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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로 2년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개시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끌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작전 개시 한달여만(2022년 3월 말)에 전쟁을 끝낼 평화협정 초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전격적인 키예프(키이우) 방문을 계기로, 서방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본격화하면서 전쟁의 끝은 기약할 수 없게 됐다(다비드 아라하미야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인민의 종' 대표).
게다가 우크라이나군이 접경 러시아 쿠르스크주(州)를 기습공격하는 바람에 전쟁 종식 희망은 더욱 멀어졌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협상의 'ㅎ'자도 꺼내지 못하게 할 태세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공격을 계기로 평화가 아닌 보복에 집중할 것으로 19일 전망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2년 6개월이나 끌면서 몇 번의 변곡점을 지나온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러시아 쿠르스크를 공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포/사진출처:텔레그램 @V_Zelenskiy
미국 등 서방 언론의 필터로 바라본 지난날의 한때(2022년 가을~2023년 여름)는,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 가능성에 도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필터를 벗어던진 지금, 눈앞의 현실은 많이 달라져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둑판 위의 대국(大局)으로 옮긴다면 어떤 판세일까?
러시아가 백돌을, 하수(下手)인 우크라이나가 흑돌을 쥔다는 데 별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초반에 궤멸(潰滅)직전(키예프 함락)으로 몰렸던 흑은 주변의 훈수(서방의 군사 지원)에 힘입어 다시 살아났고, 이후 접전 양상을 보였다. 아무리 실력에 차이가 난다고 해도, 흑이 백돌을 잡아낼 수 있는 게 또 바둑이다. 한동안(2022년 가을~2023년 여름) 흑이 백돌을 따내는 장면은 서방 외신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판세는 백이 러시아 본토와 흑해에 접한 양 귀를 중심으로 크게 '집'(우크라이나 동부 4개 주)을 짓고, 중앙(돈바스 지역)으로 흑의 대마를 잡기 위해 나아가는 형국이다. 그간 일부 전선에서 보였던 백의 패착을 주로 다뤄온 서방 외신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국면(局面)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는 병법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우크라이나가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백의 집을 다 부수겠다며 백의 큰 집에 '착점'(着點)한 것(쿠르스크주 공격). 이 '한 수'로 백이 중앙의 대마 공격을 멈추고, 집 속으로 들어온 흑돌을 잡기 위해 수비 중심의 행마(行馬)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방어가 느슨해진 흑의 대마를 잡기 위해 백이 협공에 나서는 모양새다.
백의 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속에서 흑이 집을 짓고(교두보 구축)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백은 거의 다 잡은 흑의 대마를 단수(單手)로 몰아넣은 뒤, 집 안에 든 흑돌 사냥에 나설 것으로 보는 게 정석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공격이 자칫 '자충수'가 될 위험도 높아 보인다.
사진출처:위키백과
주변(서방)에서도 흑이 돌을 던질(평화협상) 때가 됐다고 훈수를 두지만, 우크라이나는 이기고 지는 것은 끝까지 '계가'(計家, 바둑을 다 둔 뒤에 이기고 진 것을 가리기 위해 집 수를 헤아리는 것/편집자)를 해봐야 한다고 우긴다. 그러면서 백의 집 안으로 과감하게 들어간 행마를 '신의 한 수'로 내세우는 듯하다.
◇ 우크라의 승부수? 쿠르스크 공격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주에서 92개 정착지(마을), 1,250㎢를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영토 깊숙이 더 진격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군은 국경 지대 좌우로 전선을 넓게 펼치면서 점령지를 넓혀갈 뿐, '쿠르스크 원전'의 장악과 같은 결정적인 '한 수'는 이미 포기한 느낌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기습 공격이 초기 5일간은 매우 효과적이었으나, 그 흐름이 둔화됐다"며 "우크라이나군은 이미 다른 차원의 러시아측 저항에 부딪쳤다"고 평가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전히 러시아 영토 깊숙이 진격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은 늘어나는 병력 손실을 감안해 보다 안정적인 방어선 구축을 위해 국경지대를 따라 측면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국경지역을 흐르는 세임강의 다리 3개를 파괴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러시아 쿠르스크주와 접한 수미를 방문해 시르스크 총참모장으로부터 전황 보고를 받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사이트
우크라이나가 정예 병력을 쿠르스크 공격에 투입하는 사이,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 방어 공백을 드러낸 우크라아나군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도네츠크주(州) 포크로프스키와 차소프 야르 방향으로 공격을 집중해 우크라이나의 예비 병력을 바닥낼 태세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안타깝게도 전쟁 2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우크라이나군은 스스로 군사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참모 본부는 지난 20일 "러시아군의 포탄 사용량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군보다 3배나 더 많았다"며 "1년 전(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에도 포탄 소비량은 1대1.5로 열세였다"고 인정했다. 참모 본부는 또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영토에 9,627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이중 2,429발을 격추했고, 드론은 1만3,997대 중 9,272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미사일 격추율은 25%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미사일, 포탄과 드론의 수적 열세는 전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또 미국 등 나토(NATO)가 대(對)우크라 군사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게는 여전히 탄약이 부족하다는 엄연한 현실은 향후 전망에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구소련 붕괴이후 미국과 유럽의 방산업체가 무기 생산을 계속 줄여왔고, 이를 단기간에 회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탄약 생산이 대표적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7월) 21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 부족은 미국 등 나토의 계산 착오때문이었다"며 "2010년대 중반(대략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이전)까지 포탄 생산량을 너무 줄이는 바람에, 재고 자체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 통신은 "미국은 현재 월 약 3만6,000개의 155㎜ 포탄을 생산하지만, 이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며 "우크라이나는 2023년 서방으로부터 약 200만 발의 포탄을 지원받아 하루 최대 1만발의 포탄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2024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또 유럽의 포탄 생산량은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2025년 말까지 월 10만발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미국의 155mm 포탄/사진출처:스트라나.ua
물론, 무기 사정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미스트는 모스크바가 보유중인 엄청난 양의 소련제 무기도 2025년 말이면 고갈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시경제' 체제로 전환한 러시아는 주요 방산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늘리면서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탄약 등 무기의 양산 체제가 비교적 잘 구축됐다는 평가다.
◇장기 소모전의 핵심 요소 - 경제 펀더멘탈
탄약과 무기, 군사장비가 전쟁의 승패를 완전히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사용할 병력도 있어야 하고, 경제력도 뒷받침되고, 정치및 사회 안정도 승리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을 수록 더욱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적 펀더멘탈이다. 러시아에게는 흑(우크라이나)의 대마(돈바스 지역)를 확실히 잡을 때까지 활황세의 '전시 경제'가 버텨줄 것이냐가 최대 고민이다. 서방의 가혹한 제재와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의 큰 폭 확대, 산업 전분야에서 발견되는 일손 부족, IT관련 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 대외 교역에 필요한 달러및 유로화의 해외 이체 문제 등은 날이 갈수록 러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러시아의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서방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러시아의 올해 GDP 성장률을 3%이상으로 전망하면서, 실업률은 사상 최저치에 가깝고 루블화 가치는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또 국민 소득이 매년 14%씩 증가해 러시아인의 구매력도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반면, 서울경제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 산하의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는 러시아의 올 3분기 GDP 성장률은 2.3%로, 전년 동기 대비 반 토막 날 것으로 예상했다. 또 4분기에 1.7%, 내년 1분기에는 1.0%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전망이다.
두 기관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러시아의 문제는 고(高)인플레이션이다. 지난 6월 러시아 물가는 전년 대비 8.6% 올라 러시아 중앙은행의 목표인 4%를 훨씬 웃돌았다.
막대한 재정지출도 간과할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속도로 보면, 러시아의 재정 준비금은 약 5년 안에 고갈되고, 그후 정부는 높은 차입 비용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러면 전쟁에서 빨리 이기는 수 밖에 없다.
러시아 중앙은행/사진출처:OK 이즈베스티야 계정
우크라이나의 고민은 훨씬 더 크다.
세리이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재무장관은 지난 11일 서방 측에 500억 달러(약 68조2500억원) 규모의 차관 지출을 앞당겨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회견에서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까지 미국의 군사 지원이 중단되면서, 국방 부문 지출이 늘어 계획에 없던 재정적자가 120억 달러나 발생했다"며 “미국이 올들어 270억 달러 규모의 대우크라 지원을 승인했지만, 집행이 느려 병사들에게 월급을 줄 돈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올들어 새로 돌출된 돌발 재정적자(120억 달러)는 우크라이나의 올해 GDP 전망치인 435억 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우크라이나가 요청하는 500억 달러 차관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동결한 러시아 자산(3천억 유로 이상)에서 나온 이자 수익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이 문제를 G7과 협의 중이라고 했지만, 실제 집행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미 선택적 디폴트에 빠진 우크라
우크라이나는 재원 부족으로 '선택적 불이행(디폴트)'에 빠져 국가신용 등급도 강등된 상태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2일 우크라이나 국가 신용 등급을 ‘선택적 디폴트’인 ‘SD’로 강등했다. S&P는 그 이유로 '유로본드의 이자 지급에 실패한 사실'을 들었다. S&P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달 중순 국가부채 상환을 임시로 중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며 “우크라이나가 (이자 납입일인 8월 1일을 기준으로) 거래일 10일 안에 이자를 지급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또다른 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 신용 등급을 ‘CC’에서 ‘C’로 강등했다. 피치의 신용등급 체계에서 C등급은 채무불이행이 이미 발생했거나 불가피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국제 채권단과 200억 달러 규모의 채무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 부도 상태를 가까스로 벗어난 바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2년 체결된 채무상환 유예기간의 만료를 1주 남짓 앞두고 채권단과 합의에 도달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채권단은 미지불 채권 액면가의 37%인 87억 달러를 (명목) 할인하고, 금리를 인하한 뒤 상환 기한을 또 연기해줬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내년 2월부터 이자 지급을 재개하고, 2029년부터 원금을 갚아나가면 된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향후 3년간 114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집계됐다.
◇ 기름값, 빵값도 오르고
'국가 부도'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우크라이나 곳곳에 널려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먼저 재원 확보를 위해 소비세와 방위세 등 각종 세금 인상을 적극 검토중이다. 또 주요 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군동원을 면제해 주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재정적 기여를 요구하기로 했다. 현지 언론은 이를 '남성들에 대한 경제적 동원 유예 아이디어'(идея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бронирования мужчин)라고 부른다. 물론,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스트라나.ua는 23일 "우크라이나에서는 내달(9월 1일)부터 자동차 연료에 대한 소비세가 인상된다"며 기름값이 대폭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세 인상은 지난달 최고라다(의회)에서 통과됐다. 야당 측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수정안을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모두 기각돼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명만 앞두고 있다.
새 법안은 휘발유와 디젤(경유), 가스 등 모든 종류의 연료에 대한 소비세를 크게 인상하는 안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9월부터 연료 가격이 리터당 2~2.5흐리브냐(약 74원~92원), 자동차 휘발유 가격은 5~6흐리브냐(약 185원~222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현지의 많은 주유소는 이미 기름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크라이나 서민들에게 더욱 우울한 소식은 빵값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제빵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키예프 흘레브'(Киев хлеб, 키예프 빵)의 유리야 두첸코 사장은 지난 8일 "지난 봄부터 밀가루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며 "㎏당 10흐리브냐이던 밀가루 값이 이미 15흐리브냐로 50% 올랐다"고 주장했다. 밀가루 외에도 설탕, 해바라기유, 포장재 등도 연초 이후 20%이상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빵 공장들은 지난달 대규모 정전으로 빵 생산에 발전기를 돌려야 했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의 통제를 받는 빵 가격은 지난 6월 1.1% 오르는 데 그쳤다. 6월과 7월, 주요 빵 생산업체의 대부분은 손해를 보거나 수입이 제로(0)였다. 두첸코 사장은 "비용 상승을 고려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빵 가격이 15~20% 올리거나, 문을 닫는 공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빵 공장이 문을 닫는다면, 우크라이나에는 '빵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민생 폭동을 거의 "빵을 달라"는 구호에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빵/사진출처:zira.uz
굳이 난방이 필요없는 여름철이 지나고 나면, 우크라이나에는 본격적으로 에너지 문제가 부각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8월 18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겨울에 필요한 전력 생산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9기가와트의 발전 능력을 이미 잃은 상태다. 올 여름 유난히 더운 날씨에 에어컨 가동으로 정전이 되곤했던 우크라이나에서 겨울철 난방용 전력이 제대로 제공될지 의문이다.
◇러-우크라 최대 고민은 노동력 부족?
긴 전쟁으로 러-우크라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노동력 부족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BI는 러시아가 8월 현재 남성들의 군 징집(부분 동원령에 이은 계약군인 대량 모집)과 해외 탈출로 극심한 노동력 부족을 넘어 인구학적 위기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사상 최대인 500만 명의 노동력 부족 상태에 처해 있다. 알렉산드르 콜얀드르 유럽정책분석센터 러시아 전문가는 “노동력 부족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이에 따른 고금리는 생산과 투자를 억제해 경제를 더욱 왜곡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러시아가 이를 타개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 그동안 구소련권의 중앙아시아 이민자들을 끌어들여 노동력 부족을 부분적으로 해소해 왔지만, 그마저도 지난 3월 모스크바 외곽 '크로쿠스 씨티홀' 공연장 테러사건'으로 어려워졌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에 대한 급여및 보상금이 대폭 오르면서 '저임금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에 따르면 러시아는 '크르쿠스 씨티홀' 테러 사건 이후 이주 노동자들에게 대한 문턱을 높이고 있다. 테러에 직접 가담한 4명이 모두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국적자로 밝혀지면서다.
실제로 러시아의 12개 이상 주(州)에서는 공공안전 문제를 이유로 외국인의 택시 운전을 금지하는 등 이주 노동자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타지키스탄 노동이민고용부도 지난해 62만7천명 이상의 국민이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로 떠났지만, 공연장 테러 이후 귀국하는 이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대책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취업 기준 강화다. 러시아 연방 교육과학감독국은 이주 노동자에게 러시아어 말하기 평가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러시아에서 시민권, 영주권(거주 허가), 취업 허가 등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은 러시아의 언어, 역사, 법률 등에 관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의 종류와 수준은 취득하려는 자격에 따라 다른데, 그동안 취업 허가가 필요한 외국인은 러시아어 구술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러시아 당국은 또 인력난 해결을 위해 '야근 체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 노동법상 야근은 이틀에 4시간까지만 가능하지만, 연속 야근 일수를 늘릴 수 있도록 제도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 산업·기업가연맹(우리의 전경련 격)이 초과 근무 일수를 늘리고 고용·해고 장벽을 낮추는 등 40여 가지 인력 부족 극복 방안을 경제개발부맟 노동부 등에 제시했으며, 정부는 이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극심한 노동력 부족은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총동원령으로 인한 건설 분야 인력 부족률이 40%에 달해 해외에서 온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포브스가 지난 6월 보도했다. 주로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필리핀,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우크라이나기업가연합(우리의 전경련 격)에 따르면 건설 부문에 종사해온 근로자 수는 지난 2년간 25.4%(30만명)나 감소했다.
또 우크라이나 기업의 74%가 인력난을 경험하고 있으며, 지난해 가을에는 인력 부족률이 무려 55%에 달했다고 한다.
미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6월부터 "우크라이나의 노동력은 전쟁 전에 비해 27% 감소했다"며 인력 부족이 산업 전반에 몰고올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 통신은 "주요 기업들은 이제 경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 수급을 들고 있다"며 "관리자들은 일할 사람을 찾아내는데 점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의 인력 부족을 지적한 미 블룸버그 통신의 6월 1일자/캡처
우크라이나 인력 부족의 원인으로는 전쟁터로 동원되거나 동원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고, 생산 현장을 떠나 잠적하는 남성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현상이 가장 먼저 꼽힌다. 그중에서도 해외로 떠난 인력은 거의 6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내에 머물더라도 동원을 피하기 위해 많은 남성들이 지하로 숨어들고 있다.
그 결과, 서민들의 발이 되는 대중교통수단의 운영조차 곤란해질 지경이다.
키예프 지하철은 일손 부족으로 열차 운행의 간격을 늘일 예정이다. 전체 직원의 7%가 전쟁터로 동원된 탓이다. 키예프 지하철이 러시아군의 공습 중 시민들의 대피소로 활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4시간 지하철역 개방이 자칫 안전관리 소홀로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남부 니콜라예프에서는 운전 기사 부족으로 시내 버스의 2개 노선 운영을 중단하고, 드니프르도 동원으로 대중교통 운행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손도 구하고, 재정 확충에도 도움되는 방안은?
그렇다보니 우크라이나에서는 일정 금액을 국가에 납부(재정 수입 확대)하는 것을 전제로, 기간 산업 근무 근로자들의 동원을 유예하는 정책의 도입을 고민 중이다. 소위 '경제적 동원 유예 조치'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집권여당 '국민의 종' 드미트로 나탈루하 의원은 지난 6월 12일 '산업정책·실물경제 예측 가능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전쟁도 중요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민간 기간 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이 법안은 사업체가 직원당 월 2만 흐리브냐(약 74만원)의 세금(혹은 기부금)을 내면, 필수 인력의 동원을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민족주의 성향의 현지 매체 RBC-우크라이나는 '경제적 동원 유예 조치'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던 지난 5월 말 “우크라이나군 수뇌부가 산업 분야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동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확산시킬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 조치에 대한 군부의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비슷한 법안이 지난 6월 말까지 3개나 제출됐는데, 의회는 아직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인력 빼가기?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러-우크라간에 신경전도 볼만하다.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지난 4월 러시아가 동원을 피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전후해 우크라이나를 떠난 동원 대상(18~60세) 남성들 중 일부는, 동원 강화법의 채택(2024년 4월)으로 여권 갱신을 못해 자칫하면 무국자로 전락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당국이 작업을 시작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러시아 이주도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러시아 당국이 이들을 포섭하거나 작업하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인력난이 심각한 러시아는 '크로쿠스 씨티홀' 테러 사건이후 중앙아시아 이주민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에서 '형제국'이나 다름없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유입을 반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과 연계된 민간인들(스파이 또는 사보타주 요원)들의 수시 입국이다.
러시아 출입국 당국은 입국을 원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잠재적인 스파이쯤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한 곳에서,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거쳐 우크라이나인들의 입국을 허가하는 이유다.
러시아가 이같은 까다로운 입국 정책을 완화할 경우, 스파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떠돌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입국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여권 + 취업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입국 희망자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궁지에 몰려 러시아로 이주하는 우크라이나인이 해외 체류 인사 중 20%만 되더라도, 그 규모는 100만명에 달한다. 그 결과는 우크라이나에게 경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노동력 부족과 같은 선상에 올라 있는 동원 기피 현상은 우크라아나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재정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러시아의 병력 동원과는 결과치부터 다르다.
◇ 동원 기피, 탈영 등 병력 유지도 만만찮다.
이반 가브릴류크 국방차관은 지난 19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주둔 병력은 연말까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크라이나의 동원은 아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올해 초 44만 명에서 이제 60만 명 정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돼 있으며, 연말에는 8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연말까지) 거의 100만 명을 동원하더라도 그들을 전투력으로 활용하려면 (기본및 전투 훈련 등에) 3~6개월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사이에 주요 방어선이 무너지면 손을 쓸 여지가 없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는 동원 강화법안이 채택된 후, 징집되는 동원 병력이 월 3만 명선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도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계약병 형식으로 충원하고 있다.
그러나 부대를 무단 이탈하는 탈영병도 적지 않다고 한다. 러시아의 탈영병 규모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탈영병 문제는 이미 주요 언론의 화두가 됐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사진출처:우크라 지상군 페북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독일의 공영 TV 채널 '도이치벨레'는 지난 4일 "우크라이나군에서는 매일 14명의 병사들이 탈영하고 있다"며 "올들어 지난 6개월간 탈영 및 무단 이탈로 인한 형사 사건은 거의 2만9,800건이나 됐다"고 탈영 사건의 심각성을 전했다.
뒤이어 우크라이나의 유명 정치 분석가 올레스 도니는 23일 유튜브 채널 'Утро.LIVE[(모닝.LIVE라는 뜻)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탈영 및 부대 무단 이탈 사건이 올들어 급격히 증가했다"며 "올해 7개월 동안 3만7,000건으로, 2023년(2만1,000건)은 물론, 2022년(9,000건)에 비하면 이미 4배나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기록으로 남지 않은 건수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두 배나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탈영한 병사들이 부대 복귀 의사를 표명할 경우, 형사 처벌을 면하는 법안을 지난 20일 채택하기도 했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알렉산드르 페디엔코 의원은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허가 없이 주둔지를 떠났지만 다시 돌아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부대 탈영 못지 않게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에 대한 민심 이반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당국의 강제 동원에 대한 반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포착됐고, 이제는 동원에 동원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용 차량에 대한 발화 사건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스트라나.ua는 23일 우크라이나 전역(키예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오데사, 키예프 외곽의 부차)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군용 차량 5대와 컨테이너(один релейный шкаф) 1대가 불탔다고 보도했다. 강제 동원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소행으로 짐작된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과 경찰은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에 포섭된 청소년들의 짓이라고 주장하고, 또 여러 명을 체포하기도 했지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는 게 여전히 불안하다. 동원을 담당하는 '군사위원회'(우리 식으로는 병무청) 소속이라는 표식이 있는 차량이 먼저 불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동원 불만 세력의 '방화 따라하기'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16일 키예프에서는 두 청년이 '군사위원회가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다', '전쟁은 독재의 구실이 안된다'는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왔다가 연행되기도 했다.
◇요동치는 우크라이나 민심
스트라나.ua는 지난달 11일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를 지닌 우크라이나 인플루언스들이 키예프 아동병원 피격 후 "어떤 수단으로든 이제는 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며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후 보복을 다짐하고 '승리할 때까지 싸우자'는 그간의 반응과는 달랐다"고 보도했다. 전쟁을 계속하면 더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죽어나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호소로 들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인플루언스의 전쟁 중단 호소 메시지/캡처
구독자 수가 160만 명에 달하는 블로거(인플루언스) 이바노-프란코프스카 율리야 베르바(Ивано-Франковска Юлия Верба)는 "세계는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권력은 나라를 강탈하고 있다"며 "가족과 사람들의 삶이, 계획과 희망이 무너지고 있다"고 썼다. 또 22만여명의 구독자를 지닌 밀라 바라예바(Мила Бараева)는 "아이들이 죽지 않는다면, 이 전쟁에 어떻게 멈출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이제 그만하자. 정치적 게임으로 아이들이 더 이상 죽어나가는 것을 못보겠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우리는 극복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언제요? 우리나라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라는 인플루언스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들은 그러나 “크렘린에 동조한다”는 비난을 받고 보안국(SBU)의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바뀐 민심은 여론조사에서도 반영됐다.
스트라나.ua(7월 23일)에 따르면 키예프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지난 5∼6월 우크라이나 국민 3천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2%가 '가능한 빨리 평화를 달성하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영토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전쟁이 더 오래 계속되더라도 영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은 여전히 55%로 절반을 넘었지만, 그 비율은 1년전(2023년 5월, 84%)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토를 일부 포기할 수 있다'는 답변은 개전 이후 늘 10% 이하였으나, 지난해 5월 10%, 12월 19%, 올해 2월 26%로 급증했다. 그러더니 32%까지 올라간 것이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이제는 전쟁을 끝내자'는 쪽으로 흐르고 모양새다.
노벨상 수상자 51명은 지난달 13일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자"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명자 중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외에도 물리학상 (2022년 수상자 로저 펜로스, 블랙홀의 비밀 연구), 의학상(1993년 수상자 리처드 로버츠, 분할 유전자 발견), 문학상(2015년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반대해온 러시아 반체제 인사 일리야 야신 등도 이제는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최근 서방과의 수감자 교환으로 석방된 야신은 러-우크라 간의 평화협상 시작과 최전선에서의 적대 행위 중단(휴전)을 지난 4일 촉구하고 나섰다. 전쟁을 계속하는 것보다 협상이 낫다는 주장이다. 석방뒤 독일로 간 야신은 갑작스럽게 옥사한 알렉세이 나발니의 뒤를 이을 반체제 인사의 한명으로 꼽힌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우크라이나로부터는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인도주의적 조치인 포로교환은 언제부터?
전쟁 중 첫 손 꼽히는 인도주의적 조치인 포로 교환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의 고민은 크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은 지난달 25일 러시아에 협력한 (반역)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에 잡혀 있는 우크라이나군 포로들과 교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반역자 인물 정보를 담은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반역자에 대한) 신고도 체계적으로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GUR은 (반역자) 사이트 개설의 목적을 러시아에 협력한 반역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포로 교환에 내세울 러시아군 포로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세계 주요 통신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러-우크라 양국이 억류하고 있는 포로들의 수를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러시아에 붙잡혀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이 5대1 정도로 많았다.
주목할 것은 우크라이나의 대응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일 쿠르스크주를 기습 공격하면서 러시아 국경수비대 요원들과 징집병들을 대거 포로로 잡았다며 영상을 공개했다. 그 수(한 서방 외신은 2천명으로 추정)가 러시아와 대규모 포로 교환에 나설 정도로 충분한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기껏해야 수뱍명 수준이 아닐까 싶다.
러-우크라 간의 포로교환 장면/캡처
오는 11월의 미국 대선 결과가 큰 변수가 될 터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러시아가 또다시 우크라이나의 주요 에너지 기반 시설을 공습하면, 우크라이나는 이번 겨울에도 추위에 떨어야 한다.
러시아도 대외 교역 결제의 길이 자꾸 막히고 있다. 중국은행들이 러시아와의 위안화 거래를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키르기스 등 중앙아시아권 국가들도 그간의 결제 루트를 차단하고 있다. 현금 거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2일 서방이 2022년 3월 달러와 유로화 지폐의 러시아 거래를 금지한 이후, 지난해 말까지 약 23억 달러(3조1천500억원) 규모의 현금이 러시아로 들어갔다고 집계했다. 현금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와 거래를 제한하지 않은 아랍에미리트(UAE)와 튀르키예 등에서 들어갔으며, 절반 이상은 어느 국가가 출처인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러-우크라 어느 쪽도 전황을 일거에 바꿀 만한 전투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서방의 무기 공급 속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기대에 못미칠 것이다. 전쟁의 판을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미국제 F-16 전투기도 연말까지 최대 수십 대에 그칠 전망이다.
러시아도 총동원령을 발령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EU와 나토 가입을 보장받고, 자포로제(자포로자) 원전 통제권을 되찾고, 서방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전쟁 배상금으로 받기를 원하는 우크라이나의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 푸틴 대통령은 거꾸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동남부 4개주 러시아 이양,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포함한 서방의 대러 제재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 타협의 실마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2년 6개월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은 아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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