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재산 997m 강원 정선 북면
산줄기 : 백두노추왕재단맥
들머리 : 북면 유천리 양지마을 서측
위 치 강원 정선군 북면 유천리
높 이 997m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아우라지의... 정선 왕재산(997.2m)
왕재산은 아라리의 고장 정선군 북면에 자리하는 해발 997m의 산이다. 황병산(1407m) 자락에서 비롯된 송천과, 함백산 금대봉(1418m) 검룡소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오늘 소개하는 왕재산 좌우로 흘러든다. 이 왕재산 서녘 자락 아우라지에서 만난 두 물줄기는 비로소 어엿한 강이 되어 조양강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어찌보면 왕재산은 골지천과 송천이 백년가약을 맺는 혼인잔치의 주례이기도 하다.
두 물이 '어우러진다'(合水)는 말에서 생겨난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여량리 처녀와 유천리 총각의 사랑을 노래한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라는 그 유명한 노랫말이 전해온다.
필자는 2004년 <사람과산> 신년호에 눈 쌓인 왕재산의 모습을 싣고자 두번이나 정선땅을 찾았다. 서울과 경기도, 심지어 진부까지도 눈이 내려 고생고생 끝에 여량에 도착하였으나 뜻밖에도 이곳에는 전혀 눈이 없어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허탈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기도 하였으니...
[아우라지와 삽다리, 처녀상과 여송정]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아우라지에는 정선군에서 정성을 들여 만든 멋진 섶다리가 놓여 있다. 섶다리를 건너가면 강변 기슭에 흘러가는 조양강을 그윽히 바라보는 정자 여송정이 있고, 노래가사의 주인공인 양 처녀상이 세워져 있다.
왕재산 산행 들머리는 정선군 북면 여량에 있는 여량교. 버스정류소에서 북동쪽으로 큰길을 따르면 여량초등학교를 지나 여량교에 이른다. 골지천을 건너가는 이 여량교가 끝난 지점에서 1분 거리에 42번 국도 왼쪽으로 좁은 산길이 열려 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뒤이어 쌍묘를 만나고, 왼쪽으로 너덜지대가 전개된다. 이 너덜지대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쉬어가야 한다.
뒤돌아보면 여량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아우라지를 지난 조양강의 흐름이 시작된다. 그렇다! 굽어보는 저 조양강이 우리들이 서울에서 만나게 되는 바로 그 한강. 겨레의 살림을 살찌우는 유유한 그 흐름이 천(川)이 아닌 강(江)으로서 첫 출발을 하는 것이다.
빽빽한 솔숲길이 시작된다. 수북한 솔가리는 향기롭지만 된오름에는 무척이나 미끄럽기도 하다. 울창한 솔숲은 아쉽게도 재래종이 아닌 리기다 수종이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솔가리 오름길이 길게길게 이어진다. 해발 800m를 지나서 비로소 껍질이 붉은 아름드리 왕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같은 소나무이면서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니! 신토불이의 말뜻을 다시 한 번 되씹어 본다.
조금 더 오르면 참나무 군락이 시작되고, 낙엽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윽고 길쭉한 정수리에 올라선다. '77. 6. 재설. +307. 건설부' 라고 표시된 삼각점과 또 다른 삼각점이 자리하는 정수리는 억새꽃 마른 꽃대궁이 겨울 바람에 나부낄 뿐 정상석 조차 없는 쓸쓸한 곳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굽어보는 골지천과 여량 시가지며, 남쪽으로 반론산(1068m), 고양산(1151m), 상정바위(1006m), 남산(754m) 등 정선의 명산들이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왕재산에서 바라본 반론산과 골지천]
정북녘으로 능선길을 이어 고비덕(990m)을 향한다.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길목길목을 지킨 느긋한 능선은 쌓인 낙엽들로 인해 발목이 푹푹 빠지는 정겨운 산길이다. 더러더러 철쭉나무 곁가지가 길을 막아도 눈이 펄펄 날리면 말 그대로 산정무한의 청산길이 되리라.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참으로 느긋한 능선길, 눈이 허리까지 쌓여도 아무런 위험이 없는 이 길을 여유롭게 이어가면 안부를 지나 고비덕에 올라선다. '덕' 이란 말은 여러 뜻이 있으나 고비덕, 발구덕 등의 경우에는 '더기'의 준말로 고우언의 평평한 땅을 뜻한다.
고비덕의 정수리 부근은 이름 그대로 고랭지 채전(菜田) 같은 참으로 너그러운 산세였다. 그러나 정수리 그곳에는 베어낸 나무가 어지러이 누워 있었다. 수북히 쌓인 낙엽에 둘러앉아 간식을 서로 권하며 산꾼들의 우정을 나눈다.
상고사리로의 하산은 동쪽 능선을 이어야 한다. 능선을 조금 잇다가 오른쪽(남쪽)으로 내려가면 15분 거리, 해발 900m 지점에 태경원이 자리한다. 조계종에 속한 태경원 입구에는 뜻밖에도 '운장산 태경원' 이란 팻말이 걸려 있었다. 스님을 뵙고자 한동안 기다렸으나 인기척이 전혀 없다. 늦가을이면 일본잎갈나무의 황금빛 단풍이 눈이 부실 태경원 주위를 둘러보고 산을 내린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길게 늘어선 절길은 그 옛날 깊은 산속에서 수도하던 고승들의 높은 불심을 헤아리게 한다. 아득한 옛날 자동차도 없이 방방곡곡 산을 찾아 절터를 잡고, 도량을 세운 승(僧)들의 은혜로 그나마 아름드리 고목들이 살아남은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고랭지 채소밭길을 길게 걸어 내린다. 지난날 나의 삶이 실개천이나 냇물같이 보잘 것 없었을지라도 오늘 왕재산 산행을 계기로 어엿한 강으로서의 삶이 시작되기를 거듭거듭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산행길잡이
여량교-(1시간10분)-강능박공묘-(30분)-왕재산-(1시간20분)-고비덕-(15분)-태경원-(1시간10분)-물레방아 휴게소
왕재산에서 고비덕을 잇는 종주산행 들머리는 정선군 북면의 여량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북서쪽으로 올려다보이는 왕재산을 바라보며 여량교를 건너 조금가면 길 왼쪽으로 산길이 보인다. 솔가리가 수북한 솔숲 길을 올라가면 너덜지대를 만나고, 강능박공 묘지에 이른다(1시간10분).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울창한 솔숲능선을 계속 이어가면 참나무숲을 지나 여량과 조양강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정수리에 올라선다(30분).
정북녘 능선을 이어가면 되골 안부를 지나 잡목을 어지러이 베어낸 고비덕 정수리에 닿는다(1시간20분). 고비덕 정상에서 동남쪽 15분 거리에 조계종 소속인 태경원이 있다(현판에는 '운장산 태경원' 이라 표시되어 있음). 태경원에서 절길을 따라 4.5km 내려가면 고랭지 채소밭과 폐교된 여량초교 남곡분교를 지나 42번 국도변에 자리한 물레방아휴게소에 이른다(1시간10분). 눈이 없으면 여량교~왕재산~고비덕~상고사리를 잇는 종주산행은 약 5시간이 걸리고, 위험한 곳이 없어 심설산행에 적합한 산이다.
*볼거리
아우라지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상지 중 한 곳이다. 예로부터 강과 산이 수려하고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되어 흐르고 있는 구절쪽의 송천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임계쪽의 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불린다.
이러한 자연적인 배경에서 송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칭하여 여름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예상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옛말이 전해온다.
또한 이곳은 남한강 1천리 물길 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 시발점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뗏꾼들의 아라리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특히 뗏목과 행상을 위해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달프게 기다리는 마음과, 장마로 인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애절한 남녀의 한스러운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아리랑 가사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
정선 5일장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에서 매달 2, 7, 12, 17, 22, 27일에 열리는 청정한 자연환경과 시골장터의 향수가 그대로 간직된 장터로 원초적 삶의 향기가 가득하다. 정선 5일장에는 잊혀진 우리의 장터모습을 볼 수 있다.
각 계절별로 장에 나오는 품목이 다양하고 재미있어 언제 찾아도 즐겁다. 봄날에는 달래, 냉이, 씀박이, 황기, 곰취, 참나물, 두릅 등 무공해 산나물이, 여름엔 올챙이국수, 찰옥수수, 황기백숙, 송이버섯, 마늘 등이 나오며 조양강변에서 펼쳐지는 래프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가을은 산초, 신배, 황기, 더덕, 골뱅이, 감자, 머루, 다래 등 싱싱한 여러 가을걷이들을 접할 수 있다. 겨울엔 따뜻한 감자떡, 옛날찐빵, 민물고기매운탕, 수수노치, 전병이 있으며, 메밀부치기와 옥수수술은 추운 겨울 입맛 돋구기에 제격이다.
[아우라지 여랑역에서 바라본 왕재산]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07:10~18:55까지 하루 11회 다니는 시외버스로 정선까지 간다. 4시간 걸리며, 요금은 14,600원이다. 정성에서 여량까지는 하루 18회 버스가 다닌다. 하산지점인 상고사리는 군내버스가 하루 세번 다니지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잘 데와 먹을 데
여량에는 양지식당(033-562-4015), 한우가든(562-4059) 등의 식당과 숙박업소인 옥산장(562-0739)이 있으며, 하산지점인 상고사리 입구 물레방아쉼터(562-7648)도 식사가 가능하다.
필자:김은남 1943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을 지냈으며 92년 계간 <시세계>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시조집 <산음가1,2,3>, <시조시인산행기>, <일천산의 시탑>을 펴냈다. 이메일주소는 simsanmunhak@yahoo.co.kr
참고:월간<사람과산> 200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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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벗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