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교리(가르침, 신세)는 사람들의 원하는 이익을 일시적으로 창출하거나,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는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속적이어야 하며, 경건한 정성에 의해 이룩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영원하시고 모든 것을 하나로 어우르시는 하느님의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평등해지는 관점에서 더 많은 자유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귀를 즐겁게 하는 가르침이란,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논리적으로 보이는 논증을 세우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관계와 이웃에 대한 관계를 깨뜨리는 가르침에 속하는 종류일 것이다. 대부분의 건전한 가르침은 새로운 인간성의 옷을 입도록 인도해 주는 가르침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말한 8가지의 단계적 덕목들을 배양하는 가르침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가르침들은 성서의 예언과 기적으로 보이는 본문을 그 종교 조직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해설에 집중되어 있다. 가령, 마지막 때가 가까왔으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집 팔고, 학업도 중지하면서 호별방문 행상에 올인시키려는 설교는 그사람의 새 인간성을 옷 입게 하려는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런 종류의 가르침은 오직 그 종교 단체의 사업 확장이라는 이익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물론 어떤 종교 단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소속 구성원들의 협조가 있어야 하지만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워치타워의 역사는 새로운 인간성의 옷을 입게하는 인성함양은 제명과 책망으로 대체해 버리고, 오로지 그들의 사업확장에만 박차를 가해왔으나, 최근들어 그들의 확장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자, 내부 단속을 위해 마치 참조직임을 과시하려는 양, 그리스도인의 인성함양에 파수대의 비중을 높였다. 이와 같이 원칙 없는 변덕성은 그 소속 성원들로 하여금 진정한 인성함양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이 바뀌어, 세계 뉴스에서 그들의 구미에 맞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그들의 확장이 지속될 것 같으면, 인성함양보다는 다시 그들의 영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참가르침을 펴고자 한다면, 성서의 가르침이 왜 새로운 인간성을 옷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한지가 설명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실제적인 단계를 연구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파수대에(연구기사 2) 보면, 마치 배고프고 병든 사람에게 말로만 "따뜻하게 해라, 배부르게 해라" 는 겉치레의 립 서비스만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런 맆 서비스를 마음 깊이 인정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몇명이 될지 의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