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왕 무의 상표문(478년)에 언급된 '부친과 형님의 원수(父兄之怨)' 구절과 관련하여, 부친은 제(濟), 형님은 흥(興)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들이 475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것을 원수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웅략은 서기 418년생으로 479년에 6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상표문이 작성된 478년 당시 웅략의 나이는 60세였습니다. 만약 부친 '제'가 475년에 고구려에 의해 사망했다면, '제'의 나이는 당시 약 85세로 추정됩니다. 85세 사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고령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형으로 지칭된 인물 역시 60세 이상이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불어, 일부에서는 웅략을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만약 웅략이 곤지라면, 곤지는 백제에서 477년에 사망하였으므로, 478년에 상표문을 작성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제15대 응신ㅣ오진 천황
(재위 270 ~ 310) 41년
(실제 390 ~ 400) 11년
(가공 200 ~ 310) 111년
제16대 인덕ㅣ닌토쿠 천황
(재위 313 ~ 399) 87년
(실제 403 ~ 429) 27년
(가공 290 ~ 399) 110년
제17대 이중ㅣ리추 천황
(재위 400 ~ 405) 6년
(실제 430 ~ 435) 6년
출생: 서기 336년경
사망: 서기 405년경 (일본서기 기준)
제18대 반정ㅣ한제이 천황
(재위 406 ~ 410)
(실제 436 ~ 440) 5년
출생: 서기 352년경
사망: 서기 410년경 (일본서기 기준)
제19대 윤공ㅣ인교 천황
(재위 412 ~ 453)
(실제 442 ~ 453) 12년
출생: 서기 376년경
사망: 서기 453년경 (일본서기 기준)
제20대 안강ㅣ안코 천황
(재위 454 ~ 456) 3년
출생: 서기 401년경
사망: 서기 456년경 (일본서기 기준)
제21대 웅략ㅣ유라쿠 천황
(재위 457 ~ 479) 23년
출생: 서기 418년경
사망: 서기 479년경 (일본서기 기준)
왜5왕 연도
찬 연도: 421년 (영초 2년) 인덕시기
진 연도: 438년 (원가 15년) 반정시기
제 연도: 443년 (원가 20년) 윤공시기
흥 연도: 462년 (대명 6년) 웅락시기
무 연도: 478년 (승명 2년) 웅략시기
첫댓글 왜5왕은 백제왕이 파견한 담로왜왕이고
일본서기 왜왕들은 가짜인물들, 왜5왕의 후예는 제명부터 사실
반갑습니다.공야님
맞습니다.
백제왕이 규슈와 야마토에 파견한 담로왜왕이라 할수 있습니다.
비유왕일때 개로왕자를 왜왕제로 임명하고
개로왕일땐 461년에 우현왕 여기를 규슈책임자로. 좌현왕 여곤은 야마토 책임자로 임영하죠.
무령왕때는 순타태자를.
성명왕때는 임성태자 (세째아들)를.
위덕왕때는 아좌태자를.
의자왕때는 규슈에 풍장를 야마토에는 교기왕자를 파견하는 등
획실히 왜를 담로제로 운영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왜 열도 내에 한반도계 분국이 있다고 보면 왜왕무가 북쪽 바다 건너 95개 나라를 복속했다는 478년 송나라에 보낸 상표문이 이해가 갑니다. 분국설은 60년대 김석형교수(대구 출신으로 6.25 때 월북)가 책으로 발간 당시 일본사회에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죠. 즉, 왜왕무는 자신은 백제 분국 왜왕무로 있지만 사실은 백제 본국의 입장에서 위 사실을 말한 것으로 이해해야 풀립니다. 아울러 왜왕무가 올린 싱표문 내용 중 '암상부형'이라 하여 475년 고구려군에 의해 개로왕과 왕비,태자와 아들들이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의미로 볼 때 왜왕무는 당연히 어린시절의 사마왕, 즉 무령왕으로 해석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