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 쌓인 구릉산 능선에서
망우고개의 지명은 조선 초기부터 불렀는데, 그 유래에는 다음과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 후 묘자리를 정하기 위하여 고심하다가 동구릉의 건원릉터를 유택지로 정하였다.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 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주위의 산천기세를 둘러보고 오랜 동안의 근심을 잊게 되었다 하여 망우고개라 하였다 전한다.
망우 고개를 지나면 망우산 극락사가 나오는데 시 경계는 극락사 뒷산 능선이며 오른쪽은 구리시이며 왼쪽은 중랑구 신내동이다.
능선길로 밑으로는 중앙선 열차가 다니는데 멀리에 양원역이 나무들 사이로 보이고 능선을 계속 가다보면 능선 오른쪽을으로 철사 메쉬로 된 팬스가 있는데 이곳부터는 구릉산으로 동구릉 영역이다.
구릉산은 원래 이름은 검암산이었는데 조선왕실에서 왕이 잠들어 있는 곳인데 칼검자가 들어 있다하여 못쓰게 해서 그 후로는 구릉산이라 물렀다.동구릉은 59만평의 매우 넓은 지역으로 조선왕조 9릉 17위와 왕비가 안장돼 있으며 사적 제 193호로 지정돼 있다.
처음에는 건원릉이라 하였으나 그 후 1855년 익종의 수릉이 9번'째로 조성되어 9릉이라 불렀다.
구릉산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갑자기 넓은 지역에 아파트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으며 지금도 산자락에는 건물을 지으려고 성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구리시 갈매리로 초라한 시골집들이 있든 곳인데 2-3년 사이에 아파트와 현대식 건물들이 빈틈없이 들어서고 갈매역을 찾아 가는데도 여러번 물어서 갔다. 역에서 춘천쪽으로 1km쭘 가서 왼편으로 길을 들어서 1km 남짓 가며는 담터고개가 나오며 이곳이 서울의 태릉과 구리시의 갈매와 남양주시의 별내로 갈라지는 경계가 된다.
이곳에 도착하니 시계는 2시를 가리킨다. 오늘의 종주 계획의 끝이다.
서둘러 담터추어탕집으로 들어서니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방은 빈 자리 없이 손님들이 가득하다. 여느 집과 달리 이 집은 통추어탕과 갈은 추어탕의 값을 같게 받는다.우리 36친구들과도 여기에서 몇번 식사를 한 기억이 나서 가까이에 있는 조관묵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자기도 혼자서 밖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한다. 조금 일찍 전화하지 하면서 아쉬워하는데, 내가 도착할 시간을 알 수 없어서 늦게 한 것이 불찰이었지. 나도 혼자서 통추어탕으로 한그릇 뚝닥 먹고 다시 버스로 태릉역으로 향하는 것으로 종주 첫구간을 무사히 마쳤다.

동구릉을 보호하기 위해서 쳐저 있는 팬스.안으로는 소나무, 참나무, 억새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추어탕으로 20년 전통을 자랑하는 담터주어탕집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