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청년수련회 장소 답사를 갑니다.
오고 가는 길 동안,
청년 임원들과 은혜의 교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8. 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본문 주해)
1~2절 :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왕 27년에 유다의 아마샤 왕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었다. 아사랴는 웃시야로 더 많이 불린다.
아사랴(웃시야)가 16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이것은 그의 선왕 아마샤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간 시기 때부터 왕으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북이스라엘의 왕의 등극에서는 왕의 어머니를 언급하지 않지만, 남유다는 왕의 어머니를 계속 말한다. 웃시야의 어머니 여골리야가 예루살렘 출신이라 말하는 것은 다윗 언약이 계속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4절 :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지만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26:4~5)
그런데 웃시야 역시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백성들의 민간신앙을 없앰으로 반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산당제사는 율법에 의해 드리는 성전 제사보다 편리하고, 자기식대로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5~7절 : 웃시야가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는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형통하게 되었지만, 여호와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죽음 후, 자신의 그 형통함이 자신이 잘 나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게 되어 교만하게 된다.
그는 왕으로 백성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고 외국에서도 대단한 왕으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 한 가지 못마땅한 것은 성전의 제사를 자신이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분향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나병이 든다.(대하26:16~21)
웃시야의 엄청난 치적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고, 그가 죽자 요담이 이어 왕위에 오른다.
8~12절 : 유다의 아사랴(웃시야) 왕 제38년에 여로보암(2세) 아들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6개월 동안 다스린다. 그 역시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역모를 꾀하여 백성 앞에서 스가랴를 죽이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이로써, 예후의 왕조가 예후 이후 4대(여호아하스-요아스(여호아스)-여로보암 2세-스가랴) 만에 끝난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나의 묵상)
이스라엘 남북 왕조의 왕들이 왕위에 오르고, 하나님 앞에 그가 어떻게 살았고(역대지략식으로는 어떤 일을 행하였고), 그리고 그가 죽으면 누군가 그 왕위를 이어간다는 내용이 계속된다.
열왕기 기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 왕이 얼마나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을 잘살게 하였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다.
오늘 등장하는 아사랴(웃시야) 왕에 대해서는 역대하 26장 전체에 자세히 나와 있다.
웃시야의 치적은 나라 안팎으로 대단하였고, 그로 인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26:5)
웃시야의 형통의 이유를 제사장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가랴가 죽자 하나님의 묵시가 희미해지고, 웃시야는 마음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그래서 제사장이 주도하는 성전 제사에 율법을 어기고 왕이 나섰다가 하나님의 치심으로 나병이 들게 된다.
그것은 마치 요아스가 여호야다 살아 생전에 반듯한 왕이었다가, 여호야다가 죽자, 변질되어 우상을 섬기는 왕이 된 것과 비슷하다.
요아스는 신복의 손에 죽고, 웃시야는 나병이 들어 죽음으로 그들의 종말은 참으로 비참하다.
하나님 앞에 실패한 남북 왕조의 왕들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교만’이다.
정직히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니,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호야다가 죽고 난 뒤 요아스가 그러했고, 오늘 본문의 웃시야가 그러하다.
‘교만’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솟아 나오는 인간의 죄적 본성이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내가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제사장 여호야다의 그늘 아래 있지 않는 요아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알게 하는 스가랴의 도움이 없는 웃시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만이 옷이 되고, 피부처럼 밀착된 내게 누군가 바른말을 해 준답시고 나의 교만을 지적한다면, 나는 당장 화를 내고, 온갖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상처를 받았네 어쩌네 분을 내면서 낙심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게 하는 지적이라면 주님의 음성으로 겸허히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꼼짝할 수가 없다.
때로는 조금 반항해 보기도 하지만, 이내 항복이다. 내가 얼마나 찐한 죄인인가를 말씀의 거울로 딱 비춰주시는 데는 별도리가 없다. 신기한 것은 그로 인해 상처도 받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를 보게 하는 것은 말씀이고, 그 말씀 앞에 설 때에 나는 머리를 조아린다.
언젠였던가.....나의 여호야다는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오늘 웃시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게 한 스가랴(대하26:5) 또한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생각나게 한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성령님은 여호야다나 스가랴처럼 죽음으로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나를 말씀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고, 그 속에서 역사하셔서 나의 교만을 보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고, 그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보다 신나는 일은 없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 앞에 나아오게 하셔서
항상 교만한 저의 죄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항상’입니다.
틈만 나면 교만의 싹을 틔우는 자입니다.
이 끈질긴 옛사람의 본성에 지치거나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더 부지런히 십자가에 붙들며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