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톨드 갤러리의 무수한 걸작들 중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작품이지만, 나는 마네의〈아르장퇴유의 센 강변〉을 좋아한다. 우선 이 그림은 야외에서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은 마네가 드물게 야외에서 그린 그림이기도 하거니와, 언뜻 보면 모네의 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모네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인상파의 두 기둥인 마네와 모네가 실은 얼마나 비슷하며, 또 얼마나 상반된 화풍의 화가들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마네가 이 그림을 그렸던 1874년 초,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첫 합동 전시회인 제1회 《인상파전》이 열렸다. 그러나 마네는 동료 화가들의 끈질긴 권유를 뿌리치고 이 전시에 참가하지 않았다. 마네가 동료들의 기대를 저버린 이유는 마네 스스로가 자신을 인상파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수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마네는 주류 화단의 등용문인 《살롱전》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인상파전》에 참가하는 순간, 자신의 오랜 염원인 《살롱전》과는 영영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상파 화가들로서는 동료들 중 가장 유명한 마네가 《인상파전》 참가를 끝까지 거부한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마네와 모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친분은 주로 8년 위인 마네가 모네를 도와주는 식이었다. 부유한 상인 가정의 상속자였던 마네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1874년 여름, 마네는 모네가 머물고 있던 아르장퇴유에 놀러 가서 이 사랑스러운 풍경화를 그렸다. 아르장퇴유는 모네가 1871년부터 8년간 살았던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이다. 모네는 이 마을에 체류하는 8년 동안 유명한 〈해돋이-인상〉(1872)을 비롯해 자신의 화풍을 확립한 유명한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아마도 마네는 모네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 젊은 화가의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소품에서 마네는 자신이 모네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을 숨김없이 보여 주고 있다. 센 강의 물결을 묘사한, 붓으로 찍은 듯한 짧은 터치에서는 물을 그리는 데 능란했던 모네의 영향이 분명히 느껴진다. 또 강변을 향해 서 있는 모자의 모습도 언뜻 보면 모네의 솜씨라고 착각할 만큼 비슷하다. 사실 이 두 모자의 모델은 모네의 첫 부인인 카미유와 큰아들 장이다. 그러나 마네는 결코 모네가 될 수 없었다. 그림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보트를 보면, 마네는 보트의 몸체 전부를 과감하게 검은색으로 칠해 넣었다. 마네는 검은색을 거의 쓰지 않았던 다른 인상파 화가들에 비해 검은색을 무척 좋아했다. 카미유가 쓴 모자에 검은 윤곽선을 그려 넣고, 검은 리본을 단 것 역시 마네의 ‘자필 사인’이나 마찬가지다. 대기와 물결의 움직임에 매료되었던 모네와는 달리, 마네의 관심은 늘 풍경보다는 사물과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마네와 모네의 개인적인 인연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 그림이 그려진 지 4년 후인 1878년에 모네는 둘째 아들을 얻지만 아내의 병원비를 낼 돈마저 없었다. 결국 마네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산고에 병을 얻은 카미유는 그 다음 해인 1879년에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네는 비탄에 빠진 친구에게 장례를 치를 돈까지 기꺼이 빌려 주었다. 그 후 마네가 1883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모네는 점차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1890년 마네의 화제작인 〈올랭피아〉가 미국으로 팔리자, 모네는 이 그림을 미국 화랑으로부터 다시 사서 프랑스에 기증하자는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로 〈올랭피아〉는 프랑스로 되돌아왔고 모네는 “이 그림은 프랑스의 영광이자 기쁨입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올랭피아〉를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후 루브르 박물관의 인상파 화가 작품들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전되면서 〈올랭피아〉는 마네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오르세 미술관에 걸리게 된다.
모네를 잘 알기 전, 마네는 사람들이 풋내기 젊은 화가인 모네와 자신의 이름을 혼동하는 데 불쾌해했다고 한다. 마네(Manet)와 모네(Monet)란 이름을 혼동하는 것은 우리나라 중학생들뿐이 아닌가 보다. 그러나 곧 모네의 재능을 알아본 마네는 가난한 후배를 후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고, 〈아르장퇴유의 센 강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화풍을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 주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후원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은 모네의 인품도 훌륭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진정한 ‘대인배’는 마네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두 화가의 격의 없는 우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아르장퇴유의 센 강변〉을 나는 몹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전원경/인제대 겸임교수)
첫댓글 마네와 모네의 우정을 알았네요.
미술의 세계 그 화폭에 그린 사람의 혼이 담겨있는 예술품
정말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늘 필요함을 느끼지요.
좋은 그림이야기를 올려주셔서 마음의 양식이 되었네요.
미소님의 건필을 빌며.^^