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가랑이 사이를 기어들어가다
韓信出袴下 (한신출고하) <사기>
큰 뜻을 품은 사람은 당장 참기 어려운 모욕 같은 것은 참아낸다는
뜻으로 쓰인다.
두 영웅은 나란히 서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난 뒤의 항우와 유방 사이가 바로 이런 형국이었다. 어느 쪽이 천하를 넣느냐는 숙명을 짊어지고서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사투를 거듭했다. 이 때 항우는 초패왕(楚覇王), 유방은 한중왕(漢中王)으로 자처했으므로 이를 '초한전(楚漢戰)'이라 부른다. 결국 이 싸움애서 이름도 없는 농민 집안 출신인 유방이 초나라 장군 집안 출신인 항우를 꺾어 천하를 손안에 넣고서 기원전 202년에 한나라를 세운다.
이들의 운명이 이처럼 갈리게 된 이유는 무엇알까?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방이 많은 인재를 거느리고 있었던 반면에 항우는 인재를 소홀리 대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유방이 마음껏 능력을 펼치도록 한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 한신(韓信)이다. 한신은 천재적인 전략과 전술로 유방이 천하를 얻는데 이바지한다. 다음 장에서 다룰 '배수진'도 그가 짜낸 기묘한 전략이었다.
한신은 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야심만은 대단해서 어른이 되자 벼슬길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집안이 좋은 편이 아닌데다 연줄마저 없어서 어디에서도 벼슬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떤 자리를 얻을려고 착실하게 노력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한신은 커다란 덩치에 칼을 늘어뜨리고서 이따금씩 번화한 곳을 기웃거렸다. 어떻든 눈에 띄었다. 이런 존재는 무뢰배에게는 가장 눈에 가슬리는 법이다. 어느 날 무뢰베 중 한 사내가 한신에세 시비를 걸었다.
"이봐,자네. 겉보기에 칼을 아주 근사하게 차고 있군. 근데 혹시 알
아, 속은 겁쟁이인 줄, 어디 배짱이 있으면 한번 찔러 보시지! 못하겠으면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들어가든지."
곧 싸움이 시작되는 줄 알고 구경을 하려고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신은 말없이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땅에 엎드려 사내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들어갔다. 덩치가 큰 만큼 그 모습은 무척 보기 흉해서 모여 있던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를 들은 한신은 속이 부글 부글 끓어 올랐고, 순간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의 치욕에 불과했다. 큰 뜻이 있으므로 하찮은 일로 여기서 허세를 부리다가 목숨이라도 잃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진정한 용기는 이런 일쯤은 잠아내는 것이다. 한신은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참아냈던 것이다.
"한신은 겁쟁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신을 비웃었다.
그 뒤로 진타도의 반란이 시작되자, 한신은 고향을 떠나 유방 밑으로 들어가서는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10년의 사간이 흐르른 뒤에는 제후의 한사람으로 뽑힐 만큼 높은 신분이 되었다.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야 진정한 인내다.
누구나 쉽게 참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큰 뜻을 품고 있는 자가 어려움과 굴욕을 참아내는 내적인 힘이 없다먄
꿈은 꿈으로 끝날 수도있다. 이 말은 옳지 않은 것을 보아 넘기라는 뜻
과는 다르다. 잘 새겨야 할 것이다.
'모욕을 참아내라.' 이것을 헐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 剛軒 選集 <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