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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 제 24장 다윗의 인구 조사
다윗의 생애에 있어 두 번째 큰 범죄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인간은 아무리 의롭다 하여도 별 수 없는 존재라는 것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이 즉위 초기에는 겸손했지만 말기에는 하나님보다는 인간들의 힘을 더욱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다윗의 인구 조사 (24:1-9절)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된 동기는 군사력의 강화와 왕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같은 조치는 전쟁의 승리는 여호와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를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인구조사를 실시하려는 다윗의 마음은 너무나도 완강했는데 이 명령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의 신하들까지도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러한 배반적 행동은 무려 10개월 동안 계속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기를 오래 기다리셨던 것이다.
‘다시’라는 말 ‘요세프’는 다윗 치세 중에 국가적인 재앙이 지난 번 3년 연속 기근에 이어 두 번째임을 밝혀 준다. 1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다윗의 인구조사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요, 의도라는 말이 된다. 즉 본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치하시기 위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그릇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셨다.’라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윗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방임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범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압살롬의 난과 세바의 난을 일으킨 반역적인 행위였다. 그 때에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다수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에게 반역하고 그를 대적했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일을 방관하시지 않으며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격동시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명하셨다. 물론 이 일이 다윗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은 아니다. 다만 다윗의 의식 속에 있는 악한 의도를 허용하신 것이다.
*대상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넓은 의미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의 사역을 방임하시는 것이다. 이 당시는 다윗의 통치 말기였으며 나라는 평안하였고 군대장관 요압이 수도를 떠나 10개월 동안 지냈던 것으로 보아 대내외적으로 모든 정벌과 반란이 종료되고 진압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평안할 때였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의 재앙이 되었는데 그러나 인구 조사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인구 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윗의 인구 조사가 군사적인 목적, 왕권의 강화에 있었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제사장들이 그 일을 감당하였지만 지금은 군대장관 요압이 이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는 군사를 계수하는 일이 되었다. 또한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조사를 받은 각 사람이 생명의 속전을 내었으며 이 생명의 속전은 성소에 봉헌됨으로써 여호와께 속하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인구 조사는 군사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며 율법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다윗은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고 강화된 군사력과 왕권에서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는 히스기야 왕이 바벨론 사자들에게 재력과 군사력을 자랑한 것과 동일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다윗은 군사력의 실체를 파악하여 강대국의 위치를 굳히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두 가지이다.
첫째, 번영의 근거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믿은 것이다.
둘째, 하나님보다는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였다. 이러한 일이 하나님께 범죄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다윗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성과 판단을 잃은 것이다.
*시94: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요압은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을 반대하였다. 여기서 요압의 반대는 다윗의 범죄를 방지하려는 충정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정 국가의 복된 미래를 약속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약속에는 어디까지나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하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는 것이다. 다윗이 이러한 전제 조건에서 벗어나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힘을 의지하려 하자 이에 요압이 다윗의 잘못에 대해 충언하고 있는 것이다. 요압의 말 속에는 백성들의 반발도 우려했을 것이며 이는 이방 나라들과 같이 과세와 징병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압의 주장은 휘하의 장군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에 따라 왕명이 지체되자 다윗은 공식 석상에서 명령의 시행을 재촉하였다. ‘재촉하다’라는 말 ‘하자크’는 ‘강퍅하다.’ ‘완악하다.’라는 의미로 다윗이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고집을 극구 주장했다는 것이다.
요압과 그의 휘하 장수들은 요단강을 건너 갓 지파의 성읍 아로엘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아르논강 북쪽에 위치한 국경지대로서 여기서부터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 인구조사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요압은 많은 무리가 운집할 수 있도록 아로엘과 야셀 사이에 장막을 치고 인구조사의 본부로 사용하였다. 그곳으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서 길르앗을 거쳐 닷딤훗시로 가서 다나안을 지나 시돈에 이르렀다. 즉 사해 동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갈릴리 동쪽을 지나서 갈릴리 북단에서 서쪽으로 돌아 단 지파가 있는 이스라엘 북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다나안’이라는 지명의 원 이름은 ‘단 야안’이며 다메섹 남서쪽에 있는 단 지파의 영토였고 다윗 왕조의 북쪽 경계였다. 거기서 서쪽으로 진행하여 시돈에 이르렀는데 시돈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 국가로서 다윗 왕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당시에 이스라엘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군역에 가담하고 있었다. 시돈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두로에 이르렀다. 두로는 견고한 성으로 시돈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종속국이었으며 시돈의 남쪽 40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에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내에 거처했으나 히위 족속들은 기브온 근처까지 내려와 살기도 했지만 대개의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북방 지역인 납달리, 스블론, 잇사갈 지파의 땅에 흩어져 살았다. 이들은 후에 갈릴리로 불려 지게 되었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이들을 가리켜 ‘이방의 갈릴리’라고 하였다. 이들 역시 군역을 감당해야 했으며 인구 조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요압 일행은 가나안 땅 중부를 지나 유다 남쪽 브엘세바까지 이르렀다. 브엘세바는 유대 네게브 지방의 한 성읍이었고 이스라엘의 최남단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말할 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고 하였던 것이다.
요압이 인구 조사를 한 기간은 9개월 20일이었다. 물론 이 기간에 완전한 인구 조사를 시행한 것은 아니었다. 대상 21:6절에 보면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요압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중부 지방의 인구조시가 소흘했던 것이다. 또한 인구조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대상 27:24에 의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했다. 요압이 시행한 인구조사의 기간이 매우 길었다는 것도 그가 왕의 명령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시간만 벌었다는 증거가 된다. 요압의 보고는 이스라엘 중에 군사가 팔십만 명이며, 유다 군사가 오십만 명이라고 했지만 대상21;5절에는 이스라엘의 병력이 110만 명이고, 유다의 병력은 47만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모두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략 130만-157만 명의 중간인 140만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로 본다면 당시 이스라엘 인구는 군사의 약 4배인 약 500만-600만 명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징계 (24:10-17절)
하나님은 다윗과 그의 백성들의 죄에 따라 무서운 징벌을 내리신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한 뒤에 그 죄에 따라 세 가지 재앙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사실 다윗이 행한 인구조사는 살인이나 간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목으로 볼 때 다윗의 행위는 가장 큰 범죄였다. 왜냐하면 그의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였음을 물론 의도적이고 완강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죄는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인간의 군대와 능력을 의지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행위였던 것이다.
다윗의 만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책으로 바뀌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자책하다’라는 말 ‘나카’는 ‘때리다.’라는 의미로 곧 신앙이 어두워진 마음을 방망이로 때리는 것을 말한다. 다윗이 ‘큰 죄를 범했다.’고 고백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군사력을 의지한 그의 자고하고 교만한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다윗은 이러한 그의 사고와 행동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 심히 미련하게 행했다고 고백하고 자신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다윗이 사울과 다른 점은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죄를 짓고 실수를 범했으나 다윗은 솔직하고 겸허한 회개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허물과 죄를 발견하기까지는 약 10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그동안 이생의 자랑과 편협한 사고에 붙잡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가 깨우칠 때까지 길이 참으시고 계셨던 것이다.
다윗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는 것은 그가 특별히 양심의 가책을 받고 밤새도록 뜬 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눈물로 회개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지자 갓의 방문은 다윗의 회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자애로운 응답이었다. ‘선견자’라는 말은 ‘이상을 보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이상이나 계시를 받은 자를 말한다.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보이신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하셨다. 첫째로, 땅에 7년의 기근이 임한다는 것인데 대상 21:12절에는 3년으로 되어 있다. 학자들은 3년이 정확하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갓 선지자가 제시한 것이 모두 3이라는 숫자라는 것이다. 여기 제시된 세 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네 가지 중한 벌 중에 속하는 것들이다. 기근, 전쟁(칼), 온역, 사나운 짐승이다. 이 중에 두 가지 즉 기근과 칼은 다윗이 이미 당한 바 있다. 둘째는 왕이 원수들에게 쫓겨 석 달 동안 도망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곤경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차라르’라는 말은 사방에서 짓누르는 압박감을 뜻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제시한 3가지 징벌은 다윗이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명예와 힘을 꺾어놓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의 품보다 더 나은 피난처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다윗은 자신이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을 택하였다. 즉 하나님은 사람보다 긍휼이 크시니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본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소원을 듣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 시행되는 ‘3일 동안의 온역’을 택하셨다. 결국 다윗은 그가 위임 받은 선택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었으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역사는 은혜로 귀착된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모든 문제 해결의 원천적 해결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전쟁의 재앙’은 대적의 손에 죽는 것이며, ‘기근의 재앙’은 자연적 재해의 성격이 짙으나, ‘온역의 재앙’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직접 매를 맞는 것을 택하였던 것이다. 3년 기근이나 3개월의 전쟁보다는 3일의 전염병이 감당하기에 훨씬 부담이 적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갓이 다윗을 방문했던 그날 아침부터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셨는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나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하신 때까지’라는 말이다. 이는 전염병이 시작된 날로부터 3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는 16절에 하나님께서 이 재앙의 시간을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신앙 태도를 보시고 그 재앙의 기간을 단축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전염병은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의 목숨이 죽어갔다.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전염병은 맹렬하고도 급속히 전파되고 사망자가 속출했던 것이다. 이로써 다윗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의지하고 자랑했던 병력의 큰 손실을 보고 말았다.
칠만 명의 병사가 죽어가는 그 당시에 하나님의 진노의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모든 군사를 다 멸하려 하고 있었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실행하는 천사로서 다윗에게 가견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대상 21;16절에 다윗은 천지 사이에 서 있는 천사를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온역은 자연발생적인 재해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재앙이 분명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신 것을 돌이키셨는데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신 것이며, 나아가 다윗과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명령하셨다. 그만하면 다윗과 그의 백성들이 충분히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인정하신 것이다. 당시에 천사는 여부스 사람 이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서 있었는데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는 순간 여호와께 진실한 간구를 드렸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범죄의 주범임을 거듭 강조하고 오직 자기만이 형벌을 받아야 마땅함을 주장하며, 일체 다른 사람에게 그 죄를 전가시키지 않았다. 대상의 기록을 보면 다윗이 굵은 베옷을 입고 땅에 엎드려 기도했다고 전한다. 일국의 왕이 자신의 처지에 연연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최대한의 겸손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진실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재앙의 기간을 단축시켜 주신 것이다.
3. 다윗의 제사 (24:18-25절)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다윗은 갓 선지자로부터 여부스 사람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었다.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은 천사가 심판을 중지한 곳이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난 곳이다. 이곳은 후일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졌으며 택한 백성들의 시은소가 되었다. 다윗은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지체 없이 그곳으로 올라갔는데 당시 아리우나는 밀을 타작하다가 왕을 맞이하였다. 아리우나는 가나안 족속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이 자신에게 나타난 사실에 두려워하며 떨리는 심정으로 왕의 일행을 맞이하였다. 다윗이 아리우나에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왔다고 하자 아리우나는 왕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그는 왕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왕에게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즉 타작마당과 소와 번제에 필요한 땔감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제사가 성공적인 제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성공적인 제사는 하나님께서 그 제물과 함께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다 받으시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아리우나는 다윗 왕의 제사에서 제물과 더불어 왕도 여호와께 기쁘게 열납 되어 성공적인 제사가 되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아마도 아리우나는 여호와 종교로 개종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윗은 아리우나의 소유를 값없이 취하여 번제를 드릴 경우 그 제사는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자신의 재산을 드려 최대한의 정성을 드리기로 하였다. 참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방 출신의 개종자 가나안 족속 아리우나의 아낌없는 헌신과, 참된 눈물의 회개자 다윗의 순수함과 희생이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을 샀는데 대상21;25절에는 금 600세겔을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필사자의 오기로 보기보다는 다윗이 타작마당을 포함함 모리아 산 일대의 토지의 값은 금 600세겔을 주었으며, 번제에 필요한 소와 기구들을 산, 값은 은 50세겔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 땅은 후일에 성전의 부지가 되기 때문에 다윗이 타작마당 일대를 모두 구입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과 화해의 표시로 제사를 요구하셨다. 이는 인간의 죄로부터 회복은 인간 스스로의 자의식적 자발적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사의 처소로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요구하신 데는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즉 예루살렘 동쪽 모리아 산에 위치한 그 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곳으로서 아브라함이 먼저 제단을 쌓은 곳이다. 이곳은 아브라함의 순종 및 신앙과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기억되는 장소이며 이런 역사적인 명소를 하나님께서 화해와 자비의 처소로 택하시고 성별하게 하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자기의 후손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준비하시는 장면을 목격했으며 이 사건은 후일 예수님께서 친히 증거 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는데 다윗의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내에 온역 재앙은 완전히 그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백성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재앙의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과 바른 관계 회복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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