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양소연
그녀들은 그 안을 기어들어 갔다 기어 나온다
거칠게 얽어진 거적때기를 끌고
누구에게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꺾으며 동굴의 입구를 통과한다
열기가 그녀들의 손목을 끌어당긴다
허리를 껴안으려는 화기를 재빠르게 포대자루로 막는다
네 다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온몸에 자루를 뒤집어쓴다
그녀의 형체가 아니다
등허리부터 무거운 어깨 다친 무릎까지
무덤에 떼 올려 앉히듯
턱턱 뜨거운 무게들이 몸을 두드려댄다 때린다
검은 이끼를 겹겹이 두른 동굴은
땀내와 한숨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깊어진다
그녀들의 껍질이 열린다
불어 터진 국숫발 같은 인연
엎어버린 밥상 아래의 흔적
가슴팍부터 등줄기로 짜고도 쓴 뭉텅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흥건해진다
독이 다 빠져나갔다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거적때기를 벗는다
열기는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아주고
그녀들은 다시 네 발로 막을 빠져나온다
(김포글샘 82~83 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양소연 《다시올 문학》신인상 수상. 문학동인 <글샘>(부천시 중등교사 문학회)동인.
시집 『가슴뼈 하나 빼내듯 떠나보낸 사랑』
[시향]
“거칠게 얽어진 거적때기를 끌고/ 누구에게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꺾으며 동굴의 입구를 통과한다”고 양소연 시인이 말했을 때, 필자에게는 잠시 비의(秘儀:비밀스러운 종교의식)가 행해지는 장면인 듯하여 신비감이 느껴졌다
출산과 잰 손놀림과 발걸음으로 그녀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몸이 막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나온다 네 다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온몸에 자루를 뒤집어쓴다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죄를 스스로에게 물으려고, 때늦은 반성을 부려놓으려고, 화기 이글거리는 불가마 동굴로 기어들어온 것이다 등허리가 아픈 사람, 짓누르는 듯 어깨가 아픈 사람, 무릎이 아픈 사람들이 모여 무거운 물체로 아픈 부위를 두드린다 때린다 거무튀튀한 동굴은 땀내와 한숨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깊어진다 마침내 그녀들의 껍질이 열린다 불어 터져 다른 그릇으로 옮겨 담을 수도 없는, 국숫발 같은 인연과 엎어버린 밥상 아래의 흔적이 가슴팍부터 등줄기로 짜고도 쓴 뭉텅이들이 되어 흥건하게 쏟아져 나온다 어느덧 출출해지고 기력이 소진되어 생의 독이 다 빠져나갔다는 생각이 들 때 그녀들은 거적때기를 벗고 다시 네 발로 막을 빠져나온다
힘든 삶을 살아온 그녀들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눈썰미와 세밀한 묘사의 힘이 살아있는 시다 비의(秘儀)처럼, 은밀한 치료가 끝났을 때 불가마가 어떤 의사와의 상담보다 더 대중 친화적 요법이란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글 : 박정인(시인)
첫댓글 멋진 시와 멋진 평 잘 읽었습니다..
박정인 시인님의 섬세한 시 읽기로 양소연 시인님의 원석이 한층 날 서는군요.. 세공의 힘..원석의 건강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