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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 수필
개(犬)의 오륜( 五倫 )
서덕일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접하는 일 가운데 좋은 일이나 혹은 그른 일을 말할 때 그 일의 내용을 강조하기위해 또는 자기의 의사표시를 상대에게 보다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기위해 동물이나 물건을 비유하여 말하는 경우가 었다 .
이를테면 몸매가 날씬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물 찬 제비 같다 .”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을 가리켜서 “곡식에 제비”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 이와 같이 좋은 의미로 비유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의미로 비유되는 것도 있다 .
겉모양은 그럴듯하게 좋으나 실속이 없음을 뭇하는 “빛 좋은 개살 구” , 맛이 없는 산머루는 “개머루” , 죽음이라도 아무 의미도 보람도 없이 쓸데없이 죽으면 “개죽음” 행세와 마음보가 몹시 더러운 사람을 일러 “개차반 ( 개 채반 ) ”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켜 “개먹 같다” , 행패 부린다는 뭇의 “개구신”등 들자면 수없이 많은데 이와 같이 좋지 않은 의미에는 “개”가 많이 인용된다 .
불만을 가지고 큰 소리 치거나 재물을 파괴하고 시비와 폭행을 불사 하는 행동을 “개판 친 다” 꿈도 재수에 관한 좋은 꿈은 돼지꿈이라고 하면서 잡귀신 꿈이나 관재구설 꿈은 “개꿈”이라고 한다 . 심지어는 언 제인가 본적이 있는 영화의 제목 까지도 “개 같은 날의 오후”였다 .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고 버릇없는 사람을 “개 같은 X ” 또는 “개 보다 못한 X ” 이라고 한다 . 자기의 큰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작은 허 물을 탓할 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고 한다 .
왜 사람들은 무엇이든 좋지 않은 일에 대한 의미를 강조할 때 하필 이면 개를 흔히 인용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 나는 애견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를 이유 없이 학대하거나 비하 하여 말할 생각은 없다 .
개라는 동물은 이 세상 하고 많은 통물들 가운데 그 어떤 동물보다 도 우리 인간과는 가까운 동물이며 실제로 요즘 부쩍 유행처럼 늘어난 애견가들 덕에 인간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동물이기도 하다 . 사람 이 먹는 음식물보다도 더 값비싼 먹이를 먹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또 는 주인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바깥나들이를 하며 주인과 함께 방을 사용하고 어떤 개는 주인의 침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 사람은 어지간히 몸이 불편해도 병원에 가지 않고 견디면서도 기르는 개가 병이나면 가축병원에 간다 . 그런 개의 주인도 위와 같은 말들을 예사로 하 는 경우를 가끔 본다 .
개가 인간에게 끼치는 이해득실을 따진다고 하드라도 해 (害) 보다는 득 (得) 이 훨씬 많다 .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어느 개를 막론하고 기본이며 아주 본능적이다 . 주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지켜주며 주인의 신체상 안전을 위해 헌신한다 . 이는 동회속의 “프란다스의 개” 말고도 지난해 남아시아에서 발생한 해저지진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목숨이 희생된 쓰나미의 현장에서 자기의 목숨을 바쳐 주인을 구한 충견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이쯤 되면 그 개는 사람보다 나은 개라고 해야 하 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 그리고 이러한 감동적인 이야기 말고도 우리 주변에는 개에 관한 미담이 많다 .
얼마 전 어느 TV 의 〈놀라운 세상〉이라는 프로에서 보니까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어떤 사람이 기르는 “누렁이”와 “신덕이”라고 하는 두 마리의 개는 어떻게나 영리하고 잘 훈련되어 있던지 사람이 하는 일의 상당부분을 주인의 지시에 따라 한 치의 실수 없이 척척 해 내 는 것이었다 . 두 앞다리를 들고 뒷다리로 똑바로 서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재롱을 피우고 그 자세로 높이뛰기를 하는가 하면 공중 줄타기 의 묘기까지 보여주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 그뿐이 아니라 어 두워 지면 전기 불을 켜고 끄며 냉장고를 열고 그 속에 있는 물건들 을 주인이 지정하는 곳으로 운반하는 등 . 집안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신통한 개들 이었다 . 그런데 이와 같이 신통하고 영리하고 감동 적인 개가 내 주위에도 있었다 .
부산시 강서구 녹산 신호공단 꿀 바다와 인접한 위치 . 그곳에서 제 조업을 경영하는 내 친구 K 사장의 회사에 “피련”이라고 하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 요즘 구직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싫어하는 이른바 3D 업종 기피현상으로 인해 몇 해 전부터 이 회사에도 외국인 근로자 네 명이 근무하고 있다 . 이들은 두 개의 콘테이너 박스를 아래위로 포개어 놓고 바깥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리며 아래 위층 각기 두 명씩 기숙을 하면서 근무하고 있다 . 한사람 당 월 100 만 원 이상 받는 급여 중 15 만원씩을 떼 내어 합계 60 만원으로 주 부식을 구입하여 함께 식사를 해결하고 일이 끝난 저녁 시간이나 휴일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회사 내 자기들의 숙소에서 여가시간 을 보내고 나머지 돈은 전액 본국에 송금하여 가족들의 생활비에 충당 하고 또 저축도 한다는 것이다 .
생후 1 년 반 된 “피련”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넓은 회사 건물의 안팎과 울타리를 돌아다니며 수상한 사람의 회사 내 접근을 막고 회사 재산과 주인의 안전을 위해 경계근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 사나워야 할 때는 호랑이처럼 사납고 주인과 가까운 사람이나 회사에 업무 차 방문하는 손님에게는 순응하면서 적과 동지를 용케도 구별하고 한번 방문한 사람은 3 개월 6 개월 후에 다시 방문해도 그 사람을 정확히 알아본다 .
2003 년 9 월 . 우리나라 기상관측사상 가장 강한 태풍이라는 “매미”가 엄청난 위력으로 남해안을 강타했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휴일이라 이 회사에는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고 책임자 도 원거리 출장 중이었으며 외국인 근로자 네 명과 “피련”이 만이 회 사에 남아 있었다 .
비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던 그 시간 . 아래층에 있던 두 사람은 혹 시나 하고 걱정이 되어 위층으로 올라가서 네 명이 TV 를 켜놓고 카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밖에서는 세찬 바람이 더욱 거세 게 불어오고 소낙비는 하늘에서 물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처럼 마구 쏟 아지고 있었다 . 바다는 해일이 일어 바닷물이 육지로 올라와 회사 마 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했고 강풍에 건물의 지붕이 떨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 그러나 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카드놀이에 열중해 있었다 .
지금까지 비를 홈빽 맞은 채 회사 문 앞을 지키고 서서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해일이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고 었던 “피련”이는 무슨 생 각을 했던지 쏟살같이 계단을 타고 2 층 콘테이너로 뛰어 올라 갔다 . 그리고는 두 발로 철문을 두드리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 그러나 거센 비바람소리는 “피련”이의 애절한 부러 짖음을 통째로 삼켜 버리고 안 에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 그래도 “피련”이는 계속해서 두발의 발톱이 빠지고 피가 나도록 철문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 순간 원 -원 - 대는 비바람 소리 속에서도 “피련”이의 애타는 울음소리를 어렴풋이나마 감지한 그들이 철문을 열었을 때 . 순간 바깥의 심각한 상 황에 놀라 황급히 뛰쳐나와 이미 무릎까지 차 올라올 정도로 물바다가 된 회사마당으로 내려서자마자 더욱 거세게 불어온 강풍은 획 - 하고 종이쪽지처럼 2 층 콘테이너를 날려 보냈고 콘테이너는 팡 -! 하는 무 서운 소리를 내며 회사 마당에 떨어져 물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 실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
만약 “피련”이가 아니었던들 그들은 강풍에 날려 딩구는 콘테이너속에서 어떤 참변을 당하였을지 ? 정말 너무나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가까스로 목숨을 구해 안전지대로 대피한 그들은 “피련”이를 껴안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 위기 속에서 네 사람 의 생명을 구한 “피련”이는 실로 사람보다도 낫다면 나은 개였다 .
옛 성인의 말씀에 보면 천지간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이 니 그 이유는 오륜 ( 五倫 ) 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 말하자면 사람에게 는 인륜 (人倫 ) 이 었고 그것을 알고 지킬 때 비로소 가장 귀한 존재로 서의 사람대우를 받게 된다 .
그런데 이와 유사한 오륜이 개 (t) 에게도 었다고 하는데 , 이름 하여 견륜 ( 大倫 ) 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
아무튼 개의 오륜을 말하자면
첫째는 자 사 부 색 ( 子 似 父 色 ) 이니 새끼는 어미아비의 색깔을 닮음이라 , 부 자 유 친 ( 父 子 有 親 ) 과 유사함이요,
둘째는 견 주 불 폐 ( 見 主 不 吠 ) 이니 주인을 보고 짖지 않고 따
름이니 군 신 유 의 ( 君 臣 有 義 ) 와 유사하며
셋째는 교 미 유 시 ( 交 尾 有 時 ) 이니 인간 사 부 부 유 별 ( 夫 歸 有 別 ) 과 유사하며 ,
넷째는 소 불 릉 대 ( 小 不 陸 大 ) 이니 작은 개가 큰개에게 덤비지 않음이라 장 유 유 서 ( 長 幼 有 序 ) 와 유사하며
다섯째는 일 폐 군 폐 ( 一 吠 群 吠 ) 이니 한 마리의 개가 짖으면 옹 동리의 개가 다 짖음이라 붕 우 유 신 ( 朋 友 有 信 ) 과 유사하다 함이 그것이니
비록 개가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우리네 사람들은 개를 적어도 나쁜 의미에 비유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
? 심사 평
수필은 서양에서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해옹 문학 장르로서 문화 현상에 대해 비평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글이다 . 산문으로 쓰여지고 흔히 비체계적인 고 찰을 담으며 형식은 자유로우면서 개인적 경험이나 주관의 서술을 배제하지 않 는다 . 17 세기 프랑스의 몽테뉴에 의해 시작되어 서양에서 하나의 문학 장르로 발전해 왔다 .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아주 많이 쓰여지고 또 많이 읽히 는 장르가 되어 있다 . 쓰거나 읽는데 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
서덕일의 「개의 오륜」은 이런 수필 장르의 특정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생각된 다 . 인간과 개의 관계를 다루면서 날카로운 통찰력과 기지를 보여주고 있다 . 우 리 말 속에서 ‘개’ 란 말이 대단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예들을 제시 하면서 그 표흔들이 부당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었다 .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 운 동물인 개를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언어적으로 부당하게 대접하고 있음을 지적 하면서 우리의 언어사용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평소에 개가 사람을 둡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이 글의 필자 는 특수한 개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기를 촉구하고 있다 . 특히 작년의 태풍 매미 때에 외국인 노동자 두 사람을 구한 개의 이야기 는 지극히 감동적인 글이라 아니할 수 없다 .
동양의 행동규범인 오륜을 개의 행동에 투사하여 개의 행동양식이 인간과 다
름없음을 설파한 것은 기지가 넙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
서덕일씨의 다른 작품들도 이 작품과 다름없이 사고의 건전성과 뛰어난 기지 , 그리고 막힘없는 문장력을 보여주어 그가 훌룡한 수필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 고 있다 . 그리하여 그를 신인상 대상자로 뽑았다 .
김천혜 신택환 소한진
첫댓글 선배님의 양해을 구하지 못하고 무단 전재함에 용서를 구합니다. 저가 시간이 없어 스캔하여 문자인식기로 올려 혹 오타가 있을것 입니다. 이점 더 양해 바랍니다.
다시 한번 수필가로 등단하심을 축하드리고, 항상 노력하시는 선배님의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파일을 달라고 하면 안주실 것같아 저가 올렸습니다.
서덕일 고문님의 문단으로 입단하심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글 카페에 한번씩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진도 여성 문인 3분사이에 보기가 참 좋습니다.ㅎㅎ
효마클의 큰 어른이신 선배님...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신예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모습, 많은 감동입니다. 70대에는 또 무엇에 도전하실지 기대됩니다.
'신예 작가 서덕일' 참으로 경사스런 일입니다. 바쁘신 중에 수필가로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늘 노력하시는 선배님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선배님 건강하십시오.
저도 보았습니다,작가로 등단하심을 경하 드립니다,좋은글 많이 써 주시기 바랍니다.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바로 아래 쓴 독후감 선배님의 충언을 듣고 올려야 되는데, 부끄럽습니다.
참.... 저희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등단을.... 햐, 존경 받잡습니다. 그리고 신입 김병오님, 그래도 책은 빌려 주십사!
구박,작가의 글을 함부로 무단으로 올려서,서고문의 엄중항의(?)를 어쩔라고 그라요??,암튼 서고문님 축하드립니다.
멀리서 감축드립니다.좋은 글 많이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