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한 것으로 여겼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박해가 심하여지자 유대와 사마리아의 모든 땅으로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흩어진 이들이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진 것은 역사(歷史)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의 가치체계를 뛰어넘은 하나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이곳 베트남은 동해로 태풍이 지나고 있어서 어젯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며칠간 비도 계속 와서 날씨는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이 새벽 교회 앞 공터에서는 개구리들이 개굴거리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창 덥고 뜨거워야 할 이 시기에 오히려 밤에 잘 때 한기를 느껴 가벼운 담요를 끌어당겨야 할 정도인 것은 세상은 자연의 순리대로만 이끌림 받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 하루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의 의나 계획 그리고 나의 가치로 행하지 않게 하시고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하오니 주의 긍휼하심과 은혜로 나를 덮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5:13-26
제목 :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3 유다 왕 웃시야 제39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에서 왕이 되어 한 달 동안 다스리니라.
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17 유다 왕 아사랴 제39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10년간 다스리며
1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1,000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50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21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 므나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3 유다의 왕 아사랴 제50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2년간 다스리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50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 나의 묵상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한 이스라엘의 운명이 기울고 있다.
그것은 여러 왕들이 죽고 죽이는 살육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예후의 4대손 스가랴가 왕이 되었는데, 여섯 달 만에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살해하였다.
살룸은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으나 한 달 만에 므나헴에 의해 살해당했다.
므나헴은 1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역시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앗수르 왕 ‘불’이 그 땅을 치려하자, 은 1,000달란트를 그에게 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
불은 디글랏빌레셀 3세(B.C. 743-726)로서 베가 당시 이스라엘을 침략한 왕과 동일한 왕이다(29절).
므나헴이 불에게 바친 은들은 이스라엘 모든 부자에게서 강탈한 것이었다(20절).
므나헴이 죽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역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그는 베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베가가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남유다는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아 다윗의 후손이 왕위를 이어갔다.
이와 달리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 여러 왕조들이 왕위를 이어갔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심판하실 때에 만일 여로보암이 다윗의 길로 행하면, 그의 후손의 왕위를 견고히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왕상 11:38).
다윗의 길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언약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 백성들이 자기를 떠날 것이 두려워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행하였다.
곧 말씀과 무관한 유사 신앙을 제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고 그것이 그의 죄가 되었다(왕상 12장).
그로부터 200여 년간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말씀을 떠난 이스라엘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한다.
율법을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히, 야다) 못한다.
관리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이생의 풍요를 주는 바알을 따라 예언한다.
그런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들과 끝까지 싸우신다.
(렘 2:8-9)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그들이 말씀으로 돌아와 언약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호 14: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말씀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로보암이 제정한 유사 신앙에 몰두하였고, 결국 지도자와 백성들은 함께 멸망의 길로 갔다.
(겔 14:10)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마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신 구원자이시다(마 5:17).
이제 신약시대 우리는 아들을 통해 주어지는 말씀을 받는다.
이 말씀은 만물 위에서 아들이 보고 들은 말씀이며 곧 영생의 말씀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영생의 말씀은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을 준다(요 6:63).
영생의 본질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곧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는 사귐이다(요 17:3).
영생 얻은 자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귐 안에 거한다.
이것이 새 언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준행해야 할 ‘의’이다.
곧 큰 자나 작은 자나 하나님을 아는(히, 야다), 사귐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시대 교회와 성도를 미혹하는 유사 신앙이 그 세력을 떨치고 있다.
그것은 복음이 처음부터 순전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종교성의 토양 위에 심겨지기 때문이다.
특별히 온전한 복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복음은 기존의 종교성과 혼합되어 철저히 왜곡되고 만다.
복음의 목적은 창세전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을 얻는 데 있다(딛 1:2; 벧전 1:23-25; 딤후 1:9-10).
그리고 이 복음은 개인적으로 체험된 것 곧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증거하는 복음이라야 한다(롬 16:25-27).
이 복음을 듣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 날로부터 생명의 열매가 맺어 자라는 것이다(골 1:5-6).
유사 신앙은 하나님의 징계와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징계와 고통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말씀의 본질로 돌아오도록 주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곧 복음으로 영생을 얻어, 거할 성읍인 창세전 아버지 품에 들어가기까지 주리고 목마른 고통은 계속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주리고 목마른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그에게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다.
이 생수인 영원한 생명은 하늘에 속한 말씀,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얻게 된다.
솟아나는 샘물,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으로 인도한다.
나는 복음을 알지 못하여 유사신앙에 흠뻑 빠져 취하였던 자이다.
복음을 알기까지는 이 유사신앙이 복음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복음의 핵심가치를 배우지 못했고 또한 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려서부터 몸에 밴 종교성이 나를 이끌었다.
그런데 그 종교성이 결국 나를 괴물로 만들었다.
예수를 믿어 이 땅에서 부자가 되기를 원했고, 예수 믿어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기를 바랬으며, 예수를 믿으므로 남들 보기에 내가 보란 듯 하게 보여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내 뜻과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나는 심히 괴롭고 불편하였다.
심지어 목사가 되어서도 이런 3A(Appearance 보란듯함, Achievement 성공, Affluence 윤택과 풍요)를 향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예수를 믿어 이 땅에서 이러한 것을 누리는 것이 진리요 복음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이런 것이 나의 삶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나의 고통과 환난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했다.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기도 하고 나 자신도 힘써 기도하였다.
그 기도는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보다 복음을 듣게 하셨다.
그 복음은 내가 원하던 것 곧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어주는 요술램프가 아니었다.
다만 말씀 안에서 나의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이었다.
나의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은 그대로지만, 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의 중심이 전혀 바뀐 것이다.
그것이 바로 땅에 있는 모든 것은 풀이나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없어질 것이지만, 주께서 나에게 주기 원하시는 참된 선물은 땅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곧 영생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매일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가진다.
이것이 이 땅에서 누리는 영생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를 종교성으로 짓눌렀던 이 땅에서의 희망고문을 조용히 내려놓고 영원한 생명으로 참된 자유를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정말 험악한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진짜를 모르고 가짜를 진짜처럼 믿어온 나의 모습이 그저 불쌍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 복음 안에서 생명의 주님을 만났음을 감사드립니다.
복음 안에서 보면 지나온 걸음들이 허투루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임을 고백합니다.
하여 내가 연약한 것도 감사요, 내가 곁길로 나갔던 것도 감사입니다.
그 길을 통하여 날 향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더욱 깨달을 수 있었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내가 붙들었던 유사신앙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나도 모르게 그런 소욕과 욕망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 안에서 복음의 목적을 알기에 한낱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