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호 재산청량산수박작목 반장이 산에서 갓 캔 1등급 송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노지수박 농사를 짓는 재산청량산수박작목반장 황창호씨(55·경북 봉화군 재산면)의 시골집은 차들로 빼곡하다. 송이 맛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지난 2~3년간은 송이 수확철에 비가 오지 않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나마 구경조차도 하기 힘들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긴 올해도 노심초사였다. 비는 오지 않고 한여름 온도는 40℃에 육박해 송이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 그런데 8월 말로 접어들자 갑자기 사나흘 비가 내리고 온도까지 떨어져 송이가 자생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황 반장의 안내로 산을 오른다. 아들한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송이밭이 아닌가. 개울물 흐르는 평범한 시골길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산으로 접어든다. 발길 흔적이 있는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자 중간중간에 솎아베기한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널찍한 공간으로 볕이 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바람도 시원하다. 여느 산과 다른 게 뭐냐고 여기겠지만 솎아베기를 통해 얻어진 빛과 바람·습도는 모두 송이를 키우기 위해 불러들인 베테랑 유모들이다.
송이는 낙엽을 밀어 올리며 세상으로 나온다. 갓 캔 송이의 은은한 향은 코뿐 아니라 입으로도 맡는다.
한참 올라가자 저 앞에서 황 반장이 엎드려 무언가 살핀다. “여기도 있네.” 송이는 한번 자란 곳에서 자리를 조금씩 옮겨가며 세로나 가로로, 혹은 원을 그리며 해마다 다시 자란다. 그래서 주인이 밭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곳에서 발견했다면 그건 새로운 밭을 통째로 하나 얻었다는 뜻. “어디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없다. 바닥엔 솔잎과 낙엽뿐. 그가 살짝 솟아오른 곳의 솔잎을 살살 치우니 그제야 보인다.
소나무 아래 솔밭에서 송이가 탐스럽게 올라오고 있다.
송이는 솔잎 아래서 땅을 뚫고 나와 낙엽을 밀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봉곳 솟아오른 솔잎무덤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널찍이 펼쳐진 송이밭을 기대했던 만큼 진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황 반장은 “남의 밭에 와서 송이를 캐가는 것도 문제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올라오는 송이를 다 밟아 죽이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마음 한구석에 서리본능이 꿈틀거리시는 분들, 부디 조심하시길.
황 반장이 갓이 펴지기 직전의 통통한 놈을 골라 캐는 시범을 보인다. 먼저 머리 위의 낙엽을 치우고 뿌리가 살짝 보일 때까지 주위의 땅을 돌려가며 판다. 뿌리의 방향이 보이면 뿌리 정면으로 나무작대기를 밀어넣는다. 그러고선 지렛대 원리로 살짝 들어 올리고는 한손으로 살살 돌리듯 당기면 툭 빠진다. 산삼이라도 캔 듯 산을 오른 피로가 싹 가신다. 향을 맡는다. “그런데 향이 연한 거 같아요.” 방금 캔 송이라면 당연히 향이 진동해야 할 텐데 의아해서 물었다. “맡아보세요. 은은할 겁니다.” 황 반장의 설명은 이렇다. 어린 송이는 향이 거의 없고 단맛만 돈다. 대가 굵어지고 갓이 피기 직전의 1등품은 향이 은은하며 단맛이 깊어진다. 갓이 3분의 1 정도 핀 2등품부터는 향이 진해지면서 단맛이 줄어든다. 3등품으로 분류되는 ‘생장정지품’과 갓이 3분의 1 이상 펴진 ‘개산품’들이 오히려 향이 진하다는 것이다.
산에서 갓 딴 1등품 송이들. 향을 위해 송이는 씻지 않고 솔잎으로 털어 먹는다.
“예전부터 송이를 선물할 때는 싱싱한 솔가지를 꺾어 함께 넣었습니다.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씻지 말고 솔잎으로 털어 먹으라는 뜻이지요.” 황 반장이 1등품이라며 방금 캔 생송이를 찢어 건넨다. 육질은 입속에서 알갱이가 터지듯 타닥타닥 소리를 낼 정도로 단단하며 솔 향은 은근하게 입속에 번진다.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향이 떠나지 않는다.
출처 농민신문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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