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교육행정연구실 원문보기 글쓴이: 정태범
함수곤 교수의 한밤의 사진 편지 제458호(06/12/29/금)
"꿈은 이루어 진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칠순의 할머니는 누구일까요? 일본인 할머니신데 아주 대단한 분이십니다.
할머니의 이름을 대면 금방 아실지도 모릅니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1937년생)입니다.
최근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권(15권)을 출간한 시오노 나나미가 12월 16일, 일본 도쿄 상공회의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들 얘기를 쓰면서 굉장히 즐거웠다”고 밝힌 시오노는 아베 일본 총리를 거론하면서 “재미없는 남자는 굉장히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늘은 이 대단한 할머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할머니의 역작인 '로마인 이야기'란 책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4년부터 1년간 제가 일본 교과서 연구센터의 객원 연구원으로 도쿄에서 지내고 있을 때
서점에 가면 항상 전면에 진열되어 있던 그 책이 유난히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이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요즘 그것이 후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의 존재에 대해서는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뒤 서울에서도 '한길사'에서 그책을 번역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시오노나나미 할머니를 초청해서 고려대에서 독자들과의 대화광장도 마련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완간된 15권을 모두 읽어 보고 로마에 다시 가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1992년에 '로마인 이야기'(1권)가 처음 나왔는데 그 이듬해 시오노 작가는 그 책으로 신조학예상을 이미 수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도 그 책의 광고가 자주 큰 사이즈로 등장하곤 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1992년에 이책의 제1권을 내면서 "매년 한권씩 이책을 출판하여 2006년에 15권으로 완성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약속대로 매년 한 권씩 이책은 나왔고, 며칠 전에 이책의 제15권이 드디어 출판되었습니다.
칠순의 시오노나나미 할머니는 자신이 15년 전에 한 약속을 어김 없이 그대로 지켰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할 수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로마 제국의 역사와 생각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 쓴 대작을 세상에 내 놓겠다는 꿈을 실현했습니다.
이 할머니의 '로마인 이야기' 15권 완간을 보면서 저는 꿈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또 한번 확고하게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할머니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나 또는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로마제국의 천년 역사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 더 소중한 또 하나의 메시지를 선물했습니다.
꿈을 놓아 버리지 않고 끈질기게 추구한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에 못다 이룬 꿈, 2007년에도 놓지 말고 계속 추구하시길 빕니다.
비록 그 꿈이 원대하고 야망에 찬 큰 꿈이든지, 또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작은 꿈이든지 말입니다.
가는 年을 잡지 말고 미련없이 잘 보내시고 오는 年을 잘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연초에 좀 쉬고 새해 1월 3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함 수곤 드림
만일 시오노 할머니가 위 사진을 보았다면 "내게도 한 때 너희들 같은 시절이 있었지." "난 '로마인 이야기' 쓰느라고 다 늙어 버렸단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 ‘로마인 이야기’(新潮社)를 완간한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씨가 “지금은 머리가 텅 빈 상태”라며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92년 ‘로마인 이야기’의 제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출간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책을 200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발표해 전 15권으로 완결짓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작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제2권 ‘한니발 전쟁’을, 94년엔 제3권 ‘승자의 혼미’를 발표하는 등 매년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다.
1년의 절반은 자료를 읽고, 나머지 절반은 집필에 매달려온 산고(産苦)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제15권 ‘로마세계의 종언’을 내놓으면서 ‘로마 천년사’를 담은 방대한 저작의 마침표를 찍었다.
“민족, 생각, 습관, 종교 등이 다른 사람들이 공생하는 게 가능했던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쓰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고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의 세계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다른 생각을 갖고도 함께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책을 읽어줬으면 합니다.”
시오노는 로마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묻자 “로마인이 모두 해먹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민족이 더 뛰어나면 그 사람에게 충분히 맡겼다는 점”이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그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 “가장 나쁜 건 힘과 정신력이 있는데도 눈 앞의 이익을 보고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작은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큰 걸 놓치게 된다”면서 “일본인에겐 내셔널리즘이 이런 경우”라고도 했다. 그는 또 “조직의 성원 모두를 위해 자기 배를 채우지 않는 것”을 리더의 첫째 요건으로 들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역사를 만들기보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책을 써서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적 열광과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그럴 각오도,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 ‘팍스 차이니즈’를 거론하면서 “팍스와 패권(헤게모니)은 다른데 중국이 패권을 잡고 나서 국제질서를 이루려는 의욕이 있을까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역사가 재미있다고 말하면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니까 그같은 자세 자체를 거부한다”고 꼬집었다. “역사에 어둡다는 것은 인간에 어둡다는 뜻입니다. 역사란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니까 잘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인간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마지막권인 제15권은 로마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15일 일본 신초사(新潮社)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국내에서는 한길사에서 내년 1~2월에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시오노는 “국가로서의 종말이 아니라 로마 문명의 종말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로마 세계의 종말은 지중해의 수평선 위에 이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할 때, 다신교의 세계가 일신교의 세계가 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서로마가 멸망한 476년이 아니라 7세기를 마지막으로 잡은 이유입니다.” 향후 집필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힌 시오노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얌전한 남자를 그리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도쿄|김진우기자〉 “철저한 고증…빈틈은 상상으로 메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했다.
가쿠슈인(學習院)대를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로마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독학으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를 탐구해갔다.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부터 시작해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신의 대리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여류문학상) ‘바다의 도시 이야기’(산토리 학예상)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 전쟁 3부작과 ‘주홍색의 베네치아’ 등 살인 3부작 등을 뽑아내며 굵직한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집필한 책으로 준비에만 20년, 시리즈 완간에만 15년이 걸렸다. 200자 원고지 2만1천장에 달한다. 책은 기원전 753년 전설의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때부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천년이 넘는 역사를,
제1~5권의 ‘융성기’, 6~10권 ‘안정기’, 11~15권 ‘쇠퇴와 멸망’
세 단계로 나눠 담아냈다.
국내에선 1995년 제1권과 2권이 동시에 첫 선을 보이면서
출판계에 인문·교양서 열풍을 일으켰다.
각 권당 10만부 이상이 팔렸고, 지금까지 2백만부 넘게 팔렸다.
시오노는 명쾌한 논리와 도전적인 역사 해석으로 독자들을 매혹시켜왔다. “철저한 고증과 사료에 바탕을 두었으되 역사적 기술로부터 벗어나 있고, 사료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했으되 픽션에 빠지지도 않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처럼 사료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상상’에 의존하는 그의 역사서술을 비판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또 힘(권력)과 제국주의를 깔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도쿄/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시오노 나나미 (鹽野七生)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 시절 《Ilias 일리아스》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하여 라틴어를 독학하였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을 졸업하였는데,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책에서 접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 후 1964년 《일리아스》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탈리아에 온 시오노 나나미는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잠시 일본에 귀국했다가, 1970년 다시 이탈리아로 건너가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하여 피렌체에 정착하였다. 이후 어떤 공공 교육기관에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이탈리아사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저서들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의 초기 작품으로는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르네상스기의 인간적인 교황을 그린 《신의 대리인》 등이 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와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의 전쟁 3부작을 썼다. 1990년대에는 본격적인 소설 쓰기에 나서,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를 무대로 《성 마르코 광장 살인사건》 《메디치가 살인사건》 《로마 교황청 살인사건》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의 장구한 역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1992년부터 출간하였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 1983년 기쿠치 히로시상, 1988년에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로 여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93년 《로마인 이야기》로 신조 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상을 수상하였다 프로필 1937年 ( 0歲) 7월 7일, 東京都 출생 1962年 (25歲) 학습원 대학 문학부 철학과 졸업 1963年 (26歲) 이탈리아 유학 (1968년 까지) 1968年 (31歲) 집필활동 개시 1969年 (32歲) 『르네상스의 여자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 작가 데뷰
1970年 (33歲) 처음으로 쓴 장편『체자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도 마이니치 출판사 문화상을 수상. 다시 이탈리아
로 건너가 피렌체에 거주
1972年 (35歲) 『이탈리아에서의 편지』『신의 대리인』 1973年 (36歲) 『사랑의 연대기』를 「쥬논」지에 연재 (1974년까지) 1974年 (37歲) 아들 태어남 1975年 (38歲) 『사랑의 연대기』 『이탈리아로부터』 1979年 (42歲) 『어부 마르코가 본 꿈』 1980年 (43歲) 『콘스탄티노플의 나릇배사공』 『바다의 도시 이야기』 1981年 (44歲) 『속 바다의 도시 이야기』 1982年 (45歲)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1981년도 산토리니 학예상 (사상역사부문) 수상『이탈리아 遺聞』
1983年 (46歲) 지금까지의 저작활동에 대해서 菊池寬賞 수상 『남자들에게』를 「花椿」지에 연재(1988년까지)『살
로메 유모의 이야기』『콘스탄티노플의 함락』
1985年 (48歲) 『남자의 초상』을 「文藝春秋」지에 연재(1986년까지) 『사일렌트 마이놀리티』『로도스島 공방기』
1986年 (49歲) 『남자의 초상』 1987年 (50歲) 『성 마르코 살인사건』을 「週刊朝日」에 연재『레판토 해전』『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1988年 (51歲)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로 1987년도 여류문학상(中央公 論社주최)를 수상『마키아벨리 어록』『성 마르코 살인
사건』
1989年 (52歲) 『메디치家 살인사건』을 「週刊朝日」에 연재(1991년 까지)『남자들에게』
1990年 (53歲) 『교황청 살인사건』을 「月刊Asahi」지에 연재(1991년 까지)『메디치家 살인사건』
1991年 (54歲) 『다시 남자들에게』 1992年 (55歲) 『교황청 살인사건』『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3年 (56歲) 『로마인 이야기 1』로 新潮學芸賞을 수상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1994年 (57歲) 『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1995年 (58歲) 『사람들의 모습』『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에사르 루비콘 이전』
1996年 (59歲) 『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에사르 루비콘 이후』 1997年 (60歲)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1998年 (61歲) 『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1999年 (62歲) 司馬遼太郞賞을 수상五木寬之(이츠키 히로유키)씨와의 「異邦人對談」이「家庭畵報」지에 연재됨 (200년까지)
『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2000年 (63歲) 『로마인에의 20가지 질문』『어른 두명의 오후』(이츠키 히로유키와의 공저)『로마인 이야기 9 - 賢帝의 世紀』
저서리스트 『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이탈리아에서의 편지』 『신의 대리인』 『사랑의 연대기』 『이탈리아로부터』 『이탈리아 공산당 찬가』 절판 『어부 마르코가 본 꿈』 그림책 『콘스탄티노플의 나룻배 사공』 그림책 『바다의 도시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이야기(속)』 『이탈리아 遺聞』 『살로메의 유모 이야기』 『사일렌트 마이노리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로도스도 공방기』 『레판토 해전』 『남자의 초상』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어록』 『성 마르코 살인사건』 『남자들에게』 『메디치가 살인사건』 『다시 남자들에게』 『법왕청 살인사건』 『사람들의 모습』 『로마인이야기Ⅰ -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이야기Ⅱ - 한니발 전쟁』 『로마인이야기Ⅲ - 승자의 혼미』 『로마인이야기Ⅳ - 율리우스 카에사르 루비콘 이전』 『로마인이야기Ⅴ - 율리우스 카에사르 루비콘 이후』 『로마인이야기Ⅵ - 팍스 로마나』 『로마인이야기Ⅶ - 악명높은 황제들』 『로마인이야기Ⅷ - 위기와 극복』 『로마인이야기Ⅸ - 현제의 세기』 『로마인에의 20가지 질문』 『어른 두명의 오후』 시오노 나나미 高大토론회
"韓日 젊은이들 가슴열어야"
동아일보 : 1999/06/03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가 6월 3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 강당에서
'젊은이들이여 21세기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동아일보사와 한길사가 공동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의 독자 1천여명이 참석했다.
시오노는 강연을 생략한 채 1시간동안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을 받고 재치있게 답변했다.
시오노는 "한일관계가 현재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양국의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관계 개선을 바랄 때에만
21세기 한일 관계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가 1천년동안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적까지 포용한 로마인의 개방성을 꼽고 있는 시오노는
젊은이들이 가슴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오노는 "어떤 천재도 독주는 불가능하다"며
"외부의 자극을 끊임없이 수용해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아들에게도 이런 충고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작년 6월 일본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젊은이들이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시오노는
이날도 교양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학교 수업은 벽돌을 따로 따로 쌓는 것에 불과하다"며
"교양은 이렇게 따로 따로 쌓인 벽돌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일리아드'에 감명받아
대학졸업후 이탈리아로 건너갔을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젊은이들이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로 가려 하니까 부모님이 반대했다.
그래서 꾀를 낸게 이탈리아행을 반대하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년만에 돌아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간 지가 벌써 36년째다."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London Symphony Orchostra Conductor:Jochum, Eugen (1902-1987 G.)
"함수곤" <ham60@hanmail.net>교수의 메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