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배고프면먹고안고프면안먹는생활을하는중에주의음성을들을려고기를씁니다그때주님은뭐라도알려주십니다그러면밥을먹습니다
영과 육이 구분이 되는데, 육적인 생활이 많이 발달이 되면, 될수록 영과 다르게 육적인 생활로만 생각하는 관념적인 사고가 강하게 작용을 해서 영적인 일을 그러치게 하고 육적인 생각의 기준이 영적인 역사를 이해하려니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예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영의 사람이었는데, 영이 죄를 짓는 타락으로 떠나 버리고, 인간은 육적인 죄의 몸이 되어서 피의 제사를(예수 십자가의 상징임) 드려야지만, 죄 용서와 함께 영이 깨여납니다. 그것이 오늘날은 예수 십자가의 보혈이며, 성령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를 믿으면, 죽었던, 영이 깨여나면서 개발하지 않으면, 아는 정도로 종교 인의 모습을 따라서, 사는 그 흐름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머물게 되는데, 안다고 그러고, 어디서 들은 것은 있으니, 자기만의 테두리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아도취적 생활을 할 수도 있고,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 예배만 참석하는 경우를 선데이 크리스천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를 잘 믿고 안 믿고는 각 개인의 선택입니다. 이왕이면, 잘 믿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간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 수준으로 살려는 노력은 예수님처럼입니다.
예수 같은 능력 예수 같은 은혜와 사랑이면, 되는데, 주님께서 몸 버려 피 흘려 죽으신 만큼 나는 너를 위해 그랬는데, 사울을 꺼꾸러뜨린 주님이 사울에게(사도바울 개정 전의 이름) 다메섹 도상에서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22:7-8)'!! 주님이 그렇게 우리들을 찾아오셨다면, 사울은 너무 잘았습니다.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사울은 할 말을 잃고 사흘 밤낮을 식음을 전폐를 했습니다.(행 9:1-9). 아나니아의 안수기도와 함께 성령세례를 받고(행 9:17) 이날 이후로 사울은 바울 사도로 개종이 되어서 목이 잘려서 죽는 날까지 예수 때문에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는 삶으로 살기 위해서 말씀 연구와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주 예수님 앞에 꺼꾸러진 바울 얘기하다가 저의 부족함을 발견했습니다. 아는 척 다양하게 바울의 이력을 활동적으로 성경적으로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수준도 안되면서 은혜 나눈다는 게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어 진작에 써놓고 결론을 못 내렸습니다.
영과 육의 생활 태도와 삶은 너무 다른 것을 바울서신을 보면, 영적인 것과 육적인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는 것은 바울은 육적인 모습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영적인 복음 사역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렬하게 목이 잘려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방인 사역에 핵심 인물로 예수님께서 높이신 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였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