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에 고민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쓴다는 것은 그때에서 그 글이 갖는 형식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어쨌든 글은 어떤 포맷format에 갇힌 상태에서 노출된다. 우리가 페북의 글쓰기 창인 빈 백지에 글을 써도 그 글은 사각이란 빈 백지 안에 갇혀서 드러나게 된다.
무엇인가가 드러난다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어떤 형태에 갇혔을 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김예명' 샘의 글쓰기 고백론인 <<쓰기를 가르치며 인생을 배웠습니다>> 책은 한 권의 책으로 압축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드러나 있는 책이었다. 읽은 후 몇 번 리뷰를 써야지 하고 맘을 먹었는데, 리뷰로 쓸 찾아 오는 글감이 내 사유와 너무 직접적으로 겹치다 보니 번번히 실패하였다. 글이 내생각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 역시 보편적인 것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와서 이번에는 써야지! 싶었다. 가령 이런 문구다. '넘어서기 위해서 글을 쓴다. 당신은 무엇을 넘어섰는가. 그때마다 자기만의 좌절이 있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은 도전과 같은 것이다.'
한 순간의 압박이 있다. 그때 그 자신은 사방의 벽에 갇힌다. 그 조여오는 압박은 그 자신의 턱밑에서 혀를 날름대며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와 같은 크기이다. 글을 쓰는 것은 바로 그 공포와 싸우는 연속의 다름이 아니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엄습해 오는 그 '죽음의 공포'의 크기를 접하는가. '쓰기'는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떤 정치적인 사안들, 어떤 사회적인 현황들, 어떤 자기 본질과 실존의 문제들, 어떤 관계로 집적된 얽히고 설킨 문제들, 어떤 가족과 일가의 문제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의 비전에 대한 문제들, 이러한 모든 것은 바깥의 시선이 아닌 그 자신 안에서 벽을 만드는 문제들이다. 어떤 사안들마다 그 내부로 들어가서 그 자신과 담판을 짓지 않으면 그 자신은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 스스로 먼저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넘어섰는가, 넘어서지 못했는가의 문제는 그 자신에게 고통을 야기시킨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도전하지 않거나 그냥 덮어두었다면 그냥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해결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묻혀서 그렇게 시대를 반복하며 그 문제는 되돌아 오는 것이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며 대물림의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누적된 문제들에 의해 세상은 여전히 고통 받는 것이고 우리도 그 안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항상 누적된채로 있다. 파고 또 파도 누적은 계속 집적된 상태로 남는다. 반면 그래서 우리의 글감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리뷰가 내 사유와 겹쳐지고 있다. 분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의 누적은 이렇게 송곳처럼 밖으로 삐져 나오고 있다. '김예명' 샘의 책도 어쩌면 어느 정도에서 일정 부분은 '송곳'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 자신의 집요한 고민의 결과인 이 책은 그 자신을 송곳처럼 그 자신을 가리는 암막을 찢고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가르치며 인생을 배웠습니다>>에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느낀 다채로운 감정이 드러나 있으며 또한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그 자신이 그때에서 느끼는 감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에서 그 자신의 치열함의 사유도 잘 드러나 있다.
책 출간에 뒤따랐던 고통과 환희도 잘 드러나 있다. 그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그 자신에게 위대한 성취였는지도 잘 드러나 있다.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객체로서의 인간 자신이 어떤 외로움과 싸우며 그 자신의 길을 가도록 방향 키를 움켜쥐고 놓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한 인간이 일어서는 성장통을 우리는 여전히 겪고 있다. 그래서 가슴 한켠이 저릿해지는 아픔도 동시에 전해왔다. '김예명' 샘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고 그 자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경험하게 된다. 같은 감정을 다양한 사례로써 그 자신의 상황에서 우리는 경험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렴된 책을 통하여 우리는 보펀성을 획득한 상태에서 새롭게 재공감하게 된다. 새롭게 공감된 것들로 인하여 어떤 정신들은 연결된다. 그것이 바로 생성일 것이다. 생성은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모양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알릴레오 북스'에서 진행한 '이오덕 선생 편 1부~2부'를 경청했다. 이오덕 선생의 책을 직접적으로 읽은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접한 것은 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이고 그러므로 나는 그 부분에 크게 천착한 적은 없었다. 글은 어떤 글을 쓸 때 그 글 안에서의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라고 여겼고 문체는 그 글의 형식과 비교적 잘 맞아떨어지면 그 글에 힘이 실리고 또한 문체는 그 자신의 발명품과 같은 것이라서 그것은 그 사람의 '인증'과 같은 것이다. 해서 자기 스타일 완성에 평생을 거는 것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추사체'는 글씨체의 하나이지만, 여기에 비유해 보자면 한 사람의 글쓰기 스타일도 '하나의 스타일'이다. 어떤 글에서 그 사람의 글쓰기 스타일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그 사람임을 알아본다. 추사 김정희가 평소에도 일반적 글을 쓸 때 추사체로 쓴 것은 아니다. 추사체는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완성된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그 글씨체가 어느 순간에 추사의 일반성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 자신안에 녹아드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글씨는 그 자신에서 저절로 넘쳐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글은 그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므로 어떤 포맷으로 쓸지는 그 자신이 결정한다. 조사 하나를 더 넣을지 뺄지는 문장의 앞 뒤를 고려하여 그 조사가 그 단어만이 아니라 문장 전체에서 어디에 '힘'을 실을 것인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니까 그것은 '밸런스'를 결정하는 글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다 빼고 문장이 간결해서 전달하기에만 용이한 형태라면 그것 역시 계몽주의가 더 우세하게 작용한 글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극도로 부각된 간결성 역시 '글 형식'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한글은 글쓰기의 모든 것을 실험해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 비록 발음하는 것은 완벽하게 일치가 되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언어 형식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말이고 우리 글쓰기 방식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떤 특정한 형식에 구애 받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전달만 명확하게 하는 것과 그 자신의 생각과 감정까지 전달되는 글쓰기는 조금 다르다고 여긴다. 보라! 페북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글쓰기가 진행되며 각자의 그 자신 안에서 그 자신의 감성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다채롭게 하고 있는지를! 바로 그것에 의해서 그 자신의 '쓰기'를 연마하는 것이 비롯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아이들과 성인의 글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때들로 인해서 아이들은 그 자신의 세계가 변화하며 다음 단계로 진입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자기 변화를 그 자신이 느끼도록 글쓰기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 글은 자기가 쓰면서 자기가 그 변화를 느끼는 것이라고 여긴다. 글쓰기의 과정에서 선생은 그 방향성을 잘 잡아 나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일 것이다. 글이 풍부해지고 풍요로워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에 분명 필요한 것들이 있다. 선생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부분들이다. 아이는 선생님을 믿고 자기 글쓰기의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김예명' 샘의 책에서 나는 이러한 것을 느꼈다. 아이들의 버팀목이자 아이들이 글쓰기의 바다에 도전할 때 선생은 선장이 되어 주는 것 말이다.
'김예명' 샘의 책 내용과 '이오덕' 선생의 책 내용은 크게 보면 방향이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것에서 보자면, 후학은 선학이 제시한 것에 걸리면 그 걸림을 넘어서려고 평생 자기 자신과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마침내 길을 찾는다. 그렇게 어떤식으로든 '출구'는 만들어진다. 공자와 맹자 그리고 그 뒤를 이어온 동양철학 역시 그러했다. 지엽적으로 보면 거스르는 것 같지만 광의적으로는 점차로 물줄기에 합류한 것이고 그 지엽들의 합류로 인하여 물줄기는 힘차게 끊기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일 거다.
*책리뷰가 내 독후감이 되어버렸지만 이건 내 글쓰기이므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계속 이런 형태로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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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과후학의_쓰기의가르침
*2022/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