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마족으로 살아온 천여 년의 세월 동안 지켜져 오던 절대적인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모순된 모든 존재를 멸망시켜 '무(無)'로의 완전한 통일을 이룩하고자 하는 오랜 신념. 이것이 정의고 목적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여 마도사 리나 인버스를 만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신념이 완전히 깨어진 건 나의 주인이신 수왕 님께서 내리신 명령에 충실하기 위해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리나 인버스를 내 손으로 죽였을 때였다.
나는 얼굴과 목에 달라붙은 체 시야를 방해하는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전투 중 내리기 사작한 비는 이미 소나기란 단어로 표현하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퍼붓고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은 축 늘어지고 움직이기 편하도록 헐렁하게 만들었던 검은 신관복은 몸에 휘감겨 움직이는데 불편을 주고 있다.
그녀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몰골이었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풍성한 주홍빛 머리는 물을 먹을 대로 먹은 채 어깨 위에 축 늘어져 있고 검은 망토가 몸에 착 달라붙어 그녀의 가냘픈 몸매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그 모습은 그녀에 대한 걱정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체력을 거의 소모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비에 젖어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창백한 얼굴와 미미하게 흔들리는 몸.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을 내쉬는 모습이 이미 대부분의 마력을 탕진한데다 데미지가 위험수위를 넘어 몸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러나 크게 뜬 선홍색 눈동자는 아직 생기로 충만하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를 향해 석장을 들어올렸다.
"리나 씨, 갑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계의 어둠을 지배하는 자들이여
흩어진 영혼의 조각들이여
그대들의 힘을 연이어 모아
나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하소서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흐르는 피보다 더 붉은 자여
시간의 흐름 속에 파묻힌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걸고
나 여기서 어둠에 맹세한다.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리석은 자들에게
그대와 내가 힘을 합쳐
사무치는 멸망의 고통을 내릴 것을!』
"드래곤 슬레이브!!!"
'힘있는 말'을 외치면서 뻗은 그녀의 양손에서 피처럼 붉은 기운이 집결해 쏘아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바람을 산산이 흩으면서 날아온 붉은 마력파는 내가 손을 한번 휘젓는 것으로 공기 중에 녹아들 듯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마족과 전투에 능숙한 숙련가답게 당황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위한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어둠의 바다를 다스리는 물의 왕이여…."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공격할 차례.
나는 그녀가 주문을 더 외우기 전에 공간을 뛰어넘어 그녀 앞에 섰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임무를 완수해야한다는 사명감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게 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일말의 망설임은 방향을 빗나가게 하고 있었다.
눈치채고 있었지만 굳이 고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공격이 빗나가고 그녀가 카운터 어택을 날려주길 빌뿐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가 공격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나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거의 빗나간 수도를 잡아끄는 강한 손길.
반사적으로 손을 빼기도 전에 마력을 품어 흉기나 다름 없는 내 손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찌직! 우드드득!!
살이 찢기고 뼈가 부숴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아‥‥.”
완전히 관통되버린 그녀의 몸.
그녀의 가슴에서 시뻘건 액체가 분수같이 솟아올라 팔을 적시고 얼굴도 가득 뒤덮었다.
머리카락사이로 흘러내리는 끈적거리는 액체.
눈앞을 가로막은 체 흐르는 붉은 액체를 떨리는 손으로 닦아내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얀 장갑을 시뻘겋게 물들인 검붉은 액체, 너무 붉어서 검게까지 느껴지는 선홍색 피.
스르륵.
과다출혈을 일으킨 그녀는 지탱할 힘을 잃고 소리없이 내 품으로 쓰러졌다.
심장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피가 다시 한번 몸을 뒤덮었다.
"콜록, 콜록‥‥ 커헉!"
그 작은 몸에 얼마나 얼마나 많은 피가 있는지 기침을 할 때마다 하나가득 선혈이 튀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와 토한 피로 붉은 색에 가깝던 옷이 더욱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리나 씨‥‥. 왜‥‥ 왜 피하지 않은 겁니까?"
목소리가 떨린다.
어째서‥‥ 그대로 뒀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텐데. 왜 스스로‥‥!
격하게 기침하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하‥‥하하하, 우습지? 넌 적인데‥‥, 도저히‥‥ 싸울 마음이 생기질 않아‥‥."
그런!
"어째서‥‥ 저는‥‥."
어떻게 그렇게 환하게 웃을 있는 겁니까?
"그렇게‥‥ 죄지은 얼굴 하지마‥‥. 너야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동료 손에 죽게되는 게 좀‥‥ 어처구니없을 뿐‥‥, 어차피 이렇게 되리란 거‥‥ 알고 있었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찢는다.
이 순간까지 나를 동료로 생각하는 그녀‥‥.
"리나 씨‥‥."
그녀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거 알아? 인간은‥‥ 죽어도 다시 환생할 수 있대‥‥. 하지만 마족은‥‥ 소멸되면‥‥ 그걸로 끝이야‥‥. 너는‥‥ 내 동료야‥‥. 동료가 죽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부드럽게 웃어 보이는 리나.
너무 포근하고 따뜻한 웃음이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몸 속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저는‥‥, 당신을‥‥."
목이 메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리나는 간신히 미소를 띠고 힘겹게 손을 들어 뺨에 갖다 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미 차갑게 식어 버린 피로 잔뜩 물든 손‥‥.
그래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자그마한 손가락들.
"제로스‥‥. 부디‥‥자‥‥유롭‥‥게‥‥."
거의 들리지 않게 된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는 그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뜨거운 뭔가가 눈에서 솟아오르는 듯했다.
"리나 씨, 리나 씨‥‥, 리‥‥나‥‥."
갑자기 그녀의 몸이 크게 경련을 일으켰다. 크게 벌어진 입에서 소리없는 비명이 터지는 듯 했다.
그리고‥‥ 한순간 그녀의 몸이 실 끊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힘없이 떨어진 손과 어깨를 짓누르는 그녀의 머리.
생기 넘치던 루비 빛 눈동자는 굳게 감긴 눈꺼풀에 가로막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안 돼!!!
나는 정신 없이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아직‥‥, 아직 내 진심을 말하지 않았다고요! 그러니까 눈을 뜨세요. 제발‥‥, 날 봐줘요! 리나--!!!"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전할 말은 산더미 같은 데 정작,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이대로 헤어져야 한다니‥‥.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리나!! 리나!! 리나‥‥."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흔들어도 그녀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영원히 사자의 세계로 떠나버린 거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날로부터 사흘 후, 그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하늘은 아침부터 먹구름이 잔뜩 껴서 세일룬 전체가 회색 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슬픈 감정에 젖게 만들었다.
하얀 상복을 입고 선두에서 걸어가는 피리오넬 왕자와 역시 하얀 옷을 입고 뒤따르는 동료들‥‥.
하지만 나는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허락 받지 못한 존재‥‥.'
나는 성을 벗어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저 행렬에 함께 해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지만 살인자인 내가 들어설 곳은 없다.
"이곳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하얀 대리석이 깔려 있는 광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 장식도 없이 그저 새하얗지만 하는 광장.
그러나‥‥,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 이유는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내 고통의 원인을‥‥.
"리나 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이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슬픔만이 남아 버린 이름‥‥.
이 광장은 내 죄가 새겨진 장소. 내가 저지른‥‥, 내 손으로 죽여야 했던 그녀의 피가 스며든 땅.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기도는 길게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가고 싶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으로 안식을 취할 땅을 내가 더럽힐 수는 없다.
나는 마족‥‥. 살아가길 갈망하는 인간들과는 너무 이질적인 존재, 어울릴 수 없는 존재.
‥‥거부당하는 존재‥‥.
하늘마저 나를 거부하는 것인가‥‥.
찬란한 빛을 내뿜던 태양은 검은 구름 사이로 가라앉아 세상은 어두워지고 굵은 빗방울이 삽시간에 모든 것을 가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전경이 되었다.
그래, 꿈처럼‥‥. 리나가 죽은 건 꿈이고 이 모든 것이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몸을 적시는 차가운 빗방울은 이것이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으흐흑‥‥. 리나 씨‥‥."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흐느끼는 피리아. 그런 그녀를 위로하듯 감싸는 가우리.
나는 정신세계에서나마 리나가 누워 있는 유리관이 땅속에 안치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리나 씨‥‥."
그녀는 잠든 것처럼 보였다.
잘 손질된 붉은 머리, 손을 갖다 대면 금방이라도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은 핑크빛 입술, 상처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그리고 희미한 미소까지 머금은 평안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얼굴.
피로 얼룩졌던 모습이 거짓으로 느껴질 만큼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유리관이 완전히 땅속으로 들어가자 가우리를 비롯한 동료들이 각각 삽을 들고 흙을 퍼서 관 위에 뿌렸다.
점점 사라져 가는 리나‥‥.
마지막으로 가우리를 끝으로 리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숨죽이는 흐느낌이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리나 언니‥‥. 부디 쉬피드 님의 기호가 함께 하길‥‥."
아멜리아는 새하얀 장미꽃으로 이루어진 화환을 묘 위에 올려놓고 젤가디스 옆에 기대어 차마 떼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 적막감이 감돌기 시작한 백색의 묘지에 퍼붓던 비가 이슬비로 바뀌고 나서 정신 세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 이름 모를 들꽃을 들고‥‥.
"리나 씨‥‥. 신의 이름으로 기도 드릴 수는 없지만, 고통 없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이것이 마족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하얀 장미 사이에 놓여진 엶은 분홍빛을 띤 한 송이의 들꽃. 마치, 독특한 동료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고 평범한 삶을 거부한, 짧지만 불꽃처럼 살아온 리나의 삶을 보는 듯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갖춰 목례하고 비석에 기대었다.
"당신은‥‥, 저한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임무를 위해 이용하는 수단이 아닌 목적‥‥. 말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당신은 인간 사이에서도 단연 틀린 존재였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처음 리나 씨를 만났을 땐 그저 조금 별난 인간이구나 정도 밖에 느낌이 오지 않더군요. 하지만‥‥ 같이 여행을 하면서 저는 당신에게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리나 씨의 순진한 매력, 활달한 모습‥‥, 마족인 저로써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끌리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 준 리나 씨의 솔직한 점이었습니다. ‥‥제 정체가 드러났을 때도 나무라기는커녕 매도하지도 기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을 이용하기 만한 저를‥‥."
이슬비는 다시 장대비로 바뀌었다.
차디찬 비‥‥. 기묘한 기분이다. 몸은 비에 젖어 차가운데 눈은 뜨겁다. 그 탓일까? 눈앞이 흐리고 뜨거운 것이 흘렀다. 이것은 내가 흘리는 눈물일까? 아니면 눈에 떨어진 빗방울이 흐르는 걸까‥‥?
문득 석장을 쥔 손을 보았다.
하얀 장갑을 낀 손.
하지만 이 손으로 무수히 많은 생명을 파괴했다.
그리고‥‥ 마침내 리나의 목숨마저 앗아가 버렸다.
사흘 전, 그녀의 피로 붉게 물든 손‥‥. 지금은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그때. 살을 찢는 감촉은 생생히 남아 있다. 내 품에서 숨을 거둘 때조차 미소짓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
'자유롭게‥‥.'
자유롭게‥‥.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유언.
죽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들려주지 못했다.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언젠가는 말하려 했던,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말. 비록‥‥ 과거형이 되었지만 그녀가 싫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후회만 깊어 갈 뿐‥‥.
"그때 이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 옆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내 진심을 숨겨 버렸고 당신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내 망설임이 부른 죽음‥‥. 대항은 있을 수 없고 복종만이 전부인 무기력한 나. 이것이 마족, 나 수신관 제로스의 진정한 모습‥‥.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해도 당신을 만날 수는 없을 테죠. 마족이니까‥‥."
이제 나의 임무는 끝났다. 이대로 어딘가 떠나버리고 싶다‥‥.
"!?"
쐐액-!!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
나는 반사적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면서 석장으로 왼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을 막아냈다. 그리고 습격한 자가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재빨리 튕겨내고 찔러 들어갔다.
기습은 효과가 있었다. 나는 그 자를 밀어서 넘어뜨리고 그 자 위에 올라탔다.
"다‥‥당신은‥‥!?"
검을 한쪽 발로 밟아 무효화시키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석장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찌르려던 순간 그 자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거리며 일어났다. 내가 비켜나자 그 자는 한쪽 팔만을 사용하여 재빨리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는 허리 아래로 늘어뜨렸던 검을 가슴까지 들어 올려 팔과 검이 직각을 이루도록 정확하게 잡았다.
그때 거센 바람이 불어 그 자의 긴 금발 머리가 거칠게 나부꼈다.
"가우리 씨?"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대답 대신 명백한 살기가 깃들어 있는 사파이어 빛 눈으로 노려보았다.
"가우리 씨. 왜 이러는 겁니까? 어째서 이런 짓을‥‥."
"‥‥제로스. 여기서 리나의 원한을 갚아 주겠다!"
가우리는 그답지 않은 적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고 검을 앞으로 뻗으며 빠르게 돌진했다.
"가우리 씨, 그만 둬요! 당신의 실력으로는 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잖습니까!!"
"닥쳐라! 이 더러운 마족 놈아-!!"
나는 가우리의 공격을 피하면서 그를 말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상실한 가우리에게 내 말이 들릴 턱이 없었다. 차마 그를 공격할 수 없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바람에 발 밑을 신경 쓰지 않아 무엇인가 딱딱한 물체를 밟고는 그만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를 놓칠 가우리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넘어지는 순간을 노려 아주 빠른 찌르기를 감행했다.
"죽어라!!!!!!"
"그만해요, 안 돼----!!!!!!!"
퍼억--!!!!!!!!!
모든 일이 순식간이었다. 달려드는 가우리를 향해 반사적으로 휘두른 석장은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다.
"크헉‥‥."
가우리는 피를 울컥 쏟아 내고 서서히 옆으로 쓰러졌다.
천천히‥‥, 조금씩‥‥.
석장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 피가 흘러 석장을 쥔 손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 갈수록 가우리의 생명력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리고 머리가 완전히 떨구어졌을 땐 그의 눈은 빛을 잃어 버렸다.
"으‥‥, 으‥‥으아아‥‥. 으아아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손에서 석장이 떨어져 가우리의 시신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또, 또 동료를 죽이고 말았어!
"어이! 무슨 일이야‥‥, 윽!?"
"가우리 씨!?"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리고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가우리를 뒤따라온 모양인지 피리오넬 왕자와 아멜리아, 그리고 젤가디스가 피리아를 부축하면서 나타났다. 그들은 내 옆까지 와서 뭔가를 말하려다 발 밑에 널브러져 있는 가우리를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가‥‥가우리!"
젤가디스는 가우리 옆에 무릎을 꿇고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이 일어날 리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눈에 결코 잠잠하다고는 할 수 없는 분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자식! 리나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가우리까지!!"
젤가디스는 바다색 눈을 추켜 뜨고 목덜미를 후려 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의 손아귀에 흔들리는 동안에도 옆에서 아멜리아가 피리아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모습이 잘 보였다.
"으흐흑, 흐흑‥‥! 가우리 씨‥‥!"
"으아아아앙--!!"
죽었다. 가우리가 죽었다. 내가‥‥, 내가 이 손으로 가우리를 죽였어. 리나를 죽였던 피로 물든 손으로!!
"아‥‥, 아‥‥아하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왜‥‥, 왜 웃음이 나오는 거지? 가우리가 죽었는데, 내가 죽였는데 웃고 있다. 왜지? 이렇게 슬픈데, 왜? ‥‥‥‥아아, 이게 이상한 거야. 그래 나는 마족이다. 마족이 슬픔을 느낀다는 자체가 이상한 거지. 맞아‥‥. 나는 마족. 파괴만은 위해 존재하는 자‥‥.
그러니 저 거추장스러운 인간들은 없애 버려야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젤가디스를 밀어서 넘어뜨리고 천천히 피리아 쪽으로 걸어갔다.
"제로스 씨?"
나를 본 아멜리아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불렀다. 하긴, 지금 나는 이들을 죽이려는 생각 밖에 없으니 섬뜩한 표정을 하고 있겠지.
나는 그대로 아멜리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갑자기 손찌검을 당하게 된 아멜리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고 피리아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떨다 내 손에 잡혔다.
"꺄아아아아악!"
목을 잡힌 피리아는 시끄러운 새끼새 마냥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피‥‥피리아 언니‥‥."
호오? 살살 때린 거지만 정신을 잃지 않다니, 과연 피리오넬 왕자의 딸답게 몸이 튼튼하군.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죽을 테니.
그럼 먼저 이 시끄러운 애송이 골든 드래곤 아가씨나 정리할까? 나를 쓰레기 마족이니 아무 도움도 못되는 쓸모없는 놈이니 하며 함부로 지껄여 댄 신족, 후후‥‥.
처참히 죽여주겠어.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아‥‥, 커헉‥‥!"
힘을 줄수록 피리아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갔다.
"후후‥‥."
보기 좋은 모습이다. 숨을 쉴 수 없어 서서히 죽어 가는 피리아.
그녀의 고통과 슬픔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모자란대?
나는 손에서 힘을 뺐다.
아멜리아와 젤가디스의 비명.
젤가디스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버리고 아멜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이런, 이렇게 멋진 장면에서 눈을 돌리다니.
피리아는 땅에서 솟아난 무수히 많은 검은 송곳에 전신이 꿰인 체 움직임 없는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검은 표면을 타고 흐르는 선혈의 궤적을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정말 아름답군요, 피리아 씨. 네‥‥, 아주 좋아요. 불꽃의 용왕, 브라바자드를 섬기는 골드 드래곤의 무녀다운 모습이에요!"
나는 소리 높이 웃으면서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즐겼다.
마족인 나에게 있어 그것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쾌락.
나는 젤가디스가 마력을 불어넣은 브로드 소드를 한 손으로 잡아서 밀어 버린 후 주저앉은 상태로 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로 버둥거리며 도망치려는 아멜리아를 향해 검은 기운을 날려 갈가리 찢어 버렸다. 삽시간에 피보라가 솟아오르고 아멜리아의 피가 내 몸을 적셨다.
나는 포물선을 그리고 허공을 치솟는 아멜리아의 머리를 잡아챘다.
"피는‥‥, 마족에게 있어 쾌락의 상징‥‥."
젤가디스는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아멜리아의 죽음에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공황을 일으키는 젤가디스가 느끼는 절망감이 아주 맛있군.
"후후, 아주 보기 좋은 표정이군요. 죽음의 공표와 극도의 절망감 속에서 죽어 간 자의 얼굴은‥‥. 아십니까, 젤가디스 씨? 마족의 활력의 원천이 되는 것은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또 하나‥‥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어 간 어린 소녀의 피‥‥."
손을 들어 묻어있는 아멜리아의 피를 맛보았다.
죽음의 공포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표정은 실로 아름답다.
나는 피를 머금은 분홍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이렇게 달콤한 피는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최상의 것이었다. 약간 비릿하면서 짭짜름한 피 맛.
절망과 공포가 흠씬 녹아있는 피는 아주 맛좋은 별식이다.
"쿡쿡‥‥."
피를 깨끗이 핥아낸 나는 이제 필요가 없어진 아멜리아의 머리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우지직하는 두개골이 갈리는 소리가 잠시 이어지다 이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퍼석 부서졌다.
살점과 뼛조각으로 화한 머리는 질퍽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뇌수로 피가 더러워졌군."
붉은 피는 마음에 들지만 희멀건 하고 악취가 도는 뇌수는 기분이 나빠질 뿐이다.
나는 손짓 한번으로 뇌수와 피의 혼합액을 떨쳐내고 뒤돌아 섰다.
혼이 나간 체 미동도 않는 젤가디스는 금속성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푸른 돌피부로 인해 진짜 조각상처럼 보였다.
"이런, 미안하게 됐군요. 성급하게 죽이는 바람에 젤가디스 씨의 비명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하지만 괜찮습니다. 딱 한번뿐이지만 기회가 남아 있으니까요."
"커억!"
내가 어깨를 잡는 순간 젤가디스는 마구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에서 피를 쏟기 시작했다. 바다색 눈이 고통에 휩싸이면서 크게 벌어졌다.
"젤가디스 씨는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군요. 비록 이것저것 섞인 키메라라 해도‥‥, 당신은 그것이 추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오히려 그것이 당신을 돋보이게 하고 있지요."
그는 내 말은 듣지 못했다. 하긴‥‥, 젤가디스는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중이었다.
"큭‥‥. 크륵, 컥!"
젤가디스는 물 끓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피를 토했다. 대단해. 몸 속의 내장이 반 이상은 붕괴됐을 텐데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다니.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야.
"후후후‥‥, 고통스럽죠? 죽고 싶지요? 그렇다면 애원해 보세요. 혹, 마음이 변해서 편히 해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좀더, 좀더 그의 고통을 즐기고 싶다.
그러나 생각 외의 방해로 실현할 수 없었다.
그저 힘으로만 돌진하는 피리오넬 왕자의 공격은 내가 보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막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팔을 내두르는 것만으로 알아서 비석에 처박힐 정도였으니까.
"당신의 순서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요."
"닥쳐라!! 이 마족 놈!!!!"
과연‥‥,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아멜리아의 아버지. 바위도 한방에 부술 수 있는 일격을 받고도 씩씩하게 일어난 피리오넬 왕자는 눈을 부릅뜨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흐음‥‥. 이렇게 되면 느려 뺄 필요는 없지.
"그렇게 죽고 싶습니까? 할 수 없군요."
그리고 젤가디스의 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터뜨렸다. 젤가디스는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고 곧 뻣뻣하게 굳어진 채 팔 안에 쓰러졌다.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돌진해 오는 피리오넬 왕자를 훌쩍 뛰어넘어 거의 10미터는 되는 근처 조형물 위에 올라섰다.
나는 당황하는 피리오넬 왕자에게 씩 웃어 보이고 젤가디스를 안고 있는 팔을 풀었다.
쿵-.
상당히 둔탁한 소리가 났다. 몸이 돌이니 당연할 테지. 약간 허리를 구부려 내려다보니 실 끊긴 인형 마냥 기이한 각도로 구부러진 젤가디스가 보였다.
"오래 기다리셨군요. 피리오넬 엘 디 세일룬 님. 아까 아멜리아 씨를 죽였을 때 매우 화내시던데,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멜리아 씨가 외롭지 않도록 언니인 그레이시아 씨를 먼저 죽여 드렸으니까요."
"뭐‥‥뭐라고!?"
피리오넬 왕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몹시 놀란 표정을 띄었다.
"'서펜트의 나가'라고 하던가요? 좀 이상한 여자였죠. 처음 리나 씨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상스럽게 달라붙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세일룬의 왕녀라는 사실을 아는 즉시 죽여 버렸죠."
"!?"
"그레이시아 씨는 이전에 리나 씨의 여행 동료였거든요. 만에 하나 '그 분'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피리오넬 왕자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마치 시체를 보는 것 같은데?
"하하하하!"
피리오넬 왕자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와서 견딜 수 없었다. 새파랗게 질려 버린 얼굴, 망령을 본 듯한 휘둥그레한 눈. 아주 재미있는 표정이다.
실컷 웃고 나서 비석을 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멈춰 주위를 둘러보았다. 높은 곳에서 보니 세일룬이 한 눈에 들어왔다.
"피리오넬 왕자님. 두 딸이 소중한 만큼 당신의 나라도 중요할 테죠."
"‥‥! 안 돼-!!"
과연 왕족답게 내 생각을 알아챈 피리오넬 왕자는 다급하게 외쳤다.
"미련이 남지 않도록 전부 파괴해 드리지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검지로 지평선을 가리키면서 크게 원을 그렸다. 금빛 선이 손가락의 흔적을 쫓듯 유연한 곡선이 그어졌다.
『암흑의 심연 속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짐승이여,
내 부름에 답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금빛의 황혼으로 되돌려라!』
이것이 바로 항마전쟁에서 수많은 용족들을 소멸시켰던 장기 중의 장기이자 최대의 공격 기술!
"그레이트 크로스-!!"
'힘있는 말'이 해방되는 순간, 내 손이 가르치는 모든 것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집이며 길이며 사람이며, 그 모든 것들이 작렬하는 하얀 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하하하하! 어떻습니까, 피리오넬 엘 디 세일룬 님?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닙니까. 소멸의 순간을 맞이하는 도시, 전율할 만큼 아름다운 이 광경이 말입니다!!"
나는 계속 웃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마법의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 피리오넬 왕자 님. 이제는 당신 차례입니다."
세일룬이 사라지고 나서 순간 이동으로 처음의 장소로 돌아오자 피리오넬 왕자는 호신용 단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어리석기는, 마법 물품도 아닌 단순한 단검으로 어쩔 생각인 거지?
"저런, 따님들이 죽고 세일룬마저 파괴되자 정신마저 이상해졌나 보군요."
"알고 있다. 이런 쇠토막으로는 고위 마족인 네 놈에게 상처하나 입힐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긍지 높은 세일룬의 제1 왕위 계승자 - 피리오넬 엘 디 세일룬이다! 어둠에 기생하는 마족 놈의 손에 죽을 바에는 차라리 내 손으로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리라!"
피리오넬 왕자는 호신용 단검을 높이 들어 가슴에 힘껏 찔러 넣었다.
일격에 심장에 꽂힌 단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피리오넬 왕자는 쉽게 죽지않았다.
그는 선혈이 흐르는 단검을 가슴에 꽂은 채 휘청휘청 세이룬이 있는 쪽으로 돌아서고 그대로 쓰러졌다.
"자결을 하다니‥‥."
쳇‥‥, 즐거움이 하나 줄어 버렸군.
"‥‥큭?!"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 거대한 뭔가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정신을 잡아뜯는다!
"아악!!"
아프다, 아파! 본체가 뒤흔들린다! 정신에 또아리를 틀던 것이 의식을 잡아 찢고 빠져나간다!
나는 휘청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흐윽‥‥, 머리가‥‥."
나는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머리 속에 안개가 들어찬 것 마냥 뿌연 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해 낼 수 없었다.
흐릿한 시야로 비석들이 보였다.
맞아‥‥. 리나, 그녀의 장례식에 참배 와서 그리고‥‥.
순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단편적인 기억.
"맞아, 가우리‥‥!"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또렷해진다.
나는 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이‥‥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산산이 부서져 있는 폐허.
성스럽고 고아했던 백색의 묘지는 모든 게 파괴된 체 엉망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사방을 살펴본 결과, 저 멀리 보이는 세일룬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세일룬은 여기저기 거대한 구덩이가 형성돼 있고 부서진 건물들이 즐비했다. 심한 경우엔 아예 거리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설마, 마족들이?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늦은 줄은 알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 없이 달려가던 중 무엇인가 물컹한 것을 밟고 미끄러져 버렸다.
"으악!"
쿵-!!!!
"크흑‥‥."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충격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무심코 고개를 들고 밟은 것을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피‥‥피리오넬 왕자 님!"
내가 밟았던 것은 단검을 가슴에 꽂은 채 죽어 있는 피리오넬 왕자의 손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흔들어서 억지로 진정시키고 시신을 진흙탕에서 끄집어내서 똑바로 눕혔다. 그러다 우연히 얼굴을 보게 된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고 주저앉아 버렸다.
부릅뜬 두 눈‥‥.
이미 볼 수 있는 기능을 상실했을 텐데 무섭도록 강한 원한이 서려있었다.
나는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서둘러 물러났다. 하지만 한번 머리 속에 각인된 피리오넬 왕자의 눈은 쉽사리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피리오넬 왕자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찾아 묘지를 헤매기 시작했다.
몸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모두 죽었을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떠올랐다.
‥‥아니야! 절대로 그럴 리 없어. 그들을 찾아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돼.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젤가디스를 발견했다.
비가 심하게 내리고 주위가 어두컴컴해 자세히는 볼 수 없지만 은회색으로 빛나는 금속성 머리카락이 그임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젤가디스 씨‥‥."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안심 반, 기쁨 반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우연히 좀 떨어진 비석 사이로 하얀 살결이 돋보이는 자그마한 손을 보게 되었다.
"아멜리아 씨!"
나는 그 손이 아멜리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느낌이 강했으니까. 우선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무사하셨‥‥윽!?"
나는 말을 하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버렸다.
그 곳에는 비참하리 만치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 토막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을 마구 찢어진 하얀 드레스‥‥.
근처 바닥에서 뒹구는 깨진 머리 장신구가 누구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멜리아가 장례식 때 썼던 것‥‥.
"젤가디스 씨!"
거의 넘어질 뻔하면서 젤가디스를 발견한 장소로 가보니, 그 역시 피가 번져 빨간 물감을 풀어 논 듯한 물웅덩이 속에 기이한 자세로 쓰러진 채 죽어 있었다.
"이‥‥이럴 수가‥‥."
나는 비틀거리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백색 묘지‥‥. '이것은 악몽이다.'라고 속으로 끝없이 되뇌었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지금 이것들은 모두 환상이고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솟아 있는 검은 기둥들을 보는 순간 현실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검은 기둥 위를 보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버렸다. 보고만 것이다. 온몸이 찔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피리아를!
"으으으으!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믿을 수가 없었다. 모두 죽다니, 다들 처참한 모습으로‥‥. 그들을 죽인 건 바로‥‥ 나‥‥.
그때‥‥,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기억‥‥.
잔인하게 웃으면서 동료들을 살해하는 광기에 찌들린 내 모습!!
"아아아아아아------!!!!!!!!!!!!!!!!!!"
이 일이 있기 전 나는 수왕 님께서 급하게 찾으신다는 전갈을 받고 그 분이 계신 곳으로 갔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제로스."
거대한 홀 안에서 제일 높은 단상에 비스듬히 누워 계신 수왕 님.
그 분은 단상에서 일어나셔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나를 굽어보셨다.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수신관 제로스, 수왕 님의 부름을 받고 대령했습니다."
그리고 수왕 님이 말씀하시길 기다렸다.
잠시 후, 홀 안에서 낭랑하면서도 기품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충실한 심복, 수신관 제로스여. 그대에게 리나 인버스라는 인간 여마도사의 말살을 명한다."
"예!?"
그 분의 말씀은 너무 뜻밖이었다. 그래서 큰 실례를 범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그 분을 봤다.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지금 당장 실행하도록!"
"하지만 수왕 님. 리나 인버스에게 관여치 않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자 수왕 님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셨다. 나는 황급히 다시 머리를 숙였다.
"리나 인버스는 인간이면서 유일하게 '그 분'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다. 내버려 두었다간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들을 위협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설마, 잊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그때 리나 인버스는 저와 맹약을 나누었습니다. 두 번 다시 기가 슬레이브를 쓰지 않을 것이고 '그 분'의 존재를 알리지 않을 것을 말입니다."
"알고 있다. 너 역시 맹세했지. 어떤 마족도 개입하질 않을 것을, 리나 인버스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러시다면 왜!"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그러나 장차 그녀가 낳은 아이들이 그 주문을 쓰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하물며! 그녀의 후손 사이에서 그녀 만한 자질을 타고난 아이라도 태어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그 주문이 재현될 수 있다! 이는 충분히 우리 마족들에게 위협이 될 증거! 이래도 그녀를 죽일 필요가 없다는 거냐?!"
"아‥‥아닙니다!"
"당장 가서 리나 인버스를 죽여라! 너는 내 명령에 충실히 따라야 할 존재! 따라서 명령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내 행동이 수왕 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극심한 공포가 내면에서 솟구쳤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마족‥‥, 창조주의 의지를 거부해서는 안되고 거부할 수도 없는 존재‥‥. 하지만‥‥, 리나 인버스‥‥ 리나 씨를 죽이라는 명만큼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왕 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다. 그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셨을 뿐‥‥.
퓨앗!
"으아아아악!!"
갑자기 온몸을 뒤흔드는 격심한 충격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왔다. 그 바람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으윽‥‥, 으으‥‥우아아아아‥‥!"
몸 전체가 찢겨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간신히 눈을 떠 단상 위를 보니 어느새 한 손에 연 녹색 빛줄기를 든 수왕 님이 보였다.
"제로스‥‥, 수신관 제로스여! 너는 나를 거역할 수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낱 인간에 불과한 리나 인버스를 감싸는 거냐?"
"‥‥리‥‥리나 씨는 평‥‥범한‥‥인간이‥‥아닙니다‥‥. 그녀는 내게 있‥‥어 매우‥‥ 소중‥‥한‥‥."
공기를 가르면 날아드는 광선 띠. 나는 오른팔이 찢겨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말했다.
"그녀를‥‥죽일‥‥수는 없습‥‥니‥‥다‥‥."
수왕 님은 매우 진노하셔 마력띠를 휘두르셨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마력띠에 유린당해 온몸이 너덜 해져 버려 이제는 손가락 한마디 꿈적할 힘조차 남아 있질 않아 그대로 쓰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희미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수왕 님의 말이 들렸다.
"어리석은 놈! 마족이 인간 따위에게 정을 품다니. 그래, 좋다!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아도 해왕 다루핀과 패왕 그라우세라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리나 인버스가 죽는 건 시간 문제지."
무‥‥무슨‥‥!?
"몰랐나? 하긴‥‥, 당연히 모를 테지. 리나 인버스는 우리들 마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방해물. 나 수왕과 패왕, 해왕은 일찍이 그 인간을 죽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용가치가 있었기에 살려 뒀을 뿐‥‥. 더 이상의 이용가치가 없어진 지금, 리나 인버스는 제거될 뿐이다!"
그 말은‥‥! 리나가 다른 마족의 손에 죽게 된다는 건가? 내가 모르는데서? 내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큭‥‥!"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거의 떨어져 나가 너덜거리는 왼팔로 기다시피 일어난 후 수왕 님께 간청했다.
"수왕‥‥님‥‥, 제가 죽이겠‥‥습‥‥니다‥‥. 제 손‥‥으‥‥로 리나‥‥인‥‥버스의 생명을‥‥!"
"훗‥‥. 좋다."
수왕 님은 선뜻 내 청을 들어주시고 몸을 원래대로 고쳐 주셨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수왕 님께 목례를 드리고 홀을 빠져 나왔다. 그때‥‥ 등뒤에서 그 분의 혼잣말이 들렸다.
"제로스가 나서기로 한 덕분에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풀리겠어. 후후훗‥‥."
그때‥‥,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임무가 우선 이었고 다른 마족들에게 리나 인버스를 뺏기기 전에 세일룬에 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 분의 진의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때 수왕 님께서는 리나 씨가 세일룬에 있다고 가르쳐 주셨죠. 아멜리아 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당연히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테고, 기회를 봐서 저를 조종해 모두를 죽인다. 이것이 진짜 목적‥‥."
나는 석장에 심장을 관통 당한 채 죽어 있는 가우리의 시신을 보면서 그를 죽일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압니다‥‥. 그들을 죽인 이유를‥‥, 결코 알아서는 안될 사실을 알아 버린 자들이니까‥‥."
내 존재가 세일룬의 파멸을 초래하고 말았다. 허탈하다.
나 역시 수왕 님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 항상 애용하는 도구.
어차피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인간처럼 변해 버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가우리 시신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끽! 끼긱! 파직! 팍!
공간이 일그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허공에 생긴 틈으로 흘러나오는 익숙한 기운. 나에게 가장 가까우면서 더욱 강력한 존재의 것이었다.
그 기운은 점점 증폭되면서 흉하게 일그러진 차원의 틈으로 거대한 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보랏빛 늑대 형상을 한 야수는 검은 기운으로 화해 작게 뭉쳐 들어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제로스."
여성은 나를 바라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에 긴 보랏빛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거리는 고풍스러운 하얀 의복을 걸친 요염한 미녀. 바로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자 모든 야수들의 왕‥‥.
"제라스 메탈리옴 님‥‥."
수왕 님은 천천히 옆에 서셨다. 그리고 오른 손을 볼에 갖다 대셨다. 나는 이분을 많이 닮았다. 어둠과 비슷한 보라색 눈. 나 역시 이 보라색 눈을 지니고 있다. 소름끼치도록 선명한 보랏빛을‥‥.
"생각보다 잘해 줬구나, 수신관‥‥ 아니, 나의 아들 제로스."
역시‥‥. 수왕 님은 나를 이용해서 리나들을 포함한 세일룬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때, 네가 나약한 인간들과 같이 있으면서 심하게 인간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마족 본연의 모습을 잃을 것 같아서 매우 불안했다."
아닙니다. 인간은 나약하지 않습니다. 모두 내게 있어 특별했던 사람들‥‥. 저야말로 아무런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를 물질계에 내보낸 게 실수였어. 우리들 다섯 마왕을 제외하고 마족 중 최강이랄 수 있는 너라도 인간들 틈에 있으면 존재이유를 망각할 수 있는데, ‥‥카오스 드래곤. 마룡왕 가브는 수룡왕의 잔꾀에 걸려 인간으로 환생하는 바람에 이상한 생각을 지니게 되었지."
수왕 님‥‥.
"제로스, 너는 절대로 그렇게 되어선 안 돼. 가브는 마족의 수치다!"
피식‥‥.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수왕 님은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셨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수왕 님은 상당히 당혹해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살풋 웃어 보이고 발 밑에서 뒹구는 가우리의 시신 쪽으로 걸어갔다.
"전‥‥,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리나 씨들과 함께 있으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마족으로써의 마음‥‥.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나 그것을 신념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그들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멸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 살아가기 위한 존재로‥‥."
나는 석장을 손에 쥐고 계속 말했다.
"마족이 삶을 바란다는 자체가 모순‥‥. 그래도 좋았습니다. 적어도 그들 옆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들은 없습니다. 제 손으로 모두를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서 가우리 몸에서 석장을 뽑았다.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저 혼자 살아가기엔‥‥너무 괴롭습니다‥‥."
"제로스, 그만 둬!"
뒤늦게 수왕 님은 내 본심을 아시고 말리려 하셨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미 손을 움직인 후였고 있는 힘껏 찌른 석장은 가슴을 완전히 관통했다.
그리고‥‥ 붉은 피가 흘렀다.
"제로스!"
진홍의 피‥‥. 마족인 나는 절대로 흘릴 수 없는, 생명을 지닌 존재만이 흘릴 수 있는 붉고 뜨거운 피‥‥.
정신 없이 나를 부르시는 수왕 님‥‥. 슬픈 얼굴‥‥. 당신도 눈물을 흘릴 줄 아셨군요.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눈물‥‥. 갑자기 후회가 된다. 내가 죽으면 누가 수왕 님을 보필할까? 하지만 너무 늦었어‥‥. 이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의로 결정한 일‥‥.
"수왕 님‥‥. 저는 당신의 충실한 심복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도 한번쯤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토록 불러 보고 싶었던 이름‥‥. 그것은‥‥.
"어머니‥‥."
당신을‥‥, 어머니를 혼자 남겨 두고 가야 하는 일이 걱정될 뿐‥‥. 미련은 없습니다.
그리고 리나‥‥. 만약 저 세상이라는 게 정말로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도 있습니다‥‥.
'리나 씨‥‥, 사랑합니다‥‥.'
에필로그
혼자 남겨진 수왕은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수신관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구슬피 울부짖었다.
그때 잔혹하게 군것도, 그를 이용한 것도 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
그러나 진정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제로스의 보랏빛 눈을 볼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제로스의 표정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희미한 미소까지 머금은‥‥.
수왕은 제로스를 안고 눈물을 흘리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사라져 갔다.
그 후로 마족들은 두 번 다시 그녀의 존재를 찾을 수 없었다.
수신관 제로스.
천년 전‥‥.
항마 전쟁의 혼란 속에서 태어나 수많은 용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절대적인 공포의 상징이 되었던 마족.
야수들의 왕 그레이트 비스트 - 제라스 메탈리옴의 측근으로써 그녀를 보필하던 제로스는 리나 인버스라는 인간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마족의 최대 금기인 사랑의 감정에 눈을 떠 리나를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마족, 리나는 인간‥‥. 영원히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해 버린 제로스는 리나를 죽여야만 했고 그 역시 죽음을 택했다.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첫댓글 성격이 안맞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