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을 따라, 제적봉 평화전망대
오전 9시쯤에 서초동 원룸을 나섰고, 오전 9시 30분에 서초역에서 전철 2호선에 올라 영등포구청역까지 달렸고, 그 역에서 전철 5호선으로 갈아타서 마곡역까지 달렸고, 오전 10시 50분에 그 역에서 강화버스터미널을 종점으로 하는 3000번 버스에 올랐고, 1시간 10분 정도를 달려 강화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낮 12시쯤이었다.
3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마침 점심때가 되긴 했지만, 이날 점심은 굶기로 했다.
먼 길 떠난다고 아내가 푸짐하게 차려준 아침밥상이 그때까지 덜 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배가 고프면 도중에 끼니를 때울 생각을 하고, 우선은 가벼운 몸으로 트레킹을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이제는 서해랑길 103코스의 종점인 강화도 최북단의 제적봉 강화평화전망대까지 가야 했다.
버스 편이 마뜩하지 않았다.
아주 외진 곳이어서, 굳이 버스를 타려면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출발이 늦어지면 첫날부터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30분 남짓 달려야 했고, 15,000원 상당의 요금을 지불해야했다.
그렇게 해서 제적봉(制赤峰) 강화평화전망대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1시쯤이었다.
제적봉이라는 그 이름은,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 재임시절인 1966년에 이곳 봉우리에 올라 ‘공산당을 제압한다.’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민통선 지역인 양사면 철산리 11-1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강화평화전망대는 남북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가자는 취지로 2008년 개관하였다. 강화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을 전망할 수 있는 곳으로 전방 2.3km 바다를 건너 황해도 개풍군과 마주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개풍군과 배천군 사이를 흐르고 있는 예성강과 배천군 및 연안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를 볼 수 있으며, 정면으로는 선전용 위장마을,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개성 송수신탑,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어 북한 주민들의 실제 생활상을 육안으로 생생히 느끼고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초입의 입간판에 그와 같은 평화전망대에 대한 소개의 글이 있었다.
그 봉우리에는 그 입간판만 있은 것이 아니었다.
한상억 작사 최영섭 작곡의 우리가곡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도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의 승전을 새긴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도 있었고, 해병소령 김흔중이 쓴 ‘피한’(彼恨)이라는 시비도 있었다.
하나하나 그 세워진 의미를 가슴에 새겨 담았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서해랑길 그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시각, 곧 이랬다.
‘2022년 1월 5일 토요일 오후 1시 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