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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9일 남한강 기도를 다녀온 후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그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하게 했습니다..
당시 난중일기를 읽고 있어서 그랬습니다..
공지사항 1142번 글이고요 아래에 첨부했으니 읽어보세요...
스님은 성중님들과 통하며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유튜브를 보다가 여쭤보고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그 중 하나 전달해 드릴께요..
'전쟁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성웅(聖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이어른에 대해 유튜브에서 황현필이라는 학자가 강의를 한 것이 있었습니다.
새겨들을 강의가 많더군요.
그 중 명량해전에 대해서 여러번 강의가 있었습니다.
'명량'...
배우 최민식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스님이 세상 태어나서 극장에서 본 몇 안되는 영화중 하나..
또 배우 김명민을 스타로 만들어준 몰입감을 가지고 봤던
'불멸의 이순신'
백전불패의 전쟁의 신이신 충무공이...
섬세하고 매우 종교적인 분이라 놀라며 읽었던 난중일기..
난중일기에서 충무공의 종교성을 제한다면
다들 비슷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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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충무공이...바로 우리 지장보살님의 화현이라하셨습니다
성중님들의 말씀이니 백프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성중님께서 보살께서는 현생 인류의 다양한 직업 가운데..
무장 군인으로서 1회, 종교지도자로서 2회를 화현하셨다 하셨습니다.
무장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종교지도자로는 김교각지장보살님과 티벳쪽 부탄의 위대한 수행자로 나오셨다고 해요.
다른 형태의 화현은 여쭙지 못했습니다.
우선 충무공 관련 등장인물과 전생
충무공 이순신-지장보살님의 화현
선조-아수라
원균-짐승
풍신수길-타락천신(천신 출신인데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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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네 사람의 전생만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무공은 임금인 선조를 지키기 위해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수라였던 임금이었기에 대전쟁이 2번이나 터졌고
수많은 생명이 살상 되었습니다.
아수라의 특징은 주변이 무수히 죽어 넘어지고 스스로도 많이 죽입니다.
주로 전쟁이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아수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중공의 습근평, 일본 기시다,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이재명..
과거의 아수라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히로히토 (裕仁), 전두환, 노태우(긍정 아수라로 변함)...
과거의 타락천사 스탈린, 히틀러...
과거의 짐승 차지철...
현재의 짐승 윤석열, 김건희...)
아수라와 타락천사가 만나면 전쟁이죠.
짐승출신들은 용맹한자들이 많지만
반말을 하며 사람을 무시하고
지혜가 없어서 그를 따르면 몰살을 당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따르지 마세요..
원균의 칠천량해전... 조선수군 몰살...
세계 해전역사의 치욕...불가사의..칠천량 몰살...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아수라 출신들이 섞여 있는데요..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역시 주변을 괴롭게 하고 죽일수도 있습니다.
다중인격이 특징입니다.
선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상대가 지장보살님의 화현이신 충무공 마저
수없이 질투하며 죽음 직전까지 몰고갔고..
수많은 충신 의병장들을 목을 쳤던 나쁜놈... 개쓰레기...
최대로 보는 경우 당시 조선 백성의 50%가 사망했다고 하는 극악 전쟁의 주인공..
현재 기준으로 보면 남한인구를 5천만으로 잡으면
2천 5백만명을 죽인 장본인..
이게 아수라들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아수라들은 지도자가 되면 안됩니다.
일반인 아수라들이라도 상대가 누구든 시비를 걸고요..
예를들어 아수라도 신이기에
신들의 좌차에서 천신들과 같은 레벨이 있습니다만..
좌차에서 훨씬 높은 천신출신이라해도 괴롭힌다고 해요..
그 괴롭힘이 있는 경우 천신출신들의 사망율도 높으니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일본 아베는 천신출신인데...
기시다가 아수라.. 그런데 죽었잖아요..
아베와 기시다는 대결구도...
육도 가운데 가장 위험한 그룹이 아수라 출신들입니다.
이들을 안다면 멀리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서도 안되요..
예를들어 6.25전쟁에서... 북한군... 중공군..
이들은 어찌보면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이들이라 죄가 없을수도 있지만..
아수라의 군대였기에...
성중님들께서는 명백하게 죄인으로 분류가 된다하셨습니다.
휩쓸리면 사후에 큰고초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은 극강의 생존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인은 살고 주변은 죽이고... 이게 아수라들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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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무공에 대해 다른 이야긴 잘 아실 거고요...
지장보살님께서는 왜 충무공으로 우리나라에 화현하셨는지..
실제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셨는지...
명량해전에 관한 이야기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해드릴께요..
이내용은 종교적인 내용이란걸 감안하고 보세요..
명량은 역사에서 논란이 있는 여러 대목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논란은 필요없고요
성중님들 말씀이니 여기서 말씀드리는 이것이 맞는 진실입니다.
보살은 왜 충무공의 화현을 조선에 보내셨는가...
당연히 아수라인 선조 구하려고 오신거 아니죠..
정확하게는 당시 우리 조선에는 하늘에서 매우 중요한 천신 중 한 분이
몸을 바꾸기 위해 인간계에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천신도 하늘에서의 수명이 다하는 시기가 오는데 당시 그 때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어른이 여성의 몸으로 내려오셨는데...
전란이 나면 목숨이 위태해 그 분을 구하시려고 내려오셨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지켜야하는 분으로 여기셨으니
어느 정도 중요한지 아실거고요...
여기서 우리 보살(지장보살, 시바신)의 섬세하신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사람은 확실히 챙기신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는 출발점을 지나면 자기가 누구인지 모조리 잊어버린다고 해요..
그래서 수많은 다양한 전생 출신들이 섞여도 혼란이 없죠.
일단 태어나면 이세상 질서대로 움직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전생의 습이 남게 됩니다.
위대한 분들은 더 다르죠...
충무공을 잘 연구하면...우리 지장보살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효, 충무공은 효자였습니다.. 효는 지장신앙의 근본...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충무공.. 시바신은 우주 최강의 전투신...
주역에 능통하시고 자주 점을 쳤다...
난중알기에는 선몽 이야기가 여러번 나옵니다.. 이건 종교성...
점(占)은 어떻게 치셨는지는 명확하게 안나옵니다만..
우리 지장신앙에도 있죠... 점찰선악업보경..
목륜을 가지고 점을 치는 듯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일부에선 충무공이 치신 점이 '윷점'이라고도 하는데요..
'윷점'의 원형은 점찰로 봐도 무방합니다..
감성도 풍부하시고 눈물도 많으셨던 충무공.. 이건 섬세함..
거다 난중일기..이거 쉬운 일 아니거든요...
전쟁중에 일기를 쓰신다??
그런데 분명히 기록을 남기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아마도 오늘 같이 보살의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남긴 비망록이라 생각해봅니다..
성중님들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이제 충무공이 보살의 화현인걸 알았으니
난중일기는 우리의 삶 기본 텍스트가 됩니다.
군율을 어긴자는 일벌백계 바로 참수... 냉정...
당신만의 확실한 기준으로 결코 꺾이지 않으시는 강골..
모두가 지장보살님(시바신)이 가지신 덕목이죠...
보통 사람과는 분명히 다르십니다.
보살께서는 그럼 섬세함으로 분신을 보내어..
그 천신을 보호하셨고 그 덕에 조선과 백성이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충무공을 따랐던 이들은 거의 다 생존했는데..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죠..
조선의 백성들 가운데 충무공에 의지한 이들은 거의 살았다??
우리는 뭘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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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충무공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셨는가?
안하셨답니다.
충무공은 노량해전 이후 어떻게 될지 이미 아신듯합니다.
당연한 말이죠.
조일전쟁(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꿰뚫어 알고 계시는데 어찌 모리시겠어요.
이건 학자들도 공감하는 내용.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게 아닌 것 같은 여러 증거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이것이 충무공 은둔설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사하지 않으셨다고 해요.
총탄도 당연히 안맞았고요...
전쟁 이후를 아시고 노량해전을 마치고 빠져 나오셨답니다.
실제 이 전투는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도착하신 곳이 지리산.
지금의 함양군 휴천면 지리산 자락이락해요.
이때까지도 충무공은 자신(지장보살의 화현)이 누군줄 몰랐답니다..
지리산에 도착하신 후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셨다 합니다..
이어른이 지리산에 오신 이유는 아시겠죠?
당연하죠... 당신 산인데...
지리산에 들어서자마자 천문이 열리시고..
당신이 누군줄 아시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약 한 달 뒤쯤...
자신과 함께 세상에 내려오셨던 천신출신 4분..
충무공 포함 총 5분이 지리산에서 그대로 선정에들어..
하늘로 올라가셨답니다..
사망이 아니고요..
몸 자체로 그대로 하늘로 화현하셨다고해요...
보살지에 계시는 분들은 그것이 가능하답니다..
지리산이 당신과는 무관치 않으신 지역이란거...
당초 성중님께서 지리산에서 하늘로 화현하셨다는 답을 듣고 의아했습니다만..
백의종군으로 목숨이 경각에 계실 때를 돌아보면..
지리산과 매우 밀접하심을 알수 있었습니다.
이건 스님도 몰랐던 거에요.
이건 황현필선생의 강의 중 캡쳐한 사진인데요..
백의종군중이던 충무공께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除授)되신 후
수군을 재건한 루트라고 합니다..
기사회생하시면서 처음으로 지나가신 곳이 지리산 옆..
이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이 백의종군을 명 받으며 서울에서 도원수 권율에게 가는 루트가 있는데..
이것을 지금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라하여
지도로 제작해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루트를 보시면 지리산을 또 감고 가시잖아요..
더구나 운봉 까지 오셨습니다..
이렇게 된 사연도 있다고 해요..
이에 대해 신문에 연재된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에는
"그리고 1597년 2월, 소강상태에 있던 전쟁은 ‘전라도 점령’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정유재란이 발발하며
또다시 지리산자락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7월의 칠천량해전 승리 후, 섬진강을 거쳐 하동과 구례를 살육과 노략질하며 북진한 왜군은
결국 남원성을 함락하고 뒤이어 전주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호남의 교두보 남원성이 비참하게 함락되던 날(1597년 8월 16일),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이어지며 남원과 운봉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대가 함양에서 운봉으로 진군하였다.
운봉 황산 부근에는 왜병으로 가득 차 득실거렸다.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성을 방어하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과 부민(府民) 등 1만 여명이 전멸하였다.
(중략) 왜군 양쪽의 군대가 모두 운봉으로 돌아가 며칠을 머물렀다.
이어 지리산으로 들어가 사찰에 유숙하거나 산꼭대기에서 노숙하면서
난을 피해 숨어들어간 우리 양민을 수색하여 죽이고 약탈하는 참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난중잡록 1597년 8.16~18)”
아름다운 지리산의 마을 운봉은 이렇듯 처참한 전란의 한가운데서 속절없이 스러져갔다.
오죽했으면 살아남은 사람이 적어 폐현(廢縣)에 이를 정도였을까.
하지만 그 사이 운봉으로 가는 길에는 한줄기 희망을 싹틔우는 걸음도 있었다.
지리산자락이 정유재란의 참상을 겪기 넉 달 전(1597년 4월 25일),
서울 의금부에 투옥되었던 이순신 장군이 출옥하여 합천으로 백의종군하러 가던 도중에
‘여원재’ 고개를 넘어 운봉으로 들어선 것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이곳 운봉에서 하룻밤을 보낸 장군은
도원수 권율 장군이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방향을 바꾸어 구례로 향하게 된다. "
이렇게 충무공은 백의종군을 하러 내려가는 중에도 지리산을 돌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시 복직교서를 받으시던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라는 곳은 바로 지리산 자락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충무공은1597년 4월초에 시작된 백의종군 이후
3개월째인 1597년 7월26일부터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손경례의 집에서 머물렀다고하고요..
약 10일 후인 8월 3일 아침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한다는 교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충무공은 지리산 자락에서 기사회생하신 것입니다.
충무공께서 백의종군 과정 중 진주 수곡면에 머무신 것은 계획된 바가 아니었고
도원수 권율이 있던 합천에서 계시다가 7월 17일에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원균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에 전장을 직접 살피고
다시 합천으로 돌아가던 길에 진주, 하동지역의 소식을 듣기 위해 며칠 머물게 된 것이라합니다.
그 와중에 복직이 된거죠.
복직되신 것이 1597년 8월이고..
명량해전이 1597년 9월 16일
노량해전은 다음해인 1598년 11월 19일이니..
만약 당신이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은둔하시기로 했다면..
어디였을까요?
노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남해대교'가 있는 곳이고요..
거기서 진주시 수곡과 지리산은 지척입니다.
성중님들께서는 진주 수곡 계실 때 충무공이 지리산을 눈여겨 보시고..
마지막을 지리산으로 생각하셨다 하셨습니다.
성중님들께서는 충무공께서는 노량을 나와 진주 수곡면을 잠시 들르시고
그길로 지리산으로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지금 휴천면 지역은 당시 인적이 드믈었다고 하는데요,.
충무공께서는 은둔을 하시려고 지리산을 찾으셨지만..
지리산에 들어서자 마자 천문이 열리시고..
함께했던 4분도 동시에 천문이 열리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해 아신 뒤..
한 달 뒤 선정에 들어.. 가지신 몸을 그대로 하늘로 오르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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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명량해전...
말도 안되는 대전투...
여기서는 전투가 어디서 벌어졌느냐를 가지고 다툰다는데요..
2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황현필 선생의 강의에서 캡쳐를 해보죠.
이주 정확한 전투 전개도는 좌측이랍니다.
명량해전은 이렇게 전투가 이루어진 곳이랍니다.
진도와 해남 사이가 명량..
명량해전에서 쇠사슬로 왜적의 배를 곤경에 빠트렸느냐...
아니랍니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해요...
명량해전에서 '강강수월래'가 있었느냐..
있었답니다..
하지만 놀이식이 아니었다고 해요..
이진실은 이러합니다..
강강수월래는 충무공이나 군인들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가운데 전통적인 의식을 아는 한 남성이..
뜻을 모아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방법으로 기획이 되었답니다.
여성들만 참여한 행사구요..
우리 군인들이 잘 보이는 장소 두군데에서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강강수월래는 계속 진행 것이 아니고
요즘 시간으로 치면 1시간에 40여분을 진행하고 쉬고 했는데..
명량해전 총 시간 가운데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본래는 1회를 진행하려 하였지만
전투가 길어지고 치열한 후반부에 들어서자
모인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총 3회를 더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강강수월래로 조선수군은 크게 힘을 얻었고..
전투 후반부 3회에는 참여자들이 감동하여 통곡을 하며 진행했다고 합니다..
스님도 이대목을 여쭈며 그들의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강강수월래는 우리민족의 전통 제천행사고요...
그 제천행사에 촛점을 맞춰서 설명을 드리면.
본래는 가운데 기둥을 세우고 진행하는 것이고요..
천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 진행하는 의식을 보면
한가운데 나무를 세우고 그 나무를 천으로 감싸는 식으로 강강수월래가 진행되는데
본래는 천이 없었고 그게 맞답니다.
강강수월래는 싼쓰크리트어 범어인데요..
발음은 강강수월래가 정확히 맞다하셨습니다.
(민속놀이의 발음은 ' 강강수월래'. 본래 싼크리트어의 음은 모름)
강강술래가 아닌 강강수월래..
뜻은 스님이 아직 지식이 부족하여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성중님과의 문답을 통해 답을 얻으려면 스님이 기초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에벵키족의 강강수월래라고 하는데요..
저렇게 가운데 나무를 세우고 하는 것이랍니다..
저 나무는 당연히 사바세계의 천궁이죠.
스님도 과거에는 저 나무를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정도로 인식했지만..
신단수죠...
저것은 분명히 사바세계 천궁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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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순신 장군님을 도우셨던 분들도 혹시 보살의 권속들이시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