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의 핵심 단어는 ‘기억하라’이다. 기억은 정체성이다. 개인의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이고, 공동체의 정체성은 공동체의 정체성이다. 오늘의 본문은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신 24:18)
첫째 과거 애굽의 종이었다는 사실과 둘째 하나님이 속량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신명기를 요약하면 ‘1- 4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5-26장은 현재를 교육하고, 27- 34장’은 미래를 기대하라‘이다. 과거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현재 교육하고, 구원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기억은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사관이 내일을 위하여 기록한 글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역사의 어리석은 전철을 다시 밟게 된다.
1. 호주를 개척한 사람들
유럽인이 정착하기 전에 호주에는 수만 년 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원주민이 거주했다. 유럽 정착의 맥락에서 ‘개척자’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최초의 유럽 정착민, 탐험가 및 식민지 호주 초기 역사의 주목할만한 인물을 의미한다. 1788년에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제독은 지금의 Rocks에 1월 26일 영국기를 올리고,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를 건설했다. 그는 '영국 내무장관'(British Home Secretary)이었던 '로드 시드니'(Lord Sydney)의 이름을 기념하여 이곳을 '시드니'(Sydney)로 명명하고, 호주 제1대 총독이 되었다. 호주를 개척한 3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죄수, 둘째 군인, 셋째 자유 정착민이었다. 약 1500명의 정착민 중에 죄수가 약 788명이었다. 죄수들이 호주에 오게된 배경은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 산업혁명은 긍정적으로 물질의 풍요를 가지고 왔지만, 도시화 현상으로 급격하게 범죄자를 생산하게 되었다. 영국의 기존 감옥으로 이들을 수용할 수 없었기에 유형식민지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2. 호주 최초의 교회
1788년 1월 26일 영국 죄수들을 태운 11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이 함대는 현재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호주 최초의 공식 기독교 예배는 현재 시드니로 중심부인 큰 나무 아래에서 성공회 성직자인 리처드 존슨 목사에 의해 2월 3일 첫 번째 주일예배가 집전되었다. 그의 첫 번째 설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편 116:12)였다.
1793년에 첫 번째 교회가 건축되었으나, 안타깝게도 5년이 지난 179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죄수들이 방화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죄수 중에는 가톨릭 교인도 있었고, 장로교인도 있었고, 불신자도 있었다. 초기에는 성공회만 인정이 되었고, 예배는 강제적이었다. 당시 영국은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웨일즈, 스코틀랜드 합병하고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잉글랜드는 성공회, 스코틀랜드는 장로교, 아일랜드는 가톨릭이었다. 죄수들은 잉글랜드 뿐 아니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의 사람들도 있었다.
3. 호주 개척자 마을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Ebenezer 교회가 있다. 에벤에셀 교회는 1809년 영국에서 건너온 자유 정착민 그룹에 의해 설립된 장로교회이다. 그 지역에 토지를 부여받은 농부들로 주로 구성된 공동체에 의해 지어졌다. 교회는 또한 수년 동안 학교 역할을 했으며 지역 사회 생활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건물 자체는 당시의 건축 양식과 자원을 반영하여 사암으로 만들어진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구조이다. 수년에 걸쳐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구조적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번의 복원 작업을 거쳤다. 지금은 1977년 교단 연합으로 지금은 연합교회에 속해 있다.
호주 개척자 마을은 18세기와 19세기의 초기 정착민들의 생활 방식과 건물들을 재현하고 보존하는 야외 박물관 형태이다. 호주개척자마을 입구에는 팻말이 서 있다.
WELCOME TO HISTORIC WILBERFORCE A MACQUARIE TOWN
필립 제독이 호주를 개척한 사람이라면, 제5대 총독인 맥라클란 맥콰리(McLachlan Macquarie)는 근대 호주의 기반을 닦은 사람이다. 맥콰리 총독은 이 지역의 '윌버포스'라고 명명했다. 미국에 링컨이 있다면, 영국에는 윌버포스가 있다. 윌버포스는 영국의 노예제도를 폐지한 사람이다. '호주 개척자 마을'은 호주의 식민지 시대와 초기 정착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마을에는 호주 각지에서 옮겨온 다양한 건물들과 구조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관광 명소로서, 호주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교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