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의 심리 상태를 말한다면 그는 아주 단순합니다. 이때 그에게 자력에 의지하여 수행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요. 그에게는 오직 죄업만 있어 자신이 타락할 것만 생각하고 있지 잡행잡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이 법문을 닦아야겠다! 저 법문을 닦아야겠다!” 이런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그에게는 아미타부처님을 의심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정말 나를 구제해줄 수 있을까? 없겠지? 가능할까?” 왜냐하면 지옥의 불길이 타들어오고 있을 때, 누군가 “염불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라고 말해주면 이것이 바로 물에 빠진 사람이 잡는 지푸라기이기 때문에, “나에게 얼마나 신심이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마음도 없을 것입니다. 이때의 환경이나 형편 자체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를 않기에 그는 단지 귀명하며 구제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래서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선도대사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깊은 믿음을 말해주신 것도 바로 이런 심경을 나타낸 것인데요. 자기가 죄악범부로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깊이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이 법문 저 법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무슨 자력이 있겠습니까? 또 무슨 “내가 믿는다. 의심한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는 믿음이니 의심이니 하는 생각조차 없이 엉겁결에 입으로 바로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선도대사《관경사첩소》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望佛本願,意在衆生,一向專稱,彌陀佛名。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보고 계셨으니, 그 뜻은 중생이 한결같이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데 있다.
당신은 절대 머릿속으로 “구제될 수 있을까? 구제될 수 없겠지? 내 믿음이 어쩌고저쩌고……”라며 계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앞에서 인도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믿음을 말하고 발원을 말하는 것도 마지막엔 “나무아미타불”하고 한 마디 부르는 것으로 실행되고 말지요.
【귀명: 몸과 마음을 다해 맡김】
따라서 선도대사께서 육자명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습니다.
南無者,即是歸命, 亦是發願迴向之意。
나무란, 곧 귀명이요, 또한 발원회향의 뜻이기도 하다.
“귀명”이 첫 번째이고, “발원회향”은 귀명 속에 딸려 있는 것입니다.
귀명은 어떠한 심정일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재산과 목숨을 나무아미타불께 부탁드리는 것이고, 좋든 나쁘든, 죽이든 살리든, 해탈하든 타락하든(우리 자신은 타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나무아미타불께 맡기는 것을 귀명이라 부릅니다. 본인이 조금 남겨두고 청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미타부처님, 제발 저를 좀 구해주세요. 제가 저의 업장을 청소하겠습니다. 저는 업장이 너무나 두터워서 공부도 좀 더 해보고 수행도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게으른 것이고 너무나 교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 목숨이 숨 쉬는 사이에 있다”라고 했는데, 당신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려 한다면 시간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자기가 어떤 신분인지 모르는 소치이고, 아미타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인지 모르는 소치입니다.
우리가 아미타부처님께 귀명하려면 바로 우리의 현재 이 상태로 귀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똑똑히 들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업장이 이 정도 있다면 당신은 이 정도 있는 상태에서 기다리지 말고 나무아미타불께 귀명해야 합니다. 만약 “내 업장이 적어진 다음에, 내 수행이 어느 수준에 도달한 후에 그때 나무아미타불께 귀명하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늦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지금 식당을 열면서 살생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그 사람에게 염불하라고 권하자 그가 말하기를 “제가 식당을 그만둔 후에 염불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식당을 여는 나의 업장이 너무나 두텁기에 내가 식당 문을 닫고 살생을 하지 않을 때 염불하겠다.”라는 것이지요. 그럼 그가 살생을 하고 있는 한 영원히 염불할 수 없습니다.
기다리지 마세요! 당신이 지금 당장 염불해도 아미타부처님은 당신을 받아주십니다. 당신이 염불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연스레 업장이 소멸되고 천천히 상황도 개선될 것이고, 개선되지 않아도 상관없이 왕생할 수 있습니다.
“수행에 좀 더 진전이 있은 다음에, 좀 더 발전한 다음에”, 이런 생각은 겉으로 들었을 땐 괜찮은 거 같아도 실은 모두 다 일종의 게으른 마음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께 귀명하는 것은,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타락할 수밖에 없는 내가 나무아미타불이 나를 구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면 바로 나무아미타불께 귀명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과 목숨, 다겁생래의 업력까지 포함해서 전부 나무아미타불께 맡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미타부처님께 귀명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착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업력을 나무아미타불께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배를 탈 때, 우리의 체중 전체를 배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우리가 “제가 삭발해서 체중을 좀 줄이겠습니다.”라고 말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이 당신의 체중 전체를 배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탐진치 번뇌로 가득 차 있는 죄업중생이 스스로 죄업을 깨끗이 청소하려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해도 당신에게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전부 심신 생명을 부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럼 탐진치 번뇌가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부처님께 “제가 바로 이처럼 변변치 못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아미타부처님께 맡길 테니 알아서 처리해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는 일향으로 나무아미타불께 귀명하고, 일향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전념하는 것이지요.
아미타부처님은 솜씨가 뛰어난 장인과 같아서 당신이 감히 부처님께 맡기기만 하면, 설사 당신이 썩은 나무라고 해도 당신에게서 불상을 조각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당신이 나무아미타불 그곳에 이르면 즉각 불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아미타부처님과 격식을 차릴 필요 없습니다.
마치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격식을 차릴 필요 없는 것과 같은데요. 모자지간에, 예를 들어 좀 못생기고, 얼굴이 좀 더럽고, 바깥에서 나쁜 친구들에게 심하게 얻어맞고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 예전에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바깥에서 떠돌아다니다가 남들에게 심하게 얻어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누더기를 걸치고 있고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매일 당신을 찾아 다녔으나 찾지를 못했지요. 그러다가 끝내 당신을 찾아서 “내 아들아!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느냐?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을 때, 당신이 돌아가길 원하기만 하면 부모님도 기뻐하며 절대 싫어하지 않고 절대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