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단]강현옥/혼자 떠도는 섬. 반딧불이가 있다
김영천/동백 숲. 북극성
박세영/어둠은 새가 되어. 종이배
성은경/빈방Ⅱ. 말 태우기
이병훈/숨은 벽. 고령의 달
이용일/할미꽃. 등굣길.
임정택/사랑 그 후. 감나무밭에 서면
허 용/검색을 허용하다. 난지도
허양희/우주관측. 낙동강에 비 온다
황말남/꼭꼭 숨어라,삼짇날 머리카락 보일라. 장마.
[목차&화보2]
[2007년 수상작]
김대근/소금. 육봉화 은어.
김현태/정다면체. 유리벽에 붙은 마음 하나
이승민/학교종이 땡땡땡. 딱지치기.
[초대시]
권정일/다큐멘터리
고경숙/불온한 풍경
김연성/공개미의 하루
김혜영/양송이 수프
마경덕/폐가
문정영/시 읽는 남자
박윤배/우연법
안효희/장수 구간
이동호/그늘
이인주/한통속
최동문/시인과 숲
추종욱/밤의 여행자
하재청/푸른 독
[추천시]
권기만/주남저수지. 무중력
권오정/스테비아 나무.
김정숙/육아일기Ⅰ. 골절
김현철/해파리.
박순숙/민들레.
성자현/지루한 시. 기억할 수 없는 기억
이민화/환상특급 수유실. 아버지의 고무신Ⅴ
이상태/바다 그리운 날.
[초대문단]
[목차&화보3]
두레문학
기획위원/도희종.엄태우.조경근.황말남.
자문위원/김성춘.박구하.한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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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조]이택제/어떤 巫女圖
[시조읽기]추창호/짧은 시 그리고 긴 여운
[시조]박희곤/변태. 화두
[시조]한분옥/하루는
[시조]현 임/풀잎소리. 하얀 밤
[편지]박용신/4월, 작은 소리와 고요
[수필]고영예/입추에 부는 바람
김숙이/나에게 넌
김순선/무창포
[시세계]
김광련/나비
김삼주/주근깨 소녀
김은수/태화강
김종제/멍게
박가월/수덕사로 간 여인
서순옥/바람 잦은 언덕
안재동/벚나무 당신
엄덕이/구채구 여행
이경례/아름다운 직각
이경숙/아총
이미자/불륜
이은심/발퀴레기행
조성범/봄 마중
지석동/살구꽃 누이
최순자/바다 숲 이야기
한영채/수묵화에 달 뜨고
현혜숙/해일이 지나가고
[목차&화보4]
[문예대학]
이상태/ 감성과 지성을 통한 감동 찾기
강동화/믹서기. 컵라면
김종환/새벽안개. 석양
도희종/무좀. 염장
박명남/다리미. 동짓달
박향자/왜곡. 폭탄주
손갑식/보성 녹차밭에 가면. 우럭
이영돌/갓바위 가는 길. 도시형 인간
이희규/대흥사 겨울. 봄날 아침 풍경
장득규/둘뱅이 바람. 가을이 간단다
조경근/쟁기질. 창
[수필]이양섭/은유의 숲을 지나는 시간여행
[수필]권영섭/검은 목관이 있는 풍경
[여행]노강웅/터키여행기
[두레문학] 여는 글
[두레문학]
문화예술과 제133호 비영리민간단체(NGO)등록 [시와비평문학회] 공인단체가 http://cafe.daum.net/emunhak 시와비평[두레문학], 계간 문예지『시와비평&시조와비평』웹사이트 http://cmunhak.com 운영합니다. 매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으로 [전국충의백일장], [문학강좌], 문학지 [두레문학]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비워둔 산정을 제일 먼저 가꾸는 진달래꽃을 봅니다. 모진 눈보라와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내고 산고(産苦)를 인내하여 잎사귀보다 먼저 탐스러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급변하는 현대정보사회의 도심 속에서 ‘나만의 섬’을 가꾸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한 편의 문학 작품을 피워내는 시심(詩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문학지『두레문학』 발간이 벌써 여섯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수없이 하얀 밤을 태우며 한편의 옥고를 출산하기 위해 몸부림치신 작가님들과 회원님들께 감사와 더불어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생업에도 바쁜 세상인데 『두레문학』발간을 위해 애써주신 임원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두레문학』이 해를 거듭할수록 알차고 수준 높은 문학지로 거듭나는 것은 회원님들의 고귀한 손길 때문입니다. [전국충위백일장]을 비롯하여 [문학 강좌]를 통해 신인들을 발굴하고 회원 상호간의 창작능력을 북돋아 주는 것을 『두레문학』이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각박한 세상을 아름답고 인정 넘치는 사회로 가꾸어 가는 것은 우리 문인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두레문학』발간을 회원님들과 함께 자축하며 문운을 기원합니다.
『두레문학』은 문학지 출판을 도와주신 도서출판『천우』와 두레문학회 회원, 그리고 옥고를 주신 문단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두레문학회장 이용일
[본 도서는 2007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합니다]
[초대하는 시]
꽃
이 자 영
그녀의 입
안에는 지칠 줄 모르는 혀
가 바람을 길어 나르고 있다
그녀가 은밀히 피
우는 것도 지
우는 것도 바람이었다
행복의 절정에는
왜 비극이
스며 있어야 하는지
바람을 당쳐 안은 꽃술만이
슬퍼야 아름다운 까닭을
알고 있었다
이자영 blazingsea@hanafos.com -------------------------
*개천예술제(1984) 문학대상, 문예사조 등단.
*녹색 신인상, 한국 글사랑 문학상. 박재삼 문학상, 울산문협 올해의 작품상 수상
*성신여대 영어교육과.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울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시집<하늘을 적시고 가는 노을같은 너는>, <밤새 빚은 그리움으로>, <單文이 그리운 날> 외. 공저시집 <시와 숲> 다수
현) 울산대 국문학과 외래교수, 울산대 평생교육원 독서지도사 과정 주임교수, 영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과 주임교수.
[탐방]
젊은 열정의 논픽션 소설가
- 울산문인협회 조돈만 회장
인터뷰 : 고은희 수필가
‘아픔ㆍ한’의 작가 조돈만 울산문인협회 회장을 만나러 가는 날은 햇살이 좋았다. 울산문화예술회관 쉼터 레스토랑 앞에 다다르자, 성숙한 여인네 같은 영산홍이 햇살을 받아 붉은 유혹을 한다. 붉디붉은 꽃을 보며 조돈만 회장의 문학 열정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만남과 각종 행사, 그리고 생활의 쉼표가 되고 있는 ‘쉼터’다. 문예회관 앞마당이 내다보이는 이곳에서 조 회장은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의 문학적 열기가 영산홍 보다 더 붉게 타올랐다.
논픽션적 성격의 작품 많아
조 회장의 소설이 갖는 문체적 특징은 기사체의 짧고 명료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와 서술이다. 무엇보다 내용에 있어서 논픽션적 성격이 강하며, 개인적인 아픔과 한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젊은 시절 부산 국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울산에서도 경상일보, 울산매일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랬기에 평소 언론인 출신 소설가라는 말을 곧잘 한다.
아픔ㆍ한을 담은 작가
조 회장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군대 영장을 받고 입대, 군 생활 후 제대하면서 교사 대신 언론직을 선택했다. 국제신문 수습13기로 언론계에 뛰어 들어 왕성한 활동을 통해 기자를 천직처럼 여겨왔다. 그러던 중 80년 군부에 의해 해직을 당해야만 하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당시 해직 기자들은 재취직하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고난과 역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들이닥쳤다. 그래서 그의 아픔과 한은 점점 쌓이고 작품을 통해 사회 부조리 현상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MBC신인문학상 ‘안면도’ 당선
조 회장은 기자였기에 논픽션 소설을 주로 많이 썼다. 1986년 <신동아>에 ‘C 반점의 데카메론’이 논픽션으로 당선됐다. 이를 두고 조 회장은 글재주가 좀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부산 MBC신인문학상에 ‘안면도’가 당선, 등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웃사이더로서 외침
조 회장의 소설은 사회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아웃사이더로서의 외침이며 인사이드에 대한 반항의식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하늘아, 하늘아’를 들었다. 위선으로 가득 찬 기존의 벽에 대한 갈등문제를 다룬 역사 소설로써, 천주교인들이 유교에 대한 반항의식이이 녹아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시대별로 분류하면, 80년 해직기자의 아픔을 담았던 시기로 반항적인 시대가 그 첫 번째가 된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한의 시대라는 점이며, 세 번째는 종교적인 시대이다.
종교적인 작품인 중편 ‘하늘아, 하늘아’는 창작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 이 작품은 울산의 동천강변에서 순교한, 1800년대 실존했던 세 남자의 이야기이자 이들과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면서 조선왕조의 관헌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천주교 신자들의 이야기다.
유창한 말솜씨 일품
작품에는 역사의식, 아픔ㆍ한ㆍ종교를 담고 있을 정도로 무겁게 쏠리고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특유의 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말솜씨로 유명하다. 현재 남부도서관에서 문예대학을 개설하고 주부 및 일반 성인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조 회장은 “‘문학인구가 저변 확대’돼야 하며, 사회가 밝아지고 살벌해지지 않으려면 종교도 전파해야지만, 문학의 확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어렵게만 생각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 “가령 심사하는 사람도 작품을 다 이해 하지 못하고 당선시키는 경우가 있는데요, 무조건 비틀기와 낯설기를 시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쉽게, 한글해독이 가능하다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재미있고 대중교화적인 작품이 돼야
특히 조 회장은 문학작품을 천박하게 대중화시키라는 뜻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미있게 쓰되 비록 허구적인 내용이지만 대중교화적인 작품이 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실제 그의 작품은 읽는 재미에 푹 빠져 들게 한다. 가짜가 진짜처럼 날뛰는 사회 현상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작품 〈바이러스〉 등이 소설 읽는 재미를 부추긴다. 작품은 울산에서 발간되는 「소설 21세기」와 「울산문학」을 통해 주로 발표하고 있다.
해외문학교류 등 현안 해결해 가기
울산문인협회의 현안 중 일환으로 해외문학교류 첫 번 째 행사를 무사히 치렀다. 45명의 울산문인협회 회원이 부산에서 49km 떨어져 있는, 일본 본토보다 우리 나라에서 더 가까운 대마도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울산문인협회원들은 만고충신 박제상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박제상 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장승재 시인의 헌시 낭독을 지켜보았고,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안치돼 있는 수선사를 찾아 묵념을 올렸다.
대마도는 한국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으로 울산문인들은 역사의식을 갖고 저마다 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울산문인협회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룬 해외문학교류라는 점에서 조 회장은 교두보적인 역할을 담당, 울산문인협회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됐다.
또한 조 회장은 부산 경주와의 교류의 장을 마련할 것과, 울산대공원 내 시비 건립과 문인회관이 설립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금껏 나타내고 있는 강한 추진력을 보며 희망을 갖게 된다.
한편 조 회장은 1941년 부산 출신으로 부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작품집으로「그물 빠져나가기」, 「멈추지 않는 세상」, 「원줄과 목줄」 등이 있다.
- 고은희 기자
고은희 go5752@hanmail.net
부산 출신. 월간 문학공간 수필부문 당선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수필가협회 회원
울산공단문학회 사무국장. 울산여성신문 취재부 차장
[초대석]
은 자 (隱者)
신 진
까치산 동쪽 기슭 베고 산 지 삼 년여
나만의 산책길 정해 두었네.
당두충 나무 사잇길, 조릿대 밭 사이 오솔길,
돌중 안씨가 진돗개 매어 점령한 소나무 숲 에돌아
밀양박씨 가족묘지 올라서면
닫히는 듯 열리는 나만의 산길.
참나무 잎에 부끄럼 떨고,
솔가지에 어깨동무 걸었다 폈다 하면서
장끼에 놀라고, 까투리마저 날리고,
토끼 똥 밟고, 노루 똥 헤아리며,
재를 오르다 능선 길 갈아타고, 다시 내리면
멧돼지가 매일 헤집어놓는 묵은 논뙈기.
사계절 허리 넘는 잡풀더미 밟고 내려서면
언제나 배가 고픈 개 사육장 식구들.
그런데 누구일까?
언제부터인가 내 산책길을
나보다 먼저 밟은 자취 남기네.
아침 일찍 나서면 미리 이슬 떨고 간 자취.
저녁나절에도 풀더미 밑동 지례 밟고 간 자취.
검은 흙에 미끄러지고 간 자국.
누구일까,
이른 시간에도 나 먼저 다녀가신 이
이슬일까? 달빛일까? 바람일까?
몰래 사는 산사람일까?
장끼 먼저 날면 까투리 뒤따라 날리는 이
토끼 똥, 노루 똥 길 가으로 조금 밀어놓는 이
길이 아닌 길을 걸을 만한 길 되도록
숨어서 야금야금 다듬어 두는 이
지금도
저만치 앞서 가시는 듯하네.
신 진(辛 進) jshin@dau.ac.kr ---------------------------
부산 출생.『시문학』천료(‘74-’76). 성균관대 문학박사. 시집『목저 있는 풍경』(아성출판사.1978.), 『장난감마을의연가』(태화출판사.1981.).『멀리뛰기』(민음사.1986), 『강』(시와시학사.1994.),『녹색엽서』(시문학사, 2002), 『귀가』(신생, 2005) 등. 논저『우리시의 상징성 연구 』, 『상징과 해석』 『문예창작론 강의』등 다수. 시문학상, 봉생문화상, 부산시인협회상 등 수상. 현 동아대학교 문창과 교수.
[초대석]
낱말 새로 읽기-9
-새-
문 무 학
‘새’는 ‘사이’를
줄인 말일 것이다
땅과 하늘 사이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
날 수 있는 것은
새뿐이지 않는가.
문무학
* 대구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대구대 겸임교수.
* 제38회 월간문학작품상/시조문학 문학평론 천료.
* 현대시조문학상, 대구문학상, 유동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수상.
* 시집 : <풀을 읽다> 외 5권, 시조선집 <벙어리뻐꾸기>
* 현 : 대구문인협회장, 대구시민예술대학장.
[작품 해설]
詩
박 목 월
<나>는
흔들리는 저울臺
시는
그것을 고누려는 錘
겨우 균형이 잡히는 位置에
한 가락의 微笑.
한 줌의 慰安.
한 줄기의 韻律.
이내 무너진다.
봄밤, 낡은 시집을 뒤적인다. 삼중당 문고 182권, 박목월 시선 -백일편의 시- 1978년 중판본이다. 세로쓰기 판으로 82쪽과 83쪽에 실린 <詩>라는 작품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이 시집을 읽는 것이 처음은 분명 아닌데, 그 언젠가 읽었을 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품이다.
시를 쓰며 산지도 4반세기가 넘었는데,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시는 이것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으니 이러고도 시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한심한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떨 땐 또 도통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시다. 아마도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일 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300여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 라는 제목으로 두 편을 썼다. <나의 시>, <시와 시인>이라고 제목한 것이 그것들이다. <나의 시>는 1990년대 초반에 “내 시는/ 눈물이다/ 뜨거운 눈물이다.// 끝내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눈물이다.// 그 눈물 닦고 지우며 일어서는 연습이다.> 라고 썼다.
<시와 시인>은 2007년 봄에 발표했는데, 시조 두 수로 첫 수는 ‘시’에 관해서 둘째 수는 시인에 관해 썼다. ‘시’에 관한 그 첫수는 “시는 애당초 밥 되는 게 아니었어,/ 시는 애당초 힘 되는 것도 아니었어, /한없이 가벼워지는 세상 / 추 하나 다는 것이었어.” 라고 썼다.
박목월 선생의 선집에서 이 작품을 오래 바라본 것은 바로 이 <추>라는 단어 때문이다. 박목월 선생의 추는 저울대의 균형을 맞추는 추였고, 내 시의 추는 무게를 더 한다는 의미의 것이지만, 같은 제목 아래 같은 시어가 들어있다. 물론 그 의미는 달리 드러나지만, 박목월 선생의 추가 훨씬 더 시에 가까워 부끄러워 질 수밖에 없다.
박목월 선생의 <詩>. 이 작품은 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시인은 그냥 저울대가 아니라 ‘흔들리는’ 저울대이며, 시는 시인의 생각을 고누려는 추다. 겨우 균형이 잡히는 위치에서 잠시 잠깐 미소를 얻고, 위안을 얻고 가락을 얻지만 이내 무너지고 만다. 시인은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늘 끝과 끝을 일렁대는 해와 달’로부터 새로운 사실 하나 읽어낸다. ‘아득한 진폭, 생활이라는 그것’을,
저울의 추로 균형 잡으려는 그 팽팽한 긴장, 짜릿하게 한다. 그 짜릿함은 시를 쓰는 기쁨인가, 전율인가. 그것이 기쁨이든 전율이든 그런 긴장 속에 놓이는 것이 시인의 삶이라고 나는 읽고 싶다. 이 작품은 결국 시 쓰기가 한없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나에게 시로 하여 무너지는 가슴을 따듯하게 감싸준다.
봄밤에 옛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나 얻는다. 저울대의 균형을 맞추려는 그 팽팽한 긴장감, 그것이 시 쓰기라는 것은 나를 긴장시키고도 남는다. 이 작품을 내가, <시와 시인>이라는 작품을 쓰기 전에 알았더라면 나는 쓰지도 발표하지도 않았을 텐데, 긴장을 외면한 나의 시에게 미안하다.
- (문무학)
[두레문학상]
수상 소감
수상 전화를 받고 한동안 마음이 어수선하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백일장에서 서너 번 상을 타 본 적은 있지만, 詩를 쓰는 동안에 꿈도 꾸어보지 못할 문학상을 받는다니 기뻤습니다. 두레문학에 이바지한 것도 별로 없으면서 이렇듯 큰 상을 받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두레문학에 애정을 쏟고 더욱 정진하라는 뜻으로 깊이 새기겠습니다.
시인이 꿈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돈을 모아서 70년대 초, 詩 전문지인 [현대시학]이나 [시문학]을 구입해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으며 제법 나름대로 詩와 열애에 빠졌습니다. 정작 국문학과에는 진학하지 못하였는데, 어수선하고 음습한 유신정권과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등으로 방황하던 나는 결국 군 입대라는 자유의 날개를 달자마자 詩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린 詩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녔고 쉰이 다된 늦깎이에 결국 다시 詩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내 詩를 평하여 주신 김영승 시인의 시 강의에 있는 [함호(含糊)의 詩]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울림을 줄 수 있는 詩를 쓰려고 기를 쓰지만 아직은 미천하여 늘 불만스럽고 솔직히 詩를 내 놓기가 부끄럽습니다.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자세와 사람다운 향기로 늘 문학회원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큰 상을 주신 두레문학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박봉준 qkek1165@hanmail.net -----------------------------
강원 고성출생. 강원대학교 졸업.『시와비평&시조와비평』등단.
두레문학회 부회장. 산다촌문인회원. 글벗문학회원. 다울문학회장.
공저/『글벗』『시와비평』『두레문학』
홈피/ http://wolfeyes09.kll.co.kr/
[1] 적막강산 寂寞江山
박 봉 준
어머니 돌아가시자 괘종시계가 멈췄다
긴 긴 하루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료한 탓이었을까
어머니는 꼭, 괘종시계만을 고집하셨다
삼십 년 넘도록 벽에 기대 함께 살아온
세이코 시계는 목소리도 거칠어지고
밥 한술 뜨고 나서야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어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만만한 아범을 불러서 수시로 밥을 주자니
아들의 불만도 서서히 원을 따라 돌았다
건전지를 한 번만 넣어도
오랫동안 제 본분을 다하는 디지털시계
뻐꾸기 소리 정겨운 그런 시계도 지천인데
하필 제 구실 성치 않은 불알시계
툭하면 허기져 늘어지는
늙은 시계의 심줄을 조이라 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 쉰 소리 들리지 않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아들 딸 서울 가고 아내 없어 혼자 사는 날
방 한구석에서 아직도 벽을 기대있는
그 늙은 괘종시계 물끄러미 바라보니
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어머니 마음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을
[2] 눈깔
목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가마때기에 둘둘 말려온
개똥이 아버지 얼굴엔 눈이 없었다
고기나 문어가 뜯어먹었을 거라고
골뱅이가 파먹었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린 나는 한동안
그 좋아하던 생선을 먹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고동도 게도 잡지 않았다
오래전 집들이에 갔는데
유심히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더니
눈깔을 먼저 파먹더라고
바닷가 사람이 틀림없다고
연신 감탄을 하면서 놀려댔다
동탯국을 먹다가
멀겋게 눈을 뜬 동태 눈깔을 보니
개똥이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요즘은 내가 문어인지 골뱅인지
눈깔을 제압하는 것이 사는 것인지
자꾸 눈이 스멀거린다
[3] 고로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전장으로 떠난 사내는 머리카락을 남겼다
그의 분신
용맹스럽고 건장한 그의 몸이다
딸이 외출한 자리에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딸의 것이 분명하다
긴 머리의 소유자는 딸 밖에 없으므로
청소기로 머리카락을 빨아들이며 혀를 찬다
쓸고 쓸어도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
내가 가는 곳
네가 가는 곳 어디든지
퍼질러 앉아 투정을 부리고 있다
뼈다귀처럼 뒹굴고 있다
한바탕 청소기로 요란 떨고 돌아보니
방금 내가 지나온 자리에도
나의 머리카락들 조롱하듯 숨어있다
언젠가는 무덤 속에서도
내 몸의 수액을 남김없이 빨아올릴 때까지
저놈의 머리카락은 죽지 않을 것이다
고로 내가 죽어도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아득할 어둠 속에서
[4] 덤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심심한 육손이는 무얼 하고 놀았을까
막내 삼촌만 한 육손이 골려 먹는 재미가
사시사철 쏠쏠했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한 개씩 더 달린 육손이
아이들은 늘 그가 만만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꼭, 떨어졌을 것 같은
손바닥선인장 끝에 달린 그의 막내 손가락
조무래기들이 육손아! 육손아! 부르면
심사가 뒤틀린 육손이 어머니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아이들을 쫓고
발가락도 한 개 삐죽 머리 내밀어
벗겨질 듯 말듯 고무신을 걸치고 다니던
코밑이 시커먼 육손이
날 선 보망* 칼 들고 그물 손질할 때면
영락없는 어른이어서
반 토막짜리 덤이 달랑거리는 손으로
바다가 빠져나간 자리 촘촘히 꿰매기도 하고
아이들의 조롱을 웃으면서 쓸어 담던
덤으로 평생 덤을 지고 가야 할 그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보망: 그물을 손질하여 고침
[5] 청호동 아바이
내 장인은 북청 짜꼬치 아바이다
사변에 아가리 배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 왔다가
갯바위에 죽기 살기로 붙어있는 따개비처럼
남은 생 송두리째
아바이마을에 뿌리를 박다가 가셨다
뒷바람*에 실려 오는 고향
새벽녘이면 삼삼하게 눈眼 밟히다가도
끝내는 다 털어내지 못하고 비린내로 남았다
내가 처갓집에서 묵은 그날 밤에도
형수와 마주앉은 내 작은 장인의 눈물은
이슥토록 소주병에서 출렁거렸다
살다가 진저리치는 날
깡 소주로 나발 불면 창지가 모두 녹을 거라고
불쑥불쑥 이마가 닿는 골목마다
식전부터 아마이들이 억세게 목청을 높여도
청호동 아바이들,
무시기 소린가 깡 소주 마셔대더니
바다보다 깊은 쪽빛 멍 시름시름 퍼져서 죽었다
함경남도 북청 짜꼬치 앵꼬치*
홍원 이원 단천 신포로 가지 못하고
북녘 하늘이 손끝에 닿는 공동묘지에 누웠다
*짜꼬치. 앵꼬치: 함경남도 북청의 지명
* 뒷바람; 북풍의 방언 (강원)
[6] 귀신고래
냉장고에 병따개며 온갖 쿠폰이
어지럽게 나붙었다
저 덩치 큰놈이 자리를 잡자
집안 훤하던 그날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
검버섯이 생기면 오래 산다고
텔레비전에 비친
그룹 회장님 같은 어르신을 보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동해바다 한가운데서
귀신고래가 하늘로 솟구치자
거대한 몸에 붙은
따개비며 굴 껍데기가 스산하다
몇 살이나 잡수셨을까
고래의 몸에서 풍상이 인다
사람이나 고래나 오래 살고 보면
귀신 소릴 듣는가
[7] 향수鄕愁
느닷없이 풀빵이 먹고 싶은 것은
늙어간다는 증거인가
옛날식 풀빵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사거리 노점 앞을
그냥 지나칠 것 같아도
아내는 내 심중을 용케도 알아챈다
파치 명태며 양미리를 얻어서
쪼르르 달려가던
내 유년의 무쇠 풀빵 틀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부둣가 아이들의
눈빛이 익는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오는 길에
풀빵 좀 사오라고 하였더니
풀빵은 없고 붕어빵은 어떠시냐고
발목 깊숙이 빠진 겨울
주머니가 허전할수록
봉지 속 풀빵이 어른거리는 것은
[8] 대박
복권을 사러 갈 눈치면
아내는 꿈 이야기를 못 하게 한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처럼
입 꾹 다물고 있어도
번번이 허탕이다
어쩌다 돼지꿈이라도 꾸는 날
들뜬 기분에 그만
꿈 자랑을 해 버리고 나면
이미 효험이 없다고 판정을 내린
현명한 아내는
내 꿈을 헐값에 처서 복권을 산다
그래도 역시 꽝이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인지
아내는 요즘 대박에 시큰둥하다
별이 대낮처럼 밝은 꿈을 꾼 오늘
복권을 한 장 샀다
영하의 날씨
햇살이 찰랑 허공에 걸린다
[9] 친구
양계장 배수로에 비름이 무성하다
들풀인가 싶어 관심도 없는데
세월이 눌어붙은 헛간에서
냉큼 고무 대야를 가져온 친구는
식구가 없어 미처 먹지도 못한다며
뜯어가라고 성화다
쭈뼛거리는 나를 제쳐놓고
고무 대야 가득 비름나물을 채우는
친구의 눈에 설핏한 여울이 인다
언젠가는, 바빠서 농약도 못 쳤다며
잎사귀마다 고단함이 숭숭 드나드는
구멍 뚫린 가을배추를
승용차에 가득 실어주던 그 사내
휘어질 줄 모르는 성격 탓에
멋대가리 없는 남자라고
그의 아내와 내가 더러 흉을 보지만
그런 그에게
나는 가끔 무공해 신세를 지고 산다
[10] 삼겹살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취직을 하여
서울로 올라가는 일요일 날 저녁
평생 섭섭할 것 같은 마음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갈빗집에 갔다
메뉴판을 보며 망설이는 사이에
눈치 빠른 아이들이
생 삼겹살 3인분을 주문하였다
불판 위에서 노릿 노릿하게 익어가는
주검을 보고 있자니, 어느 날
순댓국밥집 골목에서 웃고 있던
그 돼지의 일생이 눈물겨운 것인가
매운 연기가 자꾸 내게로 몰려왔다
죽어서도 제 살을 아낌없이 내주는
그를 돼지라고 불렀는데
돼지보다 못한 내가 성스러운 그의
육신을 보시 받는 것이 부끄러워
소주 한 잔에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착하고 복된 돼지의 무던한 의지가
불판마다 지글지글 타올랐다
[작품해설]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
김 영 승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탐구나, 그 탐구를 통해 도출된 진리는 내 앞에(pro-) 장애물로서 던져진 것(blema) 즉, 문제(problema)를 직시하는 그 발견의 소산이라면, 박봉준의 시는 그러한 발견의 시이다. 박봉준은 연속적으로 혹은 불연속적으로 시시각각 주마등처럼 스치는 그 현상의 파노라마를 외면하거나 간과하지 않고 부단히 포착하고 의미부여를 하는데, 개별적인 사례의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동일한 것을 정의(定義)라고 한다면, 박봉준의 시는 그 자체가 세계(또는 대상)에 대한 그러한 시적 정의이다. 눈깔, 개똥이 아버지, 동태, 동탯국(이상「눈깔」), 딸, 머리카락(이상 「고로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육손이(「덤」), 자신의 장인인 청호동 아바이(「청호동 아바이」), 냉장고에 붙은 병따개며 온갖 쿠폰(「귀신고래」), 풀빵(「향수(鄕愁)」), 복권(「대박」), 비름(「친구」), 삼겹살(「삼겹살」), 괘종시계(「적막강산(寂寞江山)」) 등등 일상에서 포착된 소재들을 소도구처럼 배치하여 방편처럼 자유연상을 통한 시적 정의를 내리는 박봉준의 시는 일단은 소재주의의 시이다. 소재주의는 소재가 없으면 시도 없거나 그 소재의 속성에 전부 혹은 일부가 의존하게 되어 시인의 시상이 흡수되거나 매몰된다면 한계이나, 박봉준은 그 소재를 새로운 물상으로 창조하거나 변형시키는데, 그 소재가 원관념이 아닌 보조관념으로서의 수단으로만 동원되어 시적 공간 속에서 용해되었기 때문이다. 즉, 박봉준의 시는 그 소재를 시적 언어로 풀어서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제시하는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박봉준에게 있어서의 그 모든 현상은 다 소재이며, 그 소재의 발견(혹은 포착)은 박봉준의 의식과 무의식이 함수하는 시간적․ 공간적 좌표 상에서의 무수한 한 점으로서의 삶 그 자체이다. 박봉준의 삶은, 아니 시인으로서의 박봉준의 삶은 그가 포착한 소재들의 연결이며 그 총량인데, 그러한 소재를 징검다리처럼 놓아가며 박봉준은 바라밀다, 즉 도피안(到彼岸)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독자들은 그 징검다리가 곧 그의 삶의 궤적이라는 것에 동의하며 함께 건너갈 수 있다.
그러니까 박봉준이 무엇을 발견하였는가, 아니 박봉준이 포착하여 박봉준의 시적 공간에 편입시킨 그 소재들이 무엇인가를 보면 우리는 그 박봉준의 인간을 조상(彫像)할 수 있다. 즉, 눈깔을 포착한 박봉준은 눈깔을 포착했을 때의 박봉준의 지금-여기이며 그 지금-여기의 전 영토와 영해와 영공을 함께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랭보의 견자(見者)와는 다른 견자로서의 박봉준은 그러나 정밀(靜謐)이다. 추정하건대, 박봉준은 청소기로 머리카락을 빨아들이며 혀를 찰 만큼,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쓸고 쓸(이상 「고로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만큼 완벽주의자 혹은 결벽주의자의로 여겨지는데 그러한 집착과 경도(傾度)는 놀랍게도 죽음을 직관하며 그 삶의 중심에서부터 그 죽음을 관통한다.
여하튼 박봉준의 시는 논리학에서 말하는바 소위 P ⊃ S의 형식과 그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즉, P면 S이다, 혹은 만일 P이면 S다 형식의 함언(含言, implication) 구조에 그 시간적 선후관계와 공간적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시세계의 심리적 안정감과 구도적 안정감을 동시에 획득한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소설이 전개되는 소위 액자소설과는 다른 통칭 액자시, 그러니까 시인이 설정한 그 시적 틀로서의 그 액자 안에서 그 자체로 완결된 그러한 액자시가 아닌 박봉준 식의 그 끊어진 흑백영화의 필름 한 컷 한 컷 같은 액자시는 그러나 불연속적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연속적이며 그 이미지와 아우라의 현현으로 영사되고 있었다.
일단은, 박봉준이 소위 객관적 상관물이며 동시에 인식의 소재로 포착한 그 시적 징검다리를 독자는 마치 자기가 놓은 징검다리 마냥 하나하나 건너갈 수밖에 없게 한다.
목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가마때기에 둘둘 말려온
개똥이 아버지 얼굴엔 눈이 없었다
고기나 문어가 뜯어먹었을 거라고
골뱅이가 파먹었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린 나는 한동안
그 좋아하던 생선을 먹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고동도 게도 잡지 않았다
오래 전 집들이에 갔는데
유심히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더니
눈깔을 먼저 파먹더라고
바닷가 사람이 틀림없다고
연신 감탄을 하면서 놀려댔다
동탯국을 먹다가
멀겋게 눈을 뜬 동태 눈깔을 보니
개똥이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요즘은 내가 문어인지 골뱅인지
눈깔을 제압하는 것이 사는 것인지
자꾸 눈이 스멀거린다
―「눈깔」 전문
예(例)의 그 P ⊃ S의 형식이므로 이야기는 간단하며 그 이해는 더 간단하다. 어린 시절 그는 목선을 타고 바닷가에 나갔다가 / 가마때기에 둘둘 말려온 / 개똥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얼굴엔눈이 없었다. 고기나 문어가 뜯어먹었을 거라고 / 골뱅이가 파먹었을 거라고 /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그 좋아하던 생선도 먹지 않았으며 바닷가에서 고동도 게도 잡지 않았었다. 그 기억은 저 무의식의 심층에 침전된 충격으로서의 정신적인 외상, 즉 트라우마이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집들이에 갔는데 / 유심히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더니 / 눈깔을 먼저 파먹더라고 그래서 바닷가 사람이 틀림없다고 / 연신 감탄을 하면서 놀려댔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시인은 그 회사 동료의 지적처럼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는, 그리고 그 생선 중에서도 그 생선의 눈깔을 제일 먼저 파먹었다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소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굴절된 표출로 파악되는데, 그 유년의 충격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순간의 발견이다. 가령, 20세기 남미에서의 소위 피압박자의 실존적 이원성처럼, 그러니까 가령 사탕수수 농장에서 학대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이다음에 자기가 그 사탕수수 농장의 주인과 같은 위치에 되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그 노동자들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대우해야지 하는, 미래의 자기 자신을 놓고 그 가혹한 사탕수수 농장 주인이나 그 노동자가 아닌 제3의 인간상을 상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먼 훗날 자신도 그 사탕수수 농장 주인처럼 채찍으로 노동자들을 부리며 살리라 하는 결의가 서서히 자라 결국은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그 피압박자의 실존적 이원성처럼 그러한 상반된 이원성을 보이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발견은 이제는 자기가 그 얼굴에 눈이 없는 개똥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그 개똥이 아버지 눈을 뜯어먹고 파먹는 문어며 골뱅이라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문어나 골뱅이와 동일시시키면서 피해자에서 가해자라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또 하나의 충격이다. 즉, 시인은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하여 시적인 정신적 외상, 그 트라우마를 독자에게 가하면서 그 변증법적인 치유의 합일점을 제시한다.
눈깔은 눈의 비어이다. 그 멀겋게 눈을 뜬(?) 동태 눈깔이나 사람 눈깔이나 그 눈깔이 그 눈깔이라는 탄식과 절망이 그 여운으로 동시대인들을 끝까지 소위 방법적 회의의 무대에 홀로 남겨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 눈깔은 무엇인가. 눈은 일차적으로 세계(또는 대상)을 보는 신체기관이다. 가령, 우리가 본다고 할 때 그 본다는 것(to see)은 s에 e가 네 개 혹은 다섯 개가 붙은 to seeee 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일차적으로 눈(eye)으로 보며, 그의 경험(experience)으로 보고, 환경(environment)으로 보며, 그가 제도적으로 혹은 비제도적으로 받은 그 모든 유형무형의 교육(education)으로 보고, 마침내는 그의 어떤 기대(expectation)로 보는 to seeeee라면, 우리가 본다고 할 때 그 본다는 것은 우리의 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본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눈깔을 제압한다는 말은 그 상대를 죽인다는 말이다. 즉 눈깔을 제압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눈깔에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가 그 눈깔을 파먹는다는 것은, 눈깔을 공격한다는 것은 상대를 죽인다는 것이다. 즉, 상대의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전 영역을 다 말살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누군가의 현재만을, 그 현재의 장점, 아름다운 점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상대가 통과해 온 그 상대의 시간과 공간의 전 영역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동시대의 소위 사랑이라는 것도 그러한 공격과 공격, 그러니까 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수비, 혹은 최선의 수비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속언(俗諺) 같은 생존의 실존적 이원성에서 파악될 것을 박봉준은 시사하며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설과 반어는 동시대의 인간 일반, 그 데드마스크 같은 얼굴들에 대한 월인천강(月印千江) 같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박봉준은 그렇게 그 눈이 없어진 얼굴들에 눈을,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심심한 육손이는 무얼 하고 놀았을까
막내 삼촌만 한 육손이 골려 먹는 재미가
사시사철 쏠쏠했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한 개씩 더 달린 육손이
아이들은 늘 그가 만만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꼭, 떨어졌을 것 같은
손바닥선인장 끝에 달린 그의 막내 손가락
조무래기들이 육손아! 육손아! 부르면
심사가 뒤틀린 육손이 어머니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아이들을 쫓고
발가락도 한 개 삐죽 머리 내밀어
벗겨질 듯 말듯 고무신을 걸치고 다니던
코밑이 시커먼 육손이
날 선 보망* 칼 들고 그물 손질할 때면
영락없는 어른이어서
반 토막짜리 덤이 달랑거리는 손으로
바다가 빠져나간 자리 촘촘히 꿰매기도 하고
아이들의 조롱을 웃으면서 쓸어 담던
덤으로 평생 덤을 지고 가야 할 그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보망: 그물을 손질하여 고침
― 「덤」 전문
고은의 「만인보」를 연상케 하는 이 시는 그러나 김광규의 시편들처럼 보다 더 주지적이다. 덤은 원래의 것에 조금 더 얹어주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덕이니 진정한 지식이니 로고스니 사유(思惟)니 등은 인간에게 덧보태어진 것(epiktesis)으로 언표 되는데 그 말을 뒤집으면 그러한 것들은 원래 인간에게는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원래 없었던 것에 얹어서 준 것, 그 덤의 소유자 육손이는 그 덤 때문에 아웃사이더가 된다. 노자나 장자에는 소위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 데 없음의 쓸데 있음으로서의 비유와 그 예로서 무수한 기형적인 동식물과 인간이 등장하는데, 맹자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지금 여기에 무명지가 굽어서 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별로 아프지도 않아서 일하는 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지만, 만약 이것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고만 하면, 진(秦)이나 초(楚) 같은 먼 곳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갈 것이다. 손가락이 남 같지 않음을 부끄러워함이다. 손가락이 남 같지 않음은 싫어하면서, 마음이 남 같지 않은 것은 싫어할 줄 모르니, 이것을 일컬어 일의 경중(輕重)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 고자장구상(告子章句上)
수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육손이는 가난하다. 노장(老莊)과 공맹(孔孟) 철학의 양극단에서 우리는 그 덤이 짐이 되는 순간, 그 초월과 수용의 그 경계(境界)를 본다. 그것은 박봉준이 시로써 보여준 그 경계의 우화이다. 타자와 다르다는 것은 저주이며 은총 아닌가? 그러한 시적 관상(觀想)은 생과 사의 경계조차도 넘나들며 다음과 같은 반짝이는 돈오(頓悟)를 낳는다.
어머니 돌아가시자 괘종시계가 멈췄다
긴 긴 하루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료한 탓이었을까
어머니는 꼭, 괘종시계만을 고집하셨다
삼십 년 넘도록 벽에 기대 함께 살아온
세이코 시계는 목소리도 거칠어지고
밥 한술 뜨고 나서야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어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만만한 아범을 불러서 수시로 밥을 주자니
아들의 불만도 서서히 원을 따라 돌았다
건전지를 한 번만 넣어도
오랫동안 제 본분을 다하는 디지털시계
뻐꾸기 소리 정겨운 그런 시계도 지천인데
하필 제 구실 성치 않은 불알시계
툭하면 허기져 늘어지는
늙은 시계의 심줄을 조이라 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 쉰 소리 들리지 않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아들 딸 서울 가고 아내 없어 혼자 사는 날
방 한구석에서 아직도 벽을 기대있는
그 늙은 괘종시계 물끄러미 바라보니
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어머니 마음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을
―「적막강산(寂寞江山)」 전문
괴로워하기를 그만둔 자들…… 고대 희랍인들이 인식한 사자(死者)들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그 세속화된 불교의 세계관 같은 그러한 사생관(死生觀)은 박봉준에게서는 어머니 돌아가시자 멈춘 괘종시계로 촉발되어 오고감도 없다는 원래의 불교적 시간관과 그 사생관을 일상의 짧은 에피소드와 그 직관적인 단상(斷想)을 통하여 육화(肉化)시킨다. 죽는 것을 입적(入寂) 혹은 적멸(寂滅)이라고 표현하는 영혼들을 생각하면 박봉준의 시적 직관은 반딧불이다. 반딧불은 그 배경이 어둠일 때만 빛나는, 그리고 현존하는 생명이 내는 빛 아닌가.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같은 박봉준의 이 「적막강산(寂寞江山)」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실존적 고독이며 그 시적 정각(正覺)인 것이다.
박봉준의 시는 시의 인공적 자연미와 자연적 인공미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인공적 자아의 노래이다. 즉, 그 자아는 자연스러운 자아이되 인공적인 자아, 그러니까 만들어진 자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봉준의 시는 모두(冒頭)에 언급한 그 소재주의와 P ⊃ S의 형식과 구조에 의해 이미 상당한 부분은 고정화되고 정형화된 소위 투(套)의 시의 편린이 여전히 산견되는데, 그것은 각각의 시편들이 일상적 소재의 사소주의와 매너리즘에 의해 다소는 과도하리만큼 절제되어 있고 세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소월의 시는 소월의 시풍이라 할 만한 특수한 어보(語步)를 보이나 각각의 시편들이 각자 독립된 발상과 그 진행을 보이지만 박봉준은 어떤 소재가 포착되면 그 소재를 놓고 시가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결말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그 시의 귀결이 약간은 예측이 가능하기에 그 시 쓰기, 혹은 시적 발화의 투(套)가 때로는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사족을 첨언한다. 「귀신고래」, 「향수(鄕愁)」,「대박」, 「친구」, 「삼겹살」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식의 소재 포착과 시적 발상을 통한 자유연상, 그런 식의 형상화가 반복된다면 박봉준은 어쩌면 독백과 같은 동어반복의 크고 작은 동심원에 갇힌(?) 파문만을 그 잔잔한 수면에 만들고 그려나가리라. 여과되지 않은 육성과 격정도 시의 지극히 소중한 부분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러한 육성과 격정을 수용하고 분출할 또 다른 형식의 창조와 파괴 그 실험도 부단히 병행돼야 하리라. 군자(君子)는 불기(不器) 아닌가. 그렇다면 시의 그릇도 박봉준의 그 투명한 세계인식 만큼 다양해야 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전문>
1. 마음 산(心山)에 들어가자
살다 보면 별 이유 없이 그냥 쓸쓸해지는 날이 있다.
이유 없이 쓸쓸한 이유를 의사들이 연구를 했다지만 결론은 이유 없이 쓸쓸하다는 것이다. 나비들은 이리저리로 팔랑팔랑 봄을 뿌리지만 왠지 마음 산에는 펄펄 낙엽이 지니, 뉘라 쓸쓸한 봄날 없으랴만 오늘처럼 화사한 봄날에도 시인의 마음 골(心谷)엔 골마다 바람 부니 낮술이라도 한 잔 하든지 아니면 마음 다듬을 詩라도 한편 읽어야 숨을 돌리겠다. 가을인양 봄을 앓으며 “목마와 숙녀”를 분석해 보자. 봄비라도 내려 이 더운 마음 씻어줄는지.
2. 詩人의 뒤꿈치 따라가기
이 詩가 가지는 정처 없는 고독감, 알 수 없는 쓸쓸함 정도는 누구나 짐작한다. 요사이 읽고 또 읽어보니 이 詩가 음탕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보지 못해 음탕을 문화로 격상시키지 아니 하고서는 잠이 오지 않으니 시를 구석구석 파고들어 살펴보고 싶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우선 첫 연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이거부터 되게 맘에 든다. 사람의 마음을 확 채어간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지금부터는 저 깊은 의식의 나라로 들락거리는 문이 열린다는 뜻이고 그래서 숨어 있는 마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근사하지만 못다 이룬 지순지고의 사랑 이야기나, 불륜이지만 치정(痴情)이라고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사랑의 판타지 같은 것들이 은근히 기대되는 분위기이다.
더구나 ‘우리는’이라고 덧붙이면서 독자를 공범 혹은 동류로 만들어 버리고는 안정된 박자와 편안한 운율로 독자를 시적 리듬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가버린다. 솜씨와 수완이 대단한 시인이다.
첫 연을 읽으면 이 술판의 정서는 시끌벅적 시장판이 아니라 분위기 우아한 스탠드바에 한 남자가 쓸쓸히 앉아 있는 화면이 쫘악 보인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어떤 떠나간 숙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여자는 목마를 타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떠났다는데 그것도 가을 속으로 말이다.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를 풀어보면 때는 가을이고 숙녀는 목마를 타고 떠났고, 또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떠났고, 가면서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방울 소리 딸랑거리며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버리고 떠난 쓸쓸한 분위기가 우울하게 깔려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아는가?
제 삶을 다 짐 지지 못하겠다고 어느 날 강가에 즐겨 쓰던 지팡이 하나 달랑 남겨두고 주머니 속에 돌멩이를 가득 채우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는 여자,
- 지팡이를 남겨두었다는 점이 아주 상징적이다. 제 몸을 지탱해준 지팡이는 있었지만 정신의 지팡이가 없었다는 반증 같지 않은가? -
교과서에서 의식의 흐름이니 슈르레알리즘이니 다다이즘이니 뭐 그런 전후(戰後)의 사상조류를 배울 때 대표적으로 이름이 나왔던 여자. 등대로(To the light house)라는 스토리 알쏭달쏭하게 긴장 없이 집안이야기만 풀어헤친 소설로 유명해진 여자. 이런 분위기 알싸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름까지 멋지게 울프 (여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인데 온통 떠났다는 분위기로 도배가 되어 있으니 시적 배경이 더 할 수 없이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에서 나누는 대화가 또 심상찮다.
떠나간 숙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다니 화제가 숙녀가 아닌 숙녀의 옷자락이라는 점에서 옷자락이 가지는 표층적 정서를 강조하면서 기실 숙녀는 주인공이 아니며 숙녀의 실존적 고뇌와 통찰 보다는 감각적 이미지를 은근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목마의 이미지를 그려보자.
목마라 하니 나무로 만든 회전목마를 얼른 떠올리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터이고 그 외에 또 우리가 떠 올릴 목마가 있나? 나의 상상력으로는 더는 없다. 그러니 이런 실물적 상상으로는 이 詩를 다 읽어낼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詩에서 목마는 남자를 상징한다. 이 詩의 주조(主調)가 여성성이지만 여류에 대비되는 남성성은 목마와 방울소리에 숨어 있다. 목마는 숙녀에 대비되는 남자이며 방울은 남자의 거시기(生殖器)를 의미한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낭만파 박인환다운 설정이다.
남자는 떠나면서 방울 소리를 내며 떠났다는데 이는 그 남자에게서 남은 가장 유효한 추억은 ‘몸섞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살아있는 말이 아니고 하필 목마인가? 목마의 느낌을 생각해보자. 생각하면서 목마에 상상의 생명을 넣어보자. 목마의 차가움, 목마의 말없음, 목마의 무심함으로 볼 때, 결국 감정이입불가(感情移入不可)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설혹 가슴 문드러질 감정이 있었다 해도 이를 적절히 전달할 정황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목마는 남자이되 떠나간 남자이다.
여자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히 말없이 떠나간 차가운 남자라는 것이다. 온기 없는 남자, 한 때 사랑의 열병을 앓았건만 이제는 차갑게 돌아서서 떠나간 남자. 목마의 꿈이나 목마의 슬픔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목마가 살아있는 말을 보며 부러워하고 그가 살아 있는 말이라면 하고 싶었을 일들을 생각해보자.
- 갈퀴를 휘날리며 들판을 달리는 일,
- 주인(여자라면 더욱 좋다.)을 태우고 주인이 깜짝깜짝 놀라도록 즐겁 게 달려보는 일,
- 사랑하는 말을 만나 서로의 목에 목을 대고 히힝 거리며 사랑을 나 누는 일.
- 저녁놀이 내려올 때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다리를 쉬는 일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이쯤 생각하고 다시 詩의 내용을 살펴보면, 목마는 숙녀가 타는 말이고 어느 날 숙녀를 태우고 떠나갔다. 아니 숙녀가 목마를 타고 갔다. 목마란 것이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이 떠날 수 없는 목마를 타고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여자가 말을 탄다는 것은 성적행위를 의미한다. 숙녀가 원했든, 목마가 원했든 그들은 방울소리가 나는 성적행위를 하고 그리고 헤어졌다는 뜻이다. 목마가 주인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으로 보아 일견 남자가 떠난 것으로 보이지만 이 詩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루지 못하고 보낸 사랑을 한탄하며 떠나간 숙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떠났지만 정은 남는 법.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니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마시고 있는데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초롱하다. 별은 이상의 나라이며 가고 싶은 나라이며 이승에서 안 되는 일이 그 곳에서는 될 수 있는 나라이다. 별을 보니 눈물인 듯 떠나간 사랑이 보이는데 눈물 속에 어룽거려 정신이 혼미한데 갈 수 없는 별의 나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진 내게 저 별은 무엇인가? 아직도 나에게 저 별은 희망의 별이며 가고 싶은 나라인가? 제2연은 이 詩의 결구(結句)에 직결되어 있으며 읽을수록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 마지막 연을 먼저 읽어보자.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는 하늘에 있고...... 주인을 버리고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가 어디로 갔는가? 박인환은 그 답을 마지막 연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두고 있다. 목마는 하늘로 갔으며 하늘의 별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詩가 정처 없고 막연한 고독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렇게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구성을 곳곳에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상심해 술을 마시는 화자의 가슴 속으로 목마는 돌아온다. 별이 되어 술병 속으로 떨어진다. 한 때 따뜻했던 숙녀의 체온을 기억하는 목마. 떨어지는 별은 무겁지 않다. 회한이 사라진 별, 이미 윤기를 잃은 사랑의 무게는 가벼울 뿐.
사랑은 진실한 것이지만 또한 언제나 사춘(思春)의 열정처럼 유치하고 통속해서 바람처럼 가벼이 떠나갔지만 목마가 돌아오듯 가을바람 소리도 돌아와 쓰러진 술병 속에서 함께 운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떠나갔지만 마음 속 소녀로 남아 일상의 매듭마다 살아나고 또 자라나는데 정원의 초목이 자라듯 자라서 함께 사는데 떠나고도 떠나지 않은 삶으로 자라는데 사랑은 가고 부질없는 허상만 정원에 자라네.
사람이 가니 문학도 죽고 인생도 가벼이 바람에 날리는 휴지 같네. 무엇이 사랑의 진리인지 모르겠으되 사랑의 출발이 호불호(好不好)라면 이별의 끝은 왜 불호(不好)로 매듭하지 못하며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 즈음에 어찌하여 애증의 이분법은 폭풍처럼 닥쳐와서 헤어짐 앞에 애증의 그림자는 부질없이 흔들리는가?
그렇구나, 내 진실한 사랑의 대상이 숙녀인 줄 알았더니 사랑할 땐 몰랐더니 헤어지니 알겠구나. 내가 사랑한 것은 기껏 숙녀의 체온, 숙녀와 나눈 애증, 숙녀의 옷자락에 불과했구나. 어찌하나, 내가 나를 용서하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구나.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내가 나를 용서 할 수 없으니 세상으로 나가기 부끄럽다.
사랑이 그렇듯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참으로 행운이다. 사랑이 세월을 닮아있으니 세월은 만병의 치료사
가고 오는 세월을 보며 사랑의 덧없음을 깨달아 간다.
세상 부끄러워 고립으로 시들어갔지만 지금은 작별의 시간.
숙녀의 옷자락 같은 애증의 그림자까지 버리고 작별할 시간.
오래도록 정원에서 초목처럼 자라 오르신 당신과 작별할 시간.
작별의 날, 당신과 함께 술병이 쓰러질 때까지 마시자.
영혼의 지팡이를 잃은 늙은 여자의 눈이 들려줄 이야기들을 듣자.
훠이훠이 강물에 목숨을 풀어버린 늙은 여류작가의 이야기를 듣자.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등대는 가고 싶은 곳이며 삶의 지표(指標), 삶의 지표 같은 사랑도 떠나고 이제 등대는 불 밝히지 않으니 차가운 바다를 표류할 내 삶을 지켜줄 것 없네.
남은 건 낡고 헤어진 페시미즘 뿐, 어쩌랴 그나마 가진 것의 전부이니 떠나간 목마소리라도 기억하여 등대의 불로 삼아야 하리. 등대를 잃은 서러운 이야기라도 들어야 하리.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두개의 바위틈이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삶에 있어 성(性)만큼 강렬하고 확실한 유혹이 어디 또 있을까?
삶에 지친 사내들이 찾아드는 바위 틈. 세상의 험한 길을 달려온 부르튼 발들을 녹여 줄 따스한 여자, 지친 뱀들이 피난처처럼 숨어들어 청춘을 찾아가는 바위 틈.
뉘라 쉬고 싶지 않으며, 뉘라 용서받지 못하랴.
세상은 지치고 쓸쓸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사는 것이거늘 내게 내어줄 어깨 있으며 내가 가서 기댈 어깨 네 있으니 따스하게 등대며 살자.
세상은 외롭지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데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이루지 못할 거라며 시작도 못한 사랑이며 사랑 후에 닥쳐올 지독한 고독이 무서운 것인가. 한탄할 것들에 속지 말라고 한다. 사랑은 얼마나 유치하고 통속적이니 한탄할 그 무엇도 아니더라.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소리마다 살 냄새 나는데 목마는 하늘에 있네.
3. 두 개의 바위틈을 나오기.
이 詩는 결코 술 한 잔 마시고 단숨에 써내려간 詩가 아니다. 많은 사유 끝에 감각을 부르는 시어(詩語)들을 고르고 다듬어서 암호처럼 숨겨두고 힘들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목마를 남성 혹은 한때 사랑했으나 지금은 떠나간 사랑으로 배치하고 숙녀를 소녀에서부터 늙은 여류작가까지로 변용시키면서 삶과 사랑의 순수성과 회한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남녀 간의 성적결합을 배경으로 깔아두고 그 결합이 결코 순수성의 훼손이 아니며 한탄할 일도 아니니 사랑과 존재의 확인 과정인 성적결합에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실패한 사랑 뒤에 찾아온 지독한 고독에 몸서리치는 사람이거나, 사랑하면서도 고독한 사랑 중독자이거나, 이유 없이 쓸쓸한 봄을 보내는 사람까지, 모두의 가슴을 쓸어주는 치유의 詩로 오래오래 읽혀져라. 사람들아, 이 詩 읽고 나서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라. 등대에 불을 밝혀둘 테니......
등대로 와서 한 잔 하자.
숙녀의 옷자락 가득 봄꽃을 그려둘 테니 꽃구경하며 한 잔 하자.
김현철 ceokimhc@hanmail.net ---------------------------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대학교 졸업.『시와비평』등단.
시와 비평 두레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울산)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신작특집]
강 변
권 정 욱
누가 득음(得音)하며 죽어 가는가
피 비린내 나는 노을
서녘 하늘에 확 불이 붙는다
감물 든 바람에 흐드러진 갈대
비워 오히려 눈부신 쉰 목소리
짧다
진창 움켜 쥔 깊고 어두운 혀뿌리
떠밀리는 기형의 언어와
가슴 물고 떠있는 어눌한 말더듬
머리를 빡빡 밀었다
알몸이었다
밤새 서 있었다
어떤 언어로도
이런 모욕 이런 몰락은 표현할 수 없다
강추위는 살아 버틸 확률을 줄이기에
몇 병의 알코올 털어 넣고서였다
이른 새벽
지하철 역사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퍼포먼스
우르릉 발끝으로
짜릿한 침몰의 살얼음이 박혔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다
아무도 내게 가해하지 않았으며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넘보지 않았다
설혹 내 삶은 짓이겼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자살과의 황홀한 外道는 사치라고
철저하게 검문하는 거리 앞에서
나는 지금 시위중인 것이다.
화려하게 내리쏟는 지하 분수대와
발자국 포개져 종일 신음하는 이 환승역에서
질긴 생의 흡반(吸盤) 씹으면서 자연사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증오하지 않으며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며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
풍 경 - 신평공단에서
권 정 욱
지하철 터널이 시작되는 곳
축 쳐진 하늘이 엉킨 전선에 묶여있다
그 뒤에 깡마른 전봇대가 서 있고
그 뒤에 돼지국밥집과 오렌지 노래방 간판이 환하다
그 뒤에 공장 굴뚝들이 상호 문신한 귀두 발랑 까고 서 있고
국방색 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전선에서도 전봇대 끝, 건물 모서리에서도
으깨진 바람 윙윙 톱날처럼 운다
누군가 겹쳐놓은 중증 X-LAY 필름 혹은 기워 펄럭이는 누더기
얼음장 같은 거리의 가로수 사이로 출렁이는 현수막들
수배된 뺑소니와 착한 베트남 신붓감, 물 좋은 부킹의 천국나이트
침묵하는 세상이 두른 오염된 마스크
대각선으로 잘려나간 지하 방 창문으로 올려다 본 1월은
내게 심한 자위를 권하거나 무기력을 강요한다
핏기 없는 한 줄 햇살 엑스레이로 몸 훑고 지나는 동안
관 속 비좁은 여기 시체처럼 누워
내 죄가 무엇인지 얼마만큼 악성으로 자라고 있는지 숨죽인다
터진 관절 사이에서 흘러내린 폐윤활유,
야근 마치고 삼킨 해장술 썩은 피를 돌린다
잠들지 못하도록
깊고 어두운 지층으로 함몰하는 전동차의 울림
절망 역으로 가는 진단결과를 애타게 기다린다
달리 기도할 희망 없으므로.
수첩을 정리하며
玟訂 박 동 덕
검게 빛나는 머리카락은
헐벗은 머리를 덮어주는 내 몸의 일부분
촘촘한 빗살 사이를 빠져나가고 또 생겨나는
고마움 내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미 나와는 무관한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한다
긴 골목을 돌아 나오며 함께했던 시간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망설인다, 한참을
냉혹한 현실 앞에 혀를 내두르며
기억 속에 가물가물 한 이름부터 그어버린다
생기는 것보다 빠지는 것들이 자꾸 많아진다
두렵다, 내가 버리는 저것들은
언젠가 나를 버릴 것이다
이게 아니야, 나는 소리친다
육은 썩어도 머리카락은 살아있다
지워지더라도 내 영혼 안에 머물러다오
흩어지는 이름들을 중얼거린다
박동덕 ac684729@hanmail.net ------------------------
경남 창녕출생. 계간『시인정신』등단.
시인정신 작가회 회원. 시하늘 동인.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강아지풀과 칡
玟訂 박 동 덕
서울 간 누이를 기다리며 토담 위를 기웃거린다 털털 재봉틀 소리 내며 자갈길을 달리는 버스가 그냥 지나쳤다 고무신으로 자동차놀이를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을 때 풍성한 양분을 빨고 무럭무럭 자란 너는 운동화를 신고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하루치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휘청거리는 다리를 가누며 발품을 팔 동안 너는 무성한 푸른 이파리를 앞세우고 잡목들을 말뚝 삼아 새끼줄을 치고 땅을 넓혀갔다 너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여름을 건너오면서 수확도 없이 가을을 맞이한 나는 마음만 바꾸면 맘대로 아무에게나 나눠줄 수 있는 재물을 지하 곳간에 가득 묻어 둔 네가 부럽다 이제 너도나도 황혼의 붉은 노을 강을 건너야한다 청렴한 소나무를 인질로 잡고 질긴 인연 줄을 놓지 못하는 너는 묘지를 만들고 장례를 준비하는구나 늦게나마 햇볕을 가득 받은 나는 육신을 활활 태우고 남은 재를 강물에 뿌려 왔다간 흔적을 없애련다 누가 잘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꽃샘바람
玟訂 박 동 덕
웅크렸던 삿대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고개를 드는 둔치, 뒷발을 걷 어차는 바람이 있다 꽃잎이 비늘처럼 헤엄치는 *사지포 쓰러진 갈대숲에서 기러기 떼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방천을 걷다 콜록거리던 나는 먼 하늘에 그려진 화살표를 보고 있다 때로는 엎어져도 오뚝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똑같다 아침. 태양의 후광을 받지 않은 생은 없으니 저 바람을 잡아 진흙 속에 가둔다면 그들의 화석은 오라를 친친 감은 주름만 남을 것이다 수천 번도 수면을 휩쓸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온 늪은 흔들리면서도 흔들지 않았다 나는 새 떼가 남기고 간 화살에 발을 얹고 시위를 당기는 늙은 궁사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저 바람을 뚫어야 한다 *우포에 따른 늪으로 모래가 많이 떠내려 온다고 이름 붙여짐
변기에 대한 관찰기
엄 태 우
일찍이 저만한 큰 그릇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하루 한 번씩 꼭 그 앞으로 나아가
숨김없이 속에 것을 다 꺼내놓는데
변기라고 하기보다 성자라고 해야겠다
어떤 날은 몇 번을 그 앞에서
내 한 짓을 싹 쏟아놓아야 할 때도 있으니까
스무 살 부끄럼 많은 아가씨도 와서
남자 만나 커피 마시고 소주도 한 병 마셨어요
이실직고하고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는데
남의 눈물 한 방울 받아준 적 없는 내가
너도 한 번 받아 보겠느냐 또는
물을 내릴 때 이 물이 무엇이 되겠느냐 하는 식의
턱도 없는 답을 찾느라고 끙끙거리고 힘을 쓰게도 한다
어떤 이는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다 묵직한 속을 그냥 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뒤에서 끌끌 혀를 차는 일도 없고
다시 오라는 말도 없다
그러나 곧 그는 그 앞으로 나아가
속에 것을 다 꺼내놓게 된다
어찌 이만한 그릇이 또 있단 말인가
습관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 미스 정이
들어오자마자 아침까지 한 일을 들고
부리나케 그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손들어 보라 그에게 속을 꺼내놓지 않은 자 있다면
엄태우 mtewo@hanmail.net -------------------------------
청주 출생. 충주 칠금동 대학학원 경영.
등단 『문학세계』 공저『두레문학』.
시와비평『두레문학』충청지회장.
퓨 즈
엄 태 우
끊어져다오 내게 과부하가 걸렸을 때
퓨즈가 녹아 툭 떨어져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돌아가 편안히 정지하듯
그렇게 원위치 시켜다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될 것이므로
이를테면 책 한 권 읽기에 충분한 그 이상의 빛 또는
큰 집으로의 이사를 꿈꾼다든지
아주 소박하다고 여기면서 전혀 소박하지 않은
그런 것들에 비질비질 밀려갈 때
사정없이 차단기를 내려다오
그로 인해 안에 것이 푹 썩고
한동안 관심 밖에서 녹슬고 있을지라도
싹 비워진 다음 욕심도 없이 돌아가고 싶다
나사 하나가 빠져 털털거리면서
가끔 누군가의 손을 빌리기도 하고
더는 요구르트 한 병 차게 얼리지 못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퓨즈를 잡고 멈춰서는
고물 냉장고와 같이
끊어져다오 내게 과부하가 걸렸을 때
사랑 . 3
엄 태 우
인도를 새로 깔면서
콘크리트 경계석을 들어내고 있다
그 순간 차도와 인도의 구분은 사라지고
무경계의 합일
가는 선 한 줄도 경계로 세우지 마라
들어내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
다 해진 목장갑을 벗어놓는
인부의 거친 두 손바닥이 풀어낸 화두
진작 알았어야 했다
너를 보내고 깨달은
저 경계
너라는 것과 나라는 것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도
피가 나도록 들어 올리면
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음을
인제야 너의 고운 것이 보이고
여기는 내 구역, 들어오지 마시오
단단하게 박아놓은 경계석
때늦게 물렁물렁해진다
못 들어낼 것도 아니었는데.
[시조]
소나무 분재
김 민 성
마음대로 자란 키는 가차 없이 잘린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번뜩이는 가위 손 더 낮게 웅크린 몸짓 나이테만 늘리라고 뒤틀린 껍질 위로 푸른 힘줄 꿈틀댄다 꾸역꾸역 먹인 햇살 성급한 욕심이지 우러러 보는 눈길에 옹이 하나 늘어나고 구겨진 뿌리들이 또아리로 엉켜있다 최고의 정성인양 승화 되는 노란 액체 차라리 갈증을 품고 절벽 위에 서리다
김민성 650901us@hanmail.net ---------------------------
양산출생. 전국충의백일장 시조 입상.
『시와비평&시조와비평』 시조 부문 등단.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삽량문학』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만어사 종석
김 민 성
너덜에 물고기가
떼를 지어 산다기에
종소리 푸덕거리는
비단 그물 펼쳤더니
후르르
새벽별 하나
비늘마저 떨린다
처마 끝 녹슨 하품
예불은 나 몰라라
턱 괴어 풍경 물고
산 노을을 부르는데
와르르
바다 무너져
승천하는 물고기
작천정 벚꽃놀이
김 민 성
성급히 삼킨 바람 급체한 가지마다
밥 알갱이 한 입 가득 함성을 지르는데
후두둑 벚꽃이 피는 밤하늘이 하얗다
청설모 흔들고 간 이파리 속이 쓰다
눈도 껌벅이지 않고 토라진 해 바라보고
솔잎차 한 입 물려다 꽃샘바람 비운다
[수필]
길을 걷다가
김 금 희
“자장면 시키신 분-!”
몇 해 전 모 이동통신회사에서 내 보낸 광고이다. 이 이동통신사의 강력한 전파의 힘은 외딴 섬 마라도에까지 자장면이 배달된다는 내용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장면 배달의 신속성에 이동통신의 전파의 힘을 연결시킨 절묘한 광고 카피이리라. 해서 한 동안 이 광고 카피는 사람들 사이에 심심찮게 회자되며 알게 모르게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졌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통신의 강력한 전파력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급기야 우리를 IT 강국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한편 점점 가속화 되어 가는 속도에 한 쪽에서는 이러한 빠름에 대한 경고로 느림의 미학을 말하고 있지만, 무한경쟁에서의 속도는 한가한 사람들의 물정 모르는 말쯤으로 밀어 붙여 버린다.
아침마다, 어제 입고 벗어 놓은 후줄근한 옷을 다시 주워 입고 단단히 허리띠를 조여 맨다. 항상 모자라는 잠은 만성피로함에 저장해 두고, 아수라장 같은 삶의 전쟁터로 향하는 비장함엔 푸른 서글픔이 배어 있다. 이것이 매일 치루는 현대인들의 절규에 가까운 각개전투인데 나는 원시시대의 전사들을 떠올리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때는 바야흐로 매트릭스가 지배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속도전을 치루며 지나가는 한 무리의 거센 바람의 잔상을 온 몸으로 느끼며 플라타너스 잎이 무성한 가로수 길을 걷는다. 느린 것을 타고난 나는 빠르다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을 안고 걷는 발아래, 땅속에 박혀 아주 작고 동그란 얼굴을 내밀고 있는 “지적 도근점”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말없이 그 녀석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어떤 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네는 추운 겨울 도로에서 도근점 매설을 했단다. 때마침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가다가 묻는 말이 “엄마! 저 사람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하더라고. 그런데 이어진 엄마의 대답이 “응! 못 배우면 저런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저런 일을 안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해. 알았지?” 기가 막히고 씁쓸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모자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휙- 지나치는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나더란다.
지적 도근점. 길을 걷다 보면 쉽사리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한 직장의 희로애락이 배여 있는, 책으로 치면 겉표지와 같고, 직장에선 배지와 같은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빠른 발걸음으로 무심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과, 그 보다 더 무심하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물결 끝에서, 아득히 이십오 년 전을 떠올려 본다.
사무실 바닥의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직원들은 측량장비를 갖춰 현장으로 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손놀림을 하고 있다. 측판, 삼각대, 줄자, 폴 대, 지적도면, 측량용연필, 면장갑. 등. 특수업무란 이름으로 도로측량과 하천을 등록하는 측량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르는 직원들. 업무 시작시간, 한 시간 반전에 벌써 측량장비를 들쳐 메고 현장으로 나가는 일이 다반사인 아침 풍경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은 서울과 바로 붙어있는 지리적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손바닥만한 시가지와 농경지가 대부분인 군 지역이었다. 측량장비를 이동할 수 있는 이동수단은 개인이 마련한 오토바이와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은 대부분 일선 출장소의 사정이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지금에 비하면 대단히 불편한 이동수단이었다. 더구나 손전화는 고사하고 변변한 공중전화마저 없는 지역에서 하루 종일 내리쬐는 햇볕과 싸우며 측량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 도로측량은 그런대로 할 만하다 하겠지만, 하천을 등록하기 위한 측량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하천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면 차라리 낭만이라도 있을 법한데 악취 풍기는 오수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점 하나를 찍기 위해 바지를 걷어 부치고 코를 움켜쥐는 오수와 썩을 대로 썩은 시궁창을 마다않고 들어가 기사님이 지시한 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니 그 애로사항이 오죽하겠는가. 만약에 이러한 모습을 가족들이 보았더라면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백발백중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문제보다 더한 문제는 식사문제이다. 오가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 나타나는 자동차뿐이고, 무심히 떠가는 하늘의 구름뿐인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은 업무로 오는 외적인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입사 이듬해 가을, 도로측량이 시작되었다. 나의 가슴에 아직도 잊지 못하고 빠알간 능금처럼 남아있는 가을 이야기이다. 논과 밭은 수확을 기다리는 열음들이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어 어디를 둘러보아도 마음이 풍요롭기만 하다. 가을 햇살은 그 사이사이마다 후덥지근했던 여름날의 열기를 걷어 버리고, 바람도 햇살도 알맞게 풀어져, 고슬고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미스 김, 이따가 도회 엄마랑 점심가지고 현장으로 나와. 아마 그 때쯤이면 노온사리 근처쯤에서 측량하고 있을 거야.” 팀장이신 김모 기사님이 아침 일찍 측량을 하러 나가면서 일러 준 말이다. 그러잖아도 가을바람에 오감이 근질근질하고, 자꾸만 창밖으로 목을 길게 늘이며 그 유혹을 견디고 있는데, 이게 웬 반가운 소리란 말인가. 나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흥분된 가슴으로, 점심때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의 초침은 왜 그리 더디게 가고, 분침과 시침은 덩달아 기울기를 외면하는지.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장부를 뒤적여 보지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소장님과 단 둘이 지키는 사무실은 가을 햇살의 무차별 침입에 무담시 멀쭉해지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미스 김, 나야. 도회 엄마. 사무실 아래로 내려와.” 조심스럽고도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네, 네.” 나는 다급하게 대답하고 돌아서
“소장님, 김기사님 사모님이신데요. 직원들 점심 준비 해 가지고 사무실 아래서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저 사모님과 함께 현장에 다녀올게요.” 소장님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 다녀올 뜻을 비쳤다.
“어, 어! 그래, 그래. 얼른 가지. 배들 고프겠구만.” 소장님께서도 아침에 김기사님한테 들었던 터라 한사코 얼른 가라고 하신다.
얼마나 기다렸든가. 아침과 점심이란 단어 사이가 이렇게 길 줄이야. 나는 순식간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사모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았다. 사모님은 오전 내내, 아니 어제부터 준비했을 직원들 점심을 얼마나 푸짐하게 마련했는지 양손이 묵직하였다.
사모님과 나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직원들이 측량하고 있는 노온사리를 향해 달렸다. 회색 벽에 둘러싸인 갑갑한 사무실을 벗어난 기분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직장에서 직원들의 점심을 준비해 나가는 이 특별한 경험을 그 무엇에 빗대어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치 모내기의 새참을 내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 어떤 직장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정말 그 기분은 미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곁에 계신 사모님은 나와는 기분이 다르실 것 같았다. 남편의 애로사항이 피부에 더 가까이 다가와 만감이 오고갔으리라. 사모님은 평소에도 김기사님께 극진하신 분으로 늘 넉넉하고, 누구든지 포근하게 감싸 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내가 결혼을 하고도 근무를 계속 할 때, 아기를 가져 입덧이 근 여덟 달 동안 계속되었었다. 그 때도 사이사이 불러다 먹을 것을 챙겨 주시고,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어코 해 먹이셨던, 큰언니 같으신 분이셨기도 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를 아끼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 분은 남다르신 데가 있었다. 바로 사심 없는 정성이 온 몸에서 우러나와 김기사님 이상으로 직원들을 아끼고 보살펴 주시는 것이었다.
직장 직원이 아니라 한 가족과도 같았던 정말 까마득한 이야기이다. 이제는 이런 모습을 그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모내기 새참마저도 손전화 한 통화이면 해결되고, 심지어 다방 커피까지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때로 곤궁에 처해 보고 불편도 해 보아야 사람살이의 참 맛을 알 때가 있다. 무한경쟁에서 약육강식이 따로 없는 이 속도가 지배하는 삭막한 제 3세계와 같은 곳에서, 직원들의 손장갑을 빨아주던 여직원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페미니즘을 역행하는 것일까? 양성평등시대를 거슬리는 것일까. 결혼한 여직원을 터부시하던 시절에, 결혼을 하고도 과감히 근무를 했던 나였지만, 업무 중 동료 간에 오갈 수 있는 자잘한 정이, 속도가 갖는 미명아래 점점 이질화되어 가는 것이 때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속도는 또 다른 속도를 요구하고, 가속도가 붙은 속도 속에 소우주는 또 무엇일까.
내 머릿속의 속도를 생각하며 씁쓸한 기분으로 계속 길을 걷는다. 훗날 누군가 나처럼 길을 걷다 “지적 도근점”을 만나게 되면 무슨 생각에 잠길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순행을 하거나 역행을 한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속도 속의 자장면보다는 가을 길을 달려 직원들 점심을 나르던 아날로그 시절이 더욱더 간절할 터.
바람이 분다. 자동차는 아까보다 더욱더 그악스럽게 달리고 있다.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장중하게 흔들린다. 푸른 물기 머금은 낙엽 한 장, 가만히 떨어져 살포시 지적 도근점을 덮어 준다. 나는 나무 끝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 너머 하늘을 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기사님 사모님 얼굴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에 보름달처럼 환하게 떠올라 빙긋이 웃고 있다.
-제8회 지적문예수상작.
김금희 수필가 sowoun59@hanmail.net-------------------
여수출생. 인천 거주. 월간『문학세계』수필등단. 시와비평『두레문학』수필분과회장.
공저 『두레문학』. 국어국문학 글쓰기 교사.
말하지 않아도
김 금 희
세탁기에 침대 카바를 한바탕 돌려, 앞 베란다와 복도 건조대에 툭툭 털어 널어놓았다. 그리고 우두커니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이불 빨래 참 쉬워졌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푹푹 삶아 풀 먹이고 다림질해서 이불깃 시치느라 부산했었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커피 한 잔을 탔다.
이불 빨래하는 날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새 하얀 옥양목이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져 바람에 펄럭이는 것도, 널어 둔 빨래 사이를 오고가며 술래잡기 하는 것도 , 넓은 이불 호청을 온 몸에 휘감아 보는 것도 좋았다. 풀 먹인 호청을 어머니와 맞잡고 기우뚱 기우뚱 접는 것도, 무엇보다 어머니의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듣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좋았다.
이 세상에 그 어느 음악기호가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따라 올 수 있을 것인가. 힘을 주어서도 안 되고, 안 주어서도 안 되는 그 소리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름 아닌 중용의 소리가 아닐까 싶어진다. 툇마루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며 듣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는 나에겐 참으로 안온한 소리였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 등에 업혀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소리와도 같았다고나 할까.
어쨌건 공들여 손질한 이불 호청을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 시치시는데, 바늘땀도 아주 고르게 간격을 두시고 ,네 귀퉁이의 귀도 정확하게 잡아 고르게 하셨다.
나는 곁에서 지켜보다가 넓게 펼쳐 놓은 이불 위에 벌렁 누워 철없이 뒹굴라치면, 애써 귀를 맞추어 놓은 호청이 비뚤어지건만, 어머니께서는 단 한마디 나무라시거나 책망을 하지 않으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다사롭게 전해져 공연히 “엄마-.” 하고 길게 불러 보곤 했었다.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손질한 이불은 해 어름이 다 되어 시치기를 마치게 되는데, 그런 날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잠자리에 눕게 된다. 또 그런 날은 씻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얼른 가서 씻고 오게 되는데, 어머니는 이불을 덮어 주시며 잊지 않고 “우리 강아지, 고운 꿈꾸고 잘 자소.” 하시곤 엉덩이를 다독여 주셨다.
사실 이 인사는 잠 잘 때마다 잊지 않고 해 주시는 내 어머니의 잠자리 인사였다. 그러나 깨끗하게 새로 손질한 이부자리를 덮어 주시며, 해 주시는 잘 자란 인사는 왜 그렇게도 다정다감하고, 가슴 뭉클하도록 행복했던지. 바삭바삭하고 고슬고슬한 호청의 상쾌함과 하루 종일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어머니의 정성어린 손길에, 내가 정말 공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아무튼 꿈같은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을 뒤로 하고 결혼을 하여 나도 어엿한 주부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했다고 어디 노련한 주부가 하루아침에 되던가. 어머니 눈에는 내가 살림하기에 몹시 어설퍼 보이셨는지, 결혼하고 얼마 간 맞벌이 하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이불 손질만은 어머니 손으로 꼬박꼬박 해 주시곤 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들 낳은 후에는 '곱게 키워 주신 것도 고마우신데 결혼 한 딸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나' 싶어 그런 일로는 못 오시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나 혼자 이불 손질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내가 여전히 못 미더우셨던지 어머니는 새로 나오기 시작한 비단 이불 호청을 마련해 주셨다. 풀 먹이는 일이 필요 없는 비단 호청은 일손을 덜고 가벼워 좋기는 한데, 쓰면 쓸수록 뭔가 허전하였다. 나는 얼마간 사용하다 다시 풀 먹이는 옥양목으로 이불 호청을 바꿔 버렸다. 그랬더니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부전자전 짝퉁 모전여전(?). 나도 내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셨듯이 나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해 주었다. 이불을 덮어 줄 때마다 해 주는 인사도 그렇고, 새 하얀 이불 호청에 풀을 먹여 고슬고슬한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그랬다. 사실, 어머니 품을 떠나서도 한 동안, 아니 내내 잊지 못하는 것은 풀 먹인 이부자리이다. 다사로운 어머니의 품 같은 그 이부자리를 그 무엇에다 비유하겠는가. 호청을 빨며, 삶으며, 풀을 먹이며, 다림질을 하며 떠오르는 것은 오직 아이의 행복해 하는 얼굴인데, 어느 어머니가 자식의 그런 얼굴을 보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또 그렇게 마련해 준 잠자리에서 지친 하루의 피로를 풀어야 하는 데, 또 어느 어머니가 싫다고 하겠는가.
그랬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 없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태 전부터 이불 커버에 풀 먹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또 나의 이러한 소리 없는 변화에 가족 모두들 별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체력이 달린 탓도 있고, 바빠진 탓도 있고, 꾀가 나는 탓도 있고.
그런데, 며칠 전 아들아이가 느닷없이
“엄마, 요즘엔 왜 이불 호청에 풀 안 먹이세요?” 하질 않는가!
“왜? 해 줄까?” 했더니.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째 사랑이 식은 것 같아-”
해서 둘이 한참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었다.
그래. 그건데, 그런건데. 입을 열어 굳이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내가 알았고, 또 내 아이들이 안 것인데.
나는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널어놓은 이불 카바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엊그제 아들아이가 한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데… ’
나는 일어나 냉동실에 넣어 둔 감자 전분을 꺼냈다. 그리고 가스 레인지에 불을 켜고 풀을 쑤기 시작했다. 푸푸, 쿠륵쿠륵…. 감자전분 풀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에게 한마디 원망도 없이 반갑다는 듯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른다. 나는 오늘 밤 제 침대에 펴진, 풀 먹인 고슬고슬한 이불 카바를 보고 아들아이가 뭐라고 할까를 생각하니 호수처럼 잔잔한 웃음이 마음 가득 고인다.
“오- ㄹ. 엄마, 사랑이 돌아왔나요?”
[신작시]
혼자 떠도는 섬
강 현 옥
바다 안,
조용히 아침 물안개 거느리고
서 있는 작은 바위섬
쉼 없이 어루만지는 물살 간지러워
멋쩍은 표정 짓고 있는 그대지만
빈 가슴 위무하듯 물새 떼 날아와
총총걸음으로 훌훌 떠나면
파도에 밀려오는 고독을 감추려
밀물 속으로 자맥질 한다
소금기 절은 몸으로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안을 수 없지만
낮의 거친 파도소리 가슴에 품고
하루를 접으면 가만 가만
별들이 다가와 단절된
언어들을 풀어 놓는다
잊혀버린 시간들,
초록색이었던 나,
산자락에 연기 피워 올리고 있는
마을을 걷고 싶다
겨울을 밀고 있는 봄
미처 다 녹지 못한 마음의 언저리
추억의 갈피 넘기며 읽고 또 읽는다
갈피갈피 깃든 추억 새기며
육지가 되는 꿈 꿔 보지만
허상의 메아리로 돌아올 뿐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내 자아상은
밤이면 별들의 언어를 찾아 길 나선다
강현옥 ksw0500@hanmail.net -----------------------------
경남 가야 출생. 동명대힉교 신문방송학과 석사. 월간『한국시』(1994)등단.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관리국장.
부산지회장. 시집 『패랭이꽃』.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반딧불이가 있다
강 현옥
애기소* 계곡에는
반딧불이 유충이 아직도
다슬기 안에 살고 있다
은하수처럼 흘러
노숙을 감행한 반딧불들은
어느 깊은 계곡의 쉼터를 찾아 흘러 다닐까?
쉼터를 찾아 날갯짓 할 수 없는
지체부자유의 반딧불이
외줄에 걸린 양, 숨 줄 팔딱이며
흘러간 은하의 세계를 꿈꾼다
만성 기관지염에 하루하루가 적자인 삶이
다슬기 사는 마을에 이주하면
반딧불이처럼 꺾인 생에 불 밝힐 수 있을까?
소용돌이에 휘감긴 삶의 문턱에
시대의 거친 숨소리
애기소 다슬기 속 유충처럼 갸름갸름
배회하는 바람에 깃들고 있다
*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계곡 이름.
동백 숲 - 첨찰산
김 영 천
더러는 머문 채
활짝 피우진 않았으나
저리 반기며 사모하는 눈빛을 보라
너의 인고의 물관부를 따라 가지 끝에 이르고
마침내 멍울처럼
한 송이 꽃망울로 머물고 싶으나
겨울바람만 차다
가지를 힘차게 뻗은 상록수림에 벗하여
눈 끝은 하늘에 있나니
떨어진 꽃잎을 무심코 밟아
비릿한 내음이 산중으로 꽉 찬다
날마다 비슷한 어둠이 을씨년스럽게 숨을 쉬었다
반듯하게 누워 하늘로 쏘아 올린 별
은하수 별 무리 사이로 되돌아올 때마다
내 몫이 있어 그리움도 늘 익숙했다
밤새도록 낡은 문 삐걱대는 그림자
안으로만 소가지를 부렸다
빛바랜 천장을 누비다가 벽에 붙어 결국
떨어지지 않던 징소리
유폐되어 멈추는 발걸음소리
목까지 차올라 온 퀴퀴한 곰팡내 침묵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 감각은 후각뿐이었다
오감이 살아나는 해가 다시 떠오르기는 하는 걸까
원을 그리며 떠밀려가는 어둠은
새가 되어 날았다
박세영 young04894@hanmail.net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월간『문학세계』시 등단.
문학넷회원. 세계시낭송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향기나는 편지』.『청산호의 노래』.『두레문학』
종이배
박 세 영
잠시 머물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빈약한 시간을 타고 곤두박질치는 초침이
조급한 흐름을 알고 허둥댄다
깔딱 깔딱 짧은 직관으로 뒤척이며 내비치는 속마음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항해법을 후회하면서도
이미 늦어버린 망설임에 서슴없이 물결이나 타야지
자신만을 의지할 식구를 생각하다 보면
작정 없이 흐르는 물결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다
시간이 갈수록 하냥 젖어오는 마음 무거워도
언젠가는 도달한다는 피안을 품고
그냥저냥 흘러가야만 되는 줄 알았을 게다
불안한 흔들림에 초조하게 두 팔 벌리고
허망하게 물에 빠졌을 때를 차마 말하지 못한다
십자가 발뒤꿈치에 끌리는 긴 그림자
지는 해 벌겋게 물든 수면 위를 흘러간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조바심 추스르고 또 추스르며
빈방Ⅱ
성 은 경
문을 열자 햇살 한 줌 들어서며 잠자던 먼지를 흔든다 잠이 깊어 민망했던 먼지 풀썩 일어서더니, 햇살에 섞여 잠시 어룽거리다 다시 드러눕고 방구석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날아와 내 볼을 비비다가 머리카락을 만진다 다시 앞가슴 단추구멍으로 들락거린다 건전지 닳아진 기계톱 소리를 내며
길거나 짧거나 혹은 높거나 낮은 그 소리, 같은 소리가 아니다 창틀에 웅그려 숨 고르던 무당벌레는 방안 여기저기를 곡선으로 이어놓는다 귀엣말 같은 속삭임을 달고 순간과 영원을 이어놓는
저 소리, 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을까 그간의 하고 싶었던 말 다 해보려는 것일까 그래서 여태 기다렸다고, 날개 터는 법 잊지 않았다고, 내 얼굴 잊지 않았다고 말하는 웅웅, 앵앵, 잉잉, 빙글빙글 돌며 털어놓는 저 소리를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가 바깥으로 나와 주기를 바래 함께 호흡하기를 바래 문 열어 기다리지만 빈 방안만 맴도는 무당벌레, 거기서 최후를 맞겠다며 창틀에 가만히 엎드린다
등짝에 달라붙는 환청 가만히 떼어놓고 빗장을 지른다 닫히는 문에 튕겨 나온 햇살이 일그러진다 비가 내리려는지 우레 소리에 창문이 흔들린다
성은경 sedmsrud@hanmail.net -----------------
경남 창녕출생. 한국방송대학교 초등교육학과 졸업.『문학저널』등단. 대한문인협회 운영위원. 사랑의 연가(시사랑음악사랑)당선. 내 앞에 열린 아침(엠아이지).
『두레문학』 공저. http://myhome.naver.com/sedmsrud56
말 태우기
성 은 경
세모의 밤은 초저녁부터 익어버렸다 홍조 짙은 사람들의
2인분, 3인분 말들로 왁자한 식당 한 켠 중년 부부,
소주병 두어 개 금세 가벼워졌다 삼 겹 오 겹으로 돌돌 말렸던 말들을 조심스레 불판에다 굽는다
잠시 굽히는가 싶던 말들이 눈물 맺히다 타고 있다
말 바꿀 겨를 없이 아니,
앞뒤 뒤집어도 똑같은 말이 말없이 타들어간다 어렵사리 추가한 둥근 마늘 같은 말을 젓가락으로 끌어내려 애쓰지만 끌려나오지 않는다
자정 지나도록 태워버린 말들 불판에 두고 나선 문 밖, 가슴에서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말은, 훅~! 시커먼 연기로 빠져나온다
숨은 벽
이 병 훈
벽을 붙잡고 있던 타일 한 장이
우연히 금 간 후로
뾰루지 난 양심의 가시처럼 늘 가슴이 아팠다
큰맘 먹고 아침부터 서둘러 금 간 타일을 뜯어냈다
타일 뒷면을 붙잡고 있던 딱딱한 시멘트 덩이 사이로 어수선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벽 뒤에 또 다른 벽이 숨어 있었다
늘 뒷모습도 잊고 살았다 금 간 자국 뒤에 허공이 숨어있는 줄 모른 채 살아왔듯이…
이병훈(서울) eunseo6319@hanmail.net --------------------
전북 부안출생. 계간 『문학사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간사
『보리수』시낭송 회원. 공저『두레문학』.
고령(高靈)의 달
이 병 훈
우륵 선생의 가야금도 곤히 주무시는데
누군가 작심을 한 듯 *회천에
*소가천에 풍덩 빠져있다
구름 속을 들락거리더니 더는 참을 수가 없는지
알몸으로 들어가 있다
별들도 덩달아서,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목욕을 하고 있는지
물소리만 찰랑거린다
*고령(高靈)땅 어디엔가 은밀히 숨겨져 있을
대가야의 보물을 찾아내려는지
시리게 흐르는 물속을 비추며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싶어
구석구석 씻고 또 씻고 …
*고령(高靈) :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대가야국의 도읍지 * 회천과 소가천 : 가야산 계곡에서 흘러 운수면, 덕곡면을 각각 통과하는 하천
할미꽃
이 용 일
“메누리 앞세우고 딸년 둘 있는 것, 그마저 디져 버리고……”
죽지 못해 산다며 검버섯 주름을 치켜뜬다.
주태백이 아들놈이 던져 놓은 예닐곱 살 조막손 움켜쥐고
밭두렁 길 절며 멀어지는 꼬부라진 걸음이 더디다.
여린 봄날 어머니 무덤가에 핀 할미꽃 한 송이
돌아앉아 고개 숙인 속울음이 검붉다.
모진 시집살이 지워 줄 겨를 없이
첫눈 따라 떠나 간 여식(女息)
눈 감고도 못 잊어 말없이 찾아와 돌아앉아 피었나?
책장 속 먼지 쌓인 앨범을 편다.
회갑기념 사진 속 환한 얼굴들
그 안에 나를 닮은 모습들이 웃고 있다.
한 평생 남김없이 주고 떠난 속 빈 달팽이들이
흑백 웃음 짓고 있다.
꿈속에라도 오시려나, 얼른 잠자리를 편다.
엷은 햇빛 받아 일렁이는
정갈한 진진초록 감잎들 사이
알맞게 자란 감들
가을 한 켠 올망졸망 무춤 서 있다.
텅 빈 감나무 밭 사이
가을 낮볕에 그을린 당신의 웃음살
낯익은 환청으로 가만히 밀려오고
그리움은 먼 가을 언저리를 넘는다.
낙동강에 비 온다
허 양 희
봄비가 온다 메말랐던 몸들이 젖어든다 밖으로 멀어졌던 심장 박동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두 눈 부릅뜨고 문 두드린다 고욤나무 마른버짐 속으로 스며드는 봄비소리 귀 기울이면 말라가던 우듬지가 환해지고 집 멀리 발걸음 여울진다 돌아온 동박새 붉은 부리 깃털 내려 걸터앉은 참샘골 가장자리 두드려 본다 두드리면 푸르게 쑥물 빠지고 태초에 눈빛 밝아오는 촉 울긋불긋 붉은 꽃물 들어버리면 어찌해 강물 가볍게 시작을 알린다 헝클어진 머리 곱게 비질하듯 봄기운 고쳐먹은 들녘 바람 낙동강 너머 환하게 비가 내린다
허양희 silverbrain2004@hanmail.net --------------------
경남 지수 출생. 마산 거주. 월간『문학세계』등단 문학넷회원.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시와사상』회원.공저『두레문학』『젊은 시인들』
우주 관측
허 양 희
마스카라 올린 검은 눈썹 사이로
반짝이는 싸라기별이 보인다
우주를 목 빠지게 바라보던 눈송이가
밤새도록 녹지 않는다
몽상에 젖은 별의 노래는 블랙홀 속에서
의식불명 잠꼬대로 촉수가 자라난다
발을 뻗지 못한 무중력 상태의 꿈들이
빙글빙글 돌다가 굴절되어
천장에 탁탁 박히고 있다
카시오페이아자리에 몰래 들어와
머리맡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다
빙점을 넘나드는 유리창이 깜빡거리자
눈빛 딱 마주친 동공으로 막 따라 들어온
오리온 별 팽팽하게 당겨
궁을 일치시킨 내 남자 바라본다
검색을 허용하다
허 용(許 鏞)
플러그에 꽂힌 전기가 뜨겁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
자유롭게 끓어 넘친다
버튼을 누르고 검색을 해본다
서툰 활자들이 더듬거리며
손가락 끝을 타고 모니터 화면에
검색어 ‘허용’을 쏟아낸다
~을 허용하다 외 0개의 카테고리
15개의 사이트
낡고 빛바랜 글자들 보다
때론 바코드가 엉덩이에 찍힌
325429 시(詩)를 쓰고 싶다
<325429 네 이름 맞아>
허 용 hbleh@hanmail.net --------------------------------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근무.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시와창작』시, 수필 등단. 시와창작작가회.
홈페이지 / cyworld(허용), 네이버 블러그(허용)
시집『삶의 노래와 향기』.공저『두레문학』외 다수.
난지도
허 용
나 어릴 적 섬에는 종달새 지저귀고
모래밭 땅콩고랑에 아담한 새둥지가 있었네
어머니와 나룻배를 얻어 타고
큰아버님 땅콩 밭에 추수하러 갔었네
엉겅퀴, 민들레꽃 홀씨 흩어지는 버드나무 길
한참 걸어가면 메뚜기 튀어 오르고
다리 힘 오른 개구리 펄쩍 펄쩍
쇠 삼태기로 한강변 모래밭을 훑으면
이름 모를 조개가 한 아름
현대판 난지도에 물은 흐려지고
쓰레기 더미 위에 골프장이 들어섰네
종달새 지저귀고 조개가 놀던 때
민들레꽃 홀씨 흩어지는 둥지 찾아
모래밭에 새 발자국 선명하였네
꼭꼭 숨어라, 삼짇날 머리카락 보일라
황 말 남
엄마 나, 어디서 태어났어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삼월 삼짇날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요 그 해 산이나 들에 나가 나비를 맞아 처음 본 나비 색깔로 그 해가 좋은지 나쁜지 내다보는, 다리 밑에서 의례 나는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나비점을 보고 싶어요 진달래꽃 찹쌀 반죽에 봄을 지져 먹은 엄마 젖을 빨고 싶어요 엄마 나, 주워 오는 날 능선에 걸린 노을처럼 환희로 물들었나요 엄마의 다리 밑으로 얼마나 많은 강물이 물살을 높이며 흘러갔는지 알아요 내 짧은 다리 사이로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는데 비닐봉지에 묶여 다리 밑에 버려진 아이는 숨도 못 쉬고 꼭꼭 콘돔을 뒤집어 쓴 배신감 어느 지상의 흙에 닿았을까 숨바꼭질 할 때 엄마 다리를 잡고 머리카락 보이지 않게 숨으면 세상이 다 가려질 것 같았는데 앙 하고 울어버리면 엄마가 달려 올 것 같았는데 엄마는 이제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되어 태아처럼 다시 둥글게 휘어지고 있는데 엄마, 다시 다리를 부여잡고 차곡차곡 올라가고 싶어요 탯줄을 다시 잡고 올라가요 엄마가 다시 내 딸이 되고 나는 다시 엄마의 엄마가 되어 동글동글한 우주로 돌아가요 삼짇날 태어나 무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이 땅 속 양기를 다 빨아 먹었나 봐요 벌어진 입 사이로 자꾸만 헛물켜는 기호가 나와요 정성껏 약수를 길러 날름거리는 입을 막아야겠어요 하늘 밑 추적추적 허물을 덮는 봄비가 내려요
황말남 rmfldna2002@hanmail.net -------------------------
1968년 울산출생. 『시와비평』등단. 다울문학. 산다촌문인회. 글쌈.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http://member.kll.co.kr/rmfldna200
장 마
황 말 남
비어 있기에 다시 출렁이는 말 위에서 돌보지 못한 당신의 갈색 비밀병 하루에 두 번 촉촉하게 매끈한 아름다운 비밀을 환하게 넣어 봐요 매력적인 눈매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이죠 눈부신 하얀 반전을 갈색병에 넣어 봐요 투명함의 깊이가 차곡하게 비칠 듯 병의 색깔이 투명해져요 깊숙이 숨겨둔 멜라닌색소 하나하나까지 추억 밖으로 녹아들게 하죠 부드럽게 수직을 세우는 빗살 수평선의 빨랫줄에 걸린 젖은 말과 조화를 이루죠. 작은 책방에서 여름을 지키고 있는 당신의 어깨 위로 바람의 비눗방울이 무지개로 퍼지는 것을 즐기고 있어요 위험한 여자 그녀가 두려운가요? 흑색 눈동자가 비어 있기에 더 아름다운 갈색 비밀병 고양이 같은 눈으로 세상을 향해 또박또박 침묵의 덮개를 벗어 던지고 지지고 볶으며 까발려주는 저런 여자도 사랑을 하네요 세상이 점 점 좋아지려나 봐, 비어 있기에 다시 출렁이는 말 위에서 낡았지만 벗겨진 하트와 진분홍 입으로 쫀쫀하게 짠 열쇠꾸러미 벽에 걸린 물컹한 언어들. 왜 하필 반대쪽으로 계속 내렸는지 깊게 물어 보지도 않고 급기야 발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지구촌을 수직으로 내리고 있는 무료한 점, 사소한 변수라도 생겨 달려와 줄 수는 없는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 앞서 갈 뿐인데 동기도 모르고 수식어가 되었죠 제3자의 눈엔 물어보지도 않았고 유난히 탈도 많은 광폭한 장마가 휩쓸고 간 황량한 자리 모든 변수가 오직 보슬비로 변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할 일이지요 구멍 뚫린 하늘밑 공포로 머리에 꽃을 꽂고 옥상에서 스트립쇼를, 훌쩍 번지점프를, 딱 거기까지 몇 년 전 처음으로 거침없는 당신의 그림을 찬찬히 훑는 텅 빈 갈색 무표정이 툭 터지는.
격월간『문학미디어』신인문학상
2007년 1.2월호 김대근 시인
조롱박꽃
김 대 근
세월 흘러 귀밑머리 색 바래고
세월은 눈매마저 깎아 궁글어졌지만
육신은 고기 몇 근 남기고 있는데
낡은 양봉원 간판
길게 그림자로 눕던 곳
15 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깊게 팬 흉터도
세월은 갈아낸다지만
여전히 아프게 남은 상처 하나.
담 넘어 조롱박꽃
그녀처럼 웃는다.
매미 우는 사이로
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샌다.
가을볕, 된장단지
김 대 근
가을은 한숨을 쉰다.
스쳐가는 바람이
똑... 똑... 똑...
단풍소식을 전해도
떠나버리면 가을햇살이 찾아왔다가
힘없이 돌아갈까 봐
제자리를 지키는
단지 속 가을이 한숨을 쉰다.
찬 서리 맞아야 사과도 맛이 들듯
가을볕 아래 된장단지는
구절초 향내로 익어간다.
가을은 스스로 익어가며 한숨을 쉰다.
九節草
김 대 근
마치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눈빛으로 말 하듯
꽃, 들에 피는 꽃들도
가을에는 타박타박 걷는 나그네에게
또르르 말을 건다.
코스모스는 살랑거리는 바람 일으켜
후욱~ 가슴 때리고
골에, 들에 九節草는
香氣로 말을 건다.
구절초는 꽃이 아니다.
눈뜨고 보는 그런 꽃이 아니다.
눈감고 온 몸 비우고서야 비로소
뼈마디에 오롯이 담겨지는 꽃이다.
[심사평]
김대근님의 복고풍의 토속적 이미지를 높이 산다. 자칫하면 세월 너머로 숨어버릴 귀한 기억들이 숨을 쉰다. 그것이 꼭 ‘하늘과 눈’에서처럼 민중의 한이 아니어도 좋다. 너와 나의 어제의 그 풋풋함과 아늑함으로 충분히 미학적이다. <가을볕, 된장 단지>의 ‘익어가며 한숨을 쉬는’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의 고운 한숨을 닮았다. 된장 단지의 묵은 된장맛 또한 그렇지. <조롱박 꽃>도 정답다. ‘담 넘어 조랑박 꽃.../매미 우는 사이로/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샌다.’
<구절초>의 ‘온 몸 비우고서야/뼈마디에 오롯이 담겨지는 꽃’도 좋다. 그리고 <보리밥 한 광주리>의 소박한 묘사, 예를 들면 ‘파란 하늘이나 띄어서/단숨에 들이킨다’ 라든지, ‘없어도 하냥 좋았던 그날,/보리밥 한 광주리의 그 행복’이 정답다.
어떻든 많이 써본 솜씨여서 수준급이다. 앞으로 좋은 시가 기대된다.
- 민용태(고려대학교 교수)
네 아버지는 매일 아침이면 熱에 들떠
온통 붉어진 몸을 이끌고
내게로 와서는 정념을 태우곤
아쉬움에 풀이 죽어 돌아가지.
올 때와 같은 빛깔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날마다 게처럼 자궁 가득히
네 아버지의 그 하얀 마음을 잉태하곤 하지.
鹽夫들이 삶의 가래를 들고 와
내 자궁을 따글~ 긁어
그 마음을 가져갈 때마다
나는 처얼썩- 처얼썩- 그렇게 울지.
나는 밤마다 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반짝이는 별로 태교를 하지
네가 작은 빛에도 반짝이는 건
밤마다 삭힌 그리움이지.
너는 눈부신 태양
그 잘난 정액마저도 펄펄 끓어 넘치는
네 아버지의 자식이야.
육봉화 은어(陸封化 銀魚)
김 대 근
찰나의 시간 동안도 꿈을 잊지 마라.
순간순간이 우리의 귓불을
칼날처럼 스치고 지날 때마다 꿈을 찾아 떠나라.
꿈을 잊으면 그 순간
바다를 망각한 슬픈 은어가 되리라.
그리움이란 가는 자
그리고 오려는 자의 전유물이다.
바다를 상실한 은어는 그저 피라미에 불과하다.
살점에서 풍기는 수내음도 구린내로 변해 가리라.
회귀(回歸)한다는 것은 솔롱고스 찾아 헤매다
비로소 깨어난 꿈같은 것.
사람에 의해 바다 꿈이 거세된
대청호 육봉화 은어들
더 이상 가야 할 곳도 와야 할 곳도 없다.
그들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격월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신인문학상 2007년 1.2월호
염 낭
김 현 태
천 번을 생각해도비천한 길 걸어 왔다."뼈"야 한 울 속의 뼈야."살"아 한 울 속의 살아.그렇게 곱씹으며 부를 때한 몸 문드러져철철 흐르는 추깃물 소리.생육의 뼈와 살 사이염낭.
김현태 ksw6718@hanmail.net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등단.
『구팡돌문학』 편집장.
『두레문학』회원.
봉 인
김 현 태
친구야, 세상에 매장된 비밀은 없단다.우편배달부의 오토바이에 실려오니까.점선을 따라 아래로 당기면쉽게 드러나니까.위험천만한 세상,흰 티 하나 달랑 걸친 나.봉인되어 있다.
타루(墮淚)
김 현 태
주객 간 생욕生慾의 경계는 없는 듯한데누구의 분진도그리운 통제구역이 있는 듯한데액체로 증발하는 내 피두루마리 화장지에둘둘 말려모난 놈처럼 정 맞을 때신생의 아침이 내 타루에 젖지 않을 때.
[추천의 말]
육체의 상상력과 극적인 반전김현태 씨의 응모작 가운데 짧은 시 세 편을 골랐다. 다소 긴 시편들은 버려야 할 군더더기가 더러 눈에 띠었다. 김현태 씨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 혹은 육체에 대한 자폐적인 상상력이다. 자기비하에 도취된 이 폐쇄성은 묘하게도 갇혀 있지 않고 극적인 반전을 이루며 세상을 향해 발을 내민다. 그럴 때 김현태 씨의 시는 반짝 빛을 발한다. <봉인>에서 보듯이 시적 화자는 위험천만한 세상에 흰 티 하나를 걸친 채 봉인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에 매장된 비밀이 없을 때, 봉인을 뚫고 한 발을 내밀 때,
생육의 뼈와 살 사이에 염낭이라는 작은 주머니가 하나 생긴다.(<염낭>)
이 염낭이 바로 김현태 씨의 자화상일 것이다. 그 모습은 물론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표정을 우리 시단에 보여주기 바라며, 정진을 부탁한다.추천위원 : 오세영 원구식
[수상시인 신작]
정다면체 외 1편
김 현 태
만 번을 되짚어 보아도
걸어온 구릉지는
얼핏 뒤돌아보아도
앙꼬 없는 찐빵,
옆구리 터진 만두,
누가 보아도 구미 당기지 않는 길
걷다 절박한 순간 발 멈추었다.
볼록한 정다면체를 구상하고
지표 관계없이 자유자재로
잘 구를 수 있기 바라며,
달처럼 둥글게 만들어
꿈자리 끝까지 구르기 위해
올가미에 걸린 사슴처럼 발악한다.
첫걸음의 의미에 다가가지 못해
휴지로 버려진 긴 시간 횡단해 버린 지친 몸,
사지를 벌리고 쓰러졌다.
쓰러진 몸은 무광의 별이었다.
내 몸이 광채 없는 한 개의 오각형이라니․․․․․․.
공식은 내 몸속에 투명하게 붙어있어
수많은 종이 자르고 버리는 동안
덧없이 쌀벌레로 너무 멀리 기어왔다.
이제 수많은 나를 복제하는 일이다.
내 몸 오각의 꼭짓점에 복제한
수많은 나를 하나둘 이어가는 것.
유리벽에 붙은 마음하나
김 현 태
"잠시 부재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인 없는 가게입구에 불쑥
마음하나 붙어있다.
바라본 눈이 을씨년스럽다.
항상 있어야 할 사람
오늘은 자리 비워둔 채,
흰 가슴에 박힌 파편 한 조각이
마음하나 붙들고 이리저리 흔든다.
다양한 삶들이 넘나드는 초입에서
오늘 흔들리는 것은 어찌 나뿐이랴?
저 유리벽에 붙은 마음하나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떨어질듯 아슬하다.
바람에 덜미 잡힌 저 삶은
내 중심 흔드는 인과응보다.
벽에 걸린 시계가
내 시선에 독을 품는다.
10분, 20분, 30분 바라보며
내게 묻는다. "잠시"와 "조금"의
길이가 얼마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고 본적 없는
그 길이의 수치를 자꾸 되묻는다.
"잠시"라는 사슬에 묶인 몸속으로
밀려와 출렁이는 붉은 파도가
빠르게 시간을 걸러내며
간과 폐 사이를 왕래한다.
2007 [아동문학평론]문예지 신인상 수상작
학교종이 땡! 땡! 땡!
이 승 민
교장샘님 훈화는
에~ 그 러 니 까 말하나 마나
해님도 지겨워 겨워 순이 그림자만 가지고 논다
담임샘님 조회는
에~ 또! 또! 또! 들으나 마나
영철이는 오늘도 결석
정말 좋겠다
뭘 하며 놀까?
땡! 땡! 땡! 울려오는 종례 종소리
산도들도 바다도 와르르 달려 나온다
학교종이 땡! 땡! 땡! 달려 나온다
딱지치기
이 승 민
딱지치기하다가
가운데 손가락 다쳤어
제일 큰 왕 딱지도
내가 모두 따 왔는데
아빠께 딱지 다 빼앗겼어
기분 너무 엉망이야
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얼마나 바라며 따온 딱진데
별을 따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딱진데
아빠는 혼자 독차지하려고
아무도 모르는데 숨겼어
그 날밤 꿈속에서 나는
딱지 대왕이 되었어
세상의 모든 딱지는 내 차지였지
아침 일찍 아빠 몰래
스케치북 찢어 딱지 3개 만들어
책가방에 넣어 두었어
< 2007 [아동문학평론]문예지 신인상 수상작 >
[수상시인 신작]
풍경소리Ⅱ
이 승 민
뜨겁던 여름
바람이 걷어찼는지
뗑그렁 뗑그렁
푸른 하늘
흔들며 울리는 소리
지나던 구름 몇
어쩔 줄 몰라 도망가며
가을 왔다고
알리는 풍경소리
뗑그렁 뗑그렁
이승민 제주도출생 <詩마을> 동인
울산문인협회회원 계간<시세계>로등단
한국아동문학평론신인상 울산공단문학회회원
시와비평 두레문학 회원 한국기독교작가협회회원
시마을 <동시, 시조>란 운영자
한국문학도서관<어린이시향메일>담당
개인 시집 : 사랑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