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금) 복음 묵상 (마태 10,16-23) (이근상 신부)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16-20)
처세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이리 떼 가운데 양들은 그 어떤 처세로도 죽음을 모면할 수 없다. 갈기 갈기 찢겨져 먹이가되고야 만다. 의회와 회당에서 권력자들의 입맛에 말로 굴복하지 않는 이들의 말로는 다를게 없다. 갈기 갈기 찢겨져 먹이가 되고야 만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된다는 것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처세의 길이라면 웃기는 일이다. 먹잇감이 슬기롭고 순박하다고 놓아줄 맹수가 어디있으랴. 그리고 의회와 회당에서 채찍질할 때 아버지의 영이 말씀하신다고 채찍질이 없어지거나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수 많은 성인들, 순교자들이 그 증거다.
어떤 경우든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먹잇감들, 박해받는 자들은 그다지 할 말이 없고, 대응할 수단도 없으며 바보같을 수 밖에. 아버지의 영이, 슬기롭고, 순박한 마음을 일으키실 때 그 마음의 소리가 닿아야 할 귀는 광포한 그들이 아니라 우리이리라 확신한다.
슬기롭다로 번역한 프로니모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재능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영리하게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순박하다, 아케라이오스는 이러저러한 잔머리 없이 우직한 사람을 뜻한다고 하는데 ... 이 둘을 가진 이라면 예를 들어 묵묵하게 해야 할 바를 성실하게 해 나가는 소박한 일꾼들이 딱이겠다. 그 단순하고 성실한 삶. 어쩌면 그 삶은 때에 따라 갈갈이 찟겨져 나가버릴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순탄한 삶을 살기도 할 터인데... 복음에 따르면 그 결과란 두려워해야 할 바가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죽여도 두려워해야 할 바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 안에 살아계신 아버지의 영일터이니...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7FdzERt2RtdhjS9e9ajkfFjTgJZyGZE35yduoyVXx6WSxtNZCvcMp1XPEnu9cE2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