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진이의 대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재미난 일정을 계획했지만
이 모든 것이 이 어린 것을 예수님께로 이끌기 위한 것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은혜 내려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7. 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간 다스리며
2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32.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33.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34.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36.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7.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38. 요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 주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의 부흥 이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갔다. 이스라엘은 비록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풍요를 누렸으나 유사 신앙을 고수함으로써 자멸의 길로 갔다. 여로보암 2세가 죽은 이후 다섯 왕 중 세 왕(살룸, 므나헴, 베가)은 쿠데타로 집권하였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역시 쿠데타로 집권하였다.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남유다 왕 요담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27~28절 : 남유다 웃시야 52년에, 북왕국 베가가 반역하여 브가히야를 죽이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0년을 다스린다.
그에 대한 평가는 북왕국의 모든 왕이 그러한 것처럼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한 것이다.
29~31절 : 이 베가 왕 때, 앗수르 왕 디글랏 빌세셀이 침략한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이 앗수르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사로잡혀 앗수르로 옮겨진다.
남유다의 요담 이십 년에 북이스라엘의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베가를 반역하여 죽이고 대신 왕이 된다.
32~33절 : 베가 2년에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유다의 왕이 된다.
요담은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여루사는 제사장 사독의 딸이었다.
34~36절 : 요담 왕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평가는 단순하다.
“그는, 아버지 웃시야가 한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그러나 산당만은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분향을 하였다. 그는 주님의 성전의 윗 대문을 세웠다.”(34~35절, 새번역)
그런데 역대기에는 요담 왕에 대한 평가가 좀더 자세히 서술된다.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그가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하고 또 오벨 성벽을 많이 증축하고
유다 산중에 성읍들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에 견고한 진영들과 망대를 건축하고
암몬 자손의 왕과 더불어 싸워 그들을 이겼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백 달란트와 밀 만 고르와 보리 만 고르를 바쳤고 제이년과 제삼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바쳤더라”(대하27:2~5)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월권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담은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였고, 이러한 요담을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걸었다고 한다.
요담은 점점 강성하여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고 수풀 가운데 견고한 진영들과 망대를 건축하며 암몬 자손과 싸워 이겨 그들에게서 조공을 받았다.
이렇게 잘하였지만 한 가지,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이다.
37~38절 : 그런데 이때부터 여호와께서는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다.
요담은 개인적으로 경건하였고 내치와 외치에서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는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악한 일을 계속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악한 왕 베가를 사용하셔서 선한 왕의 나라 유다를 치게 하신 것이다.
요담은 죽은 뒤, 그의 아들 아하스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나의 묵상)
북왕조의 왕들의 공통점은 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른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자멸의 길로 속히 달려감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남왕조는 북과는 달리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지 않는 정직한 왕이 드문드문 등장하기는 하는데, 꼭 걸리는 것이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산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여로보암의 죄’는 하나님께로 달려갈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차단시키는 죄이다.
‘산당 제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편리함과 자기중심성만 가득한 종교생활을 참 신앙생활이라고 믿게 하는 죄이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의 죄’나 ‘산당 제사’는 나름 열심을 내는 모습이지만,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종교생활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은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행을 가고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과거 나의 교회 중심의 믿음 생활이란 것이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하는 것이었고, ‘산당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 모습이었다.
믿음생활이란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임을 모르고, 그저 이 땅에서 나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열심-주일성수, 헌금, 봉사 등의 일을 하는 것-을 내는 것으로 주님께 충성하고, 그 행함이 많을수록 하나님께 인정받고 또 내 믿음이 좋아지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구약의 열왕들의 행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죄와 산당제사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거듭거듭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 자체를 자꾸 잊어버리게 만들고 다른 일을 자꾸 끼어들게 만드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요, 심지어 주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어떤 필요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조차 다 산당 제사임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 앞에 어떤 일이나 문제가 있을지라도, 오직 주님을 더 잘 알기 위한 것에 내 마음을 쏟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매일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금식하고, 작정하며 내 소원을 이루자고 주님께 달려드는, 악에 바친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오늘도 내일도 그저 주님만을 더 잘 알기 위해, 주님만을 갈급해하며 말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한편, 오늘 등장하는 요담은 역대기에는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을 걸었다고 평해진 왕이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27:6)
그런데도 그의 시대에 전쟁이 있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방 왕 르신과 악한 왕 베가를 통해 유다를 다루시는 것이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37절)
나는 요담이 되어 하나님께 대드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 웃시야가 저지른 잘못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제가 왕이라고 성전에서 설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이 나라를 강성하게 된 것을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내려 주셔야지 왜 전쟁을 겪게 하십니까?
산당 제사 때문입니까? 그것을 없애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민란이 일어나 나를 반역할 것인데 그 두려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성전 제사를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입을 쑥 내밀어 주님께 투덜거리는 소리와 같다.
“주님, 이만하면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중심의 모든 일에 충성하고, 주님께서 제게 주신 모든 것에 진심 감사하고 있잖아요? 더 이상 무엇을 하라고 제게 이 어려움을 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자가 온전하시길 원하신다.
이것저것 다 잘 하지만, 남겨놓은 산당 제사를 참으실 수가 없으시단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죄범벅이인 존재가 무슨 수로 온전해질 수 있을까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예수님께 연합되지 않으면 온전할 수가 없다. 꼭 산당 제사를 남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것까지 없앨 수 있겠냐고 반항을 한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말씀 앞에 앉게 하셔서 나의 산당 제사를 보게 하시고,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정결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온전하게 되어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하신다.
요담이 겪는 전쟁은 사랑하는 아들을 다루시는 아버지의 손길이다.
매일의 말씀 묵상 역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요, 십자가에 연합되어 온전하도록 하기 위하여 치르게 하시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다.
(묵상 기도)
주님,
그나마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은 왕들이
산당 제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부르심을 받아 주의 길을 따라갈 때
남겨둔 세상 습관인 산당 제사 문제로 허덕이기도 합니다.
이제 감사의 삶에만 머무르지 말고
십자가에 연합된 군화 신은 신부가 되어
산당 제사를 치워버리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기꺼이 치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