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가 있다고 해도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간다. 이러한 자연적인 마음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계가 깊어지면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이 때로는 그것을 제약한다
사람 마음 돈으로 살 수 없고 내 마음 내 맘대로 안 된다. 우유부단한 마음이라 하겠지만 그렇게만 매도할 수 없다. 그 차이는 내가 먼저 여러 사람에게 접근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물론 맘에는 있어도 용기가 없어 접근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은 헤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접근한다면 이를 거부만 할 수 없는 내 맘을 옳다 그르다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판단할 기준이 어떤 것이다 하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똑같은 상황을 누구나 똑같이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한가지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내 주장의 근거를 뒷받침 해준다.
지금부터 여러가지 예를 들 테니 판단은 각자의 기준에 맞춰 구분해 보기 바란다.
단 내가 예를 드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그저 내 의견을 피력할 뿐이다.
탤런트 이미숙은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편에게 싫증을 느끼고 이혼한다. 뭔가 일탈성과 와일드한 매력을 남편에게 느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더 이상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후 호스트와의 관계로 언론매체의 비판대상이 된다.
영화배우 중에서 가정적이고 자상하다고 소문난 안성기가 있다 외국 영화배우 중 포주와의 스캔들로 해외토픽을 장식한 로버트 드 니로라는 배우가 있다 이 두 배우를 봤을 때 이런 생각 갖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로버트 드 니로야! 짜식 멋있어.
남자가 말야 스캔들 하나 없어서야 되겠어!
이미숙 역시 화끈한데!"
제정 러시아의 이야기다.
술에 잔뜩 취한 신하 하나가 황비의 처소 앞에서 시중들에게 알현을 청한다
"황비께서는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에 술 취한 신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평소 이 신하의 괴팍한 성질을 잘 아는 시중들은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 모두 줄행랑을 쳐버린다. 신하는 문을 열고 황비가 누워있는 침소까지 들어간다. 황비에게 고할 말이 있어서 왔지만 황비는 잠들어 있었다.
잠시 뒤... 꺄악~~~!!
하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 일은 곧 황제의 귀에 고해졌다. 그런데 이 황제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하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어 젖힌다.
"내 언젠가 이럴 줄 알았어. 그놈두 참!"
이 사람은 러시아에 역대 4위라는 영토를 선물해 주고 원로원으로부터 최초의 황제로 추앙됐던 표트르 1세 즉, 피터 대제다. 2m가 넘는 키에 누구보다도 호방한 성품을 지녔던 남성이었던 것이다.
피터는 회의석상에서 항상 신하들과 술자리를 하였다 술이 얼마나 쎈지 그를 따라가는 이가 없었다. 하도 술에 질리다 보니 한 신하가 이렇게 제안한다.
"폐하!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오니 술 양에 제한을 두어 주십시오. 그 양은 1L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1L? 그것도 술이냐, 2L로 해라"
50도가 넘는 보드카 2L라...
그런데 일을 벌인 그 신하만큼은 황제의 맘에도 들었지만 둘이 만나면 밤새도록 술 마실 수 있는 술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누라를 범했는데도 그냥 한번 웃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도 신하들이 황실을 위해 처벌을 요구하자 결국 귀양을 보내게 되었다. 귀양 보내고 나니 이거 원 술친구가 아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귀양간 지 2년이 지나자 신하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로 입궁시킨다. 이 신하처럼 따라하다가는 그 자리에서 모가지 날아간다. 피터 대제는 실수는 아무 일 없듯이 용서하지만 일부러 그런 사람은 절대 용서치 않는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 목 잘린 일화도 있다
사람 인연의 첫 육체적 접촉 수단은 손이라 할 수 있다. 징기스 칸이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다. 늪에 빠진 여인을 발견하고 손을 내밀어 구해내었다. 이 부인이 적장에게 끌려가 애까지 낳은 일이 있었다. 몇 년 후 부인을 다시 구해 온 징기스 칸은 이렇게 부인을 안심시켰다.
"이보게! 적에게 끌려간 것도 내 잘못이고, 적장의 자식을 낳게 한 것도 다 내 잘못이오"
하며 모든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남자가 바람피고 돌아와도 여자는 살 수 있지만 남자들은 살지 못한다. 밤마다 그게 생각나서 보통은 견디지 못한다. 분명히 여자와 남자는 차이가 있다. 남자는 열 여자 마다않지만 그 모든 여자가 나 말고 다른 남자와의 정사는 생각만 해도...
그러니 치정살인이...
이 심정을 이겨낸 징기스 칸을 영웅이라 하는 것이지 역대 영토확장 2위까지 넓혔다고 해서 영웅이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적어도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그런데... 결국 적장의 아들 주치는 피살당한다)
일전에 슈트름 운트 드랑의 과도기를 거치며 낭만주의(자아를 찾는)가 대두되었는데 유럽에서는 소위 '불륜문화' 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되었을 때 많은 로맨스들이 있었다. 유럽이 그랬을 때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열녀문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우리가 사실 드라마들이나 유교이념의 책들 속에서 스며들었던 정조관념들은 조선시대 이전에는 많이 찾아볼 수가 없다.
기생의 어원이 생겼다는 화랑도들의 마음을 규합시키기 위해 여자인 원화를 만들었던 삼국시대나, 원효가 자식을 낳은 신라시대나 호동왕자 유리왕 평강공주 등등이 등장하는 시대.. 그리고 아직은 성씨를 하사 받지 못했던 고려시대까지는 크게 열녀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조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사회규범으로 제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신돈이 있는 절에만 가면 애만 잘도 배 가지고 오는데 무슨 놈의...^^
그리고 성호사설에 보면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우리 여인들이 억압받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많은 나라들보다도 훨씬 관대했음을 알 수 있다. 하늘 같은 남편한테 대든 아낙네들 많았다. 지금하고 별반 큰 차이 없었다. 규제법규의 정도가 엄했을 뿐이다. 남녀 평등면에서도 발달한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정조관념(고전주의에서 계몽주의를 거친 후 낭만주의시대의)은 기존의 고루했던 교향곡을 감미로운 운율의 교향곡으로 변모시킨 리스트가 활약했던 19세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성병 감염 여성이 30%에 육박했다. 굉장히 많은 숫자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유식계급여자, 즉 신여성도 불쌍하외다. 아직도 봉건시대 가족제도 밑에서 자라나고 시집가고 살림하는 그들의 내용의 복잡이란 말할 수 없이 난국이외다. 마음과 뜻은 하늘에 있고 몸과 일은 땅에 있는 것 아닌가.’
(나혜석 삼천리 ‘이혼 고백서’, 1934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혜석처럼 자유연애가 뭔지 정조가 뭔지 개념을 갖고 처신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관념이 정리가 된다면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기준에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비키니 입은 여성을 지금 누가 뭐라 하는가? 그런데 조선시대라면... 이것처럼 여성이 알몸을 보이는 것은 관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한가지 모습을 보고 이건 이래서 안 된다고 하는 기준차원의 관념은 생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냥 이건 아니다 싶은 정도만 있으면 된다 할 것이다
엄격히 말해 간통의 처벌은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과 탈윤리화의 이론에 어긋난다 형법은 개인의 법익침해를 처벌하는 법규이지 비도덕적인 행위를 처벌하는 법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