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아
누가복음 19:41~48
찬송가 312장(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감정과 이성과 의지의 안정되고 견고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유다 백성들 가운데 사역하시면서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짧은 이 본문 말씀 속에서도 몇 가지의 그의 반응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영적인 무지와 완악함을 인하여 당할 장차의 재난을 영적으로 보시면서 매우 깊은 슬픔을 느끼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마지막 방문하시면서 성을 보시면서 울음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르시기를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과거 바벨론 군대의 침략으로 동족들이 죽어가며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게 될 것을 미리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마음으로 예언하였던 예레미야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끈질긴 눈물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여 결국 자기 동족이 그 예언대로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이 땅에 계실 때에 자주 많은 눈물로 엎드려 기도하시곤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영혼에 대한 불쌍함과 그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당하는 참화에 대하여, 아담 이래로 인간의 원죄로 인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각종 재난과 시련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 이들을 바라보시면서 함께 아파하며 함께 눈물 흘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지금도 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과 민간인들이 전쟁 중에 수없이 죽어가고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함께 우시는 분이시요 저 트뤼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으로 인하여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슬퍼하며 아파하며 울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갖가지 재난과 징계를 받을 이들을 바라보시면서 지금도 아파하시며 울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백스터라는 성도님의 환상을 보면 죄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을 보면서 지옥에 방문하신 예수님께서 그 고통받는 분들을 보시면서 슬픔 속에 우시는 분으로 그리고 있는데, 정말 예수님은 그러시고도 남으실 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토록 마음 문을 밖에서 계속 두드리면서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하시던 예수님을 끝내 거절하여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두고서, 예수님께서 어찌 그 지옥불에서 고통 겪는 그 사람을 보면서 슬픔에 사라잡혀 울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그들이 장차 받을 고통스런 모습을 미리 보시고 슬퍼우셨던 예수님이실진대 그렇게 지옥에 간 영혼들을 보면 한없이 우실 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완악함을 보면서 영적인 눈을 가지고 미리 보며 그들의 영적인 완악함과 완고함 때문에 지상에서 장차 당할 하나님의 징계와 고통과 슬픔과 그리고 믿지 아니함 때문에 장차 당할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슬프고 아파서 그들의 영혼을 놓고 기도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영적인 민감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불신앙 중에 방황하며 세상의 환난과 고통 중에 처해 있는 영혼들을 품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처럼 눈물로 기도하는 자가 되어서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그 온유하신 손으로 만지시고 치유해주시고 힘을 주시고 살려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눈물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성밖에서 우시는 예수님께서 성안에 들어가자 곧 성전을 찾으시고 거룩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시자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성전 바깥 뜰에서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 등 제물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동전들을 바꾸어주는 환전상들을 내어쫓으셨습니다. 이는 그 사람들이 성전 제사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핑계로 성전 제사장들과 야합하여 돈을 주고 성전의 바깥 뜰을 점유하여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전 바깥 뜰도 엄연하게 성전으로서 이방인들이 와서 예배드리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의 여인들의 뜰과 이스라엘 남자의 뜰에까지 들어와 경배할 수 있었지만, 이방인들은 성전 바깥 뜰까지만 들어오고 여인들의 뜰로 들어가는 경계에는 경고장이 써 있는데, 이방인이 들어올 때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강력한 문구가 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서는 성전 안의 바깥 뜰만이 예배 드릴 수 있는 유일하 공간인 것입니다. 이사야 56:7 말씀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고 하신 말씀에서 특별히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전에 와서 예배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현장이 지금 예수님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고서 거룩한 분노감에 사로잡혀 그처럼 거룩한 폭력의 행위로써 부정 부패와 뇌물과 성전 모독죄를 범한 장사꾼들과 대제사장 일행들을 향하여 분노를 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무섭게 분노를 표출하신 후에는 차분하게 그 성전에서 자기 앞에 나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으니 백성들이 와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차분하게 듣는 일이 매일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성전의 경비를 맡은 성전 수비대장 등은 예수님을 향하여 무서운 눈초리를 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며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은 차분하게 성전에 나와 날마다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거룩한 분노와 차분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들을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시면서 자기를 해치려고 움직이는 적들의 모든 행동을 다 아시면서도 담대하게 날마다 성전에 아침 일찍부터 나오셔서 가르치시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자기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늘 견고하고 담대함을 유지하는 주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안정되고 평안한 중에 불의를 책망하면서 또한 죄인들의 맞이할 재난을 보시면서 거룩한 슬픔 속에서 우시는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완전한 인간이신 우리 구주의 내면 인격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오늘 읽은 이 짧은 8절의 말씀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이 내면 인격의 모습을 우리도 기억하면서, 사는 날 동안에 거룩한 슬픔, 거룩한 분노, 이성적인 행동, 자기를 해치려는 자들 앞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는 내면에 담대함을 우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균형 있고 안정되고 우리 주변의 영혼들에 대한 거룩한 관심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거룩한 염려와 슬픔과 기도와 선하고 의로운 도로 가르치며 모든 위험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견고하게 사명의 자리를 충성스럽게 지키는 균형잡힌 내면 인격을 가진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