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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공학
시스템으로 세상을 디자인한다
한게임과 네이버라는 쌍두마차로 사이버 세계를 힘차게 이끌고 있는 기업 NHN Global. 이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김범수 대표의 전공은 산업공학이다. 언뜻 보기엔 그의 사업 영역과 성공 내용이 산업공학과는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김 사장과 같은 산업공학과 출신 기업 대표들은 산업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스템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안목을 산업공학에서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산성의 혁명 이끄는 산업공학_ 산업공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맞춰 성장했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변화를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나 시스템이 도입될 때 발생한 문제점들을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학문이 바로 산업공학이다.
산업공학은 산업혁명 후 시작된 제조 시스템과 함께 시작되었다.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의 원칙’에서 출발한 산업공학은 20세기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던 테일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노동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했으며, 그의 철학은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하는 ‘생산성의 혁명’으로 발전했다.
드러커는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던 마르크스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아닌, 바로 테일러리즘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즉 테일러리즘에 의한 생산성의 혁명이 생산력을 극대화해 일반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이것이 결국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고급 기술을 대량 생산해 일반인들에게 생활의 일부분으로 공급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것, 이 거대한 변화를 조율하는 것이 산업공학의 역할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리적인 최적화와 운영과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산업공학은 1950년대 이후 독립적인 학문으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컴퓨터 기술이 작업 관리, 인간공학, 품질 관리, 생산 관리에 적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980~1990년대에는 비효율적인 기업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운동인 ‘기업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과 일본의 여러 경영 관리 기법이 산업공학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품질 분야에서는 프로세스 혁신 개념이 더욱 확장되어 적용되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불량률을 100만 분의 1이하로 줄이자는 ‘6 시그마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산업공학은 이런 분야에서도 핵심 연구 인력과 실무 자원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정보 기술 및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 정보 시스템, e-비즈니스 , e-매뉴팩처링 등의 디자인 및 응용에도 산업공학은 크게 기여하고 있다.
첫째도 시스템, 둘째도 시스템_ 산업공학에서는 시스템적 접근법, 최적화 및 계량분석 역량, 모델링 및 분석 능력, 제조 업무 프로세스 관리 및 시스템 혁신 능력, 기획 및 관리 기법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가르친다. 또한 산업공학 전공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응용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교육받고 있으며, 공학도에게 부족하다고 인식되고 있는 협업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도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있다.
과거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공학 교육은 인간공학, 작업 관리, 생산 관리, 품질 관리, 재고 관리 등 제조 시스템의 관리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통합 전산시스템(ERP), 공급망관리(SCM) 등 기업정보 시스템과 통합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기 시작하면서 수리계획, 통계분석, 데이터 마이닝, 최적화, 의사결정 시스템, 시스템 모의실험, 공장 자동화, 제품 및 프로세스 디자인에 대한 교육도 추가되고 있다.
또한 전산시스템 사용자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감성공학 등이 인간공학 분야의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기술경영도 산업공학의 중요한 부문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우수한 강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산업공학이 우리 사회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학계 및 산업계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계산업이나 화학산업과 같은 고유한 영역이 없다는 점은 앞으로도 산업공학의 잠재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직도 산업공학은 과학재단의 기술분류에서도 독립적인 학문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기계공학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IT 산업 인력의 20% 이상을 공급하고 있으면서도 IT 관련 학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러한 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 규모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시스템 통합 및 기업 컨설팅 부문 등은 산업공학의 고유 영역 및 고객 산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학과 경영 마인드를 두루 갖춰_ 산업공학은 공학과 경영학, 경제학 모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학문이다. 때문에 많은 유명한 회사의 CEO가 산업공학 전공자다. 오래 전 미국의 국가적인 영웅으로 부각되었던 크라이슬러사의 전회장 리 아이아코카를 비롯해 유나이티드항공사의 존 에드워슨, 노스웨스트항공사의 존 다스버그, UPS의 마이클 에스큐 등 전직 또는 현직의 CEO가 그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산업공학과를 가진 조지아공대의 경우 주요 기업 CEO를 400여 명이나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많지는 않으나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 김동진 부회장을 비롯해 하나로텔레콤의 윤창번 사장, 대우정보시스템의 박경철 사장 등이 있다. 또한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대기업에도 산업공학 출신 임원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김범수 사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IT 관련 벤처기업에는 산업공학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의 전하진 전대표, 한국정보공학 유용석 사장을 비롯해 한때는 산업공학 출신이 코스닥 등록 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CEO를 배출하기도 했다. 공학을 이해하며 최적화와 시스템적인 사고를 하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능력도 보유하고 있는 산업공학 출신자들이야말로 인터넷과 정보혁명 시대를 이끌어가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산업공학 전공자들은 다른 분야에 진출한 경우에도 탁월한 기획 능력과 업무 수행 능력을 보여 준다. 참여연대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유식 변호사를 비롯해 이미 상당수의 판사, 변호사가 산업공학 교육을 받고 그 장점을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다. 산업공학 석사 출신의 한 현직 판사는 산업공학에서 받은 체계적인 사고와 분석 능력이 법조인으로서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산업공학을 전공한 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싱크탱크로 알려진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산업공학 출신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진에는 석사 시절 경영과학이나 산업공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다수 있다. 카톨릭 신부가 된 산업공학 전공자가 카톨릭 교단에서도 사업 기획, 정보시스템 통합 같은 업무를 기획하고 관장해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도 농담처럼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는 산업공학이 가르치는 시스템적인 사고와 최적화 능력, 사업 기획 능력 등이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필요로 하는 핵심 역량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산업공학 출신자들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야는 시스템 통합 및 컨설팅 분야다. 유명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D사는 올해 한국 신입 사원의 3분의 1을 산업공학 전공자로 채웠으며, 전체 컨설턴트 중 산업공학 출신은 경영학과 다음으로 많은 17%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영학과와 산업공학과의 규모 차이를 생각하면 이 수치는 엄청난 비율이다.
금융 분야 진출도 활발_ 최근에는 회계법인과 증권사, 카드사도 산업공학 전공자를 채용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와 계량적 분석이 뛰어나고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산업공학도에게는 진출이 활발한 분야이나 국내에서는 진출이 미진했던 의료 경영, 호텔, 통신, 서비스, 물류 등의 분야에도 이제 산업공학인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산업공학과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최근 2~3년 간 학생 지원, 인기도 등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의 교육에 대한 만족도도 공대 평균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공계 대학원의 지원률이 매년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산업공학과 대학원의 경쟁률은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산업이 제조업의 성숙 단계로 접어들어 산업공학적인 전문성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 산업이 IT와 접목되면서 산업공학도의 진출 분야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공공시스템 분야는 산업공학의 참여가 가장 절실한 부문인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산업공학인의 진출이 활발하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사고 방지와 안전 관리를 시스템 차원에서 법제화·표준화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구 지하철 사고와 태풍 매미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 기간 산업을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관리하는 체계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안전 관리 시스템에 대한 필요가 점점 절실해지면서 산업공학 전공자들의 진출 분야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공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_ 산업공학을 떠나 법조계나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는 졸업생조차도 “한 번도 산업공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할 발상의 전환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장학금이나 유학 기회 같은 유인책은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공학 마인드를 가진 우수한 인력을 지속적으로 사회 각 분야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다시 이공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만이 이공계 기피 현상의 총체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육체 노동이 아니라 정신 노동과 지식이 생산성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21세기 경쟁력의 관건은 정신 노동과 지식의 생산성 혁명을 어떻게 이루고 그 혜택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배분하느냐 하는 데 있다. 새로운 시대에도 테일러리즘은 여전히 화두가 될 것이고 지식 생산성으로 향하는 산업공학의 발전과 도전도 계속될 것이다.
_ 윤명환·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P r o f I l e _
윤명환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인간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휴먼인터페이스시스템 연구실에서는 인간공학 및 감성공학을 이용한 소비자 중심의 제품 설계를 연구하고 있다. 고객 요구 사항의 체계적 분석, 제품의 개념적 디자인 방법론, 인간공학적 제품 디자인, 신제품-신서비스 개발 과정에 대한 연구 등이 그의 주요 관심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