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산에 갔다왔다.
고대산은 고대 뒤에 있는 산이 아니다. 고대 뒤에 있는 산은 개운산이고 고대산은 전방에 있는 산이다. 저 앞이 북한이 아니라 , 요 앞이 북한일 만큼 남한을 끝으로 북을 바로 코 앞에 맞 대고 있는 전방의 산이다.
이 산을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였다. 너무도 가 보고 싶었지만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산이였다. 왜냐하면 민간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민통선에 위치 한 산이였기 때문이다. 내 근무할 때 그랬고 제대 후 몇 번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근데 인터넷 써치하다보니 여기저기서 고대산에 대한 산행기가 나오고 심지어 동호회까지 있는 것을 알았다. 즉, 개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그런지 함 찾아가 보았는데 정말 그렇다. 세상에나~
참 세상 많이 변했다.
모처럼 비도 그치고 해서 찾아갔더니만, 황사인지 한솔까스 때문인지 전방도 뿌였기는 매 한가지이다. 비가 와도 이렇게 하늘이 뿌연 건 참 문제이다. 전방에 있는 산 꼭대기에 서도 이북은 커녕 올라왔던 산 아래 "신탄리"마을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족같은 차들 때문에도 그렇고 중국때문에도 그렇고 이제는 이 땅 어느 곳에 서도 뿌였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궁망봉 잔설에 샌드위치처럼 겹겹히 쌓였던 황사를 보고 씁쓸해 했는데, 이렇게 초여름에 접어든 비 온 다음날조차도 이 모양이니 담배나 한 대 피워야겠다 생각하고 그리고 피웠다. 참 더러워 진 세상이다. 뭐 어쩔 수도 없는 족같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래 안내판을 보니까 고대산 정상은 고대봉을 포함해 봉 세개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던 데, 올라가 보니 정말 그렇다. 봉 세개가 진짜 연결되어 있었다. 역시 전방답게 "탄약운반레일"로 봉 세개가 다 연결되어 있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진지에서 2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리고 2시간 후에 살아있으면, 후방 30키로 위치에 있는 1차집결지로 그냥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재정비하고 다시 진격하는 것이다. 거의 맨날 이 훈련을 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간에 존나게 했다. 그래서 이 지방의 지형은 눈 감고 졸면서 가도 원하는 데는 다 갈 정도이다. 하도 이 곳이 지겨워 제대할 때 이곳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며 침 뱉고 떠난 곳인데, 늘 이렇게 이 동네만 찾아 다닌다.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최전방 진지답게 산 전체가 교통호고 진지고 방카이다. 후방의 그냥 버려진 진지가 아니라 바로 조금 전까지 손 보았던 살아있는 진지들이다. 잡초들이 하나도 없다. 그래 전쟁나면 너희들도 이 곳에서 2시간 버티기 할 것이겠지. 꼭대기에 준비한 탄약 탄창 다 써가면서. 이 레일을 통해 존나게 실어 나르면서 그렇게 하겠지. 2시간 버티기. 니들이 니들 무덤의 풀을 미리 뽑고 있는구나. 그래도 살아있을 때.
산이 별로 없는 연천군이라서 그런지 이곳에 쏟아부은 군청의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부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고, 하나도 위험하지 않은 곳인데 밧줄 난간을 그것도 항상 두 줄 씩 설치해 놓았다. 조금만 꺽어져도 친절한 안내문이 지겹도록 나온다. 이곳에서는 제 아무리 장님이라도 지팡이를 버리고 홀로 오른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길을 잃어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기소방에서 곳곳에 박아놓은 조난위치판들도 정말 더 지겨울 정도이다.
근데, 이제까지 올라오면서 보던 간판과 다르게 아주 이상한 안내판이 붙어있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글씨체로 써여졌는데 내용도 이제 껏과 다르게 참 특이하다.
" 조난시 "
" 소대장 016 000 0000 "
" 중대장 011 000 0000 "
이게 다다.
그냥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여져 있다.
이 곳에는 3도 실크인쇄로 말끔하게 인쇄된 경기소방의 조난위치 판도 박혀 있는 곳이다. 근데 그보다 더 눈에 잘 띄는 명당자리에 이 이상한 안내판이 박혀 있는 것이다. 순간 처음으로 발을 멈췄다. 나는 산행을 할 때에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물도 걸으면서 마신다. 근데 섰다. 이 이상한 간판이 나를 세웠다.
대체 이게 뭘까.
서서 간판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으음~". 그래 이 이상한 간판은 군발이들이 세워놓은 것이구나.
그래 군발이들이 나서서 도와주겠다면 확실하겠지.
고맙다. 발들아.
소대장 016, 중대장 011 이 이상한 암호같은 숫자는 바로 그들의 헨드폰 번호를 나타낸 것이였다.
참 세상많이 달라졌다. 우리 때에는 "통신보안"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래서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 영창에 갈 뻔까지 했었는데. 근데 이제는 최전방의 진지 군인이 그것도 책임 장교가 개인 휴대폰을 가지고 있구나. 우리 때 상식이라면 영창이 아니라 총살시킬 감인데 정말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해 보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늙었구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렇지만 대게는 선임자를 먼저 쓰고 쫄따구는 나중에 쓰는 편인데 특히 군대라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고, 근데 어떻게 소대장 헨드폰 번호가 중대장 번호보다 더 선임 자리에 쓰여져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돌아버리겠다. 아니 헷갈려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늙었단 말인가. 어떻게 소대장이 중대장 위에 먼저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일까. 참 세상 많이 변했다.
...
그래, 귀찮은 거 얘부터 부르라는 얘기군.
ㅋ ㅋ ㅋ.
그리구 안 되면 나라도 부르라는 말이군.
발이들.
그냥 반갑기만 한 발이들.
한 없이 착하기만한 이 땅의 우리 발이들.
고맙다.
이제야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선 가 많이 보았던 그 이상한 글씨체는 바로 "군발이 글씨체"였던 것이다.
그래 그래도 아직까지 이건 변하지 않았구나.
첫댓글 그랬구나.
허 허 허 .....
아, 그거.
아-하
음~
창수야~~ 하늘이 뿌연건 니가 담배를 피워서 뿌연거다.자동차 핑게 대지말고 담배좀 끊어라~그리고 중대장 존나 번호는 011-000-0000이 아니다.거북이한테 물어봐라! 011-000-2918(공일일 -뻥뻥뻥-이구십팔)이다. 거북이는 고단수다. 그러구 군발이들에게 뭐라 하지 말어라.군에간 우리아들 힘들어진다. 알칸?
잘키운 민들레 열 애기 아빠 안부럽다~~ (메롱~~)
와~~멋있다~~고대산이~~
그래. '잘키운 민들레 열, 애기 아빠 안부럽다~~ (메동~~)'. 고치지마.
오빠 그건 있찌..전화번호 끗발 순으로 잘 쓴거야.산에서는 높이 있는 사람이 더 힘들고 위험하거든.
산위에 레일..." 짬빱 수송레일 "일수도??...아니면 "발이들 산악 골프카트" 던지...
창수야~ 담배재 털어라~!
한참 웃다보니 눈물이 나올라카네. 자가용 안도 안닌데..
글이 너무 길어서 광주 울트라 갔다와서 읽을깨 나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