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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장지너머의 햇살로 눈을 뜨자, 목 언저리가 묘하게 무거웠다.
「응——, 차…………」
목이 무거운 건 어깨가 뭉쳐 있기 때문이다.
엎어져서 잤기 때문에, 목줄기가 당겨졌겠지.
그만큼, 등의 상처는 꽤나 좋아져 있었다.
아픔은 없고, 이 상태라면 생활에 지장은 없다.
「——이런. 벌써 7시 지났네」
「윽, 아야」
그 순간, 지끈 배가 아팠다.
얌전히 있으면 별 거 아니지만, 급격하게 움직이면 맞은 부위가 쑤신다.
「——멍들었으니. 당분간은 시달려야 하나」
그것도 참으면 별 거 아니다.
아픔으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이쪽도 실생활에 지장은 없겠지.
옷 갈아입는 걸 마치고 방을 나온다.
거실에서 조반 냄새가 나고 있으니까, 사쿠라가 준비를 해주고 있는 거겠지.
「안녕. 미안, 늦잠 자버렸어. 아직 도울 거 있어?」
「안녕하세요, 선배. 선배가 늦잠 자는 것도 드문 일이네요」
「으, 면목없어. 정신이 드니, 아침이었어」
「다쳤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좀 전에 깨우러 갔는데, 선배 전혀 일어나주지 않았으니까. 피로도 쌓여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와.
사쿠라가 깨우러 와 줬다, 라니 기억에 없다.
어깨가 뭉쳐 있는 것뿐 아니라, 머리 쪽도 아직 잠이 덜 깨 있는 모양이다.
「미안. 좀 얼굴 씻고 올게. 금방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 줘」
「아뇨, 선배야말로 느긋하게 있으세요. 오늘 아침은 저 혼자서 준비할 테니까, 여유 있게 얼굴 씻고 오세요」
사쿠라는 정말 활기가 있다.
「………………?」
뭐어, 사쿠라가 그렇다면 말리는 것도 뭐하고, 별로 상관없는데.
「그럼 말대로, 세면장 갔다 올게」
「네. 오늘 아침 된장국은 자신작이니까, 기대하고 있으세요」
응, 하며 끄덕이고, 일단 거실을 지나쳐서 복도로 향했다.
「——아니, 잠깐 기다려」
무언가 이상하다.
활기가 있었기에 그만 지나치고 말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금 그건 어딘가——
「…………!」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
이 며칠간 귀에 익었기 때문인지, 그게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사쿠라——!」
거실에 급히 돌아온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지, 사쿠라는 나른한 동작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쿠라」
휘청거리는 몸을 손으로 받친다.
「…………윽」
받친 사쿠라의 몸은, 이전 언젠가와 마찬가지로 뜨거웠다.
흐트러진 숨결과 땀에 젖은 와이셔츠가, 사쿠라의 병상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선, 배」
받쳐져서 간신히 정신이 들었는지.
사쿠라는 멍하니,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눈으로 나를 봤다.
「정말. 천천히라고 했는데, 금방 왔네요. ……에에, 기다리세요. 바로 아침밥 준비를 할 테니까」
부드럽게 말하고 손을 푼다.
「——사쿠라, 너」
그건 무리를 하고 있다기보단, 사쿠라 자신이, 자기가 열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기다리라니까. 아침밥 준비는 됐어. 그것보다 방에 돌아가서 누워. 사쿠라, 굉장한 열이야」
「에……? 열이라니, 제가 말인가요?」
「그래. ……제길, 자기가 깨닫지 못해서야 정말로 중상이잖아! 어째서, 이런——」
이런 것도 깨닫지 못했던 건가, 나는.
아무리 세이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해도, 가까이에 있는 사쿠라의 용태에 마음을 쓰지 못하다니, 정상이 아니었다.
「저, 선배……? 저, 정말로 괜찮아요. 지금 그건 좀 넘어졌을 뿐이고, 별로 현기증이라든가 그런 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렇게 열이 있다구!? 이런 건 체온계 안 써도 알아!」
「아——」
손을 끌고 객실로 향한다.
어쨌든 지금은 사쿠라를 쉬게 해야지.
학교에는 결석 신고를 하고, 아침 식사도 소화하기 쉬운 병자식을 준비하고,
점심은——그래, 후지무라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후지무라 저택의 가정부 아줌마를 보내달라고 하자.
「저, 저……선배, 어디에 가는 건가요? 학교에 가기 전에, 아침밥 안 먹으면 안 돼요?」
사쿠라는 아직 상황을 모르고 있다.
아침에 하이 텐션이었던 건, 열로 머엉해져 있었던 거였나.
「학교는 빠져. 사쿠라는 오늘 하루, 방에서 가만히 있을 것.
학교에는 내가 연락을 해 둘게. 어차피 교실에서 후지 누나랑 만나니까, 그 때 말하면 돼」
「에——학교를 빠진다니, 제가 말인가요?」
「그래. 사쿠라 이외에 누가 있어. 나는……물론 다쳤지만 건강하니까 말야. 빠질 이유가 없잖아」
「————」
……아니, 이쪽도 무리를 해서 학교에 갈 이유는 없다. 세이버를 잃은 지금, 나에겐 학교에 갈 여유 따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만은 빼먹을 수 없는 볼일이 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마토 조켄과 어새신에 대해서 토오사카에게 알릴 때까지는, 집에 틀어박힐 수는 없다.
「어쨌든, 사쿠라는 오늘은 결석. 항상 노력하고 있으니까, 가끔은 요란하게 쉬어도 되잖아.
나도 볼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올 테니까」
「아——아, 아뇨,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그러니 아침밥 먹고, 학교에 가죠. 그러면 이런 열, 금방 좋아질 테니까……!」
「바보, 그럴 리 있냐. 어쩐지 엉망진창이다, 사쿠라」
「어, 엉망진창 같은 거 아니에요!
엉뚱한 건 선배 쪽이고, 저는 건강한데다 열 같은 거 없고, 선배는 다쳤잖아요! 그런데 저만 빠져버리다니, 그런, 거——」
「에……우와, 사쿠라!」
「어——라? 이상해요, 선배. 왠지 저, 숨, 막혀, 서——」
바닥에 쓰러지다 만 채, 사쿠라는 하아하아 헐떡이고 있었다.
……받친 몸은, 이상할 정도로 무겁다.
사쿠라에겐 설 힘이 없는 건지, 이렇게나 몸이 무거워져서 서 있지 못하게 된 건지.
어느 쪽이든, 사쿠라는 혼자서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열이 있고, 건강하다고 믿고 있는 건 본인뿐이었다.
「……바보. 알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빠지게 할 거야.
싫어하는 건 네 마음이지만, 그런 쓸데없는 거에 체력 쓰면 내일도 빠지게 돼」
「…………하지만, 선배. 저는, 학교에, 가야」
흐트러진 호흡으로, 헛소리처럼 사쿠라는 말한다.
「————」
그걸 무시하고, 사쿠라를 안고서 객실로 향했다.
객실에 데려왔을 때, 사쿠라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잠들어 있다고 해도 절반 의식이 있는 상태겠지.
호흡은 답답하고, 딱 한 번, 안은 내 팔을 꽉 쥐어왔다.
「————」
우선 침대에 누인다.
「아……선, 배……?」
멍한 목소리.
사쿠라의 눈은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고, 나를 보지는 않았다.
「————사쿠라」
흐트러진 숨결과 붉게 물든 볼과, 축축하게 땀을 머금어 끈적한 옷과——호흡할 때마다 내밀어지는 큰 가슴.
「윽———」
그 모습이 너무나도 선정적이라, 당황해서 눈을 돌린다.
사쿠라는 열에 눌려 있는데도, 어째서 이렇게 진지하지 않은 거야, 나는——!
「……곤란한데. 역시 가정부 아줌마한테 부탁하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절대 사쿠라의 옷을 갈아 입힐 수 없고, 몸을 닦아줄 수도 없다.
다행히 누워있으니 호흡은 진정되기 시작했고, 이 상태를 보건대 열을 식히기만 하면 회복하겠지.
그리고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면, 같이 병원에 가서 감기약이라도 처방 받으면 된다.
「사쿠라. 금방 사람을 부를 테니까. 그 때까지 자고 있어. 후지 누나네 가정부 아줌마라면 친숙하지」
「————」
대답은 없다.
아직 호흡은 답답하지만, 일단 잠들어 준 듯 하다.
「——후우. 정말 괜히 고집 세다니까 사쿠라는. 어째서, 그렇게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거야」
질문은 혼잣말이다.
사쿠라는 잠에 빠졌으니, 대답은 없을 거라고 알고 있다.
「그럼 안녕. 학교 갔다 올게」
침대에서 떨어져 문으로 향한다.
——그 때.
「……선배랑 같이, 학교에 가고 싶은 거에요」
그런 대답이, 귀에 들어왔다.
「사쿠라……?」
돌아본다.
사쿠라는 잠든 채, 괴로운 듯 눈꺼풀을 닫고 있었다.
「……뭐야. 그냥 헛소린가」
이번에야말로 객실을 뒤로 한다.
그 도중.
「………왜냐면. 제가, 선배를 지켜야죠」
열에 흐릿해진 목소리로, 그런 소리를 했다.
학교에 가는 도중, 후지 누나네 집에 들러서 가정부 아줌마를 수배했다.
후지 누나가 그다지 몸치장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때때로 잊어버리지만,
후지무라 가는 이쪽 주택가에서는 1, 2를 다투는 부호다.
여하튼 회사도 아닌데, 사원을 칭하는 험상궂은 형님이 수십 명 있다.
그 대부분은 후지무라 저택의 별채에 살고 있으니, 어쨌든 대가족인 거다.
필연적으로 가정부도 증원되기에, 부탁하면 할 일이 없는 가정부 아줌마를 이쪽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쿠라가 우리 집에 올 때까지 몇 번인가 신세를 진 적이 있는, 긴급 시 도우미를 이쪽으로 돌려주게 됐다.
사쿠라와는 안면이 있는 가정부 아줌마니, 충분히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점심 시간.
암묵의 룰이 되어 가고 있는 옥상에서 합류해서, 우선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봤다.
——그래서, 그 결과가.
「그럼 뭐야!?
마토 조켄은 어새신의 마스터고, 세이버가 아니라 에미야 군을 죽이려고 했어!?」
이렇게, 평소와 다르게 화낸 토오사카였다.
「그, 그런데, 뭐야 갑자기」
「갑자기라닛!
들은 걸론 조켄 녀석, 세이버가 쓰러지고 나서 에미야 군을 죽이려고 했잖아?
그런 거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순서가 잘못 됐어!」
주욱, 몸을 내밀고 이쪽을 노려보는 토오사카.
그, 기합이라고 하기보단 적의에 가까운 박력에 엉겁결에 딱 몇 cm 후퇴하지만,
장소는 이미 단골메뉴가 된 급수탑 뒤편이다.
「잠깐. 사람이 하는 말 듣고 있어 에미야 군? 지금 그 얘기,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거야?」
번뜩, 불평불만을 담아 한 번 쳐다보는 토오사카 린.
「으」
……그 박력만 가지고도 벅찬데도, 이렇게 눈앞까지 다가오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여기에, 후퇴할 스페이스 같은 건 없는 거다.
때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으으 인류에게 도망칠 곳 없음.
「에에…………에,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거야?」
「우선도의 문제야. 너와 단둘이 됐는데도, 조켄은 너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
어새신이 이겼으니 다행이었지만, 질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당연히 조켄은 세이버의 마스터인 너를 빨리 쓰러뜨리려고 할 거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
조켄은, 어새신이 세이버를 반드시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거 아냐?」
「설마. 어새신이 세이버보다 약하다는 건 에미야 군도 알았잖아? 그럼, 그 녀석은 그런 도박은 안 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건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뭐, 생각할 수 있는 건 둘 정돈데」
「둘……? 응?, 그건」
「……그건,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뭐, 그게 제일 납득이 가는 이유지.
그렇다고 하면, 조켄은 세이버를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 없어.
에미야 군이 죽는 것에 의한 마이너스 같은 건, 세이버가 사라지는 것뿐인걸」
「그거야 그렇겠지. 응, 내 취급 따위 그런 거지」
「잠까, 뭘 삐지는 거야. 어, 어디까지나 조켄에게 그렇다는 거니까, 가볍게 흘려 들어」
「? 아니, 별로 안 삐졌는데. 사실이고. 그런데, 어째서 그런 걸로 화내는 거야 토오사카는」
「! ——벼, 별로 나도 화 안 났어.
에미야 군의 착각이잖아」
「어쨌든, 조켄은 세이버 자신에게 볼일이 있었어.
마스터로서 에미야 군이 살아있어 주길 원했겠지.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데서 조켄에겐 에미야 군을 죽일 이유가 있었어.
……다시 한 번 묻는데. 그 녀석, 분명히 이제 볼일이 없다고 말했지?」
「————」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다시 떠올린다.
「토오사카의 딸에겐 아직 이용가치가 있지만 말이지.
애송이, 너는 볼일이 없다——」
「……그래. 토오사카한테는 아직 이용가치가 있다고도 했었어」
「그래. ……그쪽은 전혀 예상이 안 되지만, 나한테서 여기저기로 도망쳐 다니고 있는 건 그런 이윤가.
만나고 말면 둘 중 한쪽이 죽을 수 밖에 없지.
하지만, 조켄은 자신도 나도 아직 살려두고 싶어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만나지 않도록 숨어있다——」
흠, 하며 토오사카는 생각에 잠긴다.
「……………………」
——자.
전해야 하는 건 전했다.
그 외에 해야 하는 말이 있다고 하면, 그건 ——이후의 방침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계속 싸우는 걸 선택했다.
마토 조켄과 어새신.
도시를 배회하는 검은 그림자.
성배를 둘러싼 마스터끼리 벌이는 싸움.
세이버를 잃어도 그것을 막겠다고 결정했다.
그렇다면, 형편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이상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토오사카의 도움이 필요하다.
「——토오사카.
나는 세이버를 잃고, 령주도 없어졌어. 그럼, 이제 마스터에서 탈락한 거지」
「……그래.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에미야 군은 이제 마스터가 아냐.
성배전쟁에 관계할 필요는 없어졌고, 다른 마스터에게 노려질 위험도 엷어졌어」
「그렇지. 내가 성배를 원했던 건, 세이버가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야. ……세이버가 없어진 지금, 성배에 흥미는 없어」
「그래. 그럼, 너는 이제 안 싸울 거야?」
토오사카의 눈에 감정은 없다.
어디까지나 평등하게, 자기의 의지를 섞지 않고, 마스터로서 물은 말.
「————」
그건 물음이 아니라 충고였다.
이게 최후의 찬스다.
돌아갈 거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몸을 빼서 돌아갈 길을 준비해주고 있다.
「———아니」
그러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은 그 배려만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고 있자.
「그럴 리 없잖아. 마스터에서 탈락했어도 싸움은 포기하지 않겠어. 나는, 싸움을 막기 위해서 싸우겠다고 결심했으니까」
「——그래. 그럼 우리들의 관계도 속행이라는 거네.
서로 적이지만, 우선 그 “그림자”를 쓰러뜨릴 때까지 휴전상태라는 걸로 하자」
「?」
아무런 전조도 없이 토오사카는 웃었다.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아까 그 무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친밀하게 느껴진다.
……뭐어, 그건 내가 알 방도가 없으니 상관없지만——
「——잠깐. 적이라니 어째서.
나는 이제 마스터가 아니라구. 토오사카와 으르렁댈 이유는 없잖아」
「무슨 소리하는 거야. 서번트와 령주가 없어졌다고 해서, 네가 세이버의 마스터였던 건 변함없잖아.
완전하진 않지만 성배에 선택된 에미야 군에겐, 마지막까지 성배를 손에 넣을 자격이 있어.
무력화됐다고 해도 경쟁상대인 건 변함없지」
「그런 거야? 나에게 성배를 손에 넣을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런 건 상황 나름이잖아. 혹시 성배가 손에 들어오는 상황이 되고, 에미야 군도 꼭 성배가 필요해지고 말아서,
어쩔 수 없이 성배를 쓴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냐.
무욕한 인간이라는 건 말야, 무욕하기에 자기 이외의 것에 끌려가는 거니」
「음. 토오사카, 그건 생각이 지나쳐. 만약 성배가 필요하게 됐다고 해도, 내가 성배를 손에 넣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만일의 경우. 하지만 가능성은 제로가 아냐.
그러니, 그런 것도 포함해서 서로 적이라고 하는 거지.
마스터에서 탈락한 마술사가 교회에 도망쳐 들어가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서번트를 잃었다고 해도, 다른 마스터가 보기엔 눈에 거슬리는 방해꾼이니까. 그런 부분이 있으니, 에미야 군도 조심해서 행동해. 너를 죽이고 싶어하는 건 조켄만이 아니니까」
「음………그 충고는, 고맙게 받아두겠는데」
에, 아직 토오사카와 서로 적, 이라는 건 기쁘지 않다.
「? 뭐야, 못마땅한 얼굴 하고. 나랑 서로 적이라는 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곤란한 이유 같은 거 있어?」
「있어. 그럼 토오사카의 힘을 빌릴 수 없잖아」
「하?」
딱, 멈추고.
토오사카는 귀신을 보는 듯한 눈으로, 찬찬히 나를 봤다.
「내 힘을 빌린다니, 어째서……?」
「어째서고 자시고, 나 혼자서는 무리야.
성배전쟁을 그만두게 한다는 건, 다른 마스터를 쓰러뜨린다는 거잖아. 하지만 나에겐 힘이 그만큼 없어」
「……한심한 건 알아. 하지만 형편 따지고 있을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방법이 이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토오사카와 적은 될 수 없어.
——토오사카와는 휴전이 아니라, 협력자로서 조력해줬으면 해」
「……잠깐. 제정신이야, 에미야 군?」
「제정신이야. 나는 협력자로서는 역부족이고, 네게 거치적거릴지도 몰라.
너에겐 나와 손을 잡는 메리트가 없고, 나한테도, 너에게 갚을 게 없어.
……그렇지. 보통, 이런 협력관계는 성립하지 않아」
「흐, 흥. 뭐야, 알잖아.
네 말대로, 마술의 기본은 등가교환이야. 밑천이 없는 녀석에게 물건을 빌려줄 수는 없고,
적합하지 않은 기술자에게 힘을 빌려줄 수도 없어. 그런 건,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너도 알잖아」
「지금까지는 휴전상태였으니까 의논상대가 돼 줬지만, 협력관계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
서로 협력한다는 건 동료라는 거고, 그렇게 되면 보수도 나누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응. 하지만, 그걸 잘 알면서도 부탁할게.
——나한테 힘을 빌려줘, 토오사카. 이 빚은, 살아있는 한 반드시 갚겠어」
「살아있는 한이라니, 너 말야——」
토오사카는 시선을 돌리고 말을 흐린다.
……폐가 되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아는 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건 토오사카고,
성배를 얻는 게 토오사카라면, 아무런 잘못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다.
그래서 협력할 상대, 승리할 마스터는 토오사카밖에 생각할 수 없다.
「토오사카. 대답을 들려줘」
정면에서 토오사카를 응시한다.
「……그, 그런 건 뻔하잖아. 마스터가 아닌 녀석과 손을 잡아도, 나는」
「토오사카」
「그러니까, 그렇게 말을 해도 조력 같은 거 할 수 없고, 애초에」
「토오사카」
「……그래서야 마치, 버젓한 계약, 같잖아」
그리고.
토오사카는 한 번, 크게 고개를 숙이고
「——아 진짜, 알았어! 그럼 교환조건!」
번뜩, 똑바로 이쪽을 마주 쳐다봤다.
「? 교환조건이라니, 어떤?」
「교환조건은 교환조건이얏!
……에, 이건 어엿한 계약인걸.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말을 지킬 수 있으면, 생각해주지 못할 것도 없어」
「? ? ? 토오사카. 아까도 말했지만, 나, 지금 토오사카한테 갚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구?」
「됐으니까 들어!」
「윽……! 아, 알았어, 일단 들을게」
「좋아. 그럼 첫 번째. 협력관계가 되는 건 좋은데, 그 경우, 내가 하는 말은 똑바로 지킬 거야?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어떤 지시라도 이의 제기 안 할 거야?」
「응,토오사카라면 의미없는 지시는안할꺼고.」
「그럼 두 번째. 내가 신뢰한 만큼, 나를 신용할 수 있어?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떤 가혹한 상황이 돼도 배신하지 않을 거야?」
「배신 하지않겠어.」
「그래. 그럼 에미야 군은, 이제부터 나한테 절대복종 한다는 게 되는 거지?」
「——음」
짓궂은 웃음을 띄우고, 위험한 소리를 하는 토오사카.
마지막 질문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아니라고본다.저성격에 무슨엉뚱한짓을 시킬지도모르니....
「——아니, 될 리가 있냐……! 마술사로서 토오사카의 지시가 뛰어난 건 인정해. 하지만, 가끔은 실수도 하잖아.
혹시 토오사카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간단히 끄덕일 수 없어. 네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면, 그 때는 야무지게 반대할 거야. 올바르게 협력한다는 건 그런 거잖아」
「물론. 그렇게 나오지 않으면 협력 같은 거 할 수 없지.
나는 독주하기 쉬운 부분이 있으니, 브레이크 역할이 없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 네가 그 역할이 돼 준다면 고맙지」
「에————」
……조금, 맥 빠졌다.
이의를 저쪽이 달 걸 각오하고 반론했는데, 토오사카는 만족한 듯이 끄덕이고 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야.
만약 에미야 군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고, 그게 내게 가능한 거라면 얼마든지 힘을 빌려주겠어.
하지만……그 역이 됐을 때, 너도 같은 걸 할 수 있어?」
「? 나한테 가능하고 토오사카에게 불가능한 거……?」
그런 거 있을까.
토오사카 녀석, 실은 이렇게 보여도 요리 못한다든가?
「이봐. 제일 중요한 질문이니까 대답해. yes인가 no인가, 빨리」
「……아니. 에,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면 고맙겠는데」
「아 진짜……! 요컨대, 나를 이기게 해 주겠냐는 거야!」
「————」
볼을 붉게 물들이고, 삐진 듯이 토오사카는 말했다.
그건 어린애 응석과 비슷해서, 지금까지 봐왔던 토오사카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에——
「……응.
협력하는 이상, 반드시 토오사카를 이기게 만들겠어. 약속이야」
그걸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럼 학교 끝나면 정문에서 만나자.
오늘부터 당분간, 에미야 군은 우리 집에서 부활동을 할 테니까」
「음——부활동이라니, 토오사카 네에서?」
「그래. 손을 잡은 이상, 너를 혼자서도 싸울 수 있게 철저히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
……뭐, 에미야 군이 생초보라는 건 그날 밤에 알았으니까, 연일 나머지공부 하게 되겠지만 말야」
「아니, 그건 상관없고, 오히려 다행인데——에, 오늘부터?」
「당연하지. 우선 에미야 군의 역량을 파악하고, 오늘밤 이후의 방침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걸.
귀가는 상당히 늦어지겠지만, 에미야 군은 혼자 사니까 문제 없지?」
「에? 아니, 그 말이 맞는데. ……어째서 그런 거 알고 있는 거야, 토오사카」
「! 왜, 왜냐면 전에 에미야 군을 치료했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겠지 싶어서.
어, 어쨌든 그렇게 됐으니까, 에미야 군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
이따 봐, 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토오사카는 달려갔다.
오늘은 금요일……수업은 6교시까지 있으니까, 돌아가는 건 3시가 지난 시간이 된다.
「……곤란한데. 사쿠라한테는 빨리 돌아간다고 했지만, 역시 첫날부터 캔슬할 수는 없지」
집에서 몸조리하고 있는 사쿠라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토오사카와 행동을 같이 하자.
……뭐어, 토오사카도 피도 눈물도 없지는 않으니.
사쿠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오늘만은 빨리 돌려보내줄 가능성도 있……지, 분명히.
「————」
교문 앞에서 토오사카를 기다린다.
하늘은 온통 회색이라, 지금이라도 쏟아지기 시작할 것 같았다.
바람도 차갑고, 혹시 비가 내린다면 틀림없이 추운 밤이 되겠지.
「뭐야? 걱정거리?」
——그리고.
문득 정신이 드니, 눈앞에 토오사카가 와 있었다.
여기까지 달려온 건지, 어깨가 약간 오르내리고 있다.
「아니. 비가 내릴까 싶어서」
「아아, 날씨 말이지. 보기엔 조금 내리는 정돌까. 밤에 순회도 해야 하니, 너무 내리는 것도 곤란한데」
……음.
토오사카의 예정에는, 이미 오늘밤 순회가 짜여 있는 모양.
그건 이쪽도 바라는 바지만, 그 전에 집에 들러서 사쿠라의 상태를 봐 두고 싶다.
「토오사카, 그 얘기 말인데 말야」
「알고 있다니까. 동료끼리, 확실하게 단련해줄 테니까 각오해. 버젓이 에미야 군을 제 몫은 하게 만들어 보일 테니까」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토오사카는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곤혹스럽다.
저런 웃는 얼굴을 보여주면, 오늘은 일찌감치 돌아가고 싶다, 라고 절대로 말을 꺼낼 수 없다구…….
교차점에서 남쪽, 긴 비탈길을 오른다.
여기부터는 서양식 집들이 늘어선 주택가다.
토오사카 네는 이 비탈길의 정점, 사쿠라 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우와——」
여기가 토오사카 저택인가.
크기라면 사쿠라 네 쪽이 크지만, 뭐라고 할까, 확실히 서양식 저택이란 느낌이라 넋을 잃고 보게 되고 만다.
……거기다, 생각 탓인지 차갑다고 할까.
방문하는 자를 거부하는 듯한 공기가, 비탈길을 다 올라온 근처부터 떠다니고 있었던 듯한 생각이 든다.
「왜 그래, 발 멈추고. 내 집, 여긴데?」
「아——응, 알아. 그저, 왠지 모르게 위압당했을 뿐이야」
「……그래. 우리 집은 에미야 군 네와는 다르니까.
마력의 기척에 어두운 너라도, 여기가 지닌 차가움은 감지할 수 있다는 거구나」
흥미 없는 듯이 말하고, 토오사카는 척척 나아간다.
「자, 빨리 와. 함정 같은 거 설치 안 돼 있으니까, 망설일 거 없잖아」
현관에서 손짓하는 토오사카.
「………아니. 망설이고 있는 건 분위기 때문만이 아닌데 말이지」
혼자 중얼거리며, 각오를 하고 토오사카 저택으로 발을 옮긴다.
……확실히 차가운 분위기는 나지만, 그런 건 두 번째인 거다.
저 녀석은 에, 토오사카 린의 집에 방문한다, 라는 게, 남자에게 얼마만큼 일대 이벤트인지 모르고 있다.
……뭐어, 그런 걸 토오사카한테 설명해도 알아주지 않을 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게 고작이겠지만.
——근데.
「어, 어째서 거실이 아니라 갑자기 네 방인 거야!」
거실에 안내된 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토오사카의 방에 안내돼 버렸다.
「어째서라니, 여기 쪽이 도구가 갖춰져 있어선데.
거실은 차를 마시는 데고, 딱히 차 마시러 온 게 아니잖아?」
「아——으. 그건, 그런데」
에, 조금은 동갑 이성 사이라고, 고려해주지 않으려나.
「? 어쨌든 적당히 앉아. 성별은 세이지와 카드로 할 건데, 어느 쪽이든 싫으면 지금 말해둘 것」
덜컥, 침대 옆에 놓인 상자를 여는 토오사카.
상자는 모험물 영화에 나오는 보물상자랑 꼭 닮았다.
「에에……대사부의 마노 같은 거 써도 별 수 없나……어라, 세이지 떨어졌네. 아쳐, 지하에서 2, 3 송이 좀 가지고 와」
「진홍 샐비어지. ……뭐어, 그 남자를 판별하는 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야」
「내 맘이잖아. 그리고, 가지고 오고 나서 당분간 지하에서 쉬고 있어.
그와는 협정을 맺었으니까, 일일이 호위 안 해도 되잖아」
「——그렇군. 그 남자에게 너를 속일 배짱 따위 없지. 나는 밤에 대비하도록 하지」
지금 그건 아쳔가.
영체가 돼 있을 때는 기척이 엷어지는지, 그 정도로 강력한 마력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놀랐는데. 같은 방에 있다니 깨닫지 못했어」
「영체가 돼 있으면 그런 거야. 만약 실체화하고 있어도, 이 저택에 있는 한 마력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
외부에의 마력차단 같은 거, 공방으로는 초보 중의 초보니까」
「흐응. 그럼 에, 마키리……가 아니라 마토 저택도 마찬가지인 거야?」
「그래. 물론, 거기는 이미 마력을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
숨기고 있다고 하면 집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이 아니라 마술사 본인에게서 새는 마력이겠지만」
「뭐, 어느 쪽이든 마력을 숨기기만 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된다는 거지.
본래 같으면 학교에도 아쳐를 데리고 갈 상황이지만, 지금 그 녀석, 제 몸 상태가 아니니까 낮엔 쉬게 하고 있어」
토오사카는 부스럭부스럭, 언짢은 얼굴로 보물상자를 뒤진다.
……좀처럼 찾고 있는 게 찾아지지 않는 것 같은데, 혹시 저 녀석, 정리정돈과는 연이 없는 사람인 걸까?
「……정말, 보통 상처는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데, 어째서 세이버의 검에 입은 상처만은 치료할 수 없는 걸까, 그 녀석.
무언가 인연이 있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데……
근데, 어째서 이렇게 대사부의 보석만 나오는 거야……보통 때는 전혀 안 나오는 주제에, 이게」
몸을 내밀고 보물상자를 더듬어 찾는다.
……저 상자, 작은 것 같으면서 토오사카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로 깊은 듯 하다.
「——하아」
어찌되었든, 이래서야 각오하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 하면, 토오사카가 목적하는 도구를 찾아내도록 빈다든가,
정처 없이 토오사카의 방을 바라보는 것 정도——
「……?」
그 때.
무언가, 굉장한 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사진 한 장이었다.
방 구석에 있는, 허리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책장.
그 위에, 사진은 잊혀진 듯이 놓여있었다.
손에 드니 먼지가 떨어져,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청소를 안 한다……라는 건 아니지. 이 사진만 내팽개쳐져 있는 거구나」
토오사카, 어릴 적의 자신을 보는 거, 싫은 걸까.
……아니, 그렇다면 사진을 꺼내두지 않으면 되는 거고, 소중하지만 만지고 싶지 않은 물건……이라든가.
「…………그렇다고, 해도」
인간, 변하려고 하면 변하는 법이라고 할까.
보기에 5, 6살 정도인 토오사카는, 뭐라고 할까, 굉장히 사랑스럽다.
「……옛날부터 머리는 길었구나. ……응, 어라?」
사진 안의 토오사카는, 현재의 토오사카를 그대로 어리게 만든 모습이다.
그렇기에, 딱 하나 다른 부분이 신경 쓰였다.
「기다렸지, 준비는 다 됐어. 이제부터 조?금 아파해 줘야겠지만 신경 쓰지 마……근데, 왜 그러는 거야, 에미야 군?」
「응. 토오사카, 이거」
찾아낸 사진을 내민다.
「뭐야, 옛날 사진이잖아. 구석에 놓아뒀는데, 그게 어딘가 이상해?」
「에……아니,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 여기」
뭐라고 할까, 별 상관없는 차이이기에 말하는 게 꺼려졌다.
정말, 별로 이런 건 일부러 물을 필요도 없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 그래, 리본이 다르다는 거지, 에미야 군은」
「————」
끄덕이기만 해서 대답한다.
「그런 거 당연하잖아. 여자애인걸, 머리 묶을 거 같은 건 얼마든지 가지고 있어.
아무리 마음에 든 거라고 해도, 십여 년이나 같은 걸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
과연, 듣고 보면 그 말이 맞다.
특별할 거 없는 리본이고, 대체 뭐가 걸렸던 걸까, 나는.
「라는 건 그냥 해 본 말이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머리 묶는 물건은 특별해.
여자 마술사에게 머리카락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잖아. 묶는 것도 상응하는 마술품이니까, 여벌 같은 건 좀처럼 없어」
「……헤에. 그럼 그 리본, 일종의 마술품인 거야?」
「응. 머리를 묶는다, 라는 건 마력을 묶어둔다는 거니까.
토오사카는 마안 보유 혈족이 아니니까, 하다못해 머리카락만이라도 예비마력을 모아두지 않으면 안 돼.
그래서,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거니까, 머리 묶는 도구는 자기가 만드는 쪽이 좋잖아」
「그거, 내가 제일 처음 만든 리본이야. 마음에 든 거였지만, 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내놨던 거지.
……자, 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야. 바로 성별을 시작할 테니까, 우선 거기 의자에 앉아줘——」
토오사카에 의한 마술진단은, 비교적 간단히 끝났다.
향을 태우고 타로 카드 같은 점을 치고, 몇 개인가 성격판단 같은 질문에 대답했을 뿐.
토오사카는,
「——해당 없음. 이 이상은 헛수고네」
라고 하고, 일찌감치 에미야 시로라는 마술회로 판단을 포기한 것이다.
「우와. 그거 알 수 없다는 거야?」
라고, 그만 반사적으로 응수하자,
「실례되는 말을. 에미야 군이 오대원소에 관계되어 있지 않다는 건 알았어.
거기에서 더 나간 성별은 내 전문 밖이니까, 이 이상 조사하는 건 헛수고잖아.
남은 건 에미야 군이 쓸 수 있는 마술을 보고, 거기에서 추측할 뿐이야」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오사카가 준비한 점토를 상대로 “강화” 마술을 복습했다.
점토는 에테르 덩어리라고 해서, 아무리 가공해도 원래 덩어리로 돌아오는 묘한 것으로, 대단히 마력이 잘 통한다.
간단히 강화가 되기에 원래대로 돌아오나 불안해졌지만,
「시육(視肉) 같은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어지간히 강한 마력으로 옭아 매도, 하루면 복원돼 버리는 재질이니까」
라든가 뭐라든가.
덧붙이자면 시육이라는 건, 중국에 전해지는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고기, 였던가.
……해서 뭐어, 어쨌든 오로지 점토 상대로 “강화”를 시도했다.
토오사카 앞에서 실패할 수는 없었지만, 성공한 건 열 번 중 두 번뿐.
세이버가 있을 때는 그렇게나 순조롭게 됐던 마술회로의 발현도, 이번엔 매우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강화” 마술 중, 몇 번인가 토오사카에게 질문 받았다.
그 주문은 자기류인 거냐 라든가, 강화 이외에 쓸 수 있는 마술은 없냐 라든가,
키리츠구는 어떤 방법으로 가르쳤느냐 라든가, 그리고——가장 이미지하기 쉬운 건 무엇인가 라든가.
그래서.
질문할 때마다 토오사카는 얼굴이 흐려져 가서, 마지막에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런 얼굴을 하면 매우 있기 거북하다.
「토오사카? ……에,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너무 미숙한 레벨에 어이가 없어서 협력관계가 된 걸 후회하고 있다던가?」
제일 있을 성 싶은 불안을 물어본다.
「에……? 응, 후회는 하고 있지만……미숙하다고는 해도,
네 경우는 가르치는 법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할까, 잘도 그런 방법으로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있었다고 할까」
토오사카는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어?이, 토오사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
어째서 거기서 노려보냐, 너는.
「……좋아. 어쨌든 근본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그리고 아까 한 얘기 말인데, 에미야 군의 공방에는 “투영”한 게 아직 남아있다는 거 사실이야?」
「남아 있어. 부수지 않는 한 남잖아, 보통」
“강화” 중 한숨 돌릴 때, 마술이 잘 안 될 때 기분전환으로 하는 “투영”에 대해서는, 아까 질문에서 대답했다.
토오사카는 거기에 구애되고 있는 듯 해서, 딱 한 번, 찰흙을 써서 투영하라고 내게 말했다.
과제는 질주전자. 도중까지 잘 되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은 실패했다.
「——흥. 우선 에미야 군한테는 스위치 넣는 법을 가르쳐줄게.
실제로 체내에 스위치를 만드는 편이 손쉬우니까, 오늘밤은 우리 집에 자고 가.
우악스럽게 하게 될 테니까 하룻밤 드러눕게 될 테고」
「에——하룻밤 드러눕다니, 여기서 말야?」
「뭐야 그 얼굴. 안심해, 딱히 메스질하는 게 아니라, 약을 좀 마실 뿐이니까.
뭐, 효과가 너무 세서 당분간은 움직일 수 없게 되지만 말야」
「아……아니, 거친 게 싫다는 게 아니라 말이지」
……시계를 본다.
시간은 벌써 5시 전이다.
오늘은 구름이 껴 있어서 깨닫지 못했지만, 벌써 해질녘이 돼 있었다.
토오사카는 전우로서, 나를 마술사면에서 돌봐주고 있다.
그건 기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집에 남겨두고 온 사쿠라도 걱정이다.
토오사카에겐 미안하지만, 확실히 말해야겠지.
「토오사카. 그거, 우리 집에서 해도 돼?」
「에? 우리 집이라니, 에미야 군네 집?」
「응. 사쿠라가 감기로 드러누워 있어서, 상태를 봐 두고 싶어.
하룻밤 드러눕게 된다면, 집에 돌아가서 사쿠라가 어떤지 봐 두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어」
「이런——그러고 보니, 그랬지」
……기막혀 하고 있다.
그렇지, 내 쪽에서 협력해 달라고 말을 꺼내놓고, 오늘은 사정이 안 좋으니까 이제 돌아간다고 말하면 누구라도 화를 내——
「바보! 더 빨리 말해주면, 이렇게까지 잡아두지 않았는데……!」
「…………에?」
소리지르자마자 일어서서 방을 횡단, 행어에 걸어뒀던 코트를 걸친다.
「가자. 집에서 할 일은 끝냈고, 남은 건 에미야 군 네에서도 할 수 있어.
사쿠라의 간병이 끝나면 이 뒤를 할 테니까, 서둘러 돌아가자」
「에——아, 응.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흥. 그리고, 다시 떠올리는 것도 울화가 치미니까 지금 가르쳐줄게.
——네 본분은 “강화”가 아니라 “투영”이야.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고, 뭘 어떻게 착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본래 “만드는 편”에 속하는 마술사니까」
토오사카는 척척 복도를 걸어간다.
「?」
거기에 머리를 갸웃하면서, 어쨌든 토오사카의 뒤를 쫓아, 역사 깊은 토오사카 저택을 뒤로 했다.
초침 소리가 몹시 크게 느껴져서,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시간은 4시가 지난 즈음.
학교는 진작에 끝났고, 돌아오는 길에 상점가에 들렀다고 해도, 이미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떻게 된 걸까. 선배, 늦네에」
벽에 기대서,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 라」
둔하게, 열을 동반한 현기증이 온다.
입 밖에 낸 목소리가 작은 것에 놀랐다.
초침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까지 크게 들리는데도, 자신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귓바퀴에 울리는 것은 간단한 소리뿐이다.
째깍째깍, 오차 없는 리듬을 구분하며 나아가는 시계와,
두근두근, 괴로운 듯이 피를 보내는 심장.
그 두 소리가, 귀를 막아도 머리에 들어와서, 그녀의 현기증은 더욱 강해져 간다.
「이상하네에……감기, 정말로 나았는데」
그래서 가정부 아주머니는 돌려보냈다.
열을 쟀더니 정상이었고, 점심밥도 자신이 만들 수 있었다.
오후에는 이미 여느 때의 자신으로 돌아와 있어서, 이 저택의 진짜 주인이 돌아오는 걸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뜨거워——」
그런데도, 지금은 온몸이 뜨거웠다.
열원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 이외의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혈관과 혈관 사이, 들어갈 틈 따위 없을 터인 근육이 포개진 곳.
그 속에 자기 이외의 것이 들어서, 자동차 엔진처럼 돌고 있다.
——그런 상상을 해 버릴 정도로 그녀의 열은 높고, 한없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그 감각은 기괴하다고 하면 기괴했고, 불쾌하다고 하면 불쾌했다.
괴로워 보이는 건 자신만이 아니다.
몸 안, 혈관이라든가 신경이라든가 그런 것 사이를 기어가는 것들도 고생인 듯 하다.
비유하자면, 꽉 고기가 들어찬 통조림 속에서, 출구를 찾고 있는 강아지 같다.
열의 원흉……몸 안에서 꿈틀대는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온 힘을 다해 소화하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그녀는 그 감각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시계 소리, 크다……」
멍하니 시계를 올려다본다.
시간은 4시 반.
앞으로 조금. 앞으로 30분만 지나면, 틀림없이 돌아온다.
그 때까지 몸을 잘 진정시켜서, 몸 안에서 여기저기 달리고 있는 것을 조용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괜찮아……이런 적,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그렇다, 그 행위에는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몇 번이나 길들여지고, 교정됐다.
그래서 이번도 간단히 진정될 거라고 생각했는데——열은 내려가지 않고, 몸 안의 것은 속도를 올리기만 했다.
몸이 진정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됐던 게 되지 않는다.
무엇이 부족한가,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이 변해버린 건가.
그걸 필사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시계바늘이 방해를 해서 사고는 조금도 확정되지 않는다.
「——어라……? 이, 소리」
그게 시계소리가 아니라, 이 저택 자체가 내는 경고음이라고 겨우 깨달았을 때.
「뭐야, 에미야는 없는 거냐. 그거 잘 됐군」
신발을 신은 채, 그녀가 잘 아는 인물이 나타났다.
「오라, 버니」
「흥? 뭐야, 에미야가 없다 했더니 혼자서 참고 있었던 거냐. 할아버지 말대로, 라이더를 너무 쓴 반동인 걸까」
남자는 거실에 들어와, 벽에 기댄 소녀에게 다가온다.
「아——」
도망치려고 하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도망칠 기력도 없다.
여기서 도망쳐봐야, 어차피——자신은, 절대 완전히 도망칠 수 없으니까.
「마지막 출연이다, 사쿠라. 말했었지, 뭐든지 하겠다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굳어진 웃음밖에 없다.
「——오라, 버니」
「자 가자, 에미야와 결판을 짓는 거야. 너도 그 녀석 우는 얼굴이 보고 싶을 테니까 말야, 특등석에서 보여줄게」
남자는 소녀의 팔을 당겨 일어나게 한다.
「싫어——싫어, 요, 저……!」
잡힌 팔을 풀려고 하지만, 그녀에게 그 정도 힘은 없었다.
남자는 싫어하는 그녀를 끌어당겨, 난폭하게 목을 잡는다.
「그렇게 반항하지 마, 사쿠라. 무의식 중에 죽이고 싶어져 버리잖아. 너는 말야, 그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된다니까」
「싫어——아니에요, 약속이 달라요, 오라버니……! 선배한테는, 이제 손대지 않겠다고 했는데……!」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저항한다.
그걸, 남자는 발로 막았다.
끌어안은 소녀를 놓고, 아무렇게나 배에 발가락을 꽂아 넣은 것이다.
「으——크…………에……」
바닥에 웅크린 소녀에게서 오열이 터진다.
「다정하기도 하지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약도 있는데도, 안 써 줬으니까」
남자는 웅크린 소녀를 억지로 세운다.
「아……아학, 으——」
콜록거리는 소녀를 끌어안고, 남자는 다시 한 번 목을 잡았다.
「안심해, 약속은 지킬 거야. 에미야는 죽이지 않을 거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선 입 다물어 주지.
다만 조금, 그 녀석에겐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마음이 안 풀린다구, 이쪽은」
소녀의 볼에 닿을 정도로 입을 가까이 하고, 남자는 즐겁게 말했다.
「윽——, 으——」
목을 잡혀, 소녀는 분한 듯이 입을 다문다.
반드시 이렇게 된다고, 이미 몇 번이나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을 받아들이듯이.
「그래, 너는 그거면 돼. 그럼 한 발 먼저 가 있자, 사쿠라. 여기는 에미야의 진지고 말야, 놀 거면 내가 만든 진지여야지.
라이더, 그 여자를 데리고 와」
난폭하게 소녀를 떼밀고, 남자는 거실을 뒤로 한다.
「——라이, 더」
엎어진 소녀가 얼굴을 든다.
거기에는 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서번트의 모습이 있었다.
「다녀왔어?!」
말을 하며 현관에 들어온다.
「————」
순간.
무언가, 좋지 않은 위화감이 덮쳐왔다.
「에미야 군, 복도」
「————」
그런 말을 들을 것도 없다.
복도에는 발자국 같은 것이 있었다.
신발은 사쿠라의 것뿐.
부탁해 뒀던 가정부 아줌마의 신발은 없고, 저택은 고요하다.
「사쿠라」
객실에 들어간다.
방에는 아무도 없다.
좋지 않은 위화감은, 불길한 확신으로 바뀌어 간다.
거실에 돌아온다.
여기에도 사쿠라는 없다.
복도에서 이어지는 발자국은 거실에서 끝나있다.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온 누군가는, 여기서 무언가를 하고, 또 밖으로 나간 듯 하다.
「……에미야 군. 거기 바닥 봐.
작지만 핏자국이 있——」
「알아. 여기에 사쿠라가 있었어」
그렇다, 안다.
사쿠라는 거실에 있었으며, 혼자서 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은 없다.
복도에는 낯선 발자국이 있다.
이야기는 그것뿐이다.
결론이 나오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조금 생각하면 답은 분명하게 나온다.
냉정하게.
냉정하게.
냉정하게.
냉정하게 돼서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파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 윽」
이 머리는, 조금도 돌아주지 않는 건가.
「이, 이봐, 에미야 군……!?」
「————」
더 빨리 돌아와야 했다.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나는 이렇게 되는 걸 우려해서, 사쿠라를 우리 집에 맡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사쿠라는 관계 없다고 마토 조켄은 말했다.
그런 말을 어째서 믿은 건가.
사쿠라가 마토의 인간인 한, 관계 없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어째서.
어째서 그런, 나에게만 좋은 이야기를, 간단히 곧이곧대로 믿었나——!
「———」
전화 벨이 울려 퍼진다.
잠자코 있는 토오사카에게 끄덕이고,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이제야 돌아왔냐, 에미야?』
전화를 건 사람은 신지다.
잘못 들을 리가 없고, 이럴 거라고 알고 있었다.
「사쿠라를 어쨌어」
『아? 어쨌냐니, 당연히 돌려받았지. 그 녀석은 내 거니까, 언제까지고 다른 사람 집에는 놔둘 수 없고 말야』
「신지」
『하하! 좋은데, 흥분했잖아, 에미야! 사쿠라를 뺏겨서 분하다는 거지!』
신지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지, 토오사카는 몸을 이쪽으로 내민다.
그걸 한 손으로 제지하고, 이야기를 계속할 것을 재촉했다.
「빙 둘러서 말하는 건 됐어. 빨리 용건을 말해」
『헤——알잖아. 이제 슬슬 결판을 내자구 에미야. 너도, 요전에 있었던 그 건으로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
「아니, 생각하고 있어. 너는 도망쳤잖아. 결판이라니, 그걸로 나 있는 거 아니냐」
『나지 않았어……! 그건 서번트의 차다, 네 힘이 아냐! 세이버만 없었으면 절대 내가 도망치지 않았어! 지금도, 세이버만 안 나오면 내가 질 리가 없지……!』
세이버만 안 나오면……?
……그런가.
신지는 내가 세이버를 잃은 것을 모르는 듯 하다.
그래——그래서 사쿠라를 납치한 건가.
즉, 이 전화는.
「신지. 사쿠라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무 짓도 안 해. 하지만 그것도 네가 나오는 태도 여하에 달린 거라구?
네가 혼자서 나한테 온다면 사쿠라한테는 아무 짓도 안 해. 이 의미, 당연히 알고 있겠지?』
「윽——!」
토오사카를 막는다.
여기에 토오사카가 끼어들면, 신지가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다.
「요컨대, 세이버 빼고 싸우라는 거냐」
『좋은데, 중요한 데서 이해력이 좋아서 다행이야.
——장소는 학교다. 알았냐, 부디 혼자서 오라구.
여기에는 라이더가 결계를 치고 있으니까 말야. 세이버를 데리고 오면 바로 알아.
그렇게 됐을 때——이 녀석이 어떻게 될지, 보증은 좀 할 수 없는데』
「윽, 아우……!」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바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일단 물어보지. 너는 마스터냐, 그렇지 않으면 사쿠라의 오빠냐」
『핫……! 농담은, 어째서 내가 이런 굼벵이의 오빠인 거야. 뭐, 너를 꾀어내는 데 도움이 되니, 아주 무능한 건 아니지만 말야』
「——알았어.
마스터로서 싸우러 가겠다, 신지」
『그래. 싸움이 되면 말이지만 말야』
수화기를 놓는다.
그대로, 발을 돌려서 복도로 향했다.
「기다려……!
정말로 혼자서 갈 생각이야, 너!?」
「그렇게 지정을 받았어. 토오사카, 얘기는 나중에 해줘」
「나중에 하라니,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
신지가 사쿠라를 데리고 간 건 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잖아. 너, 그대로 가면 죽어. 그런 거 보면 사쿠라도 못 견디지. 지금은 상황을 봐서, 작전을 세워야 해」
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수화기 너머의 신음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있다.
「——그럴까. 사쿠라 앞에서 죽일까, 신지」
「응……그건 모르겠지만, 사쿠라를 인질로 쓴다면 가능성은 높지. ……근데, 에미야 군 괜찮아? 너, 냉정한 것처럼 보이는데 혹시 뚜껑 열린 거야?」
뚜껑 열려?
그건 즉, 지금 바로 학교에 달려가서 신지를 두들겨 팬다는 거 밖에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건가.
그래, 그거라면——
「뚜껑 열렸어.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어. 지금까지 남매니까 라면서 참견하지 않았던 자신에게도 뚜껑 열렸어.
그 녀석은 오빠가 아니라고 했어. ——그런 녀석에게, 사쿠라를 뺏겼어」
「뺏겼으니 다시 뺏어오겠어. 토오사카는 참견하지 말아줘」
밖으로 나온다.
올려다본 하늘은 어둡고, 곧 해가 지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오늘밤은 틀림없이 비가 내린다.
그 전에, 사쿠라와 함께 여기에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기다리라니까……! 너 혼자선 구할 수 있는 녀석도 못 구하니까, 나랑 손을 잡자고 한 거 아냐……!?」
「————」
발을 멈춘다.
그 말은, 끓어오르고 있었던 머리에 냉수를 끼얹어줬다.
「——미안. 하지만 사쿠라가 위험해. 혼자선 자살행위라고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그렇겠지. 신지가 사쿠라를 확보하고 있는 이상, 나도 쉽사리 힘은 빌려줄 수 없어.
하지만 에미야 군. 네가 어떻게든 해서 신지에게서 사쿠라를 되찾아준다면, 그 뒤는 내가 어떻게든 할게」
「——어떻게든 한다니, 신지를 말야?」
「신지가 아니라 라이더야. 서번트의 상대는 서번트가 하는 법이잖아.
나는 가능한 한 가까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테니까, 어쨌든 사쿠라를 구해줘.
그렇게 하면, 비록 1초 뒤에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라도, 절대로 너를 구할 테니까」
자신을 타이르듯이 토오사카는 말한다.
……그건, 확실히 토오사카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겠지.
나는 그걸 잘 알면서 토오사카의 힘을 빌리고, 토오사카도 그걸 지키려고 해 주고 있다.
그걸 듣고, 분노에 치우쳐 있었던 마음에 각오가 됐다.
나는 토오사카를 의지한다.
그 대신에, 반드시——사쿠라를 상처 없이 되찾는 거다.
「알았어. 그 뒤의 원호는 맡길게, 토오사카」
「그래. 하지만 거기에는, 네가 분명히 무사하고, 확실히 사쿠라를 지켜주고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아무리 아쳐라도 라이더의 상대를 하면서 사쿠라를 지킨다, 같은 짓은 할 수 없어.
자기 안전과 바꿔서 사쿠라를 구해도, 그런 거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
교사에는 인기척이 없다.
혼수상태 사건이 다발한 게 하교시간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6시 전, 학생은커녕 교사조차 남아있지는 않겠지.
「——신지가 있는 곳은 알 수 있어, 토오사카?」
「……그 녀석 성격으로 봐서 교사 안이겠지. 높은 데고, 동시에 친숙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을 게 뻔해」
그럼 해당되는 장소는 하나뿐이다.
3층 교실에 신지는 있다.
「먼저 갈게. 토오사카는 나중에 와 줘」
「……응. 10분 지나면 나도 정문을 들어서겠어.
아직 얘기하지 않았지만, 여기엔 결계가 쳐져 있어.
기척을 숨겨봐야 들키고 마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라이더와 신지의 주의를 끌어줘」
끄덕, 하고 수긍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등에는 뜨거운 철이 들어있다.
마술회로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나에게 용납된 “강화” 단 하나는,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쿠라를 지키기 위해 쓰는 거라고,
안달하는 마음을 타일렀다.
첫댓글 잘봣어요~ ㅎ
잘봐주셨어요^^~ㅎ
즐감이요~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