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앞 생선 건조대 빨랫줄엔 고향으로 돌아와 모든 것 내려놓고 일생을 반추하듯 대구가 꾸덕꾸덕
이맘때면 가덕도에는 별미로 가득 '회·맑은 탕·알젓' 등으로 유혹
단맛 도는 회 한 점, 입안이 황홀 詩作이 시인에겐 귀향의 항로이듯 대구의 회귀엔 '고향'의 뭉클함이…
가덕대구는 우리 중년의 시인들에게 '그리운 고향'의 매개이다.
입신과 양명의 큰 꿈을 위해 고향을 등진 중년들은,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흔들린다.
그 흔들리는 가슴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대상이 고향 찾은 가덕대구인 것이다.
잠시나마 고향이라는 '절절함'을, 대구를 통해 만나보려 하는 것이다.
동행은 손택수 시인과 전동균 시인.
얼마 전 잘 다니던 출판사 '실천문학' 대표 자리를 내던지고, 전국을 떠돌고 있는 자칭 '유랑시인' 손택수.
동의대학교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얼마 전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전동균.
이들과의 동행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동의대 문창과에 출강하고 있는 필자가 전 시인에게 가덕도행을 슬쩍 바람 잡았고,
이에 혹한 전 시인이 마침 부산에 내려온 손 시인을 불러 만남이 성사된 것.
이러구러, 끄덕끄덕~ 명지, 녹산을 넘어 가덕대교 초입에서 차는 천성으로 길을 낸다.
곧이어 천성항. 눈이 시릴 정도로 가덕 앞바다가 시푸르게 다가오고, 해초냄새의 바닷바람이
연신 시원하게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멀리 가덕대교가 거제도 쪽으로 바닷길을 잇고 있다.
방파제 앞 생선 건조 빨랫줄에는, 짭조름한 해풍에 대구 몇 마리 꾸덕꾸덕 마르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모든 미련 내려놓고, 편안한 차림새로 일생을 반추하고 있는 대구.
고향을 향해온 수구초심의 속내와 거친 노정의 편린들이,
쫀득쫀득~ 겨울 바닷바람에 제대로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삼라만상은 모두 제가 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 푸근하고 편안한 '자궁의 장소'로 향하는 데 그 무슨 이유가 필요할 것인가?
담양출신인 손 시인은 어릴 적 부산으로 이주해와 유소년,
청년기 30여년을 부산에서 살았다.
그는 늘 사석에서 "부산이 나를 키웠다"라고 말한다.
용호동과 문현동, 범일동의 뒷골목이 그의 문학적 자산 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학의 고향'인 것이다.
실천문학사 대표로 있을 때, '고향의 문인들' 출판을 제대로 못 챙겨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을 시인으로 키워준 부산의 빚 갚음을 위해, 부산 관련 책을 계획하고 있단다.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 근처 횟집을 찾았다.
대구 코스요리를 시킨다.
이맘때쯤이면 가덕도에는 활어 상태의 '대구회'와 '대구 맑은 탕''대구알젓'등을 맛볼 수가 있다.
음식을 기다리며 소주 한 잔에 돌돔조림을 맛본다.
돌돔조림에서 짭짤하니 바다냄새가 물씬 난다.
소주 한 잔에 자연스레 문학 이야기가 나온다.
손 시인이 습작시절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젊었을 때, 선배에게 삶의 비루함과 절절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있어요.
그때 그 선배 왈 '임마, 그래서 너 시 쓰잖아~!'하더라구요.
그런데 얼마 전 내 후배가 똑 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내 선배처럼 똑 같은 대답을 해줬죠. '임마, 그래서 너 시 쓰잖아~!'라구요."
시인에게 시 쓰기는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 출발한 곳, 다시 돌아가야 할 고향과 같은 존재다.
삶이 신산하고 곤고할수록 시의 갈증이 커지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에서 일게다.
시인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긴 항로가 시 쓰기 작업이다.
대구가 가덕수로를 통해 진해만으로 돌아오는 회유과정과 다름 아닌 것이다.
'그곳으로 가시지요 열매를 매단 채 / 새 이파리 피운 / 신성한 나무에게로 / … / 쉿! 아무 말 하지 마세요 / 모르는 척 기다려야 해요 / 그이들도 가슴에 통곡을 넣고 왔을 테니까 / 살얼음을 밟듯 지옥의 / 별자리를 건너 왔을 테니까' (전동균의 시 '먼 나무에게로' 중에서)
'먼 나무에게로' 가는 길 또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향하는 곳일 것이다.
일생을 살며 '가슴의 통곡'과 '살얼음을 밟'는 세월과 '지옥의 별자리'를 건너오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그리하여 일생이 끝나는 날, 우리는 모두의 고향 '신성한 나무에게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저는 경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쩌다가 고기라도 먹을 땐 먼저 옆집 사정을 헤아려야 했고, 거지들이 찾아오면 밥상을 차려 주던 인정 어린 마을이었지요. 하지만 천마총에서 천마도가 발굴되고 대릉원이 조성되면서, 정부의 철거 명령으로 마을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그래서 전 시인은 그의 고향인 경주에의 갈증이 큰 편이다.
실향은 참으로 사람 평생을 헛헛하게 하는 일이다.
그 헛헛함의 결핍이 그의 탄탄한 문학적 힘으로 발현된다.
고향은 사람에게 있어 그런 '원천의 존재'인 것이다.
가덕대구 앞에 선 필자와 전동균, 손택수 시인(왼쪽부터). 최원준 시인 제공
대구회가 먼저 나온다.
회 한 점 입에 넣는다.
갓 잡아서인지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다.
맛은 순하면서 단맛이 돈다.
그리하여 대구회의 맛은 역설이다.
오랜 기간 동안 고향으로의 회귀를 위해 얼마나 강행군을 했을까?
긴 항로의 짜디 짠 바닷물에 들숨날숨 하며 버텨온 항해에서 오히려 담담한 맛을 낸다.
고향으로 향해가는 '희망의 길'이, 그들의 성정조차도 명징하게 바꿔놓은 것이다.
머나먼 길을 돌아 고향으로 회유한 대구들은 고향의 바다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생명, '후생(後生)'이 되어 줄 알을 200만개 정도 물살에 슬어놓는다.
고향을 그리며, 고향으로 회귀하던 생선 '대구'를 먹은 우리들은, 고향을 위해 몇 편의 그윽한 시편을
슬어놓을 수 있을까?
불콰한 얼굴로 천성 앞바다에 선다.
거제도 수평선 쪽으로 노을이 불타오른다.
거가대교 현수탑 위 하늘이 온통 이글거린다.
한참을 불타오르던 바다는 삽시간에 어둠에 묻혀버리고, 깜빡깜빡 작은 어선의 집어등이
가덕 밤바다를 가득 수놓고 있다.
'줄이 퉁 퉁 / 파도소리를 낸다 / 시퍼런 저 한줄 / 양쪽에서 짱짱하게 당겨진 / 밤이면 집어등이 꼬마전구들처럼 켜져 / 찌릿찌릿 / 전기가 흐르는 / 저 한 줄, 바다 한가운데 드니 / 구부러져 둥근 / 원이 되었다 / 아득하게 트인 감옥이 되었다' (손택수의 시 '수평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