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없는 기독교는 가능한가? 디트리히 본회퍼 묵상
기독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무신론의 두 전선
몇 해 전 옥스퍼드대학교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이라는 책이 한국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진화생물학자인 그의 책은 초월적 인격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조롱한다. 그는 서구 계몽주의의 무신론자들이 개진했던 논거들을 저널리즘적인 용어로 잘 정리했으나 아직까지 인류사에 정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 무신론을 간과하고 있다. 그 책에서 다룬 무신론보다 훨씬 더 해악스럽고 무서운 무신론을 소개하는 책이 있다. 성경이다.
성경에는 정말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고도 그 면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한 자들에 대한 탄핵으로 가득 차 있다(사 3:8). 그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가족적 친연성(親緣性)을 느낀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경제적 악법들을 제정하고 집행하여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자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종교 권력자들이다. 오늘날 사회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무신론자들은 하나님과 가족적인 친연성, 혹은 친족적인 유착을 느낀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교 권력, 정치권력, 그리고 부당하게 얻은 경제적 기득권을 휘두르는 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성직자들은 직업적으로 가장 교묘하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기 쉬운 자들이다.
구약성경에는 무신론 혹은 무신론자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창세기 20장에는 ‘그랄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11절). 이 말이 구약적 의미의 무신론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태도가 무신론이다.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과 지주들, 제사장과 예언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간주했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므로 무신론자들이었다(사 1:11~15; 29:13). 구약성경이 말하는 무신론은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상감이나 외경이 사라진 태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구약의 무신론은 어떤 철학적 인지 행위라기보다는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악행을 범하는 도덕적 무감각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시 14:1; 94:1~11). 신약성경에서 무신론자를 의미하는 단어 ‘아데오이’(ἄθεος)는 에베소서 2:12에 처음 나온다. 이 말은 인격적인 한 분 하나님 야훼를 모르고 사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대면한 무신론은 매우 현대적인 개념이다. 서구에서는 18세기부터 아브라함이 믿었던 유일 인격신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무신론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무신론의 논거들은 많으나 요약하면 다섯 가지 정도 된다. 첫째, 도덕적 무정부 상황이다. 악의 범람으로 좌절당하는 세계는 전능하면서도 선량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둘째, 일관성 없는 신의 계시들이다. 신의 대리자들이라고 하면서도 신의 이름으로 반문명적 전쟁을 일삼는 사태가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다. 신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과 기독교 문명권의 악행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셋째, 신 관념의 심리학적 환원주의 혹은 인류학적 환원주의다. ‘신’은 인간의 유아기 의식에 생긴 강박관념이라고 보는 프로이트적 환원주의와 인간 의식의 소외 현상으로 생겨난 심리적 투사물이라고 보는 포이어바흐의 인류학적 환원주의다. 넷째, 신은 지배 집단이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위해 만든 보조 정치경제학이라고 보는 사회학적 환원주의다. 마지막으로 진화론적 생명 창조 모델로 인해 생긴 신 무용론이다. 신 없이도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사종교적 우주 진화론이나 생명 진화론이다.
오늘날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교회 내부로부터 자생하는, 즉 하나님의 친족권에서 발생하는 성경적인 의미의 무신론자들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근대 계몽주의 이후의 무신론자들의 이중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들의 도전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기독 청년들의 신앙을 근절시킬 수 없다. 오히려 이 무신론적인 도전에 응전하다보면 기독 청년들의 신앙은 깊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서구 사회에서 만개한 계몽주의적 무신론의 쇄도에 대비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생하는 더 치명적이고 해악스러운 무신론자들의 도전에도 응전해야 한다. 역사 속에는 이런 이중적인 위기에 처했던 무수한 신앙인들의 분투가 있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의 신학
한국 기독 청년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본회퍼의 모습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해서 처형당한 순교자의 그것이다. 그는 1933년에 정권을 잡고 독일 전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당 체제에 대해 협력적이거나 적어도 순응주의적인 독일 개신교의 대세에 크게 반발했고, 박해와 살해 위협 속에 살아가던 독일 거주 유대인들의 해외 도피를 돕기 위해 적극 활동했다. “미친 운전사가 모는 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나의 과제가 아니다. 이 미친 운전사의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도 나의 과제이다”라는 말은 우발적인 의기나 의협심에서 우러나온 생각이 아니라 그의 신학적 사유의 귀결이었다. 당시의 보통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계를 주장하시기에 히틀러의 등장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루드비히 뮐러(Ludwig Müller) 감독이 중심이 된 ‘독일 기독교인 연맹’은 히틀러의 나치 이념을 찬양하는 치욕적인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 (중략) 모든 민족에게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도 영원하고 특별한 종류의 법을 주셨다. 이 법은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그에 의해 이룩된 국가사회주의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중략) 독일 민족을 위한 시대는 히틀러 안에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히틀러를 통해 참 도움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독일 기독교인 연맹’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떤 우연도 일어나지 않기에 히틀러 체제를 하나님나라의 대행자라고 믿고 그것에 적응하려고 했다. 이러한 독일 개신교회의 대세에 거슬러 본회퍼는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했다. 본회퍼는 하나님은 역사 속에 들어와 행동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형이상학적 영역에 세워진 보좌에 앉아 역사를 감찰하기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 참여하여 고난을 자취하고 피해를 당하는 자리까지 내려오시는 참여적인 하나님이다. 그는 서구 계몽주의가 주창했던 무신론을 맞받아치는 성경적인 의미의 세속 신학, 즉 종교성 없이도 표현되는 기독교 신앙을 내세웠다. 본회퍼는 ‘하나님 없이(ohne), 하나님 앞에서(vor), 하나님과 더불어(mit)’ 사는 삶을 주창했다. 종교성 없는 기독교, 이원론의 호위를 받지 않고 전통적 기독교 유신론의 기득권 없이 세상 한복판에서 기독교 신앙을 그대로 실천해 내는 지극히 차안적(此岸的)인 기독교를 주창했다.
이런 주장은 그의 생애 후기 즉, 그가 나치에 의해 투옥된 1943년 이후에 쓴 옥중서신들에서 단편적으로 개진한 사상이었기에 온전한 신학 담론으로 성숙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신학은 1960년 미국의 ‘신 죽음의 신학’, ‘세속화 신학’의 원천으로 인용되거나 인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크 엘룰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본회퍼 연구가들은 ‘신 죽음의 신학’이나 ‘세속화 신학’이 본회퍼 신학의 본질을 왜곡했거나 과도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한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과 관계없다는 주장, 하나님이 하나의 문화적 가공물이 되었다고 보는 입장은 그의 신학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본회퍼의 단편적 서신들을 통해 그가 내세운 종교성 없는 기독교에 대한 착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종교성 없는 기독교는 이 덧없는 세상을 떠나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이동하는 구원을 약속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육신을 입고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초월적인 하나님을 모방해서 이 세속 사회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기독교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
첫째,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다. 1943~1944년의 옥중서신들에서 본회퍼는 성인이 된 세상에서 교회와 기독교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본회퍼는 테겔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을 때 신학과, 차안성과 구체적 행동의 관계를 급진적으로 탐구했다. 본회퍼는 1944년 4월 30일에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보낸 한 서신과 그 후에 쓴 서신들에서 종교성 없는 기독교를 개략적으로 기획했고 하나님에 대한 세상적인 신학 담론을 착상했다. 본회퍼에 따르면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이 세상 안에서만 의의가 있다. 그가 보기에는 ‘순전히 피안적인 하나님’은 오로지 제도권 종교의 본질적 요소일 뿐이었다. 그는 동시대의 기독교가 내면으로 침잠하는 기독교로 전락했고, 개인적 의식 영역으로 퇴각해 버려 형이상학으로 변질되었다고 진단했다. 또한 동료 죄수들 안에서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어떤 대단한 종교적 각성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며 자율적인 인간들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한계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도마저도 하지 않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인간적인 약함과 죄가 만연한 상황에서 인간을 도우실 수 있는 초월적인 해결사로서의 하나님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본회퍼는 인간이 처한 한계상황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그런 하나님 개념은 어차피 세속화된 인간들에게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본 것이다. 세속화된 인간들에게는 심지어 죄와 죽음도 진정한 한계상황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본 것이다. 여기서 현대인들을 영적으로 기습하여 다시금 하나님께로 이끌어오기 위해서 오히려 종교성 없는 기독교가 출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1900년간 서구 역사에서 덧입힌 형이상학적인 규정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본회퍼가 종교를 부정적으로 본 이유는 바르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본회퍼는 종교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인간 문명의 가공물이라고 규정했다. 종교는 이 세상을 덧없는 곳으로 간주하고 구원이란 더 실재적이고 영원한 형이상학적 영역으로 이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종교가 가장 강조하는 하나님 이미지는 전지전능한 해결사(Deus ex machina)다.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이용해서 인간에게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참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자기 개방, 말 걸어오심, 그리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심에 대한 응답이다.
이처럼 본회퍼는 인간 역사가 ‘작업가설로서의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즉 전통적 기독교 유신론이 말하는 하나님이 이제는 과학이나 정치학 심지어 도덕(종교와 철학)이 그 고유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요청했던 가정으로 더 이상 쓰임받을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 근심하는 영혼, 즉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적 권위들이 모든 권리를 주장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대신 ‘궁극적인 정직’으로 살아가는 길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이제 철든 성인(成人)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성인’의 삶은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는 삶이다(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London, 1971], 362).
이와 같은 본회퍼의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한 주창은 근대 계몽주의가 조성해 온 반기독교적인 무신론에 대한 신학적 고투가 담긴 응전이었다. 근대 서구의 무신론은 천상 세계의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 이 세계에 대해 갖고 있다고 믿어진 기득권을 부정한 것이다. 칼 마르크스, 프로이트, 그리고 현대의 인문주의적․과학주의적 사고가 종합한 이런 무신론이 본회퍼에게서 전혀 다른 기독교적 응전을 받은 것이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무신론은 도덕적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다운 인간의 현실 참여적, 고난 자취적인 행동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는 영지주의적 현실도피의 구원 관념을 극복하고 이 세상을 가득 채울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짊어져야 할 성스러운 책임감을 부각시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입각해 실천의 의무를 제고시키는 실천 담론인 것이다. 본회퍼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저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초월로부터 내재로, 관념으로부터 현실로 ‘내려오셔서’ 초월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기독교인들이 철든 성인처럼 세상 경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는 모든 이원론적 종교를 폐기하고 인간의 성숙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신학적 언명이었지, 하나님의 존재 폐기를 의도하거나 암시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책임을 방기한 채 아무런 행동이나 현실 참여도 없이 노예적 종교 근성으로 하나님만 의존하려는 신앙을 질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지 말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악으로 치닫는 세상과 대결하고 그런 세상을 변혁하는 데 앞장설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둘째,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은 이기적인 자아를 하나님의 심판과 다스림에 맡김으로써 이웃과 현실 앞에 책임 있는 존재로 사는 삶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위한 삶, 현실 참여, 연대성의 경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1928~1929년 미국 월가(Wall street)발 세계 금융 위기와 공황 앞에 아무런 신학적 분석과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교회를 보고 본회퍼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의 필요에 무감각한 교회와 신학, 종교의 거적더미 아래 그리스도를 묻어놓은 교회를 보고 좌절했던 것이다. 그는 1930년 미국 뉴욕의 라인홀드 니버 밑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기 위해 유니온 신학교로 갔다가 흑인 친구 프랭크 피셔(Fisher)를 만나 신학적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그는 1년 정도 흑인 할렘가의 아비씨니언침례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 그리스도가 열광적으로 전파되는 현장과 소수자들이 고통받는 불의한 현장을 목격했고, 교회가 참된 공동체의 평화를 창조하는 데 전혀 무기력하고 서툰 것에 실망했다. 그는 아래로부터, 압박당하는 자의 관점에서부터 사물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획득했다. 몇 마디 자구나 말에서 그치는 신학에서 현실에 상관성이 있는 실천적 신앙 사고로 급격하게 전향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말하는 실천 지향적 기독교 신앙은 시민적 용기(Zivilcourage), 정직(Ehrlichkeit), 사회공동체의 희생자인 기층 민중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포함한다(Dietrich Bonhoeffer Werke, ed. Eberhard Bethge u.a., Kaiser[1986~1999], 8, 33~34). “행동 없는 기대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관망은 결코 기독교 신앙의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경험들이 우선이 아니라 형제의 삶에서 일어난 경험들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한 행동과 연대로 이끈다.”
하나님과 더불어
셋째,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은 하나님의 성육신, 즉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공동체적 기독교인의 삶을 의미한다. 본회퍼 신학의 핵심은 땅에서 공생애를 펼치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세상이 화해한 곳이다. 본회퍼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의 현존을 드러내시다가 인간의 폭력 사정권까지 들어오셔서 급기야 고난받는 하나님이다. 본회퍼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상 어떤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과 세상을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한 채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루터의 두 왕국론에 대한 암묵적인 공격이었던 셈이다. 그는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경건을 강조했고 그 경건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모방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 속에서의 타자를 위한 그리스도인적 삶’을 강조해 천국과 세상의 이원론에 기반을 둔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다. 기독교 문명권이 일으킨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기독교가 외치는 형이상학적 영역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항적 무신론을 확산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몰고 온 이 신학적 대파국에 본회퍼는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담론으로 응전했다. 그는 신의 본질에 대한 규정에 치중한 재래의 서구 신학을 비판하고 신의 행동을 문제 삼았다. 신이란 누구인가가 아닌 어떤 행동이 신의 행동인가를 물었다. 그리고 타자 지향적인 삶, 고난을 자취하는 삶이 신의 행동이라는 답을 얻었다. 본회퍼는 타인을 위해 고난을 자취하는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모방하는 것이며 자아 초월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본회퍼는 영이신 하나님이 육체적 인간이 되어 오만한 무신론적 권력자들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자들의 대열에 끼어 참여한 것 자체가 형이상학적 신의 자기 초월로 보았다. 신의 ‘초월’은 세상과 자신을 무한하게 이격시키는 초월이 아니고, 무기력과 전능성이 은닉되고 유보된 채 악의 피해자들의 자리로 ‘내려서는’ 초월이다. 완전한 신이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 그것도 인간이 범한 악행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신의 자기 초월이다. 본회퍼는 재래적인 서구 신학의 파산을 초래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신(神) 다운 신이 없어진 시대, 신이 죽어 버린 시대, 무종교 시대, 무신론 시대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동안 서구 신학이 강조했던 전지전능하시며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많았던 그 신이 죽은 것이다.
본회퍼가 참 신이라고 고백한 신은 서구의 기독교 유신론이 주창해 온 신과는 달랐다. 로마가톨릭교회나 제도권 교회의 종교 권력을 갖고 세상을 구원하려고 했던 신과는 전혀 다른, 전능성이 유보되거나 억제되어 있는 무력한 신이었다. 사람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냄새나는 발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동정하기 위해 자기 몸을 구부린 겸손하신 신이었다. 본회퍼가 보기에 이 세속 사회로 초월하신 그 신은 종교 권력자들인 사제 집단이나 화려한 교세를 자랑하는 군중이나 건물 안에 현존하시지 않는다. 가장 비종교적인 인간의 실존 상황에 와 계신다. 제도 교회가 제공하는 구원은 꿈도 꾸지 못하는 죄인들, 매주 성전 출입을 통해 하나님의 일상적 축복도 누릴 수 없게 배제된 자들의 한복판에 와 있다. 예수가 창녀와 세리, 죄인들의 식탁에 내려온 것 자체가 재래적 구원의 길의 시효가 종료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퇴각해서는 안 되고 이 세상 안에서 행동할 의무를 지닌다. 기독교 신앙을 구성하는 두 요소는 정의의 실현과 신적 고난의 감수이기 때문이다(Edward Craig, Routel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835).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려면 무신론적인 세상의 손아귀 아래서 하나님이 겪고 있는 고난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하나님이 무신론적인 세상에서 모욕당하고 있다). 이 사상의 핵심은 동정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시는 하나님만이 인간을 도우실 수 있다는 진리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을 갖지 못한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더불어’의 신학은 더 이상 안셀름이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이나 기독교 유신론을 의지하지 않는다. 계몽주의 이후의 현대적 무신론들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프란시스 쉐퍼나 존 스토트가 개진하는 기독교 변증의 관념론적인 정향도 초극할 수 있는 실천 담론이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앞에서 한가한 인문주의적‧과학주의적 무신론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의 친연성을 내세우는 지상의 권력자들과 그들의 동맹 세력인 오만한 무신론도 패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론
본회퍼 신학의 중심 주제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며 그 안에 정초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들의 공동체다.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세상과 연대하도록 위탁된 공동체다. 본회퍼의 신학은 그 자체의 내성적(內省的)인 방향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설명할 때와 같이 군데군데에서 신비주의적 특징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실천의 고리를 상실하거나 놓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한복판에 현존하신다. 교회는 인간적 가능성이 부서지는 곳, 즉 한계상황에 서 있지 않고 마을 한가운데 있다”(Brief an Eberhard Bethge vom 30. April 1944 in Widerstand und Ergebung; [Gütersloher Verlagshaus, 1978], 135). 그래서 본회퍼는 종교적 방법으로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려는 재래식 변증을 버리고 인간과 세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받아들인다.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는 우리는 성실할 수 없다”(1944년 7월 16일). 본회퍼는 이런 자신의 진술이 단순한 무신론 옹호 진술로 오해당하지 않도록 ‘신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의 예를 들어준다. “신은 자기를 이 세상에서부터 십자가로 추방한다. 신은 이 세계에서는 무력하고 약하다. 신은 무력하고 약한 변경에 스스로를 추방함으로써 자신이 구원할 인류와 함께 있고 인류를 도와준다. 그리스도가 그의 전능성이 아니라, 그의 연약하심과 고난받음을 통해 인류를 도와주신다는 진리가 마태복음 8:17에 아주 분명히 나타난다.”
본회퍼가 성숙한 세계를 받아들인 것은 동시대의 무신론적 정황에 동조하거나 동화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인의 나이에 도달한 세계가 그 성숙에 걸맞게 그릇된 하나님 관념을 일소시키고 … 성서가 계시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그 관점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1944년 7월 16일). 이처럼 본회퍼는 이 세상에 ‘종교성 없는 기독교’의 도래를 착상하고 기획했으며 전통적인 유신론의 한계를 넘으려고 했다. 계몽주의적 무신론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기독교 신앙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정초하려고 했다. 그가 비판한 종교는 이원론을 먹고사는 사제 계급, 종교 권력, 사회의 상부구조와 일체를 이루는 구원 판매소 같은 권력 집단이었다. 그 권력 집단으로서 종교는 분명히 순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주의적 구원을 상품으로 팔아 천국에 안전한 처소를 마련하려는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협잡 세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은 현실 기구요 세력이었다. 그 종교는 항상 천국과 세상, 성과 속, 사제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몽롱하고 애매한 형이상학적 신학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다.
본회퍼가 내세운 비종교화된 하나님은 세상 한복판에서 활동하고 계시며 사건들 속에 계시다. 본회퍼는 성인이 된 인간, 강하고 무종교적인 존재가 된 현대인을 일단 인정하면서 무신론적인 세계마저도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 세상을 긍정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종교성 없이 세속적으로 하나님, 교회, 예배 혹은 기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기독교의 출현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신학 담론과 신앙 실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를 더 이상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는 못했다.
본회퍼의 사상은 1924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의 기독교 문명권이 대파국을 맞이할 때 형성된 신학이었고, 우리 한국 기독 청년들이 볼 때는 아주 유럽적인 문제 의식에 응답한 신학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계몽주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종교적 기독교만으로도 기독교가 부흥하고 있다는 외양을 주는 사회다. 따라서 본회퍼의 문제의식을 곧장 한국교회 맥락에 도입하면 과도하게 앞서간다는 인상을 풍길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본회퍼의 신학에서는 한국의 복음주의적 기독 청년들이 보기에는 아쉬운 대목들도 발견된다. 첫째, 본회퍼의 신학에는 바울 서신의 대속론적 기독론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거나 주변화되어 있다. 또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하고 아울러 기독교적인 실존을 연대와 고통 참여 등 고도의 윤리적 명제로 정의함으로써 그런 기준에 미치지 못한 채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존하는 절대적으로 연약한 많은 신자들의 자리를 없애는 것처럼 보인다. 공관복음서에는 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 들렸다가 나아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귀환형 신자들도 있지 않은가? 세상과의 연대를 이루지 못하고 그야말로 예수의 은혜에만 호소하고 의존하는 십자가상의 강도 같은 자들도 있다. 종교적 기독교가 가진 폐해를 지적하고 경계하되 종교의 폐기를 주창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본회퍼의 신학 담론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셋째, 교회와 세상의 관계성에 대한 규정이 더욱 엄밀하게 발전되지 못한 점, 즉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과업만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바르트나 불트만의 초기 신학, 위기 신학자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결단해야 할 상황에 대한 분석이 미흡해 보인다는 점이다. ‘성년이 된 세상’이라는 개념도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인 착상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회퍼의 신학 담론은 한 시대의 중심적인 신앙 주제들을 갖고 분투하는 기독 청년들에게 아주 신선하고 생산적인 자극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장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M.Div, Th.M). 대학 시절기독대학인회(ESF)에서 활동하였으며, 졸업 후 11년 동안(1983~94) 관악지구 대표간사로 목양했다. <복음과상황> 창간 편집위원이었고, 미국 프린스턴 신대원(PTS)에서 이사야의 정치신학을 연구해서 2001년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사야 성서주석>,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사도행전>, <청년설교> 등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에게 성서신학적 영감을 주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지금은 안식년을 맞아 독일 튀빙겐대학교에 방문교수 자격으로 머물면서 역사적 이사야의 재구성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
글 김회권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본지 발행인 haekwon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