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3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갔을 때 그의 딸이 죽어서 집안사람들이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왜 떠들며 우느냐 하시면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면 자는 것임을 알고 믿어야 할진대 사람들은 그 현상만을 보면서 비웃었던 것입니다(막 5장).
그런데 그 비웃는 자리에 나도 함께 동참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영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육신의 눈으로만 판단하는 나는 진짜 소경입니다.
소경인 내가 소경을 인도하려 하니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요.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육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영안을 열어 그 나라를 볼 수 있도록 나를 도우소서.
목사요 선교사로서 영안이 어두워 흐릿한 눈으로 봅니다.
이런 눈으로 어찌 영적 소경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십자가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오늘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주님과 동행하는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5:1-12
제목 : 아사랴가 강성하여지매 교만하여 범죄하되 분향하려 한지라.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27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6세라. 예루살렘에서 52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8 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38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4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 나의 묵상
아사랴(웃시야)는 처음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나중에는 징벌을 받아 나병환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별궁에서 거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병행본문인 역대상 26장에는 그 사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웃시야가 16세에 왕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하나님을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였고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는 등 웃시야가 강성해져서 그의 이름이 애굽 변방에까지 소문이 났다.
그는 예루살렘 요소요소에 문과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였다. 웅덩이를 많이 파서 물을 얻었으며 가축을 많이 기르고 농사를 좋아하였으므로 산과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기도 하였다.
그는 또 싸움에 나갈 군사들을 많이 두었다.
그가 둔 족장의 수가 2,600명으로 모두가 큰 용사였다.
그들 아래에는 307,500명이나 되는 건장하고 싸움에 능한 군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왕을 도와 적과 맞서 싸우는 자들이었다.
웃시야는 이들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 투구와 갑옷 그리고 활과 물매를 준비하였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발명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고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이름이 널리 퍼졌는데 그것은 기이한 도우심, 즉 하나님의 크신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시야가 강해지면서 그의 마음이 교만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제사장이 감당해야 하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스스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행하려고 하였다.
그때 대제사장 아사랴가 용감한 제사장 80명과 함께 들어가서 웃시야를 말렸다.
그러나 웃시야는 제사장 아사랴를 향하여 화를 내면서 끝까지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치심으로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그는 성전에서 쫓겨났고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편 북이스라엘의 열왕들은 피비린내 나는 쿠테타의 현장에서 죽고 죽이는 살육의 주인공들이 된다.
예후의 후손인 스가랴가 왕이 되어 6개월간 다스릴 때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역하여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신 대로 예후의 왕조는 4대 만에 끝나게 된다.
내안에는 웃시야와 같은 교만, 살룸과 같은 포악함이 숨어 있다.
웃시야가 이룬 성과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런 결과를 가지고도 남들에게 얼마나 많이 자랑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물론 처음에는 순전함과 겸손함으로 시작한다.
나는 감추어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나, 어느새 내안에는 죄의 세력이 틈타 “네가 하지 않았느냐?”고 속삭인다.
나는 그것을 분별하여 십자가로 달려가 못 박아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낼름 받아먹고 마는 것이다.
나의 자기주장의지는 하늘을 찌른다.
내가 한 것, 내가 생각한 것, 내가 이룬 성과 등...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내 이름이 드러나기를 좋아했고, 드러나지 않으면 서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마치 아하수에로 왕처럼 자기가 이룬 업적을 자랑하기 원하여 무려 180일 동안이나 잔치를 베풀고, 또 7일간 백성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다.
마지막 날 그의 아내이자 왕비를 불러서 그녀의 미모를 백성들 앞에 자랑하고자 했으나 왕비는 거절하였다.
왕비에게 거절당한 아하수에로는 그의 마음이 견딜 수 없는 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내가 계획을 세우고, 내가 일을 진행하고, 내가 결론을 맺어서, 결국 내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칭찬이 없으면 내 마음에 분노와 격동이 일어 견딜 수 없었다.
겸손과 순종으로 시작하여 교만으로 끝난 웃시야가 바로 내안에 있는 것이다.
선왕을 죽이고 반역을 일으킨 살룸과 같이 나는 동역자들을 얼마나 많이 마음으로 죽인 살인자였는가?
주님은 마음으로 생각만 하여도 간음이며, 마음으로 미워하기만 하여도 그를 죽이는 살인이라고 하셨다.
그런 나는 씻을 수 없는 살인자였다.
왜냐하면 나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내가 잘 한다는 칭찬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안에는 자기주장의지가 하늘을 찔렀고 교만과 미움,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마음에는 환난과 곤고가 끊어질 수가 없다.
(롬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나를 지배하던 옛 사람의 소욕들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분함과 노여움, 악의와 비방 그리고 입으로 정죄하는 부끄러운 말 등이 나를 결박하여 침몰시켰다.
나는 내안에 왜 이렇게 환난과 곤고가 임하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고 했고 영광도 내가 받으려고 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심판은 나를 죽이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공의의 심판이었다.
나의 몸을 쳐서 중병에 걸리게 하심으로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나는 단지 주님의 종이요 쓰임받는 도구임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이제 나는 복음으로 살며, 또한 복음을 위하여 살아간다.
이 복음은 나를 살게 했으며,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귀한 도구가 되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은 나는 이제 복음을 전하며 생명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자가 되었다.
이런 순간에도 여전히 나를 지배하려는 죄의 세력 앞에서 넘어질 때도 있다.
자기주장의지로 행하면 여지없이 넘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럴 때면 지체 없이 주님의 십자가로 달려가서 육신의 자기주장의지를 못 박는다.
그리고 주의 십자가 앞에 머무른다.
그곳만이 내 영혼이 숨을 쉴 수 있는 곳임을 알기에......
십자가 앞에서 말씀으로 주님을 만날 때 그 자리가 바로 영생의 삶이 이어지는 곳이다.
크로노스 안에 있는 땅의 시간이지만, 카이로스의 하나님의 시간이 틈입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교제하시며 나타내시는 영광을 계시하여 주신다.
영원에 잇대어 사는 삶이 참된 승리의 삶이요 가장 거룩한 증인으로서의 삶임을 날마다 체험한다.
오늘도 그 은혜와 영광 가운데 거하는 특권을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교만하여 죄 가운데 빠져 있던 나를 어떻게 건져내셨나이까?
어떻게 나를 건지실 생각을 하셨는지요?
죽기에만 합당한 이 죄인을 죄에서 건져주시고 죄로 얼룩진 검댕이를 주님의 피로 씻어 주시사 아들 삼아주신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죽어 합당한 자이나 언약하신 약속대로 나를 살리셨사오니 이제 내 안에 오직 아들의 생명이 임하여 나는 죽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나를 받아주시고 내안에 예수로만 부요하게 하소서.
입이 열리면 주와 복음을 말하게 하소서.
손과 발이 움직이면 복음 전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소서.
내 영안이 열리면 오직 만물 위, 창세전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소서.
그곳만이 나의 달려갈 곳임을 아오니 곁길로 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 품으로 달려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