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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1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지인 선교사 한 명이 비자 문제로 정부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
억지로 비자를 얻으려 하지 않고 나오는 결과에 순응하려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주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는 그 일을 알고 그 곳에 먼저 정착해서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 한 명을 소개해 주려 했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했던 내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자인지가 여실히 드러나 부끄럽고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주께서 행하시며 주관하시는 일임을 말로는 인정하는데 우리의 삶속에서 인정하지 않는 나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세상에 수많은 염려와 질고로 힘들어 하는 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의 날 예배 하는 곳곳에서 주를 찬양하는 소리가 높아지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오직 예수의 부요함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4:1-16
제목 : 아마샤가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 세우고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2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25세라. 예루살렘에서 29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9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400규빗을 헐고
14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15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나의 묵상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 2년에 남유다의 아마샤가 왕이 되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9년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었다.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처럼 온전하지는 못하였다.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산당들은 없애지 않아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였다.
왕권이 자신의 손에서 확고하게 장악되자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쳐 죽였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자식들은 죽이지 않았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신 24: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또한 아마샤는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무찌르고 전쟁을 하여 오늘날까지 욕드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위(셀라)를 점령하였다.
아마샤가 에돔을 무찌르고 난후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람을 보내 그와 대면하고자 하였다.
그가 대면하고자 하는 것은 여호사밧이 추진했던 친화정책을 재개할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11절, 이스라엘과 전쟁을 개시하여 아마샤가 벳세메스에서 그와 ‘대면’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아마샤에게 회신하되 하나의 우화를 들려준다.
곧 레바논에 있는 가시나무가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에게 ‘당신의 딸을 내 아들에게 아내로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바논 시골의 들짐승이 지나가다 그 가시나무를 짓밟아버렸다고 한다.
이 말은 에돔에서 승리한 아마샤가 우쭐하여 자고하는데, 그는 마치 백향목에게 맞서다 짐승에게 짓밟히는 가시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전쟁을 하면, 아마샤는 물론 예루살렘도 재난과 파멸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그러나 아마샤는 이 말을 일축하고 이스라엘 왕 요아스와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남유다는 패하고 백성들과 함께 아마샤는 포로로 붙잡혔다.
요아스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에브라임 문에서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 성벽을 400규빗이나 헐어버렸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과 왕궁의 창고 안에서 발견된 모든 금은과 모든 기구들을 털고 인질을 잡아 사마리아로 끌고 갔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 왕 아마샤와의 전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않았는가?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2세)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치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 내용은 유다 왕 아마샤에 대한 것이나 실상은 이스라엘 왕 요아스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아마샤의 치세는 다윗왕조를 중심으로 기록된 역대하 25장에 상술되고 있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을 위해 100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에서 용병을 고용하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그를 만류하여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였다.
아마샤는 그 말대로 순종하여 에돔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서 경배하며 분향하였다.
(대하 25: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이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고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셨다.
그러나 왕은 그 말을 거역하고 선지자를 모욕하며 그를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선지자는 그가 경고의 말씀을 무시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하며 물러났다.
한편 아마샤는 승기를 잡아 이스라엘도 치려고 하였다.
이에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가시나무 우화를 들려주며 그의 교만을 깨우쳤다.
하나님은 악한 왕 요아스를 통해 다시 한 번 그를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도 아마샤는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고 결국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고 포로가 되고 말았다.
사실 아마샤에 대한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승리는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다.
(대하 25:20-22)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와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실 때 악한 왕 요아스를 들어 교만한 아마샤를 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비록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으나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으며, 그는 영원히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으로 남았다.
한편 유다 왕 아마샤의 경우는 더욱 비극적이다.
그는 처음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왕권을 공고히 하였으며, 부왕을 죽인 원수들을 처단하였다.
그 와중에 원수들의 자식들은 살려줌으로써 율법대로 행하였다.
또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선줄로 생각하는 그가 넘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전쟁에서 가져온 이방신으로 자신의 신을 삼아 경배한 것이다.
그는 말씀으로 승리했으나 말씀을 속히 떠나고 하나님을 떠난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아마샤에게 다시 말씀으로 경고하셨다.
하지만 승리에 취하여 교만한 그는 선지자를 멸시하고 말씀을 저버렸다.
그것도 부족하여 형제 이스라엘과 전쟁을 도모했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새 언약시대, 말씀 안에 거하는 자를 하나님은 돌보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만물 안에서 그의 필요를 채우신다.
그러나 우리 역시 아마샤처럼 승리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위험을 안고 있다.
곧 하나님이 주신 것(존재물)을 하나님 자신(말씀, 존재)보다 더 중시해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영적 전쟁이며 궁극적인 대적자는 우리보다도 하나님과 사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생애나 사역이 승리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동하심이다.
그러나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승리케 하셔서 주신 존재물을 자신의 신으로 삼는 것이다.
하여 사도 바울은 남에게 전파한 후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몸을 쳐 복종시켰다.
지금은 여전히 사망의 세력이 역사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완전히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적 전쟁의 승리자를 속여, 눈에 보이는 것을 신으로 삼게 한다.
곧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기보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 결과물들로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초월하여 항상 말씀 안에 거해야한다.
눈에 보이는 결과와 상관없이 말씀 앞에서 밝혀지는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구속의 은총을 구해야 한다.
그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구원의 감격이 항상 현재로 경험되며 초심을 잃지 않는다.
어찌 하나님 앞에서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교만하며 자긍할 수 있겠는가?
그리할 때 요아스나 아마샤의 전철을 밟지 않으며 주 앞에 설 때까지 승리하게 된다.
나는 부교역자 때 행한 사역에서 정말 많은 열매를 맺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도 승승장구하였다.
시간이 그리 길게 걸리지 않고도 교회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입술로는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내 어깨가 으쓱해지고 내 마음이 높아지곤 하였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열매가 많은 것에 대한 감격과 기쁨에 취하곤 하였다.
그렇게 사역의 열매가 많은 것을 일컬어 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나는 그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자이다.
내가 행한 일의 열매가 많은 것을 시기하고 헐뜯는 이들의 시샘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내가 넘어지는 그 자리가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제2 제3의 아담이 되어 선악과를 따먹고 자고(自高)한 자가 되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내가 원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렵다고들 말하는 개척도 너끈히 해냈는데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이런 나는 존재로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존재물에 더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혹여 이렇게 힘들게 세운 교회가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며 노심초사하였다.
하나님이 세우셨다면, 하나님께서 거두실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오직 내가 이룬 교회를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잘 성장시키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존재물에 내 마음을 쏟아부었다.
유다 왕 아마샤가 하나님보다 에돔의 신을 더 높여 숭배하였던 것처럼 내가 바로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존재물에 내 마음을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쏟은 것이다.
이런 나는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다.
나는 전혀 복음을 알지 못한 자였는데 그 심판을 통하여 복음을 알게 되었고 그 복음이 나를 십자가와 무덤으로 이끌었다.
그 복음 안에서 나의 비참함과 티끌됨을 보았다.
그리고 복음이 나를 아들의 생명으로 인도하였다.
그 아들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말씀으로 아들과 함께 생명의 교제를 나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나라를 본다.
나는 여전히 연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이제는 존재물이 아니라 존재로 계시는 우리 주님을 소망하며 그 안에서 그 나라를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평생 존재물을 탐닉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땅에서 나 자신을 위하여 복을 비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런 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만물 위의 세계로 이끄셨습니다.
이제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비는 자로 삼으셨습니다.
그 복은 육신으로 얻을 존재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아들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복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도 크고 귀하여 나의 입술을 열어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섭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믿습니다.
하여 복음을 전할 때 육신으로는 두렵고 떨리지만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믿고 담대함으로 섭니다.
나의 온전한 생명 되시는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하여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