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막대한 고속철 수주로 미,일에 약속을 받아낸 걸까요??
------550조 고속철 시장 中 日 국운 건 경쟁, 한국은?
http://media.daum.net/v/20151213150304283?f=m
●●일본이
중국인30만명을 죽인 난징대학살기념행사에 시진핑등 최고위 인사가 불참했다고 하네요
●●북한엔 석유공급중단하고
대북국경선엔 2000명의 군인을 보강하고..
------"中, 북한에 석유공급 중단 통보..대북국경에 병력 2000명 증파"http://media.daum.net/v/20151213193936052?f=m
●●대국의 시진핑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국가적 재앙의 날에 불참이라니요!!
●●역시 영원한 우방은 없나봅니다
------195개국 묶어낸 타결 동력은 미·중 태도변화
http://media.daum.net/v/20151213185056199?f=m
●●남북통일만이 답인듯 합니다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의 체결로
일본군의 한국상륙이 가능하고
일본이 우리의 일급군사기밀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어찌된 일인지
인도와 핵공조 한다고 합니다
-----NPT 미가입 인도와 핵공조 한다는 아베
http://media.daum.net/v/20151213164043259?f=m
---- 일본-인도 총리, 북핵 우려 표시…"비핵화 조치 나서야" 촉구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51212066100077
●●일본은 한반도진출을 위해 날고있는데
우리네 정치인들은
바람앞의 촛불인 한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잔뜩 숨 죽이고 있습니다
미치겠습니다.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약정 폐기만이
평화의 길입니다 ~ 폐기하라!!!▶▶▶▶▶▶▶
[다음 뉴스]
▶▶▶▶중 '난징대학살' 국가추모식 시진핑 등 지도부 올핸 불참
http://media.daum.net/v/20151213215835581?f=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3일 열린 난징(南京)대학살 국가추모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와 달리 국가추모일의 격을 낮춰 일본에게 화해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신화통신은 이날 오전 10시 장쑤(江蘇)성 난징시 난징대학살 희생 동포 기념관에서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추모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13일 일본군이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후 40여일 동안 30만명 이상 달하는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난징대학살 추모행사는 지방정부가 주관하다가 지난해부터 국가추모일로 격상됐다.
지난해 추모식에서 시 주석은 “역사의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범죄를 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의 반성을 강력 촉구했다. 하지만 올해는 시 주석은 물론 중국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 7명 중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AP와 로이터통신 등은 중국 당국이 ‘로우키(low-key·절제된 대응)’로 행사를 치렀다고 전했다. 난징 시내에는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는 등의 구호가 곳곳에 내걸렸지만 추모식 외에는 대부분 연극, 촛불제, 추모 서적 발간 등 문화행사 위주로 진행됐다. 이번 추모식은 지난 10월 난징대학살 관련 문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후 처음 열린 것이며 중국 측은 추모식이 열린 기념관 정문 입구에 표식비를 세웠다.
추모식에 참석한 가장 고위급 인사인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은 연설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은 중대 전쟁범죄로 국제사회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 인류 모두의 지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부정하고 침략전쟁과 침략자를 미화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부위원장은 “중·일 양국이 1972년 수교 이래 어려움도 있었지만 장족의 발전을 거뒀다”며 “역사를 귀감으로 삼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난징 대학살◀◀◀◀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3n3039a
南京大虐殺
요약)))
중국의 수도 난징이 함락된 후 마쓰이 이와네 대장 휘하의 5만 여 일본군은 1937년 12월 중국인 포로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간·학살·약탈을 자행했고 기관총에 의한 무차별 사격,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는 등의 방법으로 학살했다. 극동국제재판 판결에 따르면, 비전투원 1만 2,000명, 패잔병 2만 명, 포로 3만 명이 시내에서 살해되었고, 근교에 피난가 있던 시민 5만 7,000명 등 총 12만 9,000명이 살해되었다. 이것은 최소한의 숫자이며 실제로는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 이후 반년 만에 중국의 수도 난징이 함락되었다. 일본 중지나방면군의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대장 휘하의 5만 여 일본군은 난징으로 진격하는 도중과 점령 후 중국인 포로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간·학살·약탈을 자행했다. 학살의 방법은 기총에 의한 무차별 사격,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는 등 잔인했다.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이 사실이 일반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외국인 생존자에 의해 곧바로 세계에 보도되었을 뿐 아니라 몇 가지 르포르타주나 보고서에 의해 점차 더 널리 전해졌다.
극동국제재판 판결에 따르면, 비전투원 1만 2,000명, 패잔병 2만 명, 포로 3만 명이 시내에서 살해되었고, 근교에 피난가 있던 시민 5만 7,000명 등 총 12만 9,000명이 살해되었다. 이것은 최소한의 숫자이며 실제로는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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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러게요
찌라쉬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건강하세요.
알았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