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끝까지 너무 비굴한 나를 보며 선배는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하나만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손이 저리고 다리가 떨리고 등에 땀이난다는 것을.
그리고 선배의 말 한마디와 작은 몸짓에 심장이 흔들린다는 것을.
* * *
"해리야! 나해리!"
"아, 왜 또!"
"너 그 소식들었어? 박유울 선배가!!"
"여자친구 사귄다는 거?"
"어? 너 알고 있었어?"
"내 생일 날 말해줬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박유울 선배. 2월 23일에 고백했다 차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사랑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분명히 차였는데도 왜 선배 얼굴만 보면 온몸이 저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고백한 일로부터 정확하게 1달하고 13일이 지난 내 생일에
선배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 내 생일 날이었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선배는 내 생일에 일부로 여자친구를 데려올만큼 나쁘지 않을테니까.
다만 선배의 여자친구가 나와 너무 다르단 점이 정말 슬펐다.
키가 크고 날씬한 여자선배. 3학년에서 뽀얀 피부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반면 나는 160cm가 조금 넘는 짤몽이다. 피부도 비교적 검고 통통하다.
너무 달라서인지 내가 조금만 더 날씬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하얗고 키가 컸다면 날 좋아해줬을지 생각한다.
참 바보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너 안 슬프냐?"
"뭐가?"
"막 가슴이 찌릿찌릿하지 않아?"
"에이- 나 이제 괜찮다니까. 그냥 아주 조금이야."
사실 친구들한테는 이렇게 말해도 조금이 아니다.
내 생일에도 선배를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했을 정도다.
선배와 여자친구가 걸어가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고일정도다.
아니, 선배 옆의 여자친구를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맘이 아프다.
그래서 일부로 선배가 오는 길의 반대방향으로 돌아 올 때도 있다.
몰래 뒤에서 바라보면서 막상 들키면 태연한 척 할 때도있다.
"이제 여자친구 생겼으니까 축하해줘야지."
사실은 헤어지게 만들고 싶다. 정말 나쁜 마음일지 몰라도.
차라리 선배가 여자친구 없는 독신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생각만하고 이기적이게 된다.
* * *
"어? 저거, 박유울 선배 아냐?"
쉬는 시간 친구의 말에 무의식 중에 내 눈은 선배를 찾는다.
정말 과학에서 말하는 '무조건 반사'인 것 같다.
"아."
하지만 이렇게 선배를 찾아도 내 눈에는 그 옆에 있는 여자선배가 더 눈에 띈다.
정말 부러울정도로 예쁘고 곱다. 아니 정말 부럽다. 그러면서도 짜증나고 밉다.
정말 모순적인 나다.
"박유울 선배! 안녕하세요?"
도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 선배 옆에서 살며시 웃는 여자의 모습에 선배한테 달려갔다.
친구가 날 말릴 겨를도 없이 말이다.
"아, 해..해리야 안녕?"
"제 이름도 외우셨어요? 제가 고백할 때는 모르셨잖아요."
당황해하는 선배의 얼굴. 속상한 듯한 여자의 얼굴.
그래도 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말했다.
"으아- 그 떄 봤던 그 여자선배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요? 전 나해리에요!"
"아, 전혜진이야."
"혜진이언니라고 해도 되죠? 이야- 반가워요!"
점점 일그러지는 선배의 얼굴. 속상해 하는 여자의 얼굴.
"선배가 잘해줘요? 선배 조심하세요! 여자한테 인기 무지 많아요!"
"아아."
"전 지금도 폴 인 러브라니까요!"
"아, 그래?"
박유울 선배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무지 화가 났는지 땅 바닥만 계속 쳐다본다.
"전 친구가 불러서 가 봐야 겠어요! 그럼 나중에 뵈요!"
"응. 잘가."
"외로우면 문자하세요! 박유울선배!"
정말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재빨리 친구 곁으로 달려왔다.
도대체 무슨 똥 배짱이었는지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난감해하던 여자의 얼굴을 생각하면 으쓱으쓱 기쁘지만,
바닥을 낮게 응시하던 선배를 생각하면 두근거리면서도 오싹하다.
"너 미쳤냐?"
"왜?"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냥, 짜증나서."
"뭐가 또 짜증나? 너 괜찮다며."
"선배랑 저 여자랑 있으니까 짜증나. 어쩔 수 없어."
"야.. 해리야.."
"그냥 가자! 어짜피 장난이었다구! 으히."
억지로 웃는 날 안타깝게 쳐다보는 친구.
미안하지만 그냥 넘어가주라. 나 이러는 거 처음이잖아.
* *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칠 때 선배는 나를 음악실로 불렀다.
아까 그 일 때문이라는 건 대충 짐작하고 이럴 줄도 알았다.
은근히 소심한 선배니까. 그런대도 좋아하니까.
친구는 내 걱정이 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내 빙긋 웃어주고 음악실로 갔다.
선배는 여자는 때리지 않으니까 그냥 가슴아프게만 하니까 괜찮다.
"선배 왜 불렀어요?"
"사과해."
"누구한테요? 선배한테요? '죄송합니다'이렇게?"
"혜진이 누나한테 사과하라고!!"
언성이 높은 목소리. 순간 흠칫했다.
처음보는 낫선 모습이었기에 놀랐다.
하지만 그 여자가 얼마나 소중하기에 이러는지 짜증도 난다.
"제가 왜요?"
"몰라서 물어?"
"전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거라구요."
"장난치지 말고 사과해!"
"참, 선배도 엄청 이기적인거 알아요? 꼭 나한테 이래야 되요?"
나는 아직도 선배만 보면 가슴이 저리다구요.
지금도 혼이 나는 줄도 알면서 바짝 긴장한다구요.
왜 이렇게 난 바보같은지 짜증만 난다.
"내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요?"
"너 자꾸 애처럼 그럴래?"
애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애라니 나랑 선배랑 나이차이가 1살밖에 안 되는데.
아니 정확히 따지면 11개월 2일이라 1년차도 아닌데.
"내가 왜 애에요!"
"너 지금 나한테 차인게 분해서 그런거잖아!"
"그러는 거 알면 좀 바줘요!"
"뭐?"
"내가 선배 너무 좋아해서 그 선배 질투하는 거 알잖아요! 그러니까 좀 바줘요!"
"너 진짜."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왜 맨날 그 언니편만 들어요! 나 좀 이해해줘요!"
나도 무슨말을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마구마구 하고 싶던 말들을 순서없이 내 뱉는 것 뿐이다.
"너 진짜 애같이 왜 그러냐고! 사과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왜 애에요? 내가 선배랑 1살 밖에 더 차이나요? 선배로 그 여자선배보다
1살 어리잖아요? 나만 애에요? 그 여자선배한테는 선배도 애라구요!"
"너 말 다했냐?"
"아니요! 아직도 할 말 많습니다! 선배도 항상 잘 웃으면서 모든 사람한테
잘 해 주는 척해도 사실은 속으로 짜증난다고 욕하고 다니잖아요? 나 찰 때도
베시베시 웃으면서도 나중에 친구들한테 '쪼그만 년이 보는 눈은 있어서'라면서요?
그래도 좋아했어요! 선배가 나 욕하고 다니는 거 다 들으면서도 좋아했어요 알아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선배는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어땠는 줄 알아요? 종이 찢어지듯 마구 찢어진다구요.
그런데도 선배 모습만 모면 또 가슴이 설레서 테이프로 내 마음을 도로 붙인다구요!
이런 마음 선배도 알 거 아니에요? 처음에 그 여자선배도 선배 싫어했다면서요!
귀찮다고 했다면서요! 그 때 선배 마음이랑 지금 제 마음이랑 뭐가 달라요?
똑같잖아요! 그러면서 뭐가 애에요?"
"아참, 어이없어서."
"나도 어이 없어요! 이 이중인격자야! 네가 날 우습게 아는 것처럼, 날 바보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여자도 널 그렇게 생각한다고! 눈 감고 생각해봐!
일부로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잖아! 나도 그렇다고! 너랑 나랑 같은 처지야!
알어? 다만 넌 성공하고 난 실패한거야 알어? 어따대고 애래! 어? 그 여자도 널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을.."
짜악. 맞았다. 선배가 날 때렸다.
"어따대고 반말이야? 후배라고 잘 봐주니까 뵈는 게 없냐? 엉? 그리고 너랑 내가
왜 같아? 너랑 난 태어날 때부터 다른 거라고. 이런 또라이를 봤나."
짜악. 이번엔 내가 때렸다. 빨갛에 변한 선배의 볼.
아프겠다. 눈물이 난다. 바보같이 내가 때렸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그렇게 앞만 바라봐봐.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해봐. 언젠가 깨달을 거야.
네가 얼마나 보잘 것없는지! 잘난척만 하는지! 나도 끝이다! 널 좋아했던게!
바보같다!"
그리곤 집으로 뛰어갔다. 가방이나 친구나 5,6,7교시는 잊어버리고.
오늘 따라 선배가 너무 밉다. 정말 오늘은 깨끗이 닦아 낼거다.
내 가슴에 다른 사람들 집어 넣을 거다.
그런데 왜 자꾸 선배가 잘 해줬던 일들만 생각나는지.
왜 자꾸 눈 앞이 흐려지는지. 왜 눈물이 나는지.
잘 모르겠다. 이젠 혼자하는 사랑은 정말 싫다.
첫댓글 여자가 불쌍해여 ... ㅠㅠ 번외써주세여 ㅠㅜㅠ
끄아, 해리가 불쌍하다고 해주시니, 감사해요! 번외! 꼭 써보겠습니다!
뒷이야기 더 없나요./////? 더 있으면 엄청~좋을것 같아요.!!!ㅎ
번외요? 으아, 안 쓸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꼭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