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기도 하고, 왜 좀 더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동안 제가 썼던 수필들 올립니다~
1. 자기소개서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조유리입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저에게는 너무 많은 운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부모님 밑에 태어난 것부터, 대학에 합격하여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말입니다. 저는 현재의 제 위치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부족한 그 무엇인가를 더 채워넣고 싶습니다. 저를 더 알차게 하고 싶어서 이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에 공부했던 기초지식들과는 다른 것을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떠한 것에 대해 사색해보는 것, 지혜로운 마음을 기르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언행으로 나타나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제가 어렸을 적 학교생활을 했을 때부터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남양주미금초등학교, 서울휘경여자중학교, 서울대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공문서 상의 주소가 경기도 남양주시로 되어 있어서 그 근처의 학교에 배정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실제로 제가 살고 있던 집은 서울 제기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버스를 타고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에 있는 학교로 다녔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버스에 올라타면서 어머니와 헤어지던 날에는 눈물을 흘리며 학교에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는 힘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멀리 다녔던 학교 생활은 참 소중한 추억입니다. 혼자 학교를 다닐 때 자립심이 많이 길러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주어진 일은 혼자서 다 하려고 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직접 해보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타고 다니던 버스는 학교에서 배운 예의범절을 실천하고 느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한번은 자리에 앉아 있던 제가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한다고 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저보다도 더 멀리 가시는 바람에 저는 결국 내내 서서 가게 되어 다리가 참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양보해서 기분 좋았다는 것 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던 마음이 더 컸던 기억이 납니다. 저보다 한 학년 아래였던 동생과 같이 학교에 다니던 어느 소풍날. 동생이 버스에서 동전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거기엔 차비랑 소풍에 가서 쓰게 될 여비가 들어있어서 우리는 울면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어떤 아저씨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우리에게 오셔서 잃어버린 동전지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아저씨는 늘 저희와 같은 버스를 타던 아저씨였습니다. 저희가 내리고 나서 주으셨는지, 그 아저씨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 후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그 아저씨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동생이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주변에서 아주머니들이 ‘똑같이 생겼네, 어디까지 가니? 멀리 가는구나. 힘들겠다’라며 걱정해주시며 관심을 보이곤 했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제 마음이 자라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교가 끝나면 데리러 오신 아빠와 학교 근처 개천이나 개울, 산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승합차에서 꽁치찌개도 끓여먹고, 올챙이도 잡아서 키우고 자연과 함께 느긋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많이 보냈던 것이 오늘날 저의 유하고 순한 성격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자유분방했던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좀더 규칙있는 생활을 하게되었지만 그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교복을 입어보고 처음해 보는 학생회 활동, 새로운 친구들과 지내고, 좀 더 자율적으로 지냈던 것이 즐거웠습니다. 학교 교정이 참 좋아서 거기서도 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생물 시간에 나무나 꽃을 조사하고, 연못에 있는 잉어들에게 밥도 주고, 미술시간에는 뒷산에서 풍경화를 그리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흐뭇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공부에 더 신경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친구와 문제가 생기면서 저는 고민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다른 일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친구와 소원해진 관계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때 접했던 책이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란 것이었습니다. 중3 때 부상으로 받았던 것이었는데, ‘틱낫한의 평화로움’을 읽고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뜬 저는 그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 마음은 정말로 편해지고, 뭉쳐있던 것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을 다스리고 제가 처한 문제를 바라보니 해결점이 보였고, 그 친구와의 관계도 그리고 저도 모두 제가 원하던 바로 되었습니다. 문제점이 해결되니 다시 학교 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에 크게 감명받은 저는 사소한 문제점이 생기거나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그 책을 보곤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달라이라마의 그 가르침은 -비록 제가 그에 대해 통달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제 삶의 한 방향입니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달라이 라마를 생각해보고 돌아보고 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깨우침을 준 달라이라마가 참 감사하고,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은 제 보물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의지를 갖고 제 목표를 확실히 해서 달려온 결과, 제가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빨리 합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수시 1학기 원서도 두 개 밖에 쓰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처럼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다잡고 자신감 있게 끝까지 해보자했지만 과연 내가 대학이나 갈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비록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지금의 제 위치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제가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대학에 와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학업에 소홀해진 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다 경험이고 추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사회를 조금씩 알아봤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멋지게 설계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의 수필문학」 시간에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을 것 같고 매주 수필을 써간다는 얘기를 듣고 수강하기로 했습니다. 매주 써내는 것이 귀찮고 하기 싫어질 때가 있겠지만, 이번에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다시 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수강하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업을 통해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 많은 사색하는 수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식이 아닌 제 안의 지성이 더 자랄 수 있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제가 달라이 라마에게서 새로운 길을 보았던 것처럼 이 학기가 다 지날 때쯤 그 새로운 길을 더 멀리까지 보는 눈을 키우고 싶습니다.
2. 사랑에 대하여
제목: 스스로 하는 사랑
사람들은 내 선한 인상을 보고 나를 착하다고 한다. 진짜 내가 착한 게 맞는걸까? 나는 평소에 조용하고 순한 편이다. 눈도 동그랗고 얼굴도 둥글둥글하니 어리고 착실한 모범생 같이 생겼다. 이러한 내 인상과 성격은 지금까지 한번도 변함없었다. 일탈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이 외모가 질리고 싫을 때도 있었다. 난 무엇을 해도 모범생이었고, 모범생이어서 다른 무언가를 해볼 계제도 없었던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하지 않고서야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없겠냐만은, 나는 내 안의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과연 나는 ‘착한 사람’인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 나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 한가지로 단정지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착한 마음씨는 어디에서 나올까? 남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배려하는 마음은 그를 사랑해야 나올 수 있는 마음이다. 나는 그동안 사랑을 받기만 했지, 한번도 제대로 사랑해보거나 사랑을 준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기만 한 것 같다. 내가 착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착하다고 생각되는 행동들을 한 것이었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이 날 사랑해주기를 바랬다. 관심 가져주고 챙겨주고 도와주고 하는 것들 말이다. 나도 반대급부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인 척 했던 마음이었음을 알았다.
생일 선물만 해도 그렇다. 요즘에는 축하의 의미인 선물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다 그렇듯 축하의 표시이다. 둘째는 선물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생일 당사자의 존재의 위치이다. 친밀도에 따라 선물의 값이나 크기는 다르다.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작은 선물이라도 주면 더 각별하게 생각하게 된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생일이 지나면 다시 선물을 줘야할 사람이 된다. 자신이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에 맞게 말이다. 나도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사소한 상황에서도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 들기보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더 먼저 들었다. 이 마음을 조절해야할텐데, 조절로서 사랑할 수 있다면 말이다. 솔직히 이기적인 마음은 누구나 다 든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 것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기심은 나를 가꾸고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랑에 관련해서 이기심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마음에 내가 들어가지는 않는지. 이 생각이 사랑을 모르는 사람의 생각인지조차도 조금 헷갈린다.
한 사랑 중에 부모님이 해주시는 사랑이 나에겐 의미가 크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최대한 잘 먹이고 잘 입혀 키워주셨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 사랑을 별로 못받고 자라서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사랑이 가득한, 가족간의 정이 우선인, 가정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셨다 했다. 정말로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정말 느껴지도록 사랑해주셨다. 다른 길로 나가지 않게 따끔하게 혼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순간의 원망일 뿐이다. 아버지는 지금에 와서 너무 과잉보호를 한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참 감사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하교길을 항상 지켜주셨던 부모님. 특히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엔 시간 맞춰 꼭 정문 앞에 서서 우리를 데려가시곤 했다. 집과 학교가 5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혹시나 어디 잘못 될까하는 걱정으로, 또 가까운 거리여서 그렇게 매일 나와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과잉보호라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닥치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자신도 있다. 부모님의 사랑은 나에게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을 기꺼이 들게 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무뚝뚝한 맏딸이야 라고 생각하고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 속으로만 나도 부모님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했다면, 나에게 표현의 두려움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을 주는 것이,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고 마냥 사랑을 받는 것만 그게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은 하면서도 당장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아직 내가 바뀌려면 한참 멀었다.
사랑은, 댓가를 바라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하는 것 같다. 남녀관계에 있어서의 욕망의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해야지 하는 의무감도 아니다. - 아직 왜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좋아하는데 달리 이유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그러나 한 사람이 사랑을 하면 그에 감동하여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또 그에 감동하여 나도 사랑하게 되고 ……. 둘만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관계들이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참으로 따뜻한 세상이 되리라 확신한다. 감동해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해주는 사랑에 대한 보답, 댓가성 사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아는 사람이,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나도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사랑’을 하려고 한다. 저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주었으니까 또는, 사랑이라 착각했던 것에 응답하여 책임감으로 나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 사랑해 볼 것이다.
3. 알아채기에 대하여
제목: 시골 참새
일주일 동안 나는 나를 알아차릴 수 있길 바랐다. 그런데 이것은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관심 좀 가져보려고 하면 어디론가 쏙 숨어들어가 버리곤 했다. 꼭 가까이 다가가면 재빨리 날아가버리는 야생의 참새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 관심이 부족했나보다. 열정이 더 했나 보다. 한 주 동안 레포트들 때문에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 생각만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삶에서 나는 없었다. 나에 대해 탐색해 볼 여유가 조금도 없었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슴 졸이고 다급하기만 한건지. 이번 학기엔 학점 잘 받아서 장학금 좀 받아보겠다는 욕심, 그것으로부터 보상받을 기쁨, 부모님에 대한 효도, 타인의 관심 이러한 욕심들이 나를 풍요롭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러한 내 안의 욕심들을 비워내는 것, 그리고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참새를 쫓는 내 안의 사냥개의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 이 모두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아직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조금만 더 관심을 갖게 되면 나도 나를 알아챌 수 있을지 모른다. 야생의 참새에게 다가가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니 다가가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다가가고 가까이에서 직접 그 참새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렵다. 세상에 물든 길들여진 참새를 대하는 것은 너무 쉽다. 언제든지 어떠한 방식으로 다가가도 익숙해져있다. 놀람은 순간일 뿐이다. 그것도 곧 익숙해지고 만다. 나는 내 안의 길들여지지 않은 참새 그대로를 대하고 싶다. 참새를 대한다는 것이 그 야생의 참새를 또 길들여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참새는 세상에 익숙해질까봐 그래도 그 모습을 쉽게 비춰주지 않는 것일까.
그동안 나는 의지와 결심으로서 나를 꾸미고 살아왔다. 나는 이렇게 살거야, 이렇게 해야지…….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나를 그 의지에 부합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내가 그렇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다. 이렇게 쓰고 보니 허무감이 든다.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해 본 세상과 나는 무엇이었나 하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알아채기’로 해결될까. 어서 참새와 직접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을 관심과 열정으로 기다릴 것이다.
4. 독후감
제목: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드디어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한번 다 읽었다. 한번에 이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미리 각오는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수업과 카페의 글을 몇 가지 읽어본 것이 이해가 잘 되어 읽은 보람이 있다. 교수님께서 왜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먼저 ‘알아채기’와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실로 어렵기만한 것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시도해볼 때 알아채기가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을 탐탁치않게 생각하며 내 안에 타인을 시기하는 마음을 순간적으로 느꼈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누구나 다 이런 마음도 가지며 사는거지 뭐’ 하는 생각으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질투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나는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기만을 반복했었다. 근본이 해결된 것이 아니니 도망치기는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유연함’을 알게된 때부터는 달리 도망치곤 했다. 전에는 계속 신경을 쓰면서도 자꾸 다른 활동을 하면서 내 고통을 잊으려고 했는데, 그 후에는 유연하게 고통이 가는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유연함에서 따뜻함도 얻어, 그런 식으로 내 안의 불편함들을 스스로 정화시키곤 했다. 이제는 이것을 더 발전시켜서 통찰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기계적인 삶이 부자유스럽다고 생각했다.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도망치기에 바빴던 나는, 그 도망치는 것들이 나를 새로운 나로 변화시켜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떠한 종교에 대한 관심이라든지, 여러 가지 단체의 활동이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계속될수록 나를 점점 부자유스럽게 했다.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관념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통찰을 수행해보고 싶다. ‘이런 것이 통찰이구나.’ 생각에서 결정을 배제한 상태를 내가 놓치지 않고 잡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책의 거의 앞부분에서, 우리가 자기중심적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온다. 그것은 그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상처받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믿음으로써 나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비판받으면, 나의 믿음은, 나의 안전은 깨져버리고 만다. 이것이 두렵고 상처받기 싫어서 스스로에 대한 방어로서 저항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중심적 행동이다. 이것은 친구들끼리 얘기를 주고 받을 때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사소한 것에 대하여 친구의 비판이 제기되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옳음을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렇게 내 ‘안전’을 고집하여 굳이 나를 또 스스로 불편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통찰’로서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강연 내용이라 그런지 크리슈나무르티는 청중에게 되묻는 부분이 많다. 자신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강연에 있어서 중요한, 서로 소통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서로 함께 하고 있나요?’에서 나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정말로 그 깨달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열정’이란 단어를 함부로 마구 쓴 것 같은데 말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람들이 깨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러면서 자신도 배우는 일이 그의 직업이라 한다. 이는 정말 열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크리슈나무르티처럼 열정에 의한,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길 바란다. 세상이 원하는 것, 주변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에 맞춰서 하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내 열정이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그것을 찾아서 그 길을 걷고 싶다.
교수님께서도 수업시간에 얘기하셨던 ‘꽃의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나는 아직 사랑을 잘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도 좋아해주었으면 하고, 그것을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단순한 이것만이 진짜 하나된 사랑이 아님을 알았으니 꽃이 향기를 내는 것처럼 나도 큰 사랑에 눈을 뜰 것이다. 계속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고 깨달으며 점점 가치있는, 무언가 의미있는 인생을 사는 것을 목표로 말이다.
크리슈나무르티가 강연 때 하는, 말로만 ‘그렇다’, ‘아니다’ 가 아니라 실제로 행동이 나와야 할텐데. 사고가 그렇게 되어야 할텐데 아직은 부족하다. 특히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렇다. 나는 그동안 의지에 의한 삶을 살아왔는데, 그것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야 할지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크리슈나무르티도 계속 통찰을 시도하는 것처럼 나도 나 스스로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좀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관계와 통찰 그리고 기계적인 행동과 마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구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관계에 있어서 내가 통찰로 바라볼 수 있고, 지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첫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