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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6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하나남이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며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가 나셨는데 곧 예수이십니다(행 13:22-23).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압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 수 없다는 것을요.
그 이유는 나는 언제나 불의한 것만 내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죄요, 행하는 것마다 죄만 생산해 내는 자입니다.
어쩌다 선한 일을 좀 하면 또 그것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주장의지에 넘어지고 맙니다.
하여 ‘나’라는 인간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은혜를 입는 첫 걸음이기에 면목없음과 죄스러움으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비록 부끄럽고 죄송스럽지만 아들을 힘입어 담대함 곧 파레시아로 나아가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그 품에 품어주소서.
나의 의로 나가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내가 가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구원과 고침을 받는 강도 만난 자가 바로 나인 것을 처절하게 경험합니다.
나는 나 스스로 절대 일어설 수 없으며 오직 주님으로만 일어설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소서. ㅇ
오늘까지 진행되는 안성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의 복음생명캠프를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6:1-9
제목 : 아하스가 성전과 왕궁에 있는 은금을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17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0세라. 예루살렘에서 16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 나의 묵상
아하스는 이스라엘 왕 베가 17년에 유다의 왕이 되었다.
그는 20세에 왕이 되어 16년간 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않아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았다.
그는 다윗의 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쫓아낸 백성들이 행하는 혐오스러운 풍속을 따라 자신의 아들을 불속에 던졌다.
그리고 그는 산당 및 언덕들 위 그리고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희생제를 드리고 제물을 살랐다.
그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아람 왕 르신이 엘랏 성을 도로 찾으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유다 백성을 쫓아내고 아람 사람들이 엘랏으로 옮겨 왔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곳에 살고 있다.
한편 아하스는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위협에 맞서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는 앗수르 왕에서 사신을 보내어 이르기를 “나는 왕의 신하이며 아들입니다. 오셔서 나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에게서 구해주십시오. 그들이 나를 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7절).
이를 위해 아하스는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은금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가져와서 앗수르 왕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하여 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부탁을 받아들여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였다.
그는 다메섹의 모든 백성들을 기르 성으로 보내고 르신을 죽였다.
그런데 이 일의 배후에는 앗수르를 통해 아람을 심판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암 1:5) 내가 다메섹의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주민들을 끊으며 벧에덴에서 규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기르에 이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유다 왕 아하스에 대한 기록은 역대하 28장과 이사야 7장에 상술된다.
아하스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한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그대로 따라 행하였다.
그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향을 피우고 심지어 자기 아들까지 제물로 바쳤다.
(대하 28:3) (아하스가)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이것은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이방의 역겨운 행위를 그대로 따라 행한 것이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몰록에 대한 제의는 이스라엘 이전시대 곧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예루살렘에 행해지던 제의이다.
(왕상 11: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아하스가 아들을 제물로 바친 것은 왕하 15:37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왕 요담 때부터 있어온 아람과 이스라엘 간의 동맹이라는 위협상황에서 취해진 비상조치로 파악된다.
이것은 마치 모압 왕 메사가 위기 중에 자신의 큰 아들을 제물로 바친 것과 같다(왕하 3:27).
그런데 바로 이 일이 하나님께 죄가 되어 하나님께서 아람 왕으로 하여금 아하스를 치게 하셨다(대하 28:5).
아하스는 아람과 이스라엘 동맹군의 협공으로 인해 그 마음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
(사 7:1-2)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그런데 바로 이 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한다.
(사 7:3-4)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이스라엘은 아하스를 징계하는 도구에 불과하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한 것이다.
아하스는 이때라도 자기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도리어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 7:10-12)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그것도 자기는 앗수르 왕의 신하요 아들이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내어다 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 일은 그 자신은 물론 백성들과 하나님까지 괴롭게 한 죄악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방식으로 결국 구원을 이루신다.
처녀의 몸에서 낳은 아들 곧 임마누엘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다.
(사 7:13-14)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 ‘처녀’(히. 알마-결혼한 젊은 여자)의 몸에서 날 아들은 역사적으로 이사야 선지자의 아내에게서 난 아들로서 마헬살랄하스바스이다(사 8:3).- (히, 베틀라 - 결혼하지 않은 처녀).
그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게 될 때, 아하스를 위협하는 아람 왕이 앗수르 왕 앞에 굴복할 것이다(사 8:4).
그런데 여기 ‘처녀’에게서 날 자는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마 1:22-23)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아하스는 자기 죄로 인한 징계를 받고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구하는 대신 이방신 몰록에게 제사를 하고, 세상의 권력자인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그것이 그 자신과 백성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괴롭히는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왕이라도 장차 오실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신다.
그 계보를 통해 완전한 구원자, 그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며, 그를 믿는 자에게 창세전 약속된 영생을 주신다.
(요 3: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 언약 시대에 언약적 의는 날마다 아들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파레시아의 복종에 있다.
곧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자, 영생을 얻은 자는 아들이 있는 곳에 아들과 함께 있어, 창세전부터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자리에 거해야 한다(요 17:24).
이곳이 아버지 집이고 아버지 품이며, 영생 얻은 자가 날마다 거해야 할 본향이다.
그런데 만일 언약적 의를 저버리고 아버지 집을 떠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
그때라도 말씀을 가지고 창세전 아버지 집,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그 징계를 통하여 아버지의 기쁨이 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영생의 실제에 무지하고 자신이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하스처럼 세상방식을 동원하고, 이방제의를 드리는 우를 범한다.
말씀 아닌 다른 해법을 찾고, 만물 안에서 해법을 찾고, 아버지 집이 아닌 유명한 영성가를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과 주변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의 도를 깨우쳐주시고 그들을 창세전부터 현존하는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놀랍고도 기이한 은혜이다.
나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였지만 아버지 집을 알지 못하였다.
날마다 내가 나아가야 할 본향을 알지 못해 고아와 같이 살고 믿으며 사역하던 자였다.
그래서 현실적인 힘을 가진 교회 안의 앗수르를 의지하곤 하였다.
교회 안의 앗수르는 교회 안에서 힘이 있고 재물도 많이 가진 자이며 게다가 명예까지 있는 자이다.
명색이 목사인데 대놓고 이들을 추켜세우거나 의지한 것은 아니지만 내심 남들이 모르게 나 자신은 그들을 암묵적으로 의지한 것이다.
어떻게든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자 애를 썼다.
그것이 나의 앗수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마음의 뒤에 숨어 있는 동기까지 보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심판하셨다.
그 심판은 공의의 심판이다.
그로 인하여 나는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떨어진 나락이 나를 살리는 자리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나락이 나의 무덤이 되었는데 그 무덤에 우리 주님이 먼저 와 계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먼저 성소를 짓고 계신 것이다.
하여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교제가 가능했다.
그 교제는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의 교제이다.
그렇게 나를 일으켜 세우신 주님은 지금도 나를 붙들고 계신다.
내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고 넘어질라 치면 주님은 긍휼히 나를 바라보시며 거친 손으로 다루신다.
내게 베푸시는 그 은혜의 손길은 한없이 거칠지만 또한 한없이 자비로우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를 섬긴다 하면서도 이방신 몰록을 섬기는 아하스였음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선과 악이 동시에 거하오니 이런 나를 공의로 심판하여 주옵소서.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 하나님이 동시에 두 분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었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이방신이나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맘몬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필요하오니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