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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토 맑음
오늘도 전일과 다름없이 24회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기가 고조되어 폐막을 하루 앞두고
금메달이 오늘 하루 4개 은메달이 4개 동메달 2개를 추가하여 종합 7위에 성큼 올랐다.
집 안밖을 쓸어놓고 각종 경기를 시청했다.
선수들이 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올라서 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정말 장하고 훌륭한 대한에 아들딸들로 하여 스포츠 세계 강국을 여실히 보여주고
우리나라 국력이 세계 10등안에 든다는 것이 돋보이고
국운이 세계로 뻗어서 살기 좋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평화가 깃들고
극락정토가 펼쳐질 날이 멀지 않아 눈앞에 전개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렇게 축복받은 나라에 태어나서 보고 듣고 느낌을 말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올림픽 운영본부에서 보자기, 필통, 라면 한상자 등을 보내주고
나라가 잘살고 평화스러워야 국민이 살아가는데 걱정근심이 없다.
농촌물가 가격이 너무 하락세여서 걱정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고추, 사과, 깨, 등이 좀 올라갔으면 좋으련만
숙모와 계수씨 아버지 골안에 고추 따러 가시고 큰집 형수 나왔다 가시고
고추를 오늘 오전까지 모두 따서 병일네 벌크에 넣고
오후 사과 주으로 아버지 가시고 계수씨 밤 따고
애들도 들에 따라 갔다가 해질 무렵에 왔다.
사과 주워서 안동 막내 삼촌 집에 좀 준다고 마중 나오라는 전화를 하신다.
태훈네도 좀 주고 해야지 별것 아닌 것 사과 몇 개로 친척이 맘이 상할까 염려된다.
손목이 아파 의원도 가신다며 무거운 것 들고 가는 것이 좀 그렇다.
계수씨는 낙과 진 것 좀 나눠 먹으려 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우리가 지은 농사 같다주면 받아먹는 분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제수씨는 삼촌과 숙모께서 오실 때마다 선례와 기성이를 천원씩 천원씩 돈도 주고
올 추석에는 삼촌이 술도 한병 사오시고 하니
우리가 생산한 사과라도 좀 나눠 먹고 싶은 생각인 것 같으나
그 고마운 마음 베풀려는 마음은 참 좋으나
그런 마음을 골고루 베풀 줄 아는 마음이 참 아름다운 보살의 마음이다.
내가 생각컨대 내가 누구에게 좀 도움 받았다하여 즉각 보답을 해버리면
상대방이 지은 복이 금방 보답되어 적선과 적덕이 쌓이지 않는다.
더욱 많은 복을 짓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함께 고추도 오전에 숙모와 땄다.
오후에 들에도 함께 간 모양인데 사과낙과 좀 자다 먹으라 하던지
한 둥우리 가지고 가라 하던지 하면 될 것이지만
삼촌이나 숙모나 주지 않으면 아니 가지고 간다.
먼저 딸 때도 거들어 따고 했으니 사과 낙과라도 좀 갖다 먹으라하지요 하니
"돈 주지요 뭐. 돈 주소” 하신다.
이 말이 괘씸하기 그지 없으나 남이라도 좀 줄 수 있으며
일해 준 품값은 품값대로 주더라도 좀 갔다 먹으라 하면 어떤가?
다른사람은 품을 꼭꼭 갚아야 하는데 바쁜대도 남에 일가지 않고
삼촌와서 하루 그냥 도와주었는데 따달라 소리 안했는데 와서 따준 것은
다른 집보다 다르다는 뜻이 아닌가?
말씀을 못해도 남에 은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고약한지고. 옆에서 힘든일 도와준분께는 썩은사과 한 개 줄줄 모르며
멀리 차를 타고 다친 손목 의원보러 가는데 무거운 것 갖다 준다는 것은
옳지 못한 마음에 처사다.
그렇게 베푸는 마음은 백 천집을 베풀어 주어도 복이 되지 않고
단 한사람에게라도 업신여기고 자기보다 모른다 하여 이용하려는 약삭빠른 수작은
부처님이 일월같이 살피고 있으므로 아무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 없다.
그러나 왜 안주노 안 그러지만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으므로
사람에 마음과 양심을 일시적으로 속이고 있으므로 사람은 서로 모른다 할지라도
귀신의 눈은 번개같이 살피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이런 것이 안타깝다.
세상이치와 인과응보가 너무 무서워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보며 느끼기만 할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마음을 보면 저런 것은 복을 받을 것, 저런 것은 화가 될 것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 갈뿐이다.
복이나 화나 선도 악도 모두 제가 짓고 제가 받으니
잘되고 못되고 남을 탓할 일은 없다.
오늘 종일 배가 답답하여 아침과 저녁은 서너 술씩 뜨고
낮에는 보리밥을 하여 한그릇 다 먹었다.
저녁도 차려주고 계수씨는 영구네 집 보리밥 잡수러 가셨다 왔다고 하신다.
TV보고 일기를 쓰고 기도하고 불은에 감사함을 드리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대자대비관세음 보살
10월2일 일. 맑음 계수씨 안동
오늘은 부친께서는 병일네 벼 베 드리고
계수씨께서 안동 막내 숙부님댁 홍옥 낙과 한 박스 갔다 드리고
손목 침을 맞고 기성 선례 신발을 사고 반찬도 사고하여 낮 배로 오시어
사과 주로 가신다고 갔다.
나는 오늘 올림픽 마지막 경기를 시청하고 집 안 밖을 쓸고 애들하고 놀았다.
점심을 계수씨 오셔서 차려주는 것 먹었으며
오전 기숙이 친우한테 그동안 쓰지 못한 편지를 두통 쓰고 오후 쉬었다.
저녁때 뒤집 노인 오전에 앞집 노인 저녁엔 영구모 낮에는 재종형수 오셨다 가시고
저녁에는 효순 조부모 함께 놀러 오셔서
토종밤을 삶아 가지고 오시어 깨끗하게 까서 날 먹으라고 10개 이상 주신다.
너무 고맙다.
어제 법회 두분 다 가셔서 종보를 받아 오시어 날 보라고 갔다 주신다.
정말 고맙다. 본산 사부장스님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달 11일날 고추를 농협에 2차 대는데 반당 10근씩이라고 했다.
전번에 효순네 것 양보 받아 대쓰므로 이번에는 우리가 양보해 드리기로 했다.
양보 안해 주어도 되지만 어른이 너무 얍삽하여 뒤우로 하는 말 듣기 싫어
입을 막아 버리려고 양보해 주기로 했다.
중매한 이야기도 하시고 자기 자랑과 절에 성금과 공양 낸 이야기 등을
좁쌀 세듯이 얘기 하신다.
이러니까 동리 어른들이 별명을 좁쌀이다 못해 밀가루가 된다고 하였지..
가신 후 기도 좀 하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고 일기를 쓰고 취침한다.
불은에 감사합니다.
10월 3일 월 맑음. 개천절.
계수씨 재기네 벼 베로 가시고
맏엄마 고추 딸 때 하루 함께 따서 오늘 제수씨 벼베주로 가시고
아버지 무우 솎아내고 약치고 오후 사과 주워 모은 것 한 리어카 싣고 꼴 베오시고
아침에 고추를 병일네 집에서 모두 건조된 것 149키로 가지고 왔다.
병일네 삼촌도 한짐 지고 왔다.
한 벌크에 250여근 같다 놓은 것 나는 해골을 골랐다.
종일 애들은 오전 오후 아버지를 따라 들로 가고 고추상인 왔다갔는데
고추를 천백오십원과 천이백오십원 준다고 했다.
너무 값이 낮아 아직 팔 생각이 없다.
그냥 가고 소두물 강원준 사과 상인한테 전화로 시세를 알아보고 나서
TV를 보며 일기 쓰고 기도한 후 감사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잠자리에 든다.
10월 4일 맑음. 방을 수리
오늘 계수씨 홍옥 5상자 가지고 오환네 경운기로 정산 가시었다가 일찍 오셨다.
양장점 예안 이발관 집을 확실히 판다하여 오락실 이전만 된다면 산다고
내일 동생이 안동 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방을 뜯어 구제를 후비고 온종일 밤까지 모두 발랐다.
나는 질배 줍고 아버지 하시는데 돕고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정해져 있는데 공연히 분주하게 하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토록 집을 산다만다 하였으나
이제야 때가되어 마땅한 집이 마련되고 가격도 알맞고 쓸모도 적당하여
더 이상 심사숙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오케이 되었다.
나도 들어보니 이번에는 아무 하자 없이 그대로 성공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을 들어 보니 동생이 모은 돈으로 누구 간섭도 없이
동생 뜻대로 시행하여 일이 잘 되도록 한 것은 분명하다.
저녁 재종 형수 오셨다 가시고
방을 수리한 관계로 십수년 만에 아버지와 내가 한 방에 잠을 자게 됐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모든 일이 부처님 뜻대로 하나하나 잘 되어 갑니다.
세세생생 부처님 진리와 함께 변함없는 신자가 되어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10월 5일 수 흐림.
오늘은 아버지 산사를 털어주시는 것 한나절 주었다. 한말이 넘었다.
계수씨 물가 벼 베던 것 베러 가신다고 낫 갈아 달라하여 낫을 갈아서
아버지 주니까 혼자 가셨는데 다 못 베고 오셨다고 했다.
오늘이 선례 6번째 생일인데 별다른 것은 못해주고
추석에 사온 고기 어제까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끊인 국물 해서
양대 안치고 해논 선례 생일을 먹었다.
아무렇게나 생일은 했으나 무럭무럭 탈없이 크기만 하여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빠, 엄마에 귀여운 손녀, 질녀, 딸이 되여 다오.
오늘 너의 아버지는 집을 사려고 안동에 알아보러 갔다.
마침 오후에 연락 전화가 집을 사가지고 옮겨 살면 오락실 이전이 된다하여
계약금 70만원 주고 집을 산다고 계약한다고 했다.
정말 이제 모든 것이 뜻대로 풀려나간다.
대구로 가느니 부산으로 가느니 년년이 들먹들먹 마음이 안정되지 않더니
이제 마음이 안정 될 것 같다.
집을 샀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으리라.
동생도 아직은 남은 힘이 있으니까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
계수씨가 큰 고생은 안 하여도 된다.
우리 아버지와 내가 아니라면 되지 못한 건방진 바람둥이 남자 보다는
오히려 속 안 썩히고 침착한 내 동생이 건강한 사람보다 몇 배나 낳으리라.
글쓰는 소질과 그림 그리는 소질, 도장 파는 기술, 등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일 동생이 오면 자세한 얘기 듣고
아버지는 오전 산사를 털어주고 마구 하방 진흙을 익여 바르고
마구치고 오후 방구들 틈난 것 바르고 부엌 아궁이도 바르시고 소꼴 베고 오셨다.
아버지께서 아직 이렇게 손수하시니까 다행이시다.
허나 힘이 딸리어 이제 하시는데 모두 힘들어 보인다.
어찌할거나 아버지와 내 신세가 아무리 못마땅해도
제수씨 하자는 대로 안하려고 해도 그렇고 따르자 해도 그렇고...
허나 다행한 것은 나와 아버지를 왜 자꾸 모시고 살려하는지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마음이 착하다 보니 고생이 되어도 나와 아버지 버려두기 싫어서 그렇겠지..
저녁 길수아버지 오셔서 고추 파는 이야기하고
일기를 쓰고 TV도 보고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든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상명아빠 사과 상인이 온 것을 얘기해 주었다. 고마웠다.
10월 6일 목 맑음.
홍옥 모두 땄다.
오늘은 큰집형수 영봉 두 사람 아버지 계수씨 4명 홍옥을 모두 땄다.
동생이 반찬을 사가지고 넘어 와서 사과밭에 가서 꼭지를 접었다.
점심먹고 넘어갔는데 넘어와서 아침을 먹고 난 후 정산 집 산 이야기를 물으니까 대답했다. 41평 오락실은 가서 살면 된다고 했다.
애들과 종일 놀고 집 청소 해놓고 세수한 후 외숙한테서 편지가 왔다.
저녁에 자세한 답장을 썼다.
TV 인현왕후 편을 보고 정산으로 가는 문제 계수씨 얘기하여 주신다.
나는 아니 간다니까 때 조석 어떻게 해먹을 것십니까?
넘어가서 함께 살도록 하자고 했다.
고추 반당 두 번째대는 것
40근 나온 것 길수네 13근 시목이네 7근 양보해 주었다.
우리는 다음에 대기로 했다.
전번에 고맙게 잘 댔으므로 양보해 주셨다.
편지 쓰던 것 자정까지 써 놓고 감사기도 잠깐 올린 후 취침한다.
10월 7일 금. 맑음.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애들하고 놀며 마당을 쓸고
외숙께 보낼 편지답장을 가지고 나가서 고란 고추밭에 올라갔다 내려오다
미나무 할매네 집에 들려 놀다 할매네 참깨 고무 도둑 또 들려갔다며
깨가 5승정도 없어졌다며 도목할매 짓이라고 동리 소문이 났다고 했다.
편지 갖다 넣어주시고 기탁이네 집인데까지 나갔다.
제수씨 영봉네 품이 있어 고추 따 주러 가시고
집에 들어와서 세수한 후 아버지 전밭골 벼 베러 가셨다.
손가락에 까시가 찔여는대 손등이 퉁퉁 부어 가지고 오셨다.
점심을 차려서 먹고 한잠자고 방바닥 미세 닦고
꼴 베러 가시고 나는 종보를 보다 수염을 깎았다.
오건이 한태 정산동생이 정산 이야기를 하고
경대병원 이현기님께 전화로 알아보니
노사분규로 일처리가 안된다 하시어 당분간 입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때 계수씨 영봉네 고추 따고 오시어 내일 하루 더 따주면
사과 경운기로 부사 실어네 준다더라고 하신다.
우리 사과 부사약을 친다고 하니 동생 한태 전화가 왔다하니
영구네 물 한 경운기 실어주면 일 한나절 전번 것과 하루 해드린다니 실어준다 했으나
동생이 어떨 때 약치기 싫다고 했다며 취소했다.
모두 취소하고 시무룩하여 남에 집에 놀러 가신후 길수모 놀러오셨다 가시고
나는 종보를 읽다 진영 앞에서 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계수씨도 오셨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대자대비 하신 관세음보살.
10월 8일 토. 맑음. 한로
오늘은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소죽 부엌에 불을 붙였다.
아침먹고 계수씨와 부친께서 벼베러 가시고 나는 집앞에 나갔다 와서
마당을 쓸고 세수했다.
애들은 밖에 나가서 놀다 왔으며 점심을 먹고 씻긴다.
아버지께 땅콩을 갈아서 캐러 가시라니 아버지 하늘 쳐다보면서 안 간다고 하신다.
오후 소달구지에 거름을 싣고 사과밭에 가시니
수수도 쭈고 고구마도 캐 가지고 오신다.
나는 아침에 삼촌 고추 농협에 대로 가시도록 얘기하여
용계아제 도목할배 한태 근량을 맞춰 주었다.
대고 오시어 도목할배 계산하여 드리고 길수모 오셨다 가시고
오전에 금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끊었다.
홍옥 가격이 폭락되어 상인이 오지 않았다.
대흥청과 상회 알아보니까 가격이 맞지 않아 도저히 팔수가 없을 것 같다.
영성아제네 공상자 좀 갔다 달라고 전화하니까 밭에가고 안 계신다 하였다.
오시면 얘기 하라고 하고 오후 방안을 쓸어내고
오늘 장판을 깔고 하는데 삼촌과 길수모 오셔는 것을 도와 달라하여
내가 깔고 쓸어내고 깨끗하게 닦았다.
힘들었지만 하였다.
뒤집할매도 놀러 오시어 얘기하고 놀다 가셨는데 정산집 산 이야기 듣고 밥과 빨래 문제로 따라 가는 것이 옳다고 하시고 미나무할매도 너는 운이 도왔다하시며 못 이기는체 하고
함께 살도록 하라고 하신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함께 살아야 하고 나는 고생스러워도 편히 혼자 끊여먹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을 것 같으나 어른을 위하여 내가 참으면서 살기로 맘먹고 가야할 것 같다.
정산에서 누가 전화를 하는데 집에서 조금 전에 전화를 했느냐고 했다.
한일 없다 하고 해동사 전화를 하니 부전스님이 받으신다.
동생이 집을 샀는데 이사방위가 남쪽이며 나이 29세라니 금년에 이사 가는 것은 좋지
않으니 설을 쉬고 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신다.
본산에 종정 스님께 여쭈어 보고 아버지 운으로 가는 것이 좋으며 먼저 이사를 든 후 동생이 설 쉬로 들어오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하신다.
저녁 길수부 고추 이야기 하러 오셨으며 앞집 할매도 고추 좀 같다놓고 간다며 내일 장날 갖다 판다고 하신다.
계수씨께 첫차로 갈 때 좀 갔다 달라고 하신다.
제수씨는 놀러 가셨다 오시지도 않고 자정이 거의 되어 가시고기도 조금 하다 잤다.
4일날 밤부터 새벽녘에 붓두둥인 데가 결리고 찌리하게 아프다.
7일날 밤도 그렇고 8일날 저녁에도 그런 증세가 있다.
괜찮아야 할 텐데...
10월 9일 일요일. 맑음
마음이 외롭고 허허하다.
내 인생이 나의 운명이 어쩌다 이렇게 펼쳐지고 있는지
나의 건강이 좋지 않아진 것은 기분이 울적하여 어느 날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아
내날이다 싶은 날이 없다.
오늘은 부친께서 땅콩을 갈아서 털어놓고 종일 계수씨는 영구네 고추를 따주러 갔다 오셨다.
방광이 편치 않고 찌뿌둥 통증이 있어 누었다가
일어나 방안과 마당을 쓸고 닦고 한 후 머리도 감았다.
선례가 수건을 같다 준다.
점심먹고 아버지 약주를 따라 짰다.
추석 때나 어떻게 소주를 사다 놓으면 별주 담는다고 술 담아 버리고 일하는데 참 술은
드실 줄 모른다.
막걸리는 어쩌다 조금 담아 놓으면 맛이 가서 못 먹고 소를 주고 불쌍한 아버지시여.
자식들을 남들같이 두지 못해서 평생을 욕보시도다.
어쩌면 좋을고 동생이 집을 사놓고 오라하면 가야 할까?
가도 신통치 않고 괴롭고 있어도 신통치 않고 육체적 괴롭고 어느 길이 좋을고?
부처님이시여.
아버지는 동생들하고 살도록 보내고 나는 혼자 남아 기도 염불이나 하고 살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하여 현명 할까요?
나중에 후회할 일 없이 해야 할텐데 내가 연구 생각한 것은 무조건 반대하면서
내 뜻을 막아버리니 살 맛 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속 편할 듯 싶다.
오후 고추 6근 대는 것 골내놓고 소죽 부엌 불 넣고
저녁 효순 부모 놀러 오셨다 가시고
TV보다 일기를 쓰고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부처님 뜻에 따라 잘 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저녁때 설영완씨께 전화로 방광 불편하다고 문의하니까
어름덩굴 백출 잔디 반근씩 한근씩 푹 과 먹으라고 했다.
동생하고 의논 좀 해 보려고 내일 넘어 올 수 있냐니까 보고 온다고 했다.
이사방위가 삼살방위며 동생이 29세이니 삼제수가 들었으니
아버지도 삼제수가 들었으니 어찌하면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싶어 의논하여 좋은 쪽으로 해보려고 나는 동생이 잘 안되고 잘못되면 내가 괴롭기 때문에
잘 되는 방향으로 해 보려고 그러니 제수씨 얘기 듣고보니 별로 얘기할 생각이 없다.
모레 병원 함께 가보자고 했다.
안동병원 너무 바빠서 가기가 좀 그렇다.
10월 10일 월 고추 따고
남 사람 두명 숙모 순창모 하여 계수씨와 함께 고란고추 따고 조금 뽑았다.
아버지는 종숙어른들 벼 베러 가셨다.
나는 집청소 했으며 고란에 고추 따는데 가보고
병일 조부와 고추밭에 든 비용을 계산하니 1300원 받으면 반당 3백50근 따면 남는돈 십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어찌 한단 말인가 농촌 경제가 말이 아니다.
농민이 데모를 일으키는 원인도 농산물 폭락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도 농산물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면 부채를 갚을 길이 없다.
오후 쉬라니까 큰 집 형수 소금값 거두시러 다니시다 오시어
뒷집 반장 아제와 용개아제 고추 거두어 대고 오시어 돈을 돌려주러 다니신다.
우리 것 6근 만 이천 원 갖다 준 돈으로 소금 값을 갚았다.
도목할배, 앞집친구 부인, 뒤집 할매 등 오셨다 가신후 저녁에 계수씨 놀러가신 모양이다.
마당에 불을 켜 놓고 계수씨 낮에 내일 병원 가보도록 하라고 하신다.
정신없이 아프면 모를까 정신이 있는데 하필 제일 바쁜 이때 한참인들 집을 비울 수 없다.
한 일주일 후에 가도록 한다고 했다.
혹시 꼭 가자고 하면 갈려고 손톱 발톱 깎고 신도 닦아두었다.
돈이 전화세, 전기세 주고 조금밖에 없으니까 계수씨한테 돈 있다고 가보자고 하신다.
사과 홍옥을 따놓아 통닭집 아저씨한테 전화하였더니
3천3백원 더 주고는 얻어먹을게 없어 못산다고 하신다.
그렇게 하고 사가도록 하시라고 약속했다.
영주 최종원상인께 전화했더니 천원에서 천오백원선까지 고추 시세가 있는데
앞으로 오를 전망은 거의 없으며 더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하시며
동생들과 의논하여 팔게 되면 연락하여 한번 가서 팔아준다고 하신다.
일단 고마웠다.
효순조모 막걸리 한 양푼 가지고 오신다.
아버지 드리라고 술 채 우물가에 있는거로 손수 걸러 주시고 아버지 한잔 잡수고 주무셨다. 사과가지고 오셔서 함께 먹었다.
가신 후 염불 조금하고 TV 틀어놓고 보다 누어서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끄는지 계수씨가 끄셨는지 모르겠다.
잠이 깜빡 들어서 모르겠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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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눈물이 나네요 큰 오빠가 더욱 그리워지네요
오빠 고맙습니다
형님이 그토록 써놓은 일기를 컴에 입력하느라 애쓴 시간이 아까워서
입력된 것이라도 잘 정리해 놓아야 겠다는 생각에
찾아서 읽어가며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문장만 고쳐서 올린다마는
지난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라 슬프기도 하고
그때의 고생을 밑거름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기기도 한다.
내 시간이 다른데 투자할 여력이 없지만
입력된 형님의 일기는 부끄러운 부분도 있지마는 시간 나는대로 다 올릴 예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