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전 국민이 레지스탕스 활동 “우리는 바이킹의 후예”
오랫동안 덴마크와 스웨덴 지배 받다
1905년 입헌군주제 형태 독립 성공
1940년 독일군 침공에 끝까지 저항
곳곳에 군사박물관과 전쟁기념비
기사사진과 설명

바이킹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1200여 년 전 선박 모형. 당시 바이킹들은 이런 선박을 타고 북해, 지중해, 흑해까지 진출했다. 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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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일)부터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가 쓰는 ‘북유럽의 전사적지를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세계 최상위권의 국민 개인소득을 가진 북유럽 4개국(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덴마크)은 풍요로운 복지국가입니다. 이런
부(富)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외적과 싸웠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노르웨이는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특히 이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지배에 항거해 전 국민이 활발한 레지스탕스 활동을
전개했다. 지금도 노르웨이 곳곳에 군사박물관, 전쟁기념비 등이 그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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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항과 아케르스후스
성채(아래쪽) 전경. 성곽 높이는 15~20m며 부분적으로 2단 형태로 돼 있다. 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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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노르웨이는 1397년부터 400여 년간 덴마크 영토의 일부로
있다가 1814년에 다시 스웨덴에 합병됐다. 이런 고난의 역사를 거친 노르웨이는 드디어 1905년 입헌군주제 형태의 독립국가로 탄생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돌자 중립을 선언했지만, 힘없는 이 약소국은 1940년 4월 독일군 침공으로 또다시 적국의 군화에 짓밟히게
된다.
수도 오슬로 근교의 노르웨이 역사가 담긴 바이킹 박물관! 그곳에는 8세기께부터 북해·지중해·흑해를 누볐던 바이킹의 유물들이
잘 전시돼 있다. 이런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노르웨이인들은 탐험, 모험, 도전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결국, 노르웨이는
전쟁 참화를 극복해 가면서 조선·철강·기계·관광산업으로 경제부국이 됐고,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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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르스후스 성채 안에 있는
6·25전쟁 참전기념비. 사진=필자 제공 |
오슬로 항을 지켜온 성곽과 항만 방호 포대
오슬로 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배를 지켜보고
있는 아케르스후스 성채! 바로 성곽 아래 부두에는 수만 톤급 크루즈선이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13세기께 스웨덴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성은 8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견고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숱한 전란 속에서도 성채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감옥,
방공호, 박물관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또한, 성내 군사박물관에는 노르웨이의 6·25전쟁 참전 기념비와 함께 당시 의료지원요원들과 한복차림의
한국인들이 함께 춤추는 사진까지 전시돼 있었다.
성곽을 내려와 배를 타고 20분 정도 나가면 오슬로 항 뱃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호베도야(Hovedoya)섬 항만 방호 포대와 화포들을 만날 수 있다. 과거 부대 막사는 해양스포츠 장비창고로, 요새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의 아늑한 휴식처로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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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맞서
싸웠던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산속 눈길을 행군하고 있는 모습. 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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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군대에 가장 먼저 짓밟힌 노르웨이
1940년 4월 9일 아침 7시, 오슬로
역에서 특별열차 1대가 노르웨이 북쪽으로 황급하게 출발했다. 이 열차에는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 정부 각료, 국회의원 그리고 중앙은행에서
반출한 엄청난 금괴가 실려 있었다. 바로 이 시간 오슬로 공항에는 독일 공수부대 병력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10만 대군으로 노르웨이를 기습
침공한 독일군은 군악대를 앞세우며 보무도 당당하게 오슬로 시내로 무혈 입성했다. 뒤이어 독일군 특수임무부대는 노르웨이 국왕 체포를 위해 추격에
나섰지만,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현지 주민 무장부대로 인해 작전은 실패했다.
개전 초 빈약한 장비와 열세한 병력을 가진 노르웨이군은
처음부터 독일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퇴역장교, 민간인 지원자들이 운집해 무장집단을 형성했다. 바로 이들이 5년간
처절한 저항활동으로 독일군을 괴롭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웨이인 저항역사는 오슬로 성 레지스탕스 기념관에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크루즈선 취업 꿈꾸는 진취적인 한국 청년
덴마크 코펜하겐 항과
노르웨이 오슬로 항을 오가는 대형 크루즈선은 ‘발트 해의 해상호텔’이라고 불린다. 수천 명의 관광객이 승선한 이 배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그 속에서 가장 활발하고 왁자지껄하게 여행을 즐기는 승객들은 단연코 한국인들이다. 승무원 중에는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는 한국
학생들도 있었다.
벌써 두 번째 이 선박회사에서 실습 중인 K군은 “여름이 지나 인턴 기간이 끝나면 정사원으로 취업하기를
기대한다. 이 회사에 입사하면 월 15일 근무와 코펜하겐에 숙소가 제공된다. 적성에 맞고 급여도 한국 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무대로 삼는 진취적인 한국 청년의 기상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졌다.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
남녀 모두가 국방의 의무

오늘의 노르웨이는?
노르웨이 수도는 오슬로이며 인구는 520만 명, 국토
넓이는 32만 ㎢(한반도 1.5배), 국민 개인소득은 7만 달러 수준이다. 상비군 규모는 2만 명이며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위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