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 고지숙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불지 않던 오후, 세상은 고요했다.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 중고피아노를 사고 파는 트럭에서 나는 확성기 소리는 둔탁하게 울렸다가 금세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 옆집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도 허공에 잠시 떠올랐다 흩어졌다. 땅에서 분주하게 일어서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 무거워진 침묵의 세상. 한참 전부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 침묵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게는 단 하나의 소리만이 중요했다. 얇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십 분 넘게 마주하고 있는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소리.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며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비둘기는 단추처럼 박힌 까만 눈으로 나를 응시한 채 빨간색 갈퀴 발톱이 드러난 다리로 베란다 실외기가 놓인 철망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가끔 날갯죽지를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매끄러운 납회색 몸체에서는 얇고 하얀 깃털이 떨어졌다. 비둘기는 철망과 철망 사이로 꼿꼿하게 선 케이블타이에 발을 내딛었다 떼기를 반복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머물던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달라는 듯 내가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까맣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산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라 그런지 우리집에는 새가 자주 찾아왔다. 가장 먼저 왔던 새는 작은 부엉이였다. 깜깜한 밤에 유리창 앞에 앉아 집을 들여다보는 부엉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부엉이는 밤새 앉아 있다 동틀 무렵에 떠났다. 다음에는 박쥐가 찾아왔다. 방충망을 닫고 유리창을 열어놓은 채 청소를 하던 한낮이었다. 갑자기 시커면 형체가 방충망에 턱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위층에서 떨어진 '무언가'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의 형체가 좀 이상했다. 아무리 방충망을 흔들어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무언가'의 형체에서 활짝 펼친 날개와 거꾸로 매달린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박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쥐는 방충망에서 꼬박 이틀을 지내다가 떠났다. 자주 볼 수 있는 새가 아니라서 부엉이와 박쥐의 방문은 일종의 이벤트처럼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비둘기, 까치, 참새처럼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새들의 방문은 반갑지 않았다. 특히 비둘기가 나타나면 짜증부터 났다. 사람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나 쓰레기를 먹는 비둘기, 똥을 누고 길을 더럽히는 비둘기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때로는 차가 달려와도 피하지 않는다. 도로에서 죽은 비둘기를 발견할 때면 비참한 운명에 고개가 돌려진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비둘기가 추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두렵다. 나는 아파트로 가득한 이 땅에서 바람과 소리로 채워진 비둘기의 몸이 허공을 가로질러 가기를 바란다. 동시에 비둘기가 앞으로도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살쪄갈 거라는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혐오의 감정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베란다에서 비둘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평소 비둘기에게 가졌던 것과 비슷했다. 실외기를 살피지 못한 며칠 동안 그곳은 비둘기의 보금자리로 변해 있었다. 황록색이 섞인 하얀 똥이 연한 깃털과 함께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고 표현하기 힘든 불쾌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났다. 나는 당장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와 물티슈, 걸레를 챙겨들고 에어컨 실외기 쪽으로 넘어가서 무릎이 저릴 때까지 오랫동안 꼼꼼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비둘기가 남겼을지 모르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균을 제거하기 위해 간격을 두고 소독약과 살충제를 뿌렸다. 비둘기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청소를 해서 쫓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비둘기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찾아왔다. 나는 인터넷 카페에서 '비둘기 퇴치법'을 찾아냈다. 케이블타이가 뾰족하게 일어서도록 감은 철망을 비둘기가 들어올 여지가 있는 공간마다 설치하는 것이었다. 나는 케이블타이를 감은 철망을 가지고 에어컨 실외기 쪽으로 넘어가서 단단히 고정하면서 설치하기 시작했다. 철망이 들어가지 못한 부분은 방충망을 잘라 빈 틈을 막았다. '비둘기 퇴치' 철망을 모두 설치하고 조금 지나자 비둘기가 돌아왔다. 뾰족하게 일어선 케이블타이와 부리로 쪼아도 부서지지 않는 완벽한 철조망 앞에서 비둘기는 속수무책으로 갈 곳 몰라 하고 있었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었고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비둘기가 좀처럼 날아가지 않고 철망 주위를 계속 맴돌자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큰소리를 내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유리창을 여는 순간 비둘기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허공이 잠시 흔들렸고 어딘가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리창을 닫았다.
비둘기가 맴돌다 떠난 자리에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똥이 놓여 있었다. 자신이 둥지를 틀려고 했던 곳에 비둘기가 남긴 마지막 흔적은 몹시도 보잘 것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