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Monna Lisa' "인류가 완성해야 될 존재의 신성의 어머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77×53cm, 나무판에 유화, 1503~1506, 루브르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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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Joconde, portrait de Monna Lisa" Leonardo da Vinci
(인류가 완성해야 될 존재의 신성의 어머니)
가려 주고 숨겨 주던 이 살을 태우면 그 이름만 남을 거야
온 몸에 옹이 맺힌 그대 이름만
차마 소리쳐 못 불렀고 또 못 삭여 낸
조갯살에 깊이 박힌 흑진주처럼
자신이 그린 그림을 평생 간직하고 품고 다녔던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눈물이요 아픔이다.
어머니의 그렁그렁한 눈물이요 사랑이다.
사랑을 향한 목마른 그리움이다.
낳아주고 기르고 떠나버린 어머니 카타리나, 다가온 또 다른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감내하고 견디고 이겨냈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님을 그렸다.
처음에는 델 조콘도의 부인 리자 게라르디니를 그렸다.
저 여인을 평면적으로 그리다 보니 떠오르는 님, 지극하신 어머니의 눈물이 보였다.
티나지 않게 길러주신 또 다른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가장 성스러움 이름
성모자와 성안나의 그림으로도 부족하여 인류의 어머니 성모님을 그렸다.
제자 가운데는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 베르나르디노
데 콘티, 프란체스코 나폴레라노, 안드레아 솔라리, 마르코 도조노, 살라이가 있었다.
그는 살라이를 눈여겨 보았다. 어린 시절 순수한 자신의 모습이다.
사랑했다. 살레이는 박카스와 세례자 요한의 그림 모델로 여겨진다.
밀스 Mills는 작곡가와 리브렛티스트 모두에게, 그 관계는 단순한 예술가나 조수보다 더 강렬하고 심오한 것으로 보입니다. "Leonardo는 Salai를 너무 많이 그립니다. 그가 뮤즈였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레오나르도의 동반자로 여깁니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비싼 옷을 사주고, 그들은 함께 여행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레오나르도다빈치는 살라이를 아니 잃어버린 지난날 순수했던 청운의 그날을 기억하며 불운한 자기 자신을 닮은 살라이를 아끼고 사랑했는지 모른다.
모나리자 왼쪽 눈동자에서는 이니셜 L, 오른쪽 눈에선 S가 발견됐다.
실바노 빈센티는 레오나르도의 L, 살라이의 S라고 주장했다.
또 살라이에게 모나리자를 유산으로 남겼다는 것이 근거다.
다시 말하지만 다빈치는 눈동자에 L자 S자를 은밀히 새긴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눈동자는 준엄하지만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드러낸다. 이만하면 됐다.
이 미소는 어머니의 미소요, 성모님의 미소, 리자 게라르디니의 미소, 맑은 살라이의 미소, 자기자신의 미소다.
눈 뜬 어느날 바라본 자기 자신의 미소를 담아냈다.
한 생을 마음 모아리며 절실하게 살아간 자의 미소다.
죄없다 선언하신 님의 명령 받들어 깊은 안식 속에 깃든 승자의 미소, 평화의 미소다.
다 이루었다.
회화 역사상 불후의 명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모나리자 ' La Joconde'
모나리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최고
인기 작품이다.
목판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이 그림은 위대한 명성과 달리 세로 77cm, 가로 53cm의
아담한 크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표적인 그림,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도 불린다.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귀부인을 뜻하는 마돈나(Modonna)의 준말, ‘리자’는 피렌체의 돈 많은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와 결혼한 리자 게라르디니. 라 조콘다는 조콘도의 부인이라는 뜻이다.
다빈치가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주문으로 1503~1506년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조콘도의 아내 리자의 초상화를 그린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볼 때마다 표정이 변하는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운 미소와 눈썹과 장신구가 없는 얼굴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작품을 금전의 가치로 재는 성격이 아니고 미완성 작품이라는 설과 함께 도난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진 점, 작품이 주문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다빈치가 보관하다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의 수중으로 넘어간 점, 눈가와 입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신비감과 상상력을 부추긴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창안한 점이 창조적이다.
다빈치가 그렸다는 것 빼고는 작품을 둘러싼 수많은 설화를 제공하고 있다.
그림 속 젊은 여자, 그녀의 이름은 리자 게라르디니다.
그녀는 누구를 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신 앞에선 존재로서 사람을 향하여
두 눈의 시선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오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오가는 누구에게나 말을 건넨다.
루브르 박물관은 대화를 청하는 그녀로 인하여 늘 북적인다.
귀고리, 목걸이 일체의 장신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기품있는 매력을 풍긴다.
눈썹도 보이지 않는다. 눈썹을 그린 흔적이 있다고 하지만 눈썹이 없다고 해서 여인의 매력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넓은 그녀의 이마는 더욱 넓다.
뒤로 펼쳐진 풍경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풍경의 지평선이 다르다.
언덕과 바위, 계곡, 산봉우리, 구불구불한 길, 호수, 다리 등으로 이루어진 풍경에 비해 앉아 있는 그녀의 비율이 훨씬 크다. 마치 큰 산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듯 삶의 역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듯 삶이 녹아 있다.
새순은 모나리자가 지배적인 것은 그녀가 보는 사람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우리가 그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우리를 보는 것이라고 <모나리자(Mona Lisa)>에서 말했다.
모나리자는 루브르박물관의 소장품 중 유일하게 방탄유리로 중무장한 단독 룸에서 관람객을 보고 있다.
모나리자 그림의 백미는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 수수께끼 같은 미소인데요. 입가와 눈가를 자세히 보면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다. 흐릿하게 문지르듯이 그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스푸마토 기법이다.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지다’는 뜻인데, 물체의 윤곽선의 밝기를 차츰 어둡게 표현해 공기 속으로 번져나가는 효과를 얻기 위해 다빈치가 고안한 기법이다. 명암의 강약에 따라 모나리자의 눈과 입술 윤곽선의 경계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두운 곳에서는 형태가 흐릿하지만 밝은 곳에서는 뚜렷하게 보인다.
한편 모나리자의 미소는 왼쪽 입가가 살짝 올라가 있다. 눈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에서는 미소의 흔적을 찾기 힘들고, 표정에 생기가 없어 생각에 잠긴 표정임을 암시하며 꽉 다문 입 때문에 미소의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모나리자 작품에 관해 최초로 평을 한 인물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건축가이자 작가인 조르조 바사리(1511~1574). 1550년 당대 예술가들의 생애를 전기 방식으로 기록한 <이탈리아의 훌륭한 건축가, 화가, 조각가의 생애>를 통해서다.
모나리자 작품에 관해 최초로 평을 한 조르조 바사리(1511~1574)는 모나리자 그림에 대해 다빈치가 4년 동안 작업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눈썹이 자연스러우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내 악사와 광대를 불러 초상화의 주인공의 흥을 돋웠다고 한다.
그 결과 그림 속의 미소는 신비로울 정도로 매력적이며, 깜짝 놀랄 만큼 기발한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다빈치는 초상화를 의뢰한 주문자에게 그림을 전달하지 않고 왜 본인이 간직하고 있었을까, 이후 그림은 어떻게 해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 수중으로 넘어갔을까?
혹, 지금은 떨어져 있으나 모든 것을 주신 어머니처럼 아버지 황제부터 아들 황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황제의 저택까지 내주고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준 둘도 없는 지기지우로서 프랑스 프랑스와 황제가 어쩌면 모나리자의 모상 模像상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모나리자의 얼굴은 여성과 남성의 두 이미지가 함께 살려있다. 따뜻한 미소를 보면 어머니 같은데 살아있는 눈매는 남성의 형상이다.
이렇게 모나리자는 하나의 이미지와 형상이라기 보다 삶 속에서 한 사람이 위대한 존재에 이르기까지 뒷바라지 해주고 존중해 준 수많은 형상의 총화다.
당연히 이 그림은 다빈치의 모상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인상과 얼굴이 함께있다.
나도 저 모나리자는 우리 어머니구나
내 와이프가 이 사람이로다.
어 수인이 얼굴도 여기 있네.
아 나도 있구나!
그래서 사람들은 저 모나리자의 얼굴을 리자 게라르디니라고 한다.
그가 마음을 준 살라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어머니 카탈리나와 길러주신 어머니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라고도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가 앞서 그린 세례 요한이기도 하다.
아니! 그리스 신화속의 여신이라고도 한다.
레오나르도다빈치 자기 자신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모나리자는 신의 모상으로 모든 인류가 기필코 완성해야될 성스러운 존재
아니! 사람이 가꾸고 완성해야할 모든 존재의 형상이 아닐까?
하느님의 본질의 중요한 그 무엇을 투영시켜 주고 있는 존재라는 것은 인간 존재의
내적이고 영적인 특성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영으로 또 인격체로 드러내신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사람은 하느님의 인격과 정신을 반영해 주고 있는 고귀하고 존엄한 인격체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모상 模像으로서 자신의 내면을 모나리자의
성품으로 채워야 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고 돌볼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뜻하며 모나리자의 형상으로 그분을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으며 모나리자의 모습을 통해서 구현하고 있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관계를 언급해 주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다’고 말함으로써 그러한 측면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심으로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이 세상에 온전하게 계시해 주셨다. 경전은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필립보의 요청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응답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투영시켜 주고 계시는 인간의 원형이다. 사도 바울이 ‘하느님과 같은 모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창조의 사실보다는 구원의 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된 이들은 새로운 인간을 형성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을 때, 다시 말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회개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그분과 일치할 때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하게 된다.
이렇게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을 취하게 되는 것은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그리고 사람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이 되며, 이는 곧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것을 두 가지 측면, 즉 믿는 사람으로서의 현재 상태와 훗날에 이루어지게 될 종말론적인 희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거룩한 존재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
끝내 예수님처럼 다 이루어야 하고 다 이룰 위대한 책무가 있다.
레오나르도다빈치는 모나리자를 통해서 자신을 보고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을 보며
존재의 성찰은 한 것이 아닐까?
존재의 성스러운 어머니!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모상이다.
2020.7.14.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