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작년 가을 축구하다가 ‘발목 좀’ 부러진 것 가지고 꾀가 늘어 너무 오래 쉬고 있었다.
그 대가를 오늘 톡톡히 치뤘다.
말만 군포해오름 회원이지 실제로는 기여한 바가 전혀 없는데
최태환, 강성구 兩雄(양웅) 快傑(쾌걸)이
우리 아지트 대야미 비트에서 정성으로 준비한다는데
내가 준비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먹는 자리마저 빠진다면 인간도 아니리라
몇 가지 걸리는 개인사가 있었지만 대야미로 나갔다.
아니, 더 솔직히는
오늘도 갈까 말까 갈등이 있었는데 강성구님의 전화 한 통,
‘어? 와우? 지금 어디쯤이야?’
이 정겨운, 확신에 찬 확인이 뒷머리를 '퍽!' 하고 치는 바람에
'윽!' 하고 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자.
도착한 대야미의 천연복개 주차장(고가도로 아래).
몇몇 분들의 스트레칭을 보자 불끈 의욕이 솟는 걸 보니
아직은 내 안에 ‘런너’로서의 의식은 살아있나 보다.
채성만님이 선도하는 8-9명의 그루 꽁무니에 서는 나를 보고,
'성만이 형 따라갈라믄 이제 와우 죽었다!' 라고
응원인지 협박인지 모를 한 마디를 던진다.
설마 내가 죽기야 할라고?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왕년에 한 가락 했던 몸인데, 여성분들도 계신데 따라야 갈 수 있겠지...
에고고...
이 만용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기까지
불과 삼십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갈치(연)못을 지나 고갯마루에서 임도로 들어서니 가도 가도 오르막길.
평탄한 길이 나오면 어찌나 반가웠지만 그도 잠시.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경사로...
그래서 임도를 달리는 내내
모퉁이가 나오는 지형 자체가 싫었다.
수리산의 7부 능선을 끼고돌아 장장 10킬로미터가 넘게 놓여있는 임도(林道).
황토와 잔자갈들이 다져져서 발바닥에 느껴지는 반발도도 적당하고
길 양편으로는 갈참나무 밤나무 이름모를 꽃...
천혜의 훈련코스라는데 의견들이 일치한다.
다만,
이렇게 훌륭한 연습코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군포해오름에는 왜 써브쓰리가 잘 보이지 않느냐는 점이 의문으로 남고
평평한 포도(鋪道)에 비해 신발이 엄청난 속도로 닳을 것이 분명하니
연습화와 시합화의 구별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깨달음,
그리고,
정상에서 불티나게 ‘아이스케키’를 파는 사람으로부터
이 임도를 훈련장소로 지정한 클럽 리더는 과연 결백한가... 의혹?
임도(林道), 왜 필요할까?
1. 산림관리(集材)
2. 산불진압
3. 산불확산방지
4. 교통로 ... 아마 이럴 것 같다.
몇 킬로나 달렸을까?
나는 뒤에 남기로 작심했다.
어여들 가여~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내 마음 속에 노인이 있어 손을 흔든다.
그 뒤로는 오르막은 걷고, 평지는 조금 뛰는 시늉하고...
그렇게 헤맸다.
채성만님의 인도로 앞에 달리는 분들은
이미 반달(반포달리기)에서 하프이상을 완주하고 오신 분들인데도
속칭 ‘날라간다.’
여성 분도 두분 이나 계신데.
(아흐~ X팔려)
정상에서 아이스케키를 사들고 한 참을 기다려 주신다.
물도 챙겨주시고.
미안한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애꿎은 발목을 내보인다.
대강 내가 잘 못 뛰는 것에 대한 정당한 사유를 제시함으로써
부끄러움을 막아냈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휴, 저도요, 등산하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는데요...’
서울마라톤의 한 선배님이 다리를 보여주는데
아예 정강이 전체가 다쳤던 모양이다.
내꺼 보다 몇 배는 클 것으로 생각되는 이따만한 철심을 다리에 넣고 살아오신지가
어언 십! 오! 년! 이나 되셨다는 것이다.
에고고... 깨갱!
이제는 변명도 못하고, 그냥 침묵하며 꽁무니만 죽어라~ 따라가는 수밖에.
뛰다가 걷다가, 아니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여
두시간만에 아지트로 돌아왔다.
세상에,
우리는, 힘들게 달려오던 우리 일행은 그런 말을 했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설마 자기들끼리 먼저 먹지는 않겠지?’
우리의 소박한 희망은 무참히, 산산이 부서졌다.
그 긴 테이블 양 편으로 무려 20여명이 신나게 갈비를 뜯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복날은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 희생견이 되신 견우와
바로 곁의 농장 ‘김씨와 권씨네’ 주인이 직접 가꾼 야채를 곁들여
좁쌀막걸리(이거 정말 맛 난다)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면면들을 보았다.
비비클럽 안중철 회장, 최관호, 이윤희 가족, 김재남, 구자근, 최태환, 이경렬, 박선자,
귀여운 여인, 조대연...
서울마라톤의 송진우, 박희숙 부부를 위시한 스텝진과 열성회원들 십 수분...
땀에 절은 우리도 빠르게 샤워를 하고 합류하니
순식간에 삼십 명이 넘는 대규모 런너스 모임이 되어버렸다.
(이하 먹고 마시는 장면은 각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좋은 사람들과 한 바탕 운동을 하고
샤워 후에 마시는 차가운 막걸리.
때마침 아득한 수리산 정상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노니,
아이야,
무릉도원이 게 어디 있다더뇨?
(2005. 6. 21)
[추신] 제 머리가 짧아 이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 죄송합니다.
윤희씨... 오신 분들 이름 좀 올려줘 바.
첫댓글 캬~~ 이렇케 써야 되능건디... 방가웠습니다.
나도 다는 모르고...문성재(동양화가)형 부부, 고용운님 부부, 성만이 형님이 근무하시는 중구청의 동료분들 두분, 나머지는 취중이라 여기까지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