나를 붙잡아다가 한문 선생 앞에 데려다 놓았다.
그러면 한문 선생은 몰래 도망간 벌로
항상 준비되어 있는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회초리로 맞을 때 어찌 아프던지 꾹 참다가 울기도 하였다.
한문 선생은 주입식 교수법을 택해
문하생들에게 무조건 암송하도록 훈련시켰다.
나는 형들 틈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뜻도 모르고 한문 선생이 선창하면
공자왈 맹자왈 따라 하곤 하였다.
지금도 그 때 배운 것이 기억나는데,
그것은 명심보감(明心寶鑑) 처음 시작이었다.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이런 한문교육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을 읽을 수 있었고
내가 유교대학인 성대(成大)로 진학하여 장학금을 타면서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고문을 번역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지만
UBF에 미쳐서 대학생을 얻는데 사로잡혔었다.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를 매우 좋아하셨는데
손수 고기 그물을 만들어서 사용하셨다.
성환에서 안성 쪽으로 흘러가는 안성천이
집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고기 잡으러 가실 때는 몰이꾼으로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할아버지는 다른 손자보다 아버지가 없는 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고 고기 잡으러 가실 때마다 부르셨다.
나는 냇가에 도착하면 냇물에 뛰어 들어가
할아버지가 그물을 대고 있는 쪽으로
소리를 지르며 고기를 몰아갔다.
그러면 붕어, 메기, 날치 등 민물고기가 많이 잡혔다.
고기가 많이 잡히면 할아버지는 너무나 기뻐하셨고,
그날 저녁은 온 식구가 매운탕을 먹을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가 5학년 때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관이 땅에 묻힐 때
누구보다도 슬퍼하며 울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린 나이인데도 뭔가 마음이 허전했다.
이제는 함께 고기 잡으러 갈 사람이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소년이 되어갔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사촌 누나들을 따라서
다른 마을에 있는 예배당에도 가보는 등
결국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2007년 3월 15일)
포이멘
첫댓글 죽음이 만일 없다면 복음이 용이하게 전하여질 길이 있을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죽음이야말로 생명으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생명으로의 문이라 여겨집니다. 침례요한이 모두 사람들을 물에 넣는 것으로 시작하였듯이...저도 많은 죽음들을 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느낍니다.
형제님글을 읽다보니 저도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리도 죽음 없이는 생명이 없듯이.. 할아버지의 별세로 할아버지보다 더 형제님을 사랑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이 오셧으니 많은 위로 되엇겟네요..2년전에 언니를 주님품에 보내고서.. 그아픔을 주님께서 저를. 많이 위로하셧답니다.. 아멘
왜 이런 평범해 보이는 글이 깊은 곳을 울려 감동을 갖게 하는 것일까요? 꾸밈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솔직한 자기 고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님의 연세와 위치에서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쓰실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자기부인의 결과일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시던 할아버지를 잃으시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셧으니..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앗지만, 모든 것을 얻은자가 되셧네요... 포이멘님 잔잔한 감동으로 해피앤딩 동화를 읽엇습니다... 감사드려요..
아랫목에 모두 발집어넣고 옛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읽습니다.포이맨님의 유년시절이야기...아하...그러셨군요. 이러한 배경들이 병풍이 되어 하나님의 경륜 안으로 인도 되시었네요. 자신이 택하고 예정한 사람들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믿음의 동기부여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허전함과 공허함과 ... 성령의 쓸고 찾으시는 역사가 5학년때 시작되었군요. 우리는 다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므로 언젠가는 채울것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환경중에서 그분을 담기위해 계속 우리를 찾으시는 주님....
윗 글을 읽으며 유년기로 돌아가 함께 그곳에 있는듯 하네요^^ 억지로 익힌 한문이 인생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 같군요. 옛날 생각나네요.^^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습니다. 한편의 화폭처럼 형제님의 어린 시절이 그려지네요^^ 아버지와 조부님을 여의시고 만나신 주님...말못할 위로와 안식이 되셨기에 지금까지 한길을 가고 계신거겠죠. '부분과 완전을 바꾸는 놀라운 이 거래'!!!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저희 양조부모님께서는 안계셨고, 지금 저의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가 안계셔서 할아버지의 존재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