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굴에 매인 사람들~ 그 후...
오지랖 사역이라는 깃발을 들고서 살아가다 보니 삶의 다양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지인분의 추천으로 알게 된 도심지 상가 교회를 섬기는 사모님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을 현대판 아둘람 굴에 비유하며 소개했었습니다.
논리적 비약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그분들의 사역을 아둘람 굴에 비견(鄙見)한 이유는 다윗 공동체의 아둘람 굴에 모인이들의 흔적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4-5섯 가정의 구성원들 가운데 그래도 그중 형편이 제일 나은 분들이 사례비 없이 사역하는 목사님 가정이라는 답변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70% 가까이는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마음으로 이런저런 계산없이 부름 받은 자리에서 하루 하루 주어진 환경을 목양일념의 마음으로 살아온 이들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자립이 되는 교회들은 일정한 생활비를 받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없이 소명의 자리를 지켜 나가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는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통해서 외연(外緣)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점을 전제로 한다면, 상가 교회 구성원들의 상처와 한을 보듬어 주고자 몸부림치는 목회자 가정과 공동체를 아둘람 굴에 견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파하는 이들을 품어주며 신앙 공동체를 일구어 가려는 목사님 가정을 소개하자 이후 몇 몇 분들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참, 아둘람 굴 마음이 아리고 아픕니다.”
“목사님 너무도 가슴이 아프네요. 사명이 무엇이기에... 저의 적은 도시락을 드립니다.”“ 샬롬! 개척교회 후원 작은 마음 전합니다. 목사님 사역을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강건하세요”
이러한 격려와 함께 총 네 분이 125만원을 보내오셨습니다.
많게는 50만원에서 적게는 5만원에 이르기까지 귀한 마음과 정성을 보내 주셨습니다.
물질의 가치는 능력과 처지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의 목회자들이나 서민들에게는 일백만원이라는 금액은 얼굴의 주름살 하나가 걷어지는 액수일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물질 선물을 받으신 사모님께서 장문의 인사를 보내 오셨습니다.
<목사님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는듯 해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회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는데, 자녀들은 믿음이 아직 그래서인지 가끔 묻습니다.
나를 한없이 낮추시는 그래서 어려운 이의 마음을 더 헤아리게 만드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촉촉한 비오는 금요일입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때 마치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듯....이럴 땐 눈물이 자꾸나요. 거리를 걸어도! 그러나 목사님 저는 사모가 참 좋습니다....
감사하구요 사모 안 하려고 돌고 돌았는데 부족한 저를 사모시켜주시니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늘까지(12월 16일) 세 차례에 걸쳐 125만원 송금을 완료했습니다.
시골교회를 섬기는 무명의 목회자지만,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저같은 이를 신뢰해주시고 깃발을 들면 조건없이 물질을 흘러보내 주시는 분들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강도 만난 이들을 향하여 품어주시려는 신앙의 실천을 경험하며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던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히브리서12:2) 믿음으로 달려갈 길을 마치는 목사님 내외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합심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본격적인 한파 예보가 보도되는 주말입니다.
피해입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여러분 모두 모두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1-2)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감동입니다
정선 덕천교회 최기수 목사님의 새롭게 하소서 간증이
여기에 이어지는 듯 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