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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님들께 도움이 되기를...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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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샘족, 한족, 아리아족의 종교적 사고
지난 시간에는 초기 인류가 해의 움직임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여 다양한 종교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번시간에는 수많은 종교의 바탕이 되었던 샘족, 한족, 아리아족의 종교적
사고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샘족이라하면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주역으로 중동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다.
그리고 한족은 황하문명의 주역으로
중국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그리고 아리아족은 원래 캅카스를 중심으로
한 카스피해 연안과 남 러시아 늪지대에서
살던 유목민으로 점차 유럽,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등 여러 방향으로 분산된
민족이다. 여기서는 인더스문명으로 진출하여 새로운 종교 사상을 전재시키고
인도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한정한다.
종교를 말하면서 이 세 민족의 종교를
살펴보는 것은 현존하는 종교들 대부분이
이 세 민족의 사고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란 행복의 지도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완성하려면 변하지 많은 사실 즉 진리가 필요하다. 태양의 움직임 즉,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태양의 움직임은 누가 보아도 틀림없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들 세 민족도 이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태양이 서로 졌으면
다음날에는 서에서 떠야 한다.
그런데 동에서 뜬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이유에 대한 다른 상상이
이 세 민족으로부터 각기 다른 종교적인
사고가 나오게 만들었다.
그것을 살펴봄으로서 현존하는 종교들의
모습을 가늠하여 보고자 한다.
1)샘족의 사고(유일신적인 사고)
샘족들은 서로 진 태양은
소멸한다고 생각했다.
즉 태양은 일회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새 누군가가 태양을 만들어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쪽으로 띄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일은 오늘의 태양이 아니고 새로운 태양이 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①시간
이러한 사고에서 시간은 ‘→’다
즉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②창조주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태양의 한 번의 움직임은 하루다.
즉 태양이 움직임으로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밤새 태양은 만든 존재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은 곧 변화이니 시간이 만들어졌기에 만물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래서 태양을 만든 존재는 만물을 창조한
존재로 창조주(創造主)인 것이다.
그러면 창조주는 누가 만들었을까?
이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창조주가 시간을 만들기 전에는
시간이 없었기에 과거도 없었을 터인데
누군가가 창조주를 만들었다면 그 이전의
과거가 존재한다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창조주가 태양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창조주는 이 세상을 만들었고 이 세상의 소유자로서 절대자(絶對者)이며
전지전능(全知全能) 한 존재로
유일신(唯一神)이다.
그런 존재의 생각을 피조물이 안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러면 이 유일신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피조물(被造物)들이 살고 있는 곳이나 또는 그들보다 낮은 곳에는 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곳은 하늘이다.
따라서 하늘나라인 천국(天國)이 상상되고
그곳은 창조주가 사는 세계로 간주되었다.
그렇기에 천국은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사는
나라이기에 어떠한 고뇌도 없고 오로지
즐거움만이 있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루는 행복의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때문에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 있어서
천국은 행복으로 가는 지도에 있어서
최종 목적지가 될 수밖에는 없다.
③인간
그러면 창조주는 왜 인간을 창조했을까?
창조주에 의하여 만들어진 피조물들은
크게 둘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무생물(無生物)이고 또 하나는 생물(生物)이다.
무생물인 하늘, 바다. 땅, 해, 달, 별, 바람, 비 등은 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환경이면서 창조주가 그들을 다스릴 때
사용하는 도구로 이것으로 창조주는 생물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생물도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창조주의 영혼을 불어 넣어서
창조한 것이고, 또 하나는 창조주가 창조한
영혼을 불어 넣어서 창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창조주의 영혼으로 창조된 생물이
인간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기타 여러 가지의 생물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창조주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피조물 중에 창조주와 가장
많이 닮아 있으며, 창조주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창조주가 이런 인간을 만든 이유는 피조물을 관리할 관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창조주의 영원한 종이다.
④탄생과 죽음
이런 사고에 의하면 피조물들은
창조주에 의하여 탄생되어 창조주가 부여한
시간만큼을 존재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따라서 인간 역시 창조주가 창조함으로
탄생되어 창조주가 부여한 시간만큼을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죽으면 다른 생물들은 그 영혼도
소멸되는데, 인간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창조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 영혼은 반드시 천국으로 가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영혼이 있다.
그들은 창조주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스스로가 창조주의 종이라는 사실도 인정하려 하지 않기에 부여된 임무도 수행하지 않으며, 나아가 악의 무리인 사탄의 꼬임에
빠진 이들이다.
이들은 이미 그 영혼이 더럽혀진 존재이어서 천국을 더럽힐 수 있기에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창조주의 것인 까닭에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주의 권위에 도전하고 순종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천국을 오염시킬 것을 염려하여
창조주는 이들이 죽으면 피조물이 사는
세계보다 낮은 땅속에 가두는데
그곳이 바로 지옥(地獄)이다.
⑤행복과 불행
이러한 사고에서는 행복은 천국에
태어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행복해지려면 악마나 사탄의 꼬임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가 창조주의 종임을
자각하고 부여된 시간 동안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다 창조주의 부름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사고에서는 창조주에게는
시간은 없다.
왜냐하면 시간은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창조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永遠)이다.
즉 창조주의 시간은 ‘↔’이다. 그러나 피조물인 시간은 시작도 있고 끝도 있는 직선이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다. 즉 ‘→’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시간은
어떠한 영생을 보낼 것인가를 결정짓는
시간이다.
즉 악마나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창조주에게 불복종하여 살면 영원히 지옥에서 살 것이요, 순종하면서 성실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 영원히 천국에서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은 천국에 태어나는 것이며
불행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만든 이러한 샘족의
사고방식은 그 지역을 침략하여 들어온
아리아족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서 지금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2) 한족(漢族)의 사고(중용(中庸) 적인 사고)
한족들 역시 샘족들처럼 서로 진 태양은
소멸한다고 생각했다.
즉 태양은 일회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밤새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의 이치가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샘족처럼 내일은 새로운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① 시간(時間)
따라서 시간 역시 샘족과 마찬가지로
과거로부터 미래로 흐르는 것으로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은 아니고 ‘―’이다.
왜냐하면 영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② 음양론(陰陽論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쪽에서
태양을 띄우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음(陰)과 양(陽)의 움직임이다. 한 번 모이면 일정한 기간 동안 유지되는 음의 기운과 서서히 모였다가 정점을 이루면 서서히 다시 흩어지는 양의 기운의 움직임이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음의 기운이 유지되는 동안이 밤이다.
그러다가 양의 기운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하면 음의 기운은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음의 기운이 모두 사라지면 낮이 시작되고
양의 기운은 점점 더 모여 강해지면서
태양은 원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다가 양의 기운이 그 정점에 도달하게
되어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게 되면 이때가
한낮이다. 그 성질상 정점을 이룬 양은 이제는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태양은
원을 그리며 서서히 땅으로 내려온다.
그러면서 저녁이 찾아오고 그러다가
양의 기운이 모두 사라져
태양이 땅속으로 들어가면
음의 기운만이 가득한 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양의 기운이 모이기 시작하면 음의 기운은 빠르게 흩어지는데
그러면 다시 해가 뜨고 새벽이 찾아오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③ 인간
음양의 움직임은 만물을 창조한다.
그렇기에 만물에는 그 어디에나
음양이 있다. 따라서 모든 만물은
음과 양으로 구분되는데 하늘의 정기는 양이고
땅의 정기는 음이다.
그리고 남자는 하늘의 정기인
양의 성질이 강하고 여자는
땅의 정기인 음의 성질이 강하다.
따라서 씨앗이 땅속에서 땅을 만나
싹을 틔우듯, 남자에게 있는 하늘의 정기를
품은 정자가 땅의 정기가 가득한 여자의 자궁 속에서 땅의 정기를 품은 난자를 만나면,
땅의 정기로부터 백(魄)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어가면서
여자의 자궁 속에서 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틔울 준비가 다 끝나면 땅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 햇빛을 받고
비를 맞듯이, 백이 완성되면 몸도 태어날
준비가 끝나 자궁 밖으로 모습을 내밀며
탄생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하늘의 정기인 혼(魂)이 모이기
시작한다. 혼이 점점 강해지면서
몸은 성장(成長) 하는데 젊음은
혼이 가장 강할 때이다.
그러다가 정점을 이루면 바로 다시 흩어지는 양의 특성상 젊음을 정점으로 혼은 다시
하늘로 흩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되면 서서히 늙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 흩어지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죽고 나면 비로소 음의 정기인 백이 땅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육신이 서서히 썩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일생이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백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어 무덤 속에서
백이 다 흩어짐으로 끝난다.
여기에서는 영생도 없고 삶이 반복됨도 없다.
④ 행복과 불행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어떤 사람은 천하게 태어나 온갖 고통을 다 받으며 산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천하게 태어났어도
노력하여 부귀영화를 이루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귀하게 태어났어도 부귀영화를
잃고 온갖 고통을 다 받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어째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덕(德)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덕이 있으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덕이 없으면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덕이란 무엇인가.
그 어원을 보면 ‘걸을 척(彳)’에
‘큰 덕(悳)’을 추가하여 만들어진 글자로
‘바른(直) 마음(心)이 곧 덕이다’는
글자에 척(彳)을 추가함으로서 덕(德)은
‘바른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덕이다’라는
뜻이 된 것이다.
그러니 덕은 곧 바른 마음이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마음인가.
도(道)에 부합되는 마음이 바른 마음이고
그렇지 않으면 바른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道)란 무엇인가.
음양이 조화를 이루며 흩어졌다 모이는 음양의움직임이다. 따라서 덕이 있다는 것은
음양의 움직임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덕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천명(天命)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혼이 모이기 시작한 시점의 천지의 음양의 기운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알기 위하여 태어난
연월일시에 음양의 조화로움을 살펴보았다.
연월일시(사주)에 담긴 음양(팔자) 즉
사주팔자(四柱八字)에 의하여 덕이
결정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덕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런 사람들은 덕을 닦아야 한다.
즉 수덕(修德)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덕을 닦아야 덕을 가진
후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덕을 닦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양의 이치에 그냥 자신을 던지고
사는 것이다. 이것은 도교(道敎)이다.
또 하나는 만물에 음양을 구분하고
인간관계에도 음양을 구분하여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은 유교(儒敎)의 방식이다.
3)아리아족의 사고(윤회적인 사고)
아리아족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쪽에서
해가 뜨는 이유를 샘족이나 한족과는 다르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낮에는 동에서 서로
이동하였듯이 밤에는 땅속에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제 뜬 태양이 오늘도 뜨는 것이고 내일도
변함없이 그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태양은 일회용이 아니라 영구적인 것이다.
① 시간
따라서 그들은 시간은
영원한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샘족의 ‘→’도 아니고 한족의 ‘―’도 아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그냥 영원히
반복되는 원이다.
동에서 뜬 해는 낮 동안에는 하늘에서
반원을 그리면서 서로 움직이다.
그리고 서쪽 땅속으로 들어간 해는
밤 동안 땅속에서 반원을 그리면서
동으로 이동한다.
그렇기에 지상이 낮이면 지하는 밤이며
지상이 밤이면 지하는 낮이다.
이렇게 하루가 만들어진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된다.
그러면 태양의 움직임이 하루를 만든 것처럼 씨앗은 봄이 되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게 한다. 그리고 여름 내내 열매를
익히다가 가을이 되면 떨어져 겨울 내내
땅속에서 서서히 봄으로 이동하면서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이렇게 씨앗은 일 년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일 년 일 년이 모여 일생이 된다.
씨앗이 겨울을 지나 봄에 땅속에서
싹을 틔우듯 인간의 탄생 역시 죽음의 세계로부터의 탄생이다. 다시 말해서 태어나 성장해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우다가 늙어 죽으면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의 세계로부터
죽음의 세계로의 탄생인 것이다.
그러면 죽음의 세계를 또한 살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또 삶의 세계로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세계에서의 죽음은
죽음의 세계에서의 탄생이며
죽음의 세계에서의 죽음은
삶의 세계로의 탄생인 것이다.
이와 같이 생명은 소멸하지 않고
죽음과 삶의 세계를 반복하여 도는데
이것을 윤회(輪廻)라 한다.
이와 같이 시간을 원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는 시간의 출발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원이기 때문에 한 바퀴를 돌면
그 시작점은 끝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주와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세상의 시작인 창세기와 같은 것도
별로 의미가 없다.
② 윤회
서쪽 땅속으로 들어간 태양이 다시 뜨려면
일정한 시간을 땅속에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봄에
다시 싹을 틔우려면 일정한 시간동안
겨울을 견뎌야 한다.
이처럼 죽은 사람도 다시 탄생하려면
일정한 시간 동안 죽음의 세계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죽음의 세계에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불행과 고통이 가득한
짐승이나 악귀들의 세계가 있다.
신들의 세계에도 평화를 좋아하는
신들의 세계인 천상과
호전적인 신들의 세계인 수라가 있다.
그리고 불행과 고통이 가득한 짐승의 세계는 축생이며 악귀들의 세계에는
아귀와 지옥이 있다.
살아 있을 때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복을 지으면 천상이나 수라와 같은
신들의 세계에서 죽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나쁜 일을 많이 하고
죄를 많이 지으면 축생이나
아귀 지옥과 같은 곳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따라서 어차피 보내야 할 죽음의 시간을
불행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내려면 나쁜 일을 하거나
죄를 짓는 악업(惡業)을 쌓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복을 짓는
선업(善業)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있을 때는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을 쌓고, 죽어서는 그 과보를 받아
천상 수라 축생 악귀 지옥을 살다가
그 과보를 다 받으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이 윤회이다.
③ 행복과 불행
그렇다면 인간의 삶 속에
왜 행복과 불행이 찾아오는 것일까.
우선 삶의 세계를 하루에 대입(代入) 시켜보면 낮이다. 그리고 일 년에 대입시켜보면
봄부터 가을까지이다.
그런데 낮은 밝고 생명들이 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또 봄부터
가을까지는 생명이 싹이 뜨고
성장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것들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희망, 즐거움, 건강, 아름다움, 행복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죽음의 세계를 하루에 대입시켜보면
밤이다. 일 년에 대입시켜보면 한가운데
겨울이 자리 잡고 있는
가을부터 봄까지의 이미지이다.
그러니 어둡고 모든 생명들이 활동을 멈추고 잠들어 있고 찬바람만 불고
추운 이미지이다.
따라서 좌절, 괴로움, 질병, 추함, 불행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죽음의 이미지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이미지인 삶에
어째서 죽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탄생이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죽음이 죽음으로 가는 것이기에 그때
죽음의 세계와의 문이 열려 죽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삶의 세계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오염된
삶의 세계에서는 선업을 짓기보다는
악업을 짓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죽음의 세계
역시 고통스럽게 지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삶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보다
더욱 강력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리아족은 베다성전을 만들어
많은 신들을 찬양하는 법과 섬기는 법을
기록하였고 나아가 신과 소통하는
전문가 집단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라문이며 이것을 토대로 사성 계급이 생겨났다.
④ 해탈
이러한 윤회의 세계에는
영원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행복하다가도 신의 미움을 받으면 불행은 언제든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반복되는 죽음의 세계 역시
불행과 행복이 반복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의 지배도 없고
윤회도 하지 않은 세계로의
탄생을 꿈꾸었다.
다시 말해서 해탈(解脫)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해탈할 수 있을까.
우선 윤회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반복하여 순환시키는 그 에너지를 알 수만 있다면,
그 에너지를 차단시킴으로써
윤회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윤회의 원동력을
업(業)이라 생각하였다.
업이란 생각과 말과 행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에는 선업(善業)이라는 착한 업과 악업(惡業)이라는 나쁜 업이 있는데,
선업이란 착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고,
악업이란 나쁜 생각과 말과 행동이다.
따라서 살아서 선업을 닦으면 죽음의 세계를 살 때는 천상에 태어나 온갖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살아서 악업을 닦으면
지옥에 태어나 온갖 불행과 고통을 겪으며
죽음의 세계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선업도 악업도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선업과 악업을
모두 소멸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업들을
소멸시킬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제시된다.
하나는 신에게 부탁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에 의하여
업장을 소멸시켜 해탈을 이루는 방법이다.
그리고 둘은 자신의 수행을 통하여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명상이나 고행을 통하여
선업으로써 악업을 행하는
원천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난 후 선업의 근원까지도 끊어버려
모든 업의 종자를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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