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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 토론장 왜왕무가 웅략이 아닌 이유
knjpark 추천 0 조회 81 26.02.22 21:3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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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2.23 22:50

    첫댓글 왜5왕은 백제왕이 파견한 담로왜왕이고
    일본서기 왜왕들은 가짜인물들, 왜5왕의 후예는 제명부터 사실

  • 작성자 26.02.24 10:16

    반갑습니다.공야님
    맞습니다.
    백제왕이 규슈와 야마토에 파견한 담로왜왕이라 할수 있습니다.
    비유왕일때 개로왕자를 왜왕제로 임명하고
    개로왕일땐 461년에 우현왕 여기를 규슈책임자로. 좌현왕 여곤은 야마토 책임자로 임영하죠.
    무령왕때는 순타태자를.
    성명왕때는 임성태자 (세째아들)를.
    위덕왕때는 아좌태자를.
    의자왕때는 규슈에 풍장를 야마토에는 교기왕자를 파견하는 등
    획실히 왜를 담로제로 운영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 26.05.20 07:59

    당시 왜 열도 내에 한반도계 분국이 있다고 보면 왜왕무가 북쪽 바다 건너 95개 나라를 복속했다는 478년 송나라에 보낸 상표문이 이해가 갑니다. 분국설은 60년대 김석형교수(대구 출신으로 6.25 때 월북)가 책으로 발간 당시 일본사회에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죠. 즉, 왜왕무는 자신은 백제 분국 왜왕무로 있지만 사실은 백제 본국의 입장에서 위 사실을 말한 것으로 이해해야 풀립니다. 아울러 왜왕무가 올린 싱표문 내용 중 '암상부형'이라 하여 475년 고구려군에 의해 개로왕과 왕비,태자와 아들들이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의미로 볼 때 왜왕무는 당연히 어린시절의 사마왕, 즉 무령왕으로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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