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춤 -서장-
신석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없는 꽃잎으로 살어 여려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긴
종소리는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으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刑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 이하 생략 -
<문장> (1939)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불교적, 구도적, 상징적, 명상적
◆ 표현 : 격정적 어조로 내면적 고뇌를 표출함.
심리적 상승과 하강의 파동적 전개 구조를 취함.
'두견'에 화자의 감정을 이입함.
'꽃잎(해탈)'과 '샘물(번뇌)'의 대립적 이미지를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바라춤 → 부처에게 재를 지낼 때 바라를 울리고 천수다라니를 외면서 추는 춤.
* 티없는 꽃잎 → 속세에 물들지 않은 맑고 깨끗한 정신의 경지(구도자의 정신 자세),
티없는 열반의 경지, 화자가 추구하는 맑고 아름다운 삶의 이미지
*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 → 화자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마음 저 깊숙한
곳을 의미
* 구슬픈 샘물 → 세속적 번뇌와 갈등
* 종소리 → 깊은 절에서 울리다 끊어진 종소리의 공허감은 화자 자신의 황량한
마음과 비슷하다고 인식.
* 잠 못 이루는 두견 → 티없는 꽃잎과 구슬픈 샘물 사이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는
화자의 모습이 투영됨. 감정이입된 대상물.
* 무상한 열반 → 드높은 초월의 경지
* 어지러운 티끌 → 미처 떨쳐 버리지 못한 세속적 번뇌
* 맘의 거울 → 불교에서 말하는 진체로, 원래 본성은 맑고 깨끗하지만 삼독(三毒)에
의해 가려져 있어서 흐리게 된다고 한다. 이 삼독을 제거하는 일이 곧 구도의
길이 된다.
*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 마음의 고요함을 깨뜨림.
* 사바 → 속세
*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 → 열반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몸뚱이
* 형역 → 육신의 욕망에 의한 정신의 예속을 뜻하는 말로, 정신이 육체의 지배를
받음을 의미함.
* 뱀이 꿈어리는 형역 →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 육체의 욕망(욕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
* 내 보석 수풀 속에 /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의 / 끝없는 갈림길이여
→ 정신과 육체, 감각과 관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자의 절절한 절규가 담긴 말.
* 5연 → 해탈에 대한 갈구가 '물'의 이미지와 함께 표현되고 있음. '창해'는
열반을 의미하며, '시냇물'은
창해에 '저절로' 들어가지만, 화자는 저절로 열반에 들 수 없음에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다.
◆ 제재 : 바라춤
◆ 주제 : 삶의 고통과 번뇌의 초월 의지, 해탈에의 염원과 번뇌의 갈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현실과 이상의 갈등
⇒ 속세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려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까닭모를
슬픔이 솟아오른다.
◆ 2연 : 내면 세계의 슬픔
3연 : 세속과 열반 지향 사이의 갈등
⇒ 깊은 산속 빈 절에 울리는 풍경소리와 흐르는 달빛, 두견새의 슬피우는 소리는
신비로운 적막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는 여기서 열반의 경지를 꿈꾸지만 번지는
잡념을 누를 길 없다.
◆ 4연 : 세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슬픔
5연 : 종교적 구원에 대한 염원
⇒ 이승의 존재로서 나의 육신은 온갖 번뇌로 가득찬 몸, 이 깊은 계곡 흐르는
시냇물의 가벼움과 자유가 부럽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바라춤>은 신석초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모두 421행에 달하는, 길이가 매우 긴 작품이다. 1941년에 <바라춤 서장>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본시 부분은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57년에 발표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시집 『바라춤』에서 그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시인이 여러 해 동안 한 작품의 완성에 몰두하였다는 것은 우리 시 문학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신석초가 이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제목인 '바라춤'이란 불교적 제의에서 연행되는 승려들의 춤을 가리킨다. 시인은 승려들의 춤을 바라보면서 느낀 감정과 그 영상을 바탕으로 시상을 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시상의 흐름이 춤의 율동에서 느낄 수 있는 리듬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특히 시인은 이 시를 구성함에 있어서 시조의 운율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갔음을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3 · 4조의 자수율이나 4음보 형식의 정형률을 고수했다는 측면에서보다는 우리의 전통 시가 양식으로서 시조가 지닌 음악적 측면, 즉 감정의 자연스런 흐름을 읊조리는 내면적 정서에 동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조지훈의 <승무>와 제재 및 갈등 구조가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춤의 동작에 대한 묘사가 없고 갈등의 양상은 좀더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이 시의 정서의 실체는 삶의 고독과 번민, 그리고 정한의 세계로 구현되고 있다. 그것은 바라춤이라는 시적 소재가 불교적 구도의 자세를 바탕으로 한 것과 관련된다. 즉 현세의 모든 인간적 번뇌에 몸부림치는 현실적 자아와 내세의 초월적 경지를 염원하는 이상적 자아 사이의 갈등을 관조적인 태도로 드러냄으로써 시적 승화를 꾀하고 있다. 이 시는 비록 수많은 관념어와 한자어, 특히 불교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시상은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유연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시인의 시집 『바라춤』의 후기에서 "아무도 부단히 전이하여 가는 세조(世潮)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이며, 또 그것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또 방대한 유역의 어느 안전한 언덕에 자기만의 특유한 위치를 안착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 우리들의 정신은 언제나 있지 않은 것을 희구한다. 보다 새로운 것을 보다 나은 것을 희구한다. 인류사조의 수많은 세대의 여울에 광망(光芒)있는 몇몇의 이름이 부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등 독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 세대가 남겨놓고 간 정신의 주옥이다." 라고 하여 삶의 역정에 달관하려는 태도를 천명하고 있는데, 그러한 정신적 지향을 바로 우리 고유의 서정적 세계 속에서 찾고자 한 것에 이 시의 특징이 있다.
[작가소개]
신석초 : 신응식 시인
출생 : 1909. 6. 4. 충청남도 서천
사망 : 1975. 3. 8.
학력 : 호세이대학교 철학
수상 : 1967년 예술원상
경력 : 1965~1966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1965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1 서라벌예술대학교
1960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작품 : 도서 9건
본명은 신응식(申應植), 일명 유인(唯仁). 호는 석초(石艸) 혹은 석초(石初). 충청남도 서천 출신. 아버지는 신긍우(申肯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한학을 공부하다가 상경하여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신병으로 중퇴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철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맹원으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문학 특히 발레리에 크게 심취하였으며, 1935년에는 『신조선(新朝鮮)』 편집일을 맡아보았고, 1948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195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1957년에는 논설위원 겸 문화부장에 취임하였다. 그 뒤 예술원회원(1960), 한국시인협회 회장(1965),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1965∼1966)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문단 활동은 1931년신유인(申唯仁)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일보』에 「문학창작의 고정화(固定化)에 항(抗)하여」를 발표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논문은 볼셰비키화한 카프의 창작방법론의 강요에 항의하는 내용으로서, 카프의 창작방법론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자신의 가정환경이나 발레리의 작품 「텍스트씨」를 읽은 감동 등으로 사상적 고민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박영희(朴英熙)의 전향선언과 함께 1933년 탈퇴원을 제출하고, 이듬해 카프의 해산과 함께 관계를 끓었다. 1935년 무렵부터 이육사(李陸史)와 알게 되어 막역한 지기(知己)가 되었고, 서정주(徐廷柱)·김광균(金光均)·윤곤강(尹崑崗) 등과 함께 1937년 ‘자오선(子午線)’ 동인으로 참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접(胡蝶)」·「무녀의 춤」을 『자오선』 1호에 발표하였고, 이어 1939년『시학(詩學)』지에 「파초(芭蕉)」(1호)·「가야금(伽倻琴)」(2호)·「묘(墓)」(4호) 등을 발표하였다.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이 폐간되자 침묵을 지킴으로써 친일 문학에 동조하기를 거부하였으며, 광복과 더불어 1946년 제1시집 『석초시집(石艸詩集)』을 간행하였다.
이어 1959년에는 제2시집 『바라춤』, 1970년 제3시집 『폭풍의 노래』, 1974년 제4집 『처용(處容)은 말한다』와 제5시집 『수유동운(水踰洞韻)』을 간행하였다. 그는 대체로 엄격한 구성과 고전적 심미성을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전개하여왔는데, 이러한 작품 세계는 발레리와 노장사상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되고 있다.
즉, 사고의 조직성을 추구한 발레리(Valery,P.A.)의 엄밀성과 명석성을 형태적인 바탕으로 삼고, 여기에 노장사상의 출세간적 달관(出世間的達觀)의 경지를 담아 보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체로, 과작에 속하는 그의 작품 가운데 45연 427행으로 된 장시 「바라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시는 이승의 내적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서 동양정신과 서구시적 요소의 이중적인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69년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석초 [申石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첫댓글 감사합니다
무공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 오셨군요.
날마다 날마다 발전해 가는 글 공부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