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부추(솔, 정구지)를 다듬으며
아내가 한 달만에 내려왔다. 보름치 반찬을 장만해줄 겸 친구의 부부동반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다. 뒷밭 풀 속에 내팽개쳐진 부추(우리 동네 표준어는 솔이다. 경상도는 정구지라 한다던가. 불가에서는 부추를 먹으면 담을 넘는다해(정력제?) ‘월담초’라하고 먹는 것을 삼간다한다)를 낫으로 밑둥까지 싹싹 잘라 자갈마당에서 다듬다가 옛날 생각에 잠시 잠겼다. 아니, 잠겼다기 보다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었다. 나 참, 내일모레 칠십인데도, 며칠 전 얽힌 노끈을 풀어 감다가 불쑥 울컥해진데 이어 두 번째이다.
국민핵교와 중학교때에는 키가 160 조금 넘었던 것같다. 작은 편으로 반班에서 60명 기준 30번대, 고교 올라가면서 170cm를 훌쩍 넘어 60번이었다. 당시 사진이 하나 있었는데 잃어버려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제법 예쁘장했다. 그러니 동네 아저씨가 ‘알록달록’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터. 아무튼, 마을 뒤편 신작로 아래 조그만 부추밭에, 어머니는 왜 꼭 나를 데리고 가 부추에 거름을 주고 자르게 했을까? 꺼렝이에 재를 담아 부추를 자른 자리에 거름을 줬다. 일주일도 안돼 솔은 새로 그만큼 자라있었다. 내 기억엔 형들이나 동생들은 안했던 것같다. 그때 재가 듬뿍 담긴 꺼렝이를 들고 어머니 뒤를 졸졸 따르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로 갔을가? 칠십을 앞둔 내가 그 애였겠지만, 믿기가 어렵다. 하기야, 어머니는 직접 담근 농주農酒를 국민핵교에서 돌아오는 나에게만 맛을 보게 했다. “아가, 물을 조금 더 칠 거나?” 어머니 덕분에 술꾼이 됐을까?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5년째 땅 속에서 주무셔 이제 육탈肉脫이 다 됐을 것이다. 다듬은 부추를 아내에게 건네니, 곧바로 부추김치를 담가 맛을 보게 한다. “여보, 간 좀 봐줘. 싱거워? 싱거우면 안되는데” 그 소리도 어머니의 말만큼 정겹다.
엊그제, 하우스 폴대에 얽기설기 노끈을 엮어놓으려(작두콩이 타고 오르도록) 창고안에 칭칭 얽혀 있는 노끈을 풀어 일단 쓰기 편하도록 막대기에 감다가도 어머니 생각에 울적했다. 그때는 오일장에서 실타래를 사오면 옆에 있는 자식 중 누구에게나 양손을 어깨넒이로 벌려 실타래를 붙잡게 했다. 쓰기 쉬운 실뭉치를 만들기 위해, 좌우로 손을 움직이면 어머니는 부지런히 실을 감았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이런 심부름은 그래도 재밌는 일이었다. 얽힌 노끈을 차근차근 풀어 곧세운 양 무릎에 왔다갔다 감아 묶으며, 그때의 일화가 생각났다. 어제는 오랜만에 어머니가 쓰시던 브라더 미싱(재봉틀)을 꺼내 닦았다. 유품을 정리하며 재봉틀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다. 칠남매 옷들을 짓고 기웠던 기계. 고향집 리모델링할 때 재봉틀 머리부분과 다리부분을 분리 개조했다. 윗부분은 유품으로 기억하면 되고, 아랫부분은 은행나무를 부착하니 다탁茶卓으로 딱이었다.
언제적 기억이 맨 처음일까? 독일의 문호 괴테는 요람에 누워 있던 자신을 기억한다지만, 총기가 아주 좋은 사람이 다섯 살 부터의 일들을 기억한다고 한다. 나로선 여덟 살때 일도 생각나는 게 ‘1도’ 없다. 하지만, 양손을 벌려 실타래을 양쪽에 끼고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어머니의 실 감기를 도와줬던 일은 뚜렷하다. 그리고, 베틀로 삼베를 짜는 어머니 옆에서 ‘저릅때기(삼나무 껍질을 벗긴 것)’가 떨어질 때마다 그 아래에서 저릅때기를 가지고 놀던(세워 몽땅 넘어뜨리는 등) 기억도 있다. 저릅때기는 오래오래 우리의 좋은 장난감이었다. 호박 줄기를 대롱 삼아 물놀이를 하듯. 그때 그 아이도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것이 못내 궁금하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운동장의 느티나무는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으나, 지금 가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데, 그때는 왜 엄두가 안났을까? 그 나무를 바라보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베틀이나 물레도 버리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70년대 민속촌을 꾸민다는 미명 아래 전국의 농촌을 훑으며 쓸만한 민속품들을 몽땅 훑어간 탓에 우리의 사라진 추억은 또 무릇 기하이던가?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때는 어렸고, 지금은 성장시켜 ‘흰머리 소년’이 됐지만, 달라진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아이, 그 소년은 이미 자라 성인이 됐지만(가족도 일구고 총생들도 낳았다), 나를 지극히 예뻐하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무심코 흘러가는 달구름(세월) 탓이련만, 왠지 그 시절이 그립고 보고싶은 얼굴 생각에, 한참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언제나 철이 들려나? 아련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