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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어의 발음기호에서 벗어나야 할까?
또 하나의 역(逆)범주착오-파닉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표음문자다.
소리를 기호로 표기하는 데 이만큼 완벽한 글자는 없다.
한글은 하나의 기호에 하나의 음가를 일대일대응으로 가지고 있어
하나의 글자에 분명하게 하나의 소리로만 대응된다.
영어도 소리를 글자로 표기한 표음문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한글과 다른 점은
하나의 알파벳 기호에 여러 개의 음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 음가를 알파벳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A를 ‘에이’ 또는 ‘아’로 발음한다.
예를 들어 Ace를 ‘에이스’라고 소리 내고,
Art를 ‘아트’라고 소리 낸다.
A라는 하나의 기호가 ‘에이’와 ‘아’ 두 개의 음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사전을 보면
영어단어에 발음기호가 꼭 함께 따라온다.
알파벳의 이런 복수 발음은
미국인과 영국인에게도 매우 골치 아픈 문제에 해당된다.
영어단어에 있어 발음기호는
베다성전의 산스크리트 문법과도 같다.
2,500년 전
베다성전을 온전히 그대로 보전하기 위하여
당시 쓰이고 있던 문법을 연구한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법은
인류 최초의 문법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단어의 발음기호는
현재의 소리를 그대로 보전하기 위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단어의 소리를 표기해 놓은 것이다.
그 옛날 베다성전이 인도인들에게 그야말로 성전이었듯,
오늘날 영어사전의 발음기호는 영어의 성전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없으면 영어단어의 소리의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음기호의 중요성도 귀하게 여겨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보석을 담고 있는 보석함이
보석 자체는 아니듯이
발음기호는 곧 소리가 아니다.
모든 단어는 소리로 전해지고 소리로 받아들여지지,
발음기호로 전해지고 발음기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말을 배울 때 소리를 듣고 배운다.
미국인이나 영국인도 말을 소리로 가르치고 소리로 배운다.
발음기호로 가르치고 발음기호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발음기호는 베다성전처럼
‘이렇게 쓰이고 있다’를 나타낼 뿐이다.
우리가 국어사전으로 단어의 뜻을 공부하는가?
단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일 년에 국어사전을 몇 번이나 찾아 보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국어사전에 나온 단어의 뜻이 아닌 소리로 말을 익히듯이
미국인도 발음기호로 단어의 소리를 공부하지 않는다.
사전은 꼭 필요할 때 찾아보는 성전인 것이다.
왜 우리나라는 영어를 가르칠 때
글자와 발음기호부터 가르칠까?
과거에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때가 있었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찾기 어려웠다.
소리를 구할 수도 없고, 소리를 담을 녹음기도 없고,
주변에 소리를 들려줄 원어민 교사도 없고,
오직 학교 선생님과 자기 자신, 사전과 책으로만 공부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글자와 발음기호부터 가르치는 것이 틀림없이 맞다.
그런데 모든 것이 가능한 지금, 왜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야 할까?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글자와 발음기호, 즉 알파벳과 파닉스를 가르친다.
왜 영어의 파닉스부터 시작할까?
‘파닉스’는
영미 언어학자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본국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의 한글처럼 글자와 소리가 일대일로 완전히 일치하면
복잡한 파닉스를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미 언어학자들은
영어단어의 소리와 글자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어린이에게 파닉스는 매우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또한 영어를 배우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파닉스를 가르친다.
파닉스에는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그것은 파닉스에 사용환경의 조건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즉, ‘듣고 말하는 것이 완성된 어린이에게
소리와 글자의 관계인 파닉스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래야 파닉스 프로그램이 효과를 본다’는 사용환경을 설정한 셈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파닉스를
우리나라에서는 유치원, 초등학교 할 것 없이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한테 무작정 가르친다.
그러면서 ‘파닉스’는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학부모에게 강조한다.
학부모들은 파닉스를 배우지 않으면
자녀가 영어를 제대로 못하게 된다고 믿는다.
어떤 환경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파닉스의 조건은
한국에서는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한마디로 ‘주는 쪽에서 사람들에게 역(逆)범주착오를 일으키도록 주었고,
받는 쪽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아서 역범주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으로 대신한다.
가슴에 화살을 맞은 사람이 있는데,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화살촉은 어느 지역의 쇠로 만들었는지,
또 화살 깃은 어떤 새의 깃털로 만들었고
누가 쏘았는지 등을 따지는 것보다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할 때
단어의 발음기호를 버리고 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소리를 운동연습을 하듯이 매일 똑같이 소리를 내면서 반복해야 한다.
소리가 뇌 속에 운동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해야 한다.
발음기호는 무시하는 것이 좋다.
만약 발음기호를 아는 순간, 발음기호에 따라 소리를 내는 순간,
당신은 발음기호에 갇히게 될 것이다.
발음기호는 하나지만 그것을 따라서 발음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십인십색(10人10色)의 소리
beauㆍtiㆍful [bjú ː təfəl]을 미국인 열 명에게 발음하도록 지시한 다음,
녹음해서 음성분석기로 분석해보면
발음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발음한 단어는 하나지만
소리는 하나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 소리들을 점으로 찍으면,
그림과 같이 일정 밴드 폭 안에서
각각 다른 위치에 열 개의 점이 찍힌다.
어린이, 성인 남자와 여자, 할머니, 할아버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소리는
음색과 주파수 등에 따라 다른 곳에 점이 찍힌다.
다만 하나의 단어를 발음했기 때문에 일정 밴드 폭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단어의 발음이
과학적으로 사람마다 다른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어의 발음기호가 하나이듯
소리도 완전히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과 생각이 달라서 생긴 인지착오다.
인지착오라는 생각을 못한 사람들은
원어민처럼 발음하려고 혀를 굴리면서 안간힘을 쓴다.
그 소리만 정답이고 나머지는 오답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어민의 발음 또한 각각 달라서 다른 소리가 나는데,
과연 어느 것을 기준삼아 따라해야 할까?
따라 하고 싶은 발음이 밴드 폭 안에만 들어가면 별 문제없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는
음절의 소리, 단어의 소리, 단어가 연결된 문장에서 음절이 연음되는 소리 등을 기억할 때,
뇌 속에 오직 하나의 점만 찍는 것은 아니다.
밴드 폭 안에 들어오는 여러 개의 소리를 모두 저장하고 범주화하여
이미지와 네트워크 시킨다.
이것을 소리의 범주화라 한다. 즉, 소리의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젖먹이 때부터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보자.
아이는 엄마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
옆집 아주머니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
할머니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
할아버지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
아빠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
형이나 누나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 등
이 모든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게 된다.
이때 아이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발화된 ‘엄마’라는 모든 소리를 범주화하여 기억하고
엄마의 이미지와 개념에 네트워크 시킨다.
앞의 그림과 같이 아이의 뇌 속 카테고리 밴드에는
여러 개의 ‘엄마’라는 소리의 점들이 고르게 찍히는 것이다.
훗날 아이는 자신의 뇌 속에 찍혀 있지 않은
학교 선생님의 ‘엄마’라는 소리 b가 입력되어도
이미 ‘엄마’라는 소리가 고르게 여러 개가 있으므로,
a와 c 사이의 소리인 b를 ‘엄마’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만약 ‘나는 오리지널 원어민 발음만 공부할 거야’라고 하면서
가장 또박또박 발음하는 미국인의 소리 하나만 저장시켰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전자사전 형태의 모든 학습기가 여기에 속한다.
그런 학습기에는 또박또박 발음하는 원어민 남자 또는 여자의 소리가 담겨있다.
그들의 소리는 실제 소리의 밴드 폭에서 아래의 그림과 같이 나타난다.
원어민의 소리는 뇌 속의 소리밴드 폭에서 e 하나만 찍히는 꼴이다.
당연히 하나도 안 찍힌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e의 인접범위를 벗어난 a나 j 같은 소리가 들어오면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한 마디로 ‘뭔 말이야?’가 된다.
5,000개 이상의 영어단어에 소리점을 찍어야 하는데,
한번 찍을 때 여러 개를 찍어두지 왜 굳이 한 개만 찍으려고 할까?
오직 하나의 소리만 계속해서 선택한다면 그것은 결국 돈과 시간의 낭비다.
영어를 동시통역하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들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고충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세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영어로 하는 말을 통역하는
동시통역사지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식은땀 흐르는 순간일 테다.
그것은 소리의 밴드 폭을 벗어나거나
가장자리 쪽에 위치한 소리가 들어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자사전 형태의 모든 단어학습기는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론들을 적용하여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역범주착오 없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학습결과가 나온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
뇌에 있어서 소리의 범주화는
이미지의 범주화보다 훨씬 쉽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한다고 판단된다.
이미 범주화시켜 놓은 이미지와 개념에
소리 몇 개를 찍어 기억하고 연결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리는 최소한 세 개 이상을 찍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극과 기억자체를 안정화시키는 데도 세 개 이상의 소리를
하나의 이미지와 개념에 연결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극과 기억의 안정화 효과’란
사물의 한 면만을 계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사물의 이름을 기억시키는 것보다
사물의 이쪽 면 저쪽 면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기억시키는 것이
더 안정적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말한다.
한 면만 계속 보았을 때의 기억은 불안정해서
약간 다른 모습에는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리에서도 이와 같은 효과가 있다.
하나의 소리를 반복해서 들을 경우
처음 몇 초가 지난 후에는 소리가 변화가 없는 동일자극으로 인식되어
그 자극효과가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를 들을 때 세 개 이상의 다른 소리로 자극하면
보다 오랫동안 자극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자극효과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기억효과도 유지된다.
그리고 소리가 세 개 이상이면
소리밴드 폭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접범위를 가지게 된다.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사용하고,
가장 다양한 인종이 사용한다.
그러나 발음과 억양은 모두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서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자극과 기억의 안정화 효과’라는 원리 때문이다.
다시 말해,
뇌 속의 소리밴드 폭 안에 여러 개의 점이 찍혀 있는데,
어떤 소리가 그 밴드 안에 들어오면 소리의 범주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발음은
원어민들과 확실히 다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마치 옆집 아저씨가 영어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발음으로 영어실력을 가늠하는 ‘영어발음 = 영어실력’의 역범주착오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 혀를 굴려 발음해야 좋고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발음을 듣는다면,
‘영어 잘 못하네’라며 무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발음을
점으로 찍어보면 실제 소리밴드 폭 안에 찍힌다.
그가 영어로 하는 말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아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뇌 속 소리밴드 폭 안에는
각 단어들에 대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의 소리가 적절하게 분포되어 점으로 찍혀 있다.
이는 그가 전 세계 사람들의 영어를 모두 알아듣는 이유다.
인간은 소리를 듣고, 기억하고, 흉내를 내는 타고난 생물학적 능력이 있다.
그것이 바로 언어능력이다.
태어날 때 이미 갖고 나온 그 천부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든 책 속에 인쇄된 발음기호에 갇혀서
불완전하게 소리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일까?
지금은 과거의 녹음기와는 차원이 다른
성능이 뛰어난 IT기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소리와 영상을 손 안에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면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인터넷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서
전 세계의 뉴스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소리를
컴퓨터 앞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그것도 원하는 소리만 따로 모아서 편집해서 들을 수도 있다.
과거에 녹음기가 없던 시절,
소리를 만날 수 없던 그 시절과는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따라서 언제 어디에서나 제공되는 소리와 영상을 우리는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왜 소리가 없는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가?
왜 책에 인쇄된 글자에 사로잡혀 소리를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못하는가?
왜 인쇄된 발음기호에 갇혀서 우리의 혀를 혹사시켜야 하나?
왜 타고난 재능으로 듣고 그대로 소리 내도록 혀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는가?
왜 현대 과학기술의 모든 혜택을 외면하고
오래되어 낡고 쓸모없고 비과학적인 영어 학습방법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는가?
- 최종근, 북스 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