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으로 충만한 성도의 교제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9.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15.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 주해)
1~2절 : 대제사장 여호야다 사후 우상을 섬겼던 요아스가 신하들의 손에 죽고, 그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른다. 그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을 다스린다.
남 유다에 반역한 신하들이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에 다윗의 등불을 끄지 않겠다는 약속으로만 설명이 된다.
남유다 왕의 등장에는 항상 그 어머니의 이름이 따라 나온다. 이는 아들이 그 어머니의 영향력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호앗단’은 ‘여호와는 기쁨이다’라는 뜻이다.
3~4절 :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만큼은 하지 못했고 그의 아버지가 한 만큼 하였다. 그러므로 그 역시 아버지 요아스처럼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고 있었다.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산당에서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사무엘도, 솔로몬도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고 여호와께서 그 산당에서 응답도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마음은 이미 이방의 사상으로 오염이 되어 있기에 산당은 혼합종교의 산실이 되었던 것이다.
왕들은, 이렇게 쉽게 자기 뜻대로 제사드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잃어버릴까봐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던 것이다.
5~7절 : 나라가 든든히 세워졌다는 것은 아마샤가 백성들에게 인기 있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왕권이 강화되자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복들을 죽인다. 그런데 그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세의 율법대로 행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아마샤가 대단히 율법을 잘 지킨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았음을 역대기에서 보여준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대하25:14)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올 때, 이미 자신에 진 나라의 신상을 가져와 섬겼으니, 아마샤의 율법 지킴은 정책상 행한 것이지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에돔은 아마샤 왕의 할아버지인 여호람 왕 때까지 유다의 속국이었다가 배반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 아마샤가 그 에돔에 쳐들어가서 전역을 평정하고 만 명을 포로로 붙잡아서 사해의 소금골짜기에서 다 죽인다. 또한 에돔의 수도였던 셀라를 완전히 정복해서 다시 속국으로 삼았던 것이다.
8~14절 : 에돔에서 대승을 하고 자신감을 가진 유다 왕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에게 전쟁하자고 한다.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유다 왕 아마샤를 레바논의 비천한 가시나무로 비유하며 그의 공격 의사를 조롱한다.
“네가 에돔을 쳐서 이기더니, 너무 오만해진 것 같다. 차라리 왕궁에나 머물면서, 네가 누리는 영화를 만족하게 여겨라. 어찌하여 너는, 너 자신과 유다를 함께 멸망시킬 화근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냐?”(10절, 새번역)
그러나 아마샤가 끝내 듣지 않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의 영토인 벳세메스에서 싸우자 결국 유다 군대가 대패하고 만다.
이때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벳세메스에서 아마샤 왕을 사로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고,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금과 은과 모든 그릇을 약탈하고 사람까지 볼모로 잡아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15~16절 : 이미 언급했었던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남은 행적과 죽음을 다시 반복한다.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왕하13:12~13)
(나의 묵상)
유다 왕 아마샤는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단하고, 에돔을 다시 속국으로 삼는 등, 대내외적으로 나라를 든든히 했다. 또한 율법을 채택해서 자신의 도덕적 명분까지 확보하여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그 승승장구의 여세를 몰아 북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한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그 전쟁을 거절했지만, 아마샤가 말을 듣지 않고 깝죽대다가 전쟁에서 대패한다. 자신은 사로잡히고 예루살렘 성벽이 헐려지고, 모든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기는 등 수치를 당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마샤를 심판하시려고 이미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입을 통해 ‘네가 교만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역대기에서는 그가 굳이 전쟁을 고집하다가 결국 대패를 당하게 된 이유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대하25:19~20)
6절에서 아마샤가 율법을 잘 지키는 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에돔의 신상을 가져와 섬겼다.
아마샤가 율법을 지킨 것은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상의 행함이었지,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것으로 증명된다.
그가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도 결국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샤가 겉으로는 왕권이 강화되고, 율법도 지키고, 나라가 든든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속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판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마샤가 율법을 들먹이지만, 자신의 왕권 강화로 한껏 높아진 마음이며, 그 속에 에돔의 우상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키우다가 험한 꼴을 당한다.
내가 여러 가지 교회 중심의 일을 하고, 매일 말씀 묵상을 함으로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내 안에 진실로 예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만을 보고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일 하는 말씀 묵상도 아마샤의 ‘율법 이용’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진정한 교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교제 속에 나는 날마다 말씀의 심판을 받는다.
나의 소원을 이루고자 슬며시 자리잡는 산당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마음을 정결케 한다.
일이 잘 되어 승승장구 할 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것임을 고백하며, 나의 의와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종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말씀의 심판 자리에 서게 하심은 아마샤의 덫을 막아주시는 주님의 사랑이다.
(묵상 기도)
주님,
그냥 두시면 끝을 모르고 멸망의 길로 달려갈 존재를
날마다 말씀의 심판 자리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뜻대로 빨리 가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날마다 브레이크가 걸려 참으로 더디 갑니다.
그러나 오늘도 아마샤의 덫을 보게 하심으로 말씀의 훈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
너무도 우둔하여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조금만 응용되면 배운 적이 없다고 선생님께 항의하는 학생과 같습니다.
또 제멋대로 답을 달아 놓고 정답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세월이 흐를수록 주님을 더 잘 알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